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황색 안개




(1)

“바양, 그런데 넌 왜 가온나무 구멍에 빠지게 된 거야?”

 땅끝 폭포에서 하룻밤을 보낸 한결이들은 새벽부터 하람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어젯밤 세상을 울리는 엄청난 닭울음 소리에 놀라 모두들 밤잠을 설쳤지만 하루빨리 우돌 영감을 찾아야 겠다는 생각에 한결이도 용들도 힘을 내었다. 하지만 바양은 밤잠을 설친 탓에 조금 신경이 날카로와져 있었다. 그래서 한결이는 분위기를 바꾸어 보려고 바양에게 이런저런 말을 걸었던 것이었다.

“쳇, 그게 다 우리가 찾고 있는 그 우동인지 뭔지 하는 영감 때문이야. 그 영감이 나보고 가온나무 우물 속에 써 있는 예언이 뭔지 보고 오라잖아. 예언을 보고 싶으면 자기가 들어가든지 하지 도대체 인간들은 마음에 안 들어. ”

“우돌 영감을 욕하지마, 네가 바보같이 속아서 상자에 갇히고 노예가 된 거잖아.”

미르가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흥, 넌 그런 말 하기 전에 둔갑 좀 제대로 해라, 네 능력으론 여자애로 밖에 둔갑할 수 없는 거냐. 나 참. 용들은 능력이 딸려서 안 된다니까.”

 “이 녀석이! 여자로 변하는 게 어때서 그래. 너 처럼 어리숙한 꼬마로 둔갑하는 것 보다 이게 훨씬 났거든.”

바양의 비아냥거림에 미르도 지지 않고 으르렁대었다. 당황한 한결이가 둘 사이를 떼어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만들 싸워. 그런데 바양, 넌 그럼 가온나무의 예언을 읽은 거야?”

한결이의 물음에 바양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난, 가온나무의 예언을 모조리 한자도 빠짐없이 알고 있어.”

“진짜요? 그 예언에 뭐라고 되어 있나요? 온 대륙의 운명은요?”

 부루가 흥미가 있다는 얼굴로 바양을 바라보았다.

“훗, 내가 너희 같은 바보 용들에게 그런걸 알려 줄 것 같아?”

바양은 어림없다는 듯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예언을 알기는 무슨,  저 족제비 녀석이 글이나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이게 정말!”

바양이 화가 나서 이네 거대한 족제비로 변했다.

“이제 그만 좀 싸워!”

 한결이는 지쳤다는 듯이 한숨을 푹 쉬었다. 그때였다. 바양이 날카로운 눈빛을 빛냈다.

“가만, 누군가 우리를 엿보고 있어!”

바양은 으르렁거리며 붉게 죽어가는 잎 을 달고 있는 나무들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바양! 왜 그래?”

한결이가 바양을 불렀지만 바양의 으르렁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바양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미르! 부르! 바양에게 뭔가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해.”

“나 참, 저 족제비 녀석 도움이 안 된다니까. 그러기에 내가 상자에 집어넣으라고 말했잖아.”

미르는 이렇게 투덜거렸지만 숲으로 달려깠다. 부루와 한결이도 뒤를 따랐다.




“하하, 귀여워! 너무 귀여운 족제비야.”

나무들 어딘가에 까르르 웃는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야, 미르, 빨리!”

한결이들이 재빨리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나무들 사이로 달려갔다.

“어? 바양!”

한결이의 눈에 비친 것은 거대한 몸을 웅크리고 편안한 모습으로 잠을 자고 있는 바양이었다. 바양 말고는 여자아이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바양, 정신 차려. 어떻게 된 거야.”

“으응? 내,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가만, 여기 잇던 여자 아이! 너희들 못 봤어?”

크게 하품을 하며 정신을 차린 바양이 아직도 졸린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자아이? 너 어제 닭울음소리 땜에 잠을 못자서 지금 제정신이 아닌 거지?”

“진짜로 봤다니까. 그럼 내가 왜 여기까지 뛰어 왔겠어?”

바양이 으르렁대었다.

“하긴 우리도 여자아이 목소리를 들었어요. 그러니까 너무 귀여운 족제비라고 했던가?”

부루가 목소리를 기억해 내며 말했다.

“푸하하! 귀여운 족제비? 저 족제비 악령이? 말도 안 돼.”

