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땅끝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는 미르의 머릿속엔 온 통 한결이 밖에 없었다. 베다왕이 숨을 내쉬는 덕분에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한결 도움이 되었지만 워낙 거대한 땅끝폭포인지라 떨어지는 물줄기를 견디어 내기는 쉽지 않았다.

‘한결아 절대 떨어지면 안 돼! 꼭 버텨내!’

 그 순간에도 미르는 한결이 걱정뿐이었다. 바양의 등에 매달린 한결이가 혹시라도 떨어진다면 미르는 자신을 평생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한결아! 걱정하지마 내가 반드시 구해 줄게.’

 미르는 이를 악물고 온 힘을 다해 폭포 물살을 견디며 올라갔다. 그때였다. 바로 위에 있던 부루의 몸이 점점 쳐졌다.

 “부루 힘을 내! 이제 거의 다 왔어!”

 하지만 어느새 부루의 몸은 미르의 옆까지 내려갔다. 부루의 눈은 이미 반쯤 감겨 있었다.

 “부루!”

미르가 서둘러 부루의 몸통을 덥석 물었다. 순간 부루의 몸에서 피가 쏫았다. 순간 부루의 눈이 번쩍 떠졌다.

 “고,고마워!”

 부루가 다시 힘을 내어 날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엔 미르가 문제였다. 부루가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데 너무 무리한 탓이었다. 미르의 눈이 차츰 감기면서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계속 힘을 내서 폭포 위로 올라가려고 했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미르의 몸은 계속 제자리에 머물렀다.

‘이 바보 ,힘을 내, 한결이, 한결이가 위험하단 말이야.’

 하지만 마음과 달리 미르의 몸은 점점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부드러운 손길로 자신을 잡아끄는 것처럼 ....

 “야, 정신 차려. 안 그러면 잡아 먹어 버린다!”

 바양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함께 한결이의 목소리도 들려었다.

 “미르! 정신 차려 미르!”

 미르는 한결이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결아! 걱정 마 내가 꼭 구해줄게!”

미르가 있는 힘껏 몸을 둥글게 구부려 자기 몸통을 꽉 물었다.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미르는 마치 바퀴처럼 자기 몸을 빙글빙글 돌리더니 온힘을 다해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크르릉!”

 폭포소리가 묻힐 만큼 큰 미르의 울음소리가 세상에 울려 퍼졌다.




“미르, 이제 정신이 들어?!”

미르가 정신을 들고 보니 눈물 범벅인 한결이의 얼굴이 보엿다.

“한결아.!..”

미르가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상처 부분에 통증이 심해 몸을 일으키기가 힘들었다.

“그냥 누워 있어. 자꾸 움직이면 상처가 덧난단 말이야.”

어느새 아이의 모습으로 변해 있는 부루의 얼굴도 보였다.

“여기는...?”

“성공이야, 우리 모두 폭포를 거슬러 온대륙으로 돌아왓어.”

한결이의 말에 미르는 사방을 둘러 보았다. 정말 온대륙이다. 오랫동안 그리워도 가보지 못했던 곳 온대륙... 미르는 무언가 울컥한 기분에 찬찬히 온 대륙의 풍경을 살펴 보앗다.

“저, 바보 용 녀석은 나 두고 우린 우선 먹을 거나 찾아보자.”

이 목소리는 바로 바양의 목소리다. 한결이를 잡아간 못된 족제비 녀석 바양!

“너 이 녀석! 용서 못해!”

미르가 다시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상처 때문에 제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덤비려면 덤벼봐 이번엔 정말 잡아먹어 줄 테니까.”

 검은 옷을 입은 사내아이로 변한 바양이 비아냥거렸다.

“이 자식이!”

“그만, 미르! 우리가 폭포를 벗어난 것도 다 바양 때문이란 말이야.”

한결이는 미르를 말리며 바양이 폭포를 거슬러 올라간 이유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이제 바양은 상자에 갇혀 있지 않는 대신 얌전히 있기로 맹세했어.”

“쳇, 한결이 너, 저 녀석 말을 정말 믿는 건 아니겠지?”

미르가 마음이 상햇는지 고개를 획 돌렸다. 사실 미르는 한결이에게 아무것도 도움이 되지 않은 자신이 싫었고 그  많큼 바양 녀석이 꼴도 보기 싫었다.

