
<28회>
두 개의 으르렁 거리는 소리가 부엌전체를 쩌렁쩌렁 울렸다. 하지만, 삼총사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연기를 피해 다니는 것도 힘에 부쳤다.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다가 다시 한 소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것은 미르의 소리였다.
“안 돼! 미르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봐.”
한결이는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발만동동 굴렀다.
“젠장 도와주고 싶지만 앞에 아무것도 안 보여! 너무 깜깜하단 말이야.”
찬이는 이미 커다란 티라노사우르스로 변했지만 주변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이리저리 고개만 돌리고 있었다.
“그럼 어떡해 해!”
그때였다 한결이는 찬이와 석우를 번갈아보다가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맞다! 석우야 네가 이 연기를 다 마셔봐.”
“연기를? 이거 별로 맛없을 것 같은데?”
“지금은 그걸 생각할 때가 아니야 한 번 해봐.”
한결이가 재촉을 하자, 석우는 머뭇거리다가 입을 크게 벌렸다.
“그럼 시, 시작한다.”
석우가 검은 연기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자 부엌 전체에 가득한 연기들이 차츰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내 석우는 마시기를 멈추고 숨을 몰아쉬었다.
“헥, 헥, 이제 더 이상 못해 너무 배부르단 말이야. 그리고 이거, 너무 맛없어.”
미르의 소리는 이제 거의 들리지 않았다. 한결이는 다급해서 석우의 어깨를 잡았다.
“제발, 부탁이야. 한번만, 한번만 더 해봐.”
석우는 한결이의 부탁에 다시 힘을 주었다. 한결이도 마치 석우에게 힘을 주려는 것처럼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한결이의 손에서 또다시 푸른빛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우와 배고프다!”
석우가 이렇게 소리를 지르며 입을 더욱 크게 벌렸다. 그와 함께 검푸른 연기들이 모두 석우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검푸른 연기가 사라지자 붉은 눈을 가진 커다랗고 검은 용의 머리가 보였다. 검은 용은 두 발로 미르를 누르고 있었다.
“이런! 나쁜 놈 !”
티라노사우르스로 변한 찬이가 재빨리 달려들었다. 석우와 한결이도 뒤를 따랐다. 찬이는 날카로운 이빨로 검은 용의 발을 꽉 물어 버렸다. 그러자 검은 용은 무시무시한 비명소리를 내며 미르를 놓아 버렸다. 한결이는 재빨리 미르에게 달려갔다.
“미르야, 괜찮아?”
“응 잠시 기절했던 것뿐이야.”
미르는 으르렁거리며 다시 머리를 들어서 검은 용에게 달려들었다. 석우와 미르가 힘을 합치자 검은 용은 고통스런 소리를 내며 자기가 나온 검은 구멍 속으로 차츰 물러서기 시작했다.
“이 때야, 우리가 본때를 보여주자”
찬이와 미르가 입을 벌리고 검은 용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번쩍 하고 빛이 비추더니 순식간에 검은 용도, 그리고 검은 구멍도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뭐야, 도망쳐 버린 거야?”
찬이가 주위를 둘러보면서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찬이의 몸은 이제 다시 본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미르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 저 녀석 어떻게 여의주를 쓸 수 있는 거지?”
한결이도 번쩍 하고 빛나는 빛이 미르가 여의주를 쓰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검은 용도 용이니까 여의주를 쓸 수 있는 거 아니야?”
“아니, 세상에 검은 용은 없어. 그리고 그 놈은 용들의 냄새가 나지 않았단 말이야. 마치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처럼……. 그런데 어떻게 저 녀석이 여의주를 쓸 수 있는 거지?”
한결이는 지난 번 우돌 영감이 알려주었던 검은 용들에 대해 미르에게도 알려주었다.
“그렇구나! 난 한 번도 영감이 말한 검은 용은 본적이 없어. 그럼, 저런 녀석들이 지금 "온 대륙"을 지배하고 있다는 거야? 가만, 그럼 영감은? 영감은 어떻게 된 거야?”
좀 전에 부엌 한 가운데를 비추던 달빛들은 이제는 다시 창가에 걸려 있었다. 하지만, 우돌 영감은 돌아오지 않았다.
“영감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해. 그 편지, 그리들이 보낸 편지 때문에 "온 대륙"으로 갔는데……. 이 그리 녀석들 내가 다 잡아먹어 버릴 거야!”