미르가 웃음을 터뜨리자 바양은 얼굴이 붉어졌다.

“그 그만, 그만하라고 나도 그런 소린 들으면 몸이 오그라들 것 같단 말이야.!”

한결이가 바양의 등을 토닥였다.

“자자,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면 된 거잖아. 빨리 가자. 푸른 숲을 건너면 하람 아저씨가 사는 신의 계곡이야.”

“그래요, 이 길을 벗어나면 바로 푸른 숲이 나타나요. 그러니까 서두르죠.”

부루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상한 소녀와 웃음소리에 대해선 아무것도 밝혀진 건 없었지만 바양도 웬일인지 온순해 졌기 때문에 한결이들은 기분 좋게 발걸음을 내딛었다.




“자, 이제 곧 온대륙에서 가장 아름다운 푸른 숲이 나타 날 거야.”

미르가 기분 좋은 듯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한결이도 온대륙에서 가장 아름답고 신비한 숲이 푸른 숲이라는 말을 들었기에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뭐야, 이건 푸른 숲이 아니야. 이건 너무해!”

미르가 당황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도 당연했다. 한결이들의 눈에 비친 푸른 숲은 앙상하고 메마른 나무들이 빽빽한 죽음의 숲처럼 보였다. 게다가 숲 전체를 둘러싼 기분 나쁜 황색 안개는 마치 죽음의 숲을 집어삼킨 거대한 괴물처럼 보였다.

“저 안개 뭔가 위험해 보여요.”

부루가 잔뜩 경계하는 눈으로 푸른 숲을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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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밤이 깊었만 마을 여기저기에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아침에만 해도 여행객을 지렁이 괴물에게 먹이로 주었던 마을이라고 볼수  없을 정도로 행복한 기운이 가득했다. 아이들과 구미호들은 이 마을에 하룻밤을 자고 아침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모두들 큰 모험을 겪어. 지쳐 있었기 때문이었다. 석우와 찬이도 벌써 잠이 들었지만 미호는 잠이 오지 않았다.

 미호는 강둑에 앉아 피어오르는 밤안개를 바라보며 깊은 한 숨을 내쉬었다.

“미호야, 이 상자를 부탁한다. 알겠니?”

지금 이 순간에도 할머니가 옆에서 미호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예언의 꿈을 만드는 것은 구미호에게는 숙명적인 임무였다. 하지만 나단이 세상을 지배하고 나선 별들은 숨을 죽였고 더 이상 구미호들은 예언의 꿈을 만들지 못했다. 예언의 꿈을 만들지 못한다면 구미호들은 살아 잇을 이유가 없다. 그것을 잘 알고 있던 할머니는 온힘을 다해 여우구슬을 만들었다.

“이 여우구슬이 예언하는대로 넌 예언의 아이들을 찾아야 한단다. 그리고 그 아이들을 찾으면 이 상자 속의 물건을 그 아이들에게 전해 주렴. 이 물건은 이 세상을 바로 잡을 소중한 보물이다. 절대로 예언의 아이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이 상자를 열어서는 안 된다. 알겠니?”

“네 할머니 꼭 이 상자를 예언의 아이들에게 전할게요. 그러니 기운네세요 할머니!”

“미호야, 잊지마라, 절대로 희망을 잃지 마라. 네 자신을 믿어라 알겠니...”

 할머니는 여우구슬과 작은 상자를 미호에게 남기고 숨을 거두셨다.

 미호는 할머니가 주신 여우구슬을 만지작 거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용서해 주세요. 할머니. 전...”

갑자기 미호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몇 년전 구미호들이 살던 숲이 파괴되었던 때가 생각났다. 예언의 아이들은 백년이 다 되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나단이 만든 강철 인형들이 숲을 파괴해도 구미호들은 저항할 힘이 없었다. 피눈물을 흘리던 미호는 할머니가 주신 상자에 생각이 미쳤다.

“세상을 바로잡을 소중한 보물... 지금 우리에겐 이게 필요해.”

 미호는 할머니의 당부가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그 때 당시엔  달리 다른 해결책을 생각할 수가 없었다. 미호는 할머니와의 약속을 어기고 그 상자를 열었다. 그런데...




“미호야, 아직 안자고 있었던 거야?”

 노아의 목소리에 미호는 서둘러 눈물을 훔치고 여우구슬을 품에 집어 넣었다.

“응, 이제 잘 거야, 넌 왜 깼어?”