“미르....”

 한결이는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로 미르와 바양을 바라보았다.

“자, 날이 저물었으니까 우선 폭포 근처에서 잠을 청하기로 하죠. 나와 바양이 땔감과 먹을 걸 좀 가져오죠.”

부루가 미르를 노려보고 있는 바양을 억지로 끌고 숲으로 사라졌다. 둘만 남은 미르와 한결이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날은 벌써 어두워지고 풀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폭포 주변의 나무들은 아직 잎이 무성했지만 멀리 보이는 살들은 이미 붉게 죽어가 있었다. 한결이는 그 모습을 살펴보며 차가운 미르의 등을 어루만졌다.

 “미르 온대륙에 온 느낌이 어때?”

 한결이가 미르를 바라보며 이렇게 물었다.

 “기뻐... 그리고 슾프기도 해.”

 미르는 슬픈눈으로 온대륙의 죽어가는 숲을 바라보며 말했다.

“미르...”

한결이는 미르의 푸른 등을 꼭 껴안았다. 미르의 슬픈 마음이 한결이에게도 느껴지는 것 같았다. 미르의 몸의 떨림이 조금씩 느껴졌다. 그렇게 미르의 슬픈 울음소리는 나직하게  나무 사이로 울려 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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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으으... 바, 바양 왜 이러는 거야?”

한결이가 자신의 얼굴을 때리는 세찬 바람을 피하느라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는 간신히 말을 내뱉었다. 바양은 대답대신 목을 위로 쳐들어 한결이를 훌쩍 자신의 등위로 올려 보냈다. 한결이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바양의 억센 털을 꽉 붙잡았다. 하마터면 상자를 떨어뜨릴 뻔 했다.

“아이고! 바양, 너 또다시 거짓말을 한 거지? 맞지?”

 한결이는 무섭기도 했지만 화가 나기도 했다.

“잔 말 말고 꽉 붙잡기나 해. 시간이 없단 말이야.”

“시간? 무슨 시간? 어디 가는 거야?”

“정말 시끄러운 꼬마야. 넌 그냥 저 바보 용들이 잘 쫓아오나 보기나 해.”

바양은 달리는 속도를 더욱 높이며 날카롭게 외쳤다. 한결이는 바양의 속셈이 무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바양의 말 대로 뒤를 돌아보니 미르와 부루가 눈에 불을 키고 바양을 뒤쫓고 있었다. 한결이는 바양이 무슨 나쁜 짓을 구미는 것이 아닌가? 더럭 겁이 났다.

“너, 무슨 나쁜 짓을 꾸미고 있는 거지? 당장 말해! 안 그러면 널 다시 상자 속에 집어넣을 거야!”

하지만 바양은 전혀 두렵지 않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마음대로 해, 너하고 두 마리 용들 모두 어둠의 밑바닥에 빠져 죽고 싶다면 말이지.”

‘정말, 바양은 이 곳에서 빠져 나갈 방법을 알고 있는 건가? 지금 이 행동도 그것 때문일까?’

이런 생각이 들자 한결이는 무조건 바양을 의심한 것이 미안해졌다.

“알았어. 이제 네가 하자는 대로 할게. 바양”

한결이의 태도가 바뀌자 바야으이 목소리도 조금 누그러졌다.

“이제야 말귀를 알아듣는군. 자, 앞을 봐봐.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저기야. ”

바양의 말에 따라 한결이가 고개를 들었다. 멀리 지평선 끝에 하얀 물기둥이 장막처럼 펼쳐져 있는 것이 보였다.

“저, 저건... 폭포잖아?”

“맞아, 저게 바로 온대륙 끝에 있다는 땅끝 폭포야. 우리가 저 폭포를 거슬러 올라 가면 온대륙으로 갈 수 있어.”

“맙소사! 저길 어떻게 올라간단 말이야? 도저히 불가능해”

한결이는 한 눈에 보아도  땅끝 폭포의 어마어마한  크기를 알 수 있었다. 한결이는 그 세찬 물줄기를 뚫고 위로 올라간다는 것은 미르나 부루아니 바양이라도 가능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 꼭 그렇지만은 아니야. 베다 왕이 몸을 뒤집는 순간을 이용하면 가능할 수도 있어.”

“베다왕이 몸을 뒤집는 순간?”