미르가 흥분해서 한결이 옆에서 아직도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리를 턱 물었다.
“살려줘. 우린 잘못 없어! 살려줘.”
“그만해 미르야, 그런다고 우돌 영감님이 돌아오는 게 아니잖아.”
“캑캑. 우리 편지 보내는 일 못한다. 검은 용이 지키고 있어서 편지 못 보내. 캑캑 우리 못 보낸 지 1년 됐어.”
그리가 발버둥 치면서 외쳤다.
“뭐야, 그럼, 그 편지, 그리들이 전해줬다는 편지는 가짜였던 거야?”
미르는 그제야 그리를 내려놓았다. 그리는 데굴데굴 굴러서 한결이 뒤에 착 달아 붙었다.
“제길, 영감을 잡으려고 함정을 판 거야.”
“누가 그런 짓을 했단 말이야?”
석우가 놀란 눈으로 물었다.
“나단, 그 나쁜 용 사냥꾼이 한 짓이 틀림없어.”
“그럼, 어쩌지? 이제 우돌 영감님은 못 돌아오는 거야?”
돌아오긴 왜 못 돌아와! 내가 구해 올 거야 지금 당장!”
미르가 화가 나서 고함을 꽥 질렀다.
“하지만, 우린 달 두꺼비 뼈로 만든 열쇠도 없잖아. 무슨 수로 ‘온 대륙’까지 갈수 있단 말이야?”
“어떻게든 ! 어떻게든 갈 거야 내가 구해낼 거라고 그 바보 영감탱이 내가 구하고 말거야!
“미르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미르도 어떻게 할지 방법이 없었다. 그냥 화를 내며 크게 울부짖을 뿐이었다. 한결이는 미르의 슬픈 눈을 보며 마음이 아팠지만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였다. 한결이 등 뒤에서 숨어 있던 그리가 얼굴을 삐쭉 내밀며 한 마디 했다.
“달 두꺼비 열쇠……. 우리 대왕님, 알고 계셔.”
“뭐라고?”
삼총사들과 미르는 모두 ‘그리’를 바라보았다. ‘그리’는 그 시선이 무서운 듯 한결이 등에서 숨어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왕님이 오셔. 보름달 밤, 시간의 언덕에, 우리 대왕님은 모르는 게 없어.”
“맞다! 우돌 영감님이 달 두꺼비 열쇠를 찾게 된 것도 그리들의 대왕에게 물어보았기 때문이라고 했어.”
“그럼 뭘 망설여 빨리 그 대왕인지를 만나러 가보자.”
찬이의 말에 석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미르도 눈을 반짝였다.
“얘! 그럼 시간의 언덕은 어디 있는 거야. 우린 어떻게 하면 그곳에 갈 수 있는 거지?”
한결이의 말에 그리는 공처럼 통통 한결이 주위를 돌면서 말을 이어갔다.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 어디에나 있어. 우린 누구나 그곳으로 갈 수 있어.”
그리의 말이 끝나자마자 부엌 여기저기에서 하얀 그리들이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엔 열 마리 백 마리 그리고 수천수만 마리가 나타나자 그리들은 서로 손을 잡고 수 만개의 원을 만들어 빙글빙글 돌았다.
“어휴 어지러워.”
삼총사들과 미르는 빙글빙글 도는 ‘그리’들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너희 날 잡아먹지 않는다는 약속 지켰다. 그리들도 너희 도와준다.”
그리의 목소리가 어지럽게 들리더니 미르와 삼총사들의 몸이 둥실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새 주변에 있던 커다란 오븐이나 부엌의 주방 도구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째깍째깍 거리는 시계소리와 커다란 숫자 그리고 시계바늘만 어지럽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시간에 언덕에선 어떤 질문에도 대답해선 안 돼. 그럼 못 돌아와 명심해 절대 대답해선 안 돼. 명심해!”
그리가 빙글빙글 돌면서 하는 말이 삼총사와 미르의 귓가에 맴돌았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어디에도 없는 곳 우리들의 고향! 시간의 언덕으로…….”
그리의 목소리가 마치 뱃고동처럼 멀리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그와 함께 수억 마리의 그리들과 삼총사들 그리고 미르까지 서로의 몸이 하나로 겹치더니 다시 엉키고 엉켜져 소용돌이처럼 변해 버렸다.
“우와!”
삼총사와 미르는 모두 정신을 잃고 말았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