“헤헤, 옆 방에서 자는 석우 녀석이 잠꼬대를 얼마나 심하게 하든지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더라고.”

노아가 어깨를 으쓱 하며 미소를 지었다.  미호도 살짝 미소를 흘렸다. 노아는 그런 미호의 얼굴을 보며 마음이 울쩍해 졋다. 예전에 미호는 그렇게 심각한 아이가 아니엇다. 언제나 자신을 자상하게 보살펴주고 미소가 얼굴에 더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미호의 얼굴에 웃음이 사라져갔다. 이게 다 나단이 세상을 지배하고 미호가 예언의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는 임무를 맡게 된 이후 부터였다.

“미호야.”

“응?”

“저 아이들... 아무래도 진짜 예언의 아이들이 맞는 거 같아. 겁도 많고 먹는 것도 밝히지만 확실히...”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럼, 할머니의 유품... 그 아이들에게 넘겨 줄 거야?”

노아의 질문에 미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미호는 한 참 머뭇거리다가 노아에게 말했다.

“세상의 예언은 모두 세상 중심에 있는 가온 나무에서 시작된다는 거 너도 알고 있지?”

“응, 알고 있어.”

“우리 구미호들의 구슬 예언도 그리고 마누크마누크가 알고 있던 샛별의 예언도 모두 가온 나무에서 만들어진 예언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우리들의 예언은 항상 불완전 한 거야. 진짜 예언과 완전히 다르게 해석을 할 수 있기 때문이야. 저 아이들 정말 예언의 아이들일까? 아닐까? 가온 나무에서 확인할 때까지 아무도 알 수 없어. 그런데 만약 우리가 함부로 할머니의 유품을 전해준다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세상은 어둠을 없앨 마지막 힘을 잃게 될 수도 있어.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르고 싶진 않아.”

“그렇구나, 그럼 빨리 가온 나무까지 가는 게 중요한 거네. 거기서 확인 해 보면 되잖아. 난 빨리 예언으ㅢ 아이들이 누군지 알고 싶단 말이야. 그 녀석들이 누군지 확실해져야. 할머니의 유품을 가지고 있는 미호 너도 예전처럼 밝아질것 같거든”

“....”

 미호는 미소를 짓는 노아를 바라보며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마음속에 무언가 울컥하는 걸 간신히 참았다.

“하암, 졸린다 나 먼저 잘게 너무 오래 있진 마,”

노아가 손을 흔들고 숙소로 사라졌다. 미호는 사라져가는 노아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언제나 자신을 걱정해주는 오랜 친구 노아...

“고마워 노아야, 하지만 난 앞으로도 예전처럼 웃지 못 할 거야.”

 미호는 다시 몇 년전 그날이 떠올랐다. 나단의 강철 인형에 맞서던 구미호들이 쓰러져 가던 그날... 미호가 굳은 결심을 하고 할머니의 유품 상자를 열었을 때였다.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났고 그 소리는 미호의 마음을 후벼팠다. 없다... 아무것도... 아니 사라진 거다 소중한 유품이... 세상을 바로 잡을 수 있다는 단 하나의 물건이.... 그때 한번 더 참았더라면 상자를 열지 않았더라면...

“미안해요 할머니.... 나는 그때 이미 어처구니 없는 짓을 저지르고 말았어요.”

 미호는 소리죽여 울기 시작했다. 풍요의 강의 물소리만이 들리는 밤이 그렇게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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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 속엔 내 울음소리가 담겨져 있단다. 주머니를 열면 세상의 어떤 소리보다 큰소리를 낼 수 있어. 위급할 때 도움이 될 거다.”

 마누크마누크가 죽기전에 찬이에게 건내준 푸른 주머니... 그리고 마누크마누크의 말....

찬이는 마누크마누크의 말이 기억나자 그에게서 받은 푸른색 주머니를 품속에서 꺼내들었다.

‘저 지렁이들은 소리에 민감하잖아. 세상의 어떤 소리보다 큰 마누크마누크의 울음소리를 사용하면 저 녀석들을 멈추게 할 수도 있을 거야. 한 번 해보자’

찬이는 침을 꿀꺽 삼키고 푸른 주머니의 입구를 손에 쥐었다.

“모두들 귀를 막아요! 귀를 막아!”