“그래, 베다왕이 몸을 뒤집을 땐 큰 힘이 필요해 그래서 이 거북이 녀석이 그 순간에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쉰단 말이야. 그 순간이 바로 기회야. 베다왕이 숨을 내쉬는 순간 우리는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면 돼. 그리고 이제 그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

“바양, 그 걸 어떻게 알아?”

“바람을 느껴봐. 폭포 쪽으로 부는 바라밍 점점 강해지고 잇잖아. 거북이가 숨을 들이 마쉬고 있는거야.”

 그제야 한결이는 바양이 다짜고자 자신을 물고 달렸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바양... 그래서 상자에서 나오자 마자 달렸던 거구나.”

“맞아, 저 바보용들에게 일일이 설명해 줄 시간은 없었단 말이야. 저 녀석들이 바보긴 하지만 널 데려가면 분명 기를 쓰고 쫓아게 분명했으니까 말이야. ”

“그랬었구나. 고마워 바양!”

“고마워 하긴 일러. 이제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 꽉 잡아!”

바양이 달리는 속도를 더 높였다. 거대한 땅끝 폭포가 이제 눈 앞에 다가왔다. 한결이는 바양의 털을 더욱 굳게 잡아 쥐고는 뒤쫓아 오는 미르와 부루에게 소리쳤다.

“미르! 부루! 서둘러! 우리는 폭포를 올라가야해! 빨리! 더 빨리!”

정신없이 바양을 뒤쫓던 미르가 한결이의 목소리에 정신을 퍼득 차렸다.

“뭐? 폭포를 올라가야 한다고?”

“미르, 저 당끝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는 건 불가능해.”

“나도 알아, 하지만 한결이를 놓칠순 없어. 하는 데까지 해보자.”

미르는 속도를 더욱 내며 말했다.

“알았어. 한 번 해보자!”

부루도 속도를 더 내었다. 두 마리 용은 이내 바양의 꼬리 뒤까지 따라잡았다. 그때엿다. 아주 강한 바람이 폭포족으로 불어 닥치기 시작했다. 그바람에 바양과 두 용들의 속도가 두 배로 빨라졌다. 어느새 폭포에서 생기는 하얀 물안개가 주변을 가득 메웠고 한결이의 얼굴에도 수많은 물방울이 부딪했다.

“자, 이제 곧 베다 왕이 숨을 내쉴 거야. 그 순간을 놓치면 안돼.”

폭포 쪽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마치 태풍처럼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온 세상을 쩌렁쩌렁 울릴 것 같은 베다왕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르르릉!”

그때였다. 순간 태풍 같던 바람이 뚝 끊겼다.

“지금이야!”

바양이 훌쩍 날아서 폭포 쪽으로 뛰어들었다.

“한결아 기다려!”

“한결군!”

미르와 부루도 바양을 쫓아 폭포로 뛰어 들었다. 그와 동시에 베다왕이 들이마신 숨을 다시 내쉬기 시작했다.

“그르르릉!”

그 순간 땅끝 폭포의 물줄기가 하얀 물안개를 피우며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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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땅 끝 폭포




(1)

“베다 왕이 움직인다니 무슨 소리야. 베다 왕들은 온 대륙을 떠받치고 있는 녀석들이잖아. 그런데 이 녀석들이 어떻게 움직인다는 거야.”

미르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부루를 바라보았다.

“세 마리의 베다 왕이 1000년 마다 한 번 씩 자리를 바꾼다는 거 기억 안나?”

 잘 흥분하지 않는 부루도 뜨거운 입김을 내뿜으며 말했다.

“맙소사 그럼 오늘이이 바로 그 날이란 말이야?”

 놀라는 미르의 얼굴을 보며 한결이는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미르, 자리를 바꾸면 어떻게 되는데 큰일이라도 나는 거야?”

한결이의 물음에 미르가 침통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세상을 떠받치는 베다왕은 총 세 마리야. 그런데 이 세 마리가 1000년에 한 번씩 자리를 바꿔. 무거운 세상을 오랫동안 떠받치기 어려우니까 잠시 몸을 푸는 거지. 그래서 가운데 있는 베다 왕부터 시작해 자리이동이 끝나면 또다시  천년동안 베다왕은 꼼짝 않고 세상을 떠받치게 되는 거지.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야. 자리를 이동할 때 베다왕은 한번 씩 몸을 뒤집는단 말이야.  ”

“몸을……. 뒤집는다?”

