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황색 안개
(1)
“바양, 그런데 넌 왜 가온나무 구멍에 빠지게 된 거야?”
땅끝 폭포에서 하룻밤을 보낸 한결이들은 새벽부터 하람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어젯밤 세상을 울리는 엄청난 닭울음 소리에 놀라 모두들 밤잠을 설쳤지만 하루빨리 우돌 영감을 찾아야 겠다는 생각에 한결이도 용들도 힘을 내었다. 하지만 바양은 밤잠을 설친 탓에 조금 신경이 날카로와져 있었다. 그래서 한결이는 분위기를 바꾸어 보려고 바양에게 이런저런 말을 걸었던 것이었다.
“쳇, 그게 다 우리가 찾고 있는 그 우동인지 뭔지 하는 영감 때문이야. 그 영감이 나보고 가온나무 우물 속에 써 있는 예언이 뭔지 보고 오라잖아. 예언을 보고 싶으면 자기가 들어가든지 하지 도대체 인간들은 마음에 안 들어. ”
“우돌 영감을 욕하지마, 네가 바보같이 속아서 상자에 갇히고 노예가 된 거잖아.”
미르가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흥, 넌 그런 말 하기 전에 둔갑 좀 제대로 해라, 네 능력으론 여자애로 밖에 둔갑할 수 없는 거냐. 나 참. 용들은 능력이 딸려서 안 된다니까.”
“이 녀석이! 여자로 변하는 게 어때서 그래. 너 처럼 어리숙한 꼬마로 둔갑하는 것 보다 이게 훨씬 났거든.”
바양의 비아냥거림에 미르도 지지 않고 으르렁대었다. 당황한 한결이가 둘 사이를 떼어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만들 싸워. 그런데 바양, 넌 그럼 가온나무의 예언을 읽은 거야?”
한결이의 물음에 바양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난, 가온나무의 예언을 모조리 한자도 빠짐없이 알고 있어.”
“진짜요? 그 예언에 뭐라고 되어 있나요? 온 대륙의 운명은요?”
부루가 흥미가 있다는 얼굴로 바양을 바라보았다.
“훗, 내가 너희 같은 바보 용들에게 그런걸 알려 줄 것 같아?”
바양은 어림없다는 듯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예언을 알기는 무슨, 저 족제비 녀석이 글이나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이게 정말!”
바양이 화가 나서 이네 거대한 족제비로 변했다.
“이제 그만 좀 싸워!”
한결이는 지쳤다는 듯이 한숨을 푹 쉬었다. 그때였다. 바양이 날카로운 눈빛을 빛냈다.
“가만, 누군가 우리를 엿보고 있어!”
바양은 으르렁거리며 붉게 죽어가는 잎 을 달고 있는 나무들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바양! 왜 그래?”
한결이가 바양을 불렀지만 바양의 으르렁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바양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미르! 부르! 바양에게 뭔가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해.”
“나 참, 저 족제비 녀석 도움이 안 된다니까. 그러기에 내가 상자에 집어넣으라고 말했잖아.”
미르는 이렇게 투덜거렸지만 숲으로 달려깠다. 부루와 한결이도 뒤를 따랐다.
“하하, 귀여워! 너무 귀여운 족제비야.”
나무들 어딘가에 까르르 웃는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야, 미르, 빨리!”
한결이들이 재빨리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나무들 사이로 달려갔다.
“어? 바양!”
한결이의 눈에 비친 것은 거대한 몸을 웅크리고 편안한 모습으로 잠을 자고 있는 바양이었다. 바양 말고는 여자아이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바양, 정신 차려. 어떻게 된 거야.”
“으응? 내,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가만, 여기 잇던 여자 아이! 너희들 못 봤어?”
크게 하품을 하며 정신을 차린 바양이 아직도 졸린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자아이? 너 어제 닭울음소리 땜에 잠을 못자서 지금 제정신이 아닌 거지?”
“진짜로 봤다니까. 그럼 내가 왜 여기까지 뛰어 왔겠어?”
바양이 으르렁대었다.
“하긴 우리도 여자아이 목소리를 들었어요. 그러니까 너무 귀여운 족제비라고 했던가?”
부루가 목소리를 기억해 내며 말했다.
“푸하하! 귀여운 족제비? 저 족제비 악령이? 말도 안 돼.”
미르가 웃음을 터뜨리자 바양은 얼굴이 붉어졌다.
“그 그만, 그만하라고 나도 그런 소린 들으면 몸이 오그라들 것 같단 말이야.!”
한결이가 바양의 등을 토닥였다.
“자자,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면 된 거잖아. 빨리 가자. 푸른 숲을 건너면 하람 아저씨가 사는 신의 계곡이야.”
“그래요, 이 길을 벗어나면 바로 푸른 숲이 나타나요. 그러니까 서두르죠.”
부루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상한 소녀와 웃음소리에 대해선 아무것도 밝혀진 건 없었지만 바양도 웬일인지 온순해 졌기 때문에 한결이들은 기분 좋게 발걸음을 내딛었다.
“자, 이제 곧 온대륙에서 가장 아름다운 푸른 숲이 나타 날 거야.”
미르가 기분 좋은 듯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한결이도 온대륙에서 가장 아름답고 신비한 숲이 푸른 숲이라는 말을 들었기에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뭐야, 이건 푸른 숲이 아니야. 이건 너무해!”
미르가 당황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도 당연했다. 한결이들의 눈에 비친 푸른 숲은 앙상하고 메마른 나무들이 빽빽한 죽음의 숲처럼 보였다. 게다가 숲 전체를 둘러싼 기분 나쁜 황색 안개는 마치 죽음의 숲을 집어삼킨 거대한 괴물처럼 보였다.
“저 안개 뭔가 위험해 보여요.”
부루가 잔뜩 경계하는 눈으로 푸른 숲을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