찬이가 큰소리로 외쳤다. 구미호들과 석우는 그 소리에 놀라 찬이를 바라보다 재빨리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두억도 얼떨결에 두 귀를 막았다. 찬이는 그 순간 주머니들을 확 열어젖혓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귀를 꼭 막았다.

“꼬오끼오! 꼬오끼오!”

 세상 전체를 뒤 흔들만한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모두들 귀를 꼭 막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찬이는 귀를 막고 버티다가 그만 자리에 주저앉았다. 귀를 막고 있는 사람도 견디기 힘들 만큼 커다란 소리인지라 지렁이들이 받은 타격도 심각했다. 지렁이들은 괴로움에 몸을 이리저리 비틀면서 몸을 모래 속으로 숨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뿐만이 아니었다. 끔찍하게 커다란 닭울음소리가 끝이 나자, 얼어붙은 동굴에서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쩌억!”

“저기 봐! 동굴 입구에 얼음이 갈라졌어!”

석우가 얼음동굴을 가리켰다.

“쨍그랑!”

유리가 깨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어머니 동굴에서 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치 둑이 터지는 것처럼 폭포에서 물이 쏟아져 내리는 것처럼 맑은 물이 쏟아져 내렸다. 메마른 강은 어느새 물로 넘치기 시작했다.

“물이! 물이 나온다!”

마을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어느새 풍요의 강이라는 이름에 걸 맞는 아주 맑고 깨끗한 물이 가득차기 시작했다.

“고마와요 마누크 아줌마!”

 찬이는 이제는 비어 버린 파란 주머니를 바라보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저기 봐! 무지개야 무지개가 떴어.”

석우의 말에 노아는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돼. 구름만 잔뜩 낀 온 대륙에 무지개가 안 든지 벌서 백년이야. 그런데 어?”

노아는 석우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다 말문이 막혔다. 정말 강 이곳저곳에 아름다운 무지개가 만들어졌다. 쏟아지는 강물이 강의 이곳 저곳을 부딪히며 흰 물보라를 일으켰고 그 물보라가 밝은 빛에 반짝이며 무지개를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밝은 빛?

 노아는 그 빛이 동굴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빛은 너무나 밝았지만 이상하게도 문을 지뿌리게 하거나 따갑지 않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평화로운 느낌을 들 게 했다. 노아는 그 빛의 주인공이 누군인지 대번에 알아차렸다. 

“머라이언님, 머라이언님이 드디어 깨어나신 거야.”

노아 뿐아니라 아이들과 마을 사람들 모두 그 밝은 빛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밝은 빛의 준인공인 머라이언이 동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위엄 있고 신비로운 모습으로 천천히 고리를 움직여 헤엄치는 머라이언이 마치 구름위를 걷는 우아하게 강으로 헤엄쳐 왔다.

 그 모습에 마을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숙였다. 아이들도 구미호들도 자신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졌다. 머라이언은 물속에 있는 찬이와 구미호들에게 조용히 다가와 한번 쓰윽 주위를 돌더니 천천히 강 하루로 헤엄쳐갔다. 머라이언이 지나간 강둑에는 작은 풀꽃들이 가득 피어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 아름다운 모습에 취해 한 참동안 머라이언이 사라져 갈 때 까지 그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응, 이건 뭐지?”

정신을 차린 찬이 손엔 작은 뿔 고둥이 쥐어져 있었다. 그 뿔 고둥에는 은빛 물고기 비늘이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다.

“이 건, 머라이언님의 마법의 뿔 고둥이야.”

미호가 찬이의 손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법의 뿔 고둥?”

“그래, 이것만 있으면 물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을 얻게 돼.”

“이, 이런 걸 왜 내게?”

미호의 말에 찬이는 깜짝 놀랐다.

“아마, 자신을 깨어날 수 있게 해준 것에 대한 머라이언님의 선물일거야.”

노아가 빙긋 웃었다.

뿔 고동이 마치 머라이언님의 무지개빛처럼 반짝거렸다. 찬이는 뿔 고둥이 한 참 동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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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머라이언 깨어나다.

(1)

“너 때문에 죽을 뻔 했잖아!”

석우가 마누크마누크로 변한 차이의 발에 매달려 두억에게 소리를 쳤다.

“저 지렁이 녀석이 열 마리가 넘을지 내가 어떻게 알아!”

두억도 지지 않겠다는 듯이 소리를 질렀다.