한결이는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그래요 베다 왕이 자기 몸을 뒤집게 되면 등껍질 위에 있던 모든 것이 어둠의 밑바닥으로 추락하게 되지요.”

“그곳은 빛도, 공기도, 소리도 아무것도 없어. 그 끝도 알 수 없고, 그곳에 떨어졌다. 살아 돌아온 건 아무도 없어.”

미르의 말에 한결이는 머리 끝가지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럼, 우린 이제 어떻게 해야 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우린 꼼작 없이 어둠의 밑바닥으로 덜어지고 말 거야.”

미르가 두 다리로 자신의 머리를 감싸며 말했다. 부루도 아무 말 없이 슬픈 표정으로 한결이를 바라보았다.

“마, 말도 안 돼 그럼 우린 여기서 꼼짝없이 죽어야 한다는 거야. 그럴 순 없어. 미르, 어떻게 좀 해봐. 응? 미르!”

“한결아 미안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미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결이는 겁이 난 얼굴로 두 용을 번갈아 보았지만 모두들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잇을 분이었다. 한결이의 얼굴이 울상이 되어 갔다.

“싫어, 여기서 이렇게 죽는 건 싫어. 집에 가고 싶어 미르 집에 데려다줘. 엄마! 으앙!”

한결이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때였다. 상자 속에서 바양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어휴 시끄러워서 잘 수가 있나. 바보용에 울보 꼬마라니 정말 최악이야.”

“너 이 녀석 말 다했어?”

 미르가 마치 상자를 집어 삼키려는 듯이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진정해, 미르. 저 녀석 우리를 화나게 해서 상자에서 다시 나올 속셈이 분명해.”

 부루가 미르를 말리며 말했다. 한결이도 상자를 끌어안고 미르를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 바양가지 나타난다면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야, 울보 꼬마!  아무것도 안하고 그렇게 울고 만 잇을 거면 나 좀 상자에서 꺼내 줘.  난 너랑 바보 용들과 함께 멍청하게 죽는 걸 기다리고 싶진 않단 말이야.”

 상자 속에서 조롱하는 듯 한 바양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미르가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상자에 냉기를 확 불어 넣었다.

“이 녀석, 내가 더 이상 까불대지 못 하게 꽁꽁 얼려 버릴 거야.”

“그만해, 미르! 그만!”

 한결이가 상자를 든 채 얼른  몸을 피했다.

“바보 용들이 그래도 자존심은 있나보군.”

바양이 다시 미르에게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그만해 바양, 너도 여기서 살아나갈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게 아니잖아?”

“무슨 소리, 내가 저런 멍청한 용들하고 같은 줄 알아?”

“이 녀석이 또!”

 한결이가 화를 내는 미르를 간신히 진정시킨 뒤, 바양에게 말했다.

“그럼 넌 여기서 나갈 방법을 알고 있단 말이야?”

“당연하지. 쉽진 않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야.”

바양의 말에 한결이는 금세 얼굴이 밝아졌다. 

“정말, 그 방법이 뭐야?”

“그걸 말하기 전에 조건이 있어. 내가 그 방법을 알려 주는 대신 상자에서 날 나갈 수 잇도록 해줘.”

“말도 안 돼 저 녀석 거짓말로 널 속이려는 게 분명해.”

 미르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펄쩍 뛰었다. 바양의 말이 믿기 어려운 것은 한결이도 마찬가지였다. 상자에서 나와서 미르나 부루에게 갑자기 덤벼들게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혹시 정말 바양이 방법을 알고 있다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빙글빙글 돌아서  한결이는 선뜻 결정을 못 내리고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보다 못한 부루가 나섰다.

 “한결군, 바양을 상자 밖으로 내보내도 원하면 언제든지 다시 수 있으니까. 한번 바양의 말을 들어보죠.”

“말도 안 돼 저런 족제비 놈이 도대체 뭘 알게냐고.”

미르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렇게 앉아서 떨어질 때를 기다리는 것 보다 낮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이 들자 한결이는 침을 꿀꺽 삼키고 상자 속의 바양에게 이렇게 말했다.

