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회>
언제 쯤 계수나무 그늘로
돌아갈거나
백 개의 강에는 슬픔만 흐르고
등잔 밑 숨은 달은
애를 태우네.
이무기 하늘을 날아
불타버린 하늘,
달을 삼킨 아이만
불 속에서 슬피 우네.
그리의 수수깨끼 대왕이 다시 노래를 불렀다. 처음에 들었던 노랫소리와 달리 지금은 그 소리가 무시무시한 노래처럼 느껴졌다. 수수깨끼 왕은 노래를 끝마치고는 다른 그리들과 함께 거대한 벽에 일부분이 되었다. 이젠 사방에 하얀 벽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자, 다시 해보자!”
미르는 온힘을 모아 냉기를 뿜으며 그리들의 벽을 향해 돌진했다. 그러나 하면 할수록 벽은 더욱더 두터워지는 것 같았다.
“다시 ! 다시 !”
미르는 계속 벽을 뚫어버리려고 애를 썼지만 그때마다 미르의 몸도 점점 지쳐갔다. 이제는 삼총사를 태우고 하늘을 나는 것조차 버거워 보였다.
“다시! 다시 한 번!”
미르는 다시 한 번 벽을 향해 날아오르려다가 아래로 곤두박질 쳐졌다.
“그만해. 미르야 이러다가 네가 쓰러지고 말 거야.”
한결이는 자기들 때문에 미르가 다치는 것은 원치 않았다.
“쳇, 내 간식거리밖에 안 되는 것들에게 질 순 없어. 자 다시 시작하자.”
이렇게 이야기 했지만 주저앉은 미르는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싫어, 집에 못 돌아가고 여기에 갇히는 것도 싫지만 네가 다치는 건, 네가 죽는 건 더 싫단 말이야.”
“바보……. 우리 꼭 돌아갈 테니까 날 믿으라고 이래봬도 가장 무시무시한 용이란 말이야. 넌 날 바보로 만들 셈이야?”
미르는 푸르륵 입김을 내뿜으며 고개를 들었다.
“미르야…….”
한결이는 미르의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해보자, 난 널 믿어 미르는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용이니까.”
“당연하지, 우린 절대 포기할 수 없어.”
“그래, 우린 절대 포기 못해.”
한결이는 눈물을 쓱 닦았다.
“왜이래 우리들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야.”
찬이와 석우도 눈물을 팔꿈치로 쓱 닦고 씩 웃어보였다.
“자 그럼 시작할까?”
미르는 한결이를 태우고 다시 그리들로 이루어진 벽을 향해 돌진했다. 찬이는 거대한 익룡으로 변해 그리들의 벽을 부리로 쪼아대었다. 벽은 꿈쩍도 하지 않았지만 포기 할 순 없었다. 언제나 세상을 포기한 것 같이 살아온 삼총사들도 이제는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자, 다시 한번 해보는 거야.”
몸은 지쳐서 이제 팔 하나 들 힘도 없었지만 삼총사와 미르의 마음은 전혀 지치지 않았다.
“좋아, 그럼 하나 둘 셋 하면 시작이다.”
“그래, 하나, 둘, 잠깐 방금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어?”
한결이는 귀에 손을 대고는 소리가 어디에서 들리는지 주변을 살폈다.
“무슨 소리가 들린다는 거야? 여긴 사방이 하얀 벽들뿐이잖아.”
찬이도 사방을 둘러보며 귀를 기울였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분명히 들었다니까. 어? 봐 또 들리잖아. 저기 저 왼쪽 하늘 위야.”
“좋아 그럼 우리 모두 가보자.”
미르와 찬이가 석우와 한결이를 태우고 왼쪽 하늘로 날아올랐다. 한결이는 귀를 쫑긋 세우고 소리가 들리는 곳을 찾았다.
“이리로 와”
“또 들린다. 좀 더 왼쪽 왼쪽이야”
그 소리는 아주 작지만 분명한 목소리였다.
“이리로 와”
“맞아 나도 들려 좀 더 위쪽이야 ”
석우도 흥분해서 소리쳤다. 삼총사와 미르는 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향해 날아올랐다.
“여기가 분명한데.”
한결이는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모두 하얀 벽뿐이었다. 그때였다. 하얀 벽에서 눈알 하나가 깜박거렸다
“이리로 와.”
삼총사와 미르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쉽게 알아차렸다. 바로 한결이들을 이곳으로 안내한 바고 그 그리였던 것이다.
“넌 그때 그 녀석이 구나 네가 우릴 부른 거니?”
“그래, 내가 불렀어. 이 벽 깨뜨릴 수 있어.”
“정말? 어떻게?”
“내 몸 많이 약해져 있어. 그러니까 날 뚫고 가면 돼.”
“뭐라고?”
삼총사들은 모두 놀라서 서로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럼 넌 죽게 되잖아.”
“그래 죽어. 죽는 건 싫지만 넌 약속 지켰어. 나도 약속 지켜”
“그럴 순 없어. 널 죽이고 우리가 살순 없어.”
“시간이 없어 좀 있으면 난 그냥 죽어. 내가 죽으면 벽이 메워져서 나갈 틈 없어.”
“그렇지만 난…….”
“우리들에겐 약속 중요해. 약속 꼭 지킬 거야. 너도 꼭 나가서 내가 약속 지키게 도와줘라”
이렇게 말하는 순간에도 그리의 눈동자가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시간이 없어. 빨리 탈출해라 빨리.”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한결이는 점점 흐릿하게 사라지는 그리의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회는 한 번 뿐이야. 저 녀석 고통스럽지 않게 한 번에 온 힘을 다해서 돌파하는 거야 알겠지?”
미르의 목소리도 예전과 달리 차분하고 진지하게 들렸다
“좋아, 최선을 다하는 거야!”
삼총사를 등에 태운 미르는 온 힘을 다해 하늘 높이 솟구쳤다 그리고 그리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리들은 약속 곡 지켜. 대왕님도 약속 지켰고 나도 약속 지켰어. 잊지 마라 잊지 마”
눈 하나밖에 없는 그리지만 한결이에게는 문득 그 눈이 한 순간 웃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 간다!”
미르와 삼총사들이 그리에게 전속력으로 부딪혔고 그리는 마지막으로 눈을 깜박였다. 그와 동시에 절대 뚫지 못할 것 같았던 벽이 쩍 갈라지며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눈부신 빛이 삼총사와 미르를 감싸 안았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