“둘 다 조용히 좀 해. 너희들 때문에 아무 생각이 안 나잖아.”

노아가 소리를 빽 질렀다.

 이미 풍요의 강은 십 여 마리의 괴물지렁이로 넘쳐나고 있었다. 찬이가 서둘러 변신을 하지 않았다면 석우와 구미호들은 이미 지렁이들의 먹이가 되었을 거였다.

“저 녀석들 드디어 강둑으로까지 올라오고 있어.”

미호가 아래를 내다보며 말했다. 미호의 말대로 괴물 지렁이 몇 마리는 벌서 강둑 밖으로 나와 마을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장대를 버리고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고 있었다.

“저 사람들 다 잡아 먹히겠어!”

 찬이는 깜짝 놀라 힘차게 날개 짓을 하며 사람들에게 공격하는 올고이 코르고이에게 달려들었다.

“조심해 찬이야!”

석우가 겁이 나서 소리쳣다. 찬이는 날개로 올고이 코르고이의 몸통을 힘차게 내리쳤다. 올고이 코르고이의 거대한 몸이 강 쪽으로 떠밀려 갓지만 그 반동으로 찬이의 몸도 기웃뚱했다.

“으악!”

찬이의 다리에 매달려 잇는 석우와 구미호들 그리고 두억이 비명을 질러댔다.

‘이렇게 해선 마을 사람들이 다 잡아먹히고 말거야. 어떡하지, 무슨 방법이 없을까?’

찬이는 머리를 짜내도 뾰족한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 자신의 몸도 점점 무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큰일 났어. 변신한 몸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잇는 게 분명해.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해 이 곳을!’

찬이가 다른 동물로 변신하는 시간은 기껏해야 5분정도 박에 안 된다. 만약 이대로 원래 몸으로 변한다면? 찬이는  생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끔찍한 장면이 떠오르자 다시 힘을 내서 날개 짓을 하였다. 하지만 찬이의 몸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안 돼! 안 돼!”

 찬이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날개짓을 햇지만 찬이의 몸은 점점 아래로 내려갓다. 그와 동시의 몸도 조금식 작아졌다.

“찬이야! 찬이야!”

 몸무게 무거운 석우가 고함을 지르며 제일먼저 강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그리고 차례로 구미호들과 두억이 강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졌다. 찬이까지 몸이 원래대로 변해 하늘에서 떨어지자 십여마리의 지렁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으, 으악! 오지 마. 오지 마!”

석우가 놀라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 바보 녀석아, 그렇게 소리지르면 어떻게 저 지렁이 녀석들이 소리에 민감하다는 거 몰라?”

두억이 핀잔을 주었지만 어쩔수 없었다. 석우는 급기야 울음을 터뜨렸다.

“어쩔 수 없네. 이길 가능성은 없지만 어떡해든 해보자.”

미호가 아홉 개의 고리를 쫙 펴고 주먹을 굳게 쥐었다. 노아도 미호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꼬리를 폈다. 두 구미호들이 힘을 합친다고 해도 이 괴물 지렁이들에게 이길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냥 포기할 수많은 없었다.

“젠장 뭐라도 집어 들고 싸워보자. 난 여기서 저 기분나쁜 녀석들에게 잡아 먹히고 싶진 않아

 두억도 강바닥에 내팽개쳐진 장대 하나를 들고 말했다 찬이는 잘라진 장대 두개를 움켜쥐었다.

“하지만 난 너무 무섭단 말이야. 으앙!”

하지만 석우의 울음소리는 커지기만 했다. 사실 두억이나 찬이도 석우처럼 울고 싶은 김정이었다.

“이 녀석 아무것도 안 하려면 그 입이라도 다물어 몇 번을 이야기해 이 지렁이들이 소리에 민감하단 말이야. 자구 울면 저 녀석들에게 너를 집어던져 버릴 거야.”

 두억의 위협에 석우는 그제야 눈물을 삼켰다. 그때였다. 찬이의 머릿속에 번개같이 마누크마누크의 말이 떠올랐다.

“잠깐,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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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 건 말도 안 돼.”

두억은 너무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손바닥에는 검게 삼족오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찬이가 두억을 풀어주는 대신 삼족오의 계약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그 덕분에 싸리 빗자루에서 둔갑한 도깨비인 두억의 몸이 다 탈 뻔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제 절대로 약속을 어기진 않겠지.’