“좋아, 나갈 수 잇게 해줄게 그 방법을 알려 줘.”

“아니, 먼저 날 상자 속에서 꺼내 줘.”

바양의 말에 한결이는 부루와 미르를 번갈아 쳐다보고는 상자를 높이 들고 외쳤다.

“바양! 상자 속에서 나와!”

그 순간, 상자가 꿈틀 움직이더니 순식간에 산처럼 커다란 바양이 모습을 나타냈다. 그때였다.

“크르르!”

“으악!”

바양이 갑자기 한결이의 웃옷  목덜미를 덥석 물고는 달리기 시작했다.

“한결군!”

“한결이를 내 놔! 이 족제비 자식아!”

부루와 미르가 곧바로 바양을 뒤쫓았다. 하지만 이미 바양은 저만치 달려가고 있었다.

 바양의 입에 매달린 한결이는 너무 무서워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다행히 바양의

상자는 꼭 쥐고 있었다.

‘이 상자 만 있으면 이 무시무시한 족제비 괴물을 다시 잡아 넣을 수 있어!’

한결이는 마음속에서 이렇게 외쳤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달리는 바양 대문에 세찬 바람이 얼굴이 다가울 정도였고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 한결이는 그저 울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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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 행복해 너무 오래만이야 이런 기분.’

두 용의 걱정과 상관없이 시간이 지날수록 한결이의 얼굴엔 미소가 점점 더 크게 그려졌다. 사실 최근 몇 주 동안 미르와 지내면서 한바탕 소동을 겪어온 탓에 하루라도 마음 편히 지내는 일이 드물었다. 큰 사건이 없는 날에도 혹시 오늘 미르가 사고를 치지 않을까? 닷발 괴물이나 그리들이 또 나타나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하느라 마음에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미르와 여러 까지 모험을 하는 건 재미있긴 했지만 사실 한결이의 원래 성격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그런데 오늘 바양과 결투를 하면서 이렇게 꿀맛 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니... 한결이는 이 시간이 아주 영원히 지속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을 할 정도였다.

한결이가 이렇게 기분 좋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있기를 즐기는 동안 옆에 누워 있는 바양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우돌이라는 용 사냥꾼에게 속아 몇 십년 동안 노예처럼 일만했고 또 백년동안은 아무도 찾지 않는 베다왕의 등위에서 혼자 있었다. 그렇게 긴 세월 끝에 겨우 나온 바깥세상이었다. 그런데 오랜 기다림을 끝내고 하는 첫 결투가 고작 누워서 아무 일도 하지 않기라니... 어수룩해 보이고 겁이 많이 보이는 인간 꼬마에게 결투 방법을 선택하게 만들게 너무 후회 되었지만 이미 결투는 시작되었고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었다.

‘별수 없지. 참자. 참아. 백 년간 상자 속에서 갇혀 있는 것도 참아왔는데 이 정도 쯤이야.’

바양은 그렇게 생각하고 눈을 닥 감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사실 바양은 작은 크기로 줄어들어 상자에 갇혀 있을 때도 상자 속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기를 멈추지 않았다. 상자 안이 갑갑하기도 했지만 원래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바양이 아무것도 안하고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하다니... 바양은 은근히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기기만 해봐라. 저 꼬마 녀석과 용들까지 다 먹어 치구고 말테다.’

시간은 어느덧 결투를 시작한지 두 시간이 가까이 되었다. 지켜보던 부루와 미르도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결투의 지루함을 버티지 못하고 크게 하품을 하기 시작 하였다. 그런데 한결이는 처음 때와 별로 달라지지 않고 느긋한 표정이었다. 마치 지금까지 누리지 못한 느긋함을 한 거번에 즐기려는 양 입가의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바양은 달랐다. 바양은 온몸이 슬슬 가렵고 허리가 시큰거리며 아파왔다. 잠이라도 자려고 해도 이상하게 정신이 말똥말똥했다. 게다가 귀는 얼마나 예민해졌는지 지나가는 바람소리, 숨소리 하나도 모두 귀에 거슬렸다.

‘으.. 으.. 도대체 언제까지 계속 되는 거야. 저 인간 아이는 어떻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계속 있을 수 있지? 가만 혹시 저 녀석 그만 죽어버린 건 아닐까. 그럼 결투에서 내가 이긴 게 되잖아.’