 찬이는 두억의 울 듯한 표정을 보니 약간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지금까지 두억이 한 행도을 생각하면 어쩔수 없다고 생각했다.

“자, 시간이 없어. 날이 어두워기 전에 우린 이 강을 벗어나 잘빛 평원으로 가야 한단 말이야.”

노아가 두억을 몰아세우자 두억은 울며 겨자먹기로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자, 이제부터 내가 설명하는 걸 잘 들어요!”

 두억의 계획은 이랬다. 먼저 마을 사람들이 장대를 이용하여 마른 강바닥을 두드린다. 그러면 소리와 진동에 민감한 올고이 코르고이가 모습을 드러내게 되고 마을 사람들이 장대로 괴물 지렁이에 시선을 끄는 동안 찬이들과 구미호들이 재빨리 강을 내려간다는 계획이었다.

“그렇게 되면 저 괴물 지렁이가 나중에 너희들이 강 아래로 내려가는 걸 알아차려도 그 땐 이미 늦은 거지. 너희는 썰매를 타고 아래로 내려간 뒤일 거니까 말이야. 어때, 근사한 작전이지?”

 두억이 으스대듯 말했다. 두억의 계획은 좀 위험해 보이긴 했지만 해볼 만한 시도였다.

“좋아, 해보자!”

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아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자, 마을 분들은 모두 장대를 들어요. 장대! 혹시 장대가 없는 사람은 내가 싸게 나뭇잎 세장에 팔고 있으니까 빨리 사는 게 좋을 거예요! 아무것도 안 하다 마누크마누크님에게 혼이나고 싶진 않겠죠?”

 두억이 사람들을 모아놓고 유난을 떨었다.

“어이구 저 녀석 장사 수완 하난 알아줘야 한다니까.”

찬이가 두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십 여명의 마을 사람들이 장대를 가지고 강 상류에 모여들었다.  두억의 신호에 따라 마을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장대로 강 바닥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리고곧이어 강바닥이 꿐틀되더니 괴물 지렁이의 모습이 드러났다.

“더 크게 더 큰 소리를 질러요!”

두억이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 뒤 구미호와 찬이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자, 우리도 준비 됐지?”

두억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괴물 지렁이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심스레 몸을 움직여 강 바닥으로 들어갔다.

“자, 이제 출발 만 하면 돼. 마을 사람들 보고는 적어도 1시간은 저러고 있어야 한다고 엄포를 놨으니까 걱정 마.”

두억은 이렇게 말하고 찡끗 웃어보였다.

“저 녀석 아무리 그래도 난 안 믿어.”

석우는 찬이에게 이렇게 귓속말을 햇다. 두억을 믿기 어려운건 찬이도 마찬가지였지만 딱히 다른 방법이 없었다.

“별수 없어. 우리에겐 지금 이 강을 벗어나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 일단 하라는 대로 해보자.”

찬이는 석우에게 이렇게 말하며 썰매 위에 몸을 얹었다.

“자, 그럼 출발이다!”

두억이 팔을 뻣어 주먹을 흔드는 것을 신호로 각자의 썰매가 미끄러져 내려갔다. 썰매들이 점점 속력을 내기 시작했지만 다행히 올고이 코르고이는 눈치를 체지 않은 듯 했다.

“야호! 성공이다!”

신이난 두억이 썰매를 앞서 나갔다.

“야, 같이가!”

석우와 찬이도 속력을 내었다. 미호와 노아가 조심하라고 소리쳤지만 이미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두억은 고개를 돌려 구미호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외쳤다.

“성공이야! 성공, 저 느림보 지렁이 자식이 지금 좇아와도 우릴 다라 잡을 순 없다고! 난 너무 잘났단 말씀이야. 자, 너희들도 빨리 와! 어?”

“쿵!”

그 순간 두억의 썰매는 무언가에 부딪혔고 두억은 순간 공중에 떠올랐다가 차가운 강바닥에 꼬꾸라졌다. 온 몸이 쑤시고 아팠지만 두억은 앓는 소리를 낼 겨를이 없었다. 눈 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괴물 지렁이가 또 있어.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맙소사!”

두억의 썰매와 부딪혔던 것은 바로 올고이 코르고이의 몸통이었다. 이미 괴물 지렁이 십 여마리가 모래를 뚫고 나타난 것이었다.

“이제 끝장이야.”

두억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푹 주저앉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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