고개를 들어 한결이를 볼 수 없는 까닭에 바양은 궁금해서 죽을 지경이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게다가 한결이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면 커질수록 더욱 더 참는 것이 힘들 지경이 되었다. 입은 바삭바삭 말랐고. 이러다 끝나지 않을 침묵 갇혀 자신이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덜컥 들었다.

 

“에이잇! 도저히 못 참겠다!”

결국 바양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바양과 한결이를 둘러싼 검푸른 연기도

사라져 버렸다.

“우와! 한결이의 승리야!”

미르와 부루가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환호성을 질렀다. 그 소리에 놀라 바양이 황급히 누워있는 한결이를 보았다. 한결이는 세 시간이 다되도록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누워 있었어도 뭐가 그리 즐거운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이건 무효야. 저 녀석 무슨 속임수를 쓴 게 분명해 이건 절대 인정 못해!”

바양이 버럭 화를 내며 어느새 거대한 족제비로 모습을 바꾸었다. 부루와 미르는 푸륵 푸륵 입김을 내뿜으며 재빨리 한결이 옆으로 모여들었다. 한결이도 그제야 겁이 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번엔 절대로 네 맘대로 하게 그냥 놔두진 않을 거야.”

“어디 덤벼보시지 오랜 만에 용 두 마리를 먹어치우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바양이 으르렁거리다 꼬리를 쳐들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미르와 부르도 냉기와 열기를 내뿜으며 바양에게 달려들었다. 그때였다.

“멈춰! 모두 멈추라고!”

한결이의 고함 소리에 움직임을 멈춘 것은 미르와 부루 분만이 아니었다. 달려들던 바양도 마치 돌이 된 것처럼 그 자리에서 꼼짝을 하지 못했다.

“크르르! 내 몸이! 말을 안 들어! 내 몸이!”

바양이 괴로운 듯 날카로운 소리를 내었지만 여전히 몸은 온몸이 밧줄에 묶인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저 녀석 왜 저래? 무슨 문제가 있나봐.”

한결이가 놀란 눈으로 바양을 보며 물었다.

“저 녀석. 이제 꼼짝없이 한결군의 명령하는 대로 할 수밖에 없어요. 결투에서 져서 노예가 되었기 때문이에요.”

“정말?”

“그래요, 상자가 없어지지 않는 한 바양은 한결이의 명령에 복종하며 살아야 해요.”

부루가 약간 고소하다는 듯이 말했다.

“자, 저 꼴도 보기 싫은 족제비 녀석 상자에 다시 가두고 우리는 일이나 하자.”

미르가 냉기를 뿜으며 한결이에게 재촉했다.

한결이는 백년간 상자 속에 갇혀 있다가 이제 겨우 나왔는데 다시 상자 속에 들어가야 하는 바양이 조금 불쌍하게 생각되었다. 하지만 상자에서 꺼내준 자신을 잡아먹겠다고 말했던 바양의 행동이 괘심하기도 했다. 어떻게 할까? 한결이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대나무 상자를 번쩍 들어 바양에게 향하며 이렇게 외쳤다.

“미안하지만 넌 반성 좀 해야겠어. 이 상자 속으로 들어가!”

한결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바양이 엄청난 속도로 한결이에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마치 한결이를 잡아먹겠다는 듯 이글이글 노려보는 눈빛으로...

“위험해 한결아!”

“엄마야!”

한결이는 그만 놀라 상자를 땅에 떨어뜨리며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그 순간 바양은 상자 속으로 손살 같이 빨려들어갔다.

“휴우! 깜짝 놀랐네.”

한결이는 아직도 바양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상자를 겁에 질린 눈으로 바라보며 몸을 일으켰다.

“미르, 이 상자... 미르가 맡아주면 안 돼? 난 무섭단 말이야.”

한결이는 상자를 미르 쪽으로 스윽 밀었다.

“나보고 버릇없는 족제비 놈을 맡으라고? 절대 싫어. 게다가 저 상자는 주인 밖에 못 만져. 다른 사람이 만지면 아까처럼 녀석이 탈출 할 수 있단 말이야.”

“맞아요. 상자의 주인이 바양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이 상자를 만지면 바양은 그 순간 자유의 몸이 되요.”

부루도 어림없다는 투로 고래를 가로저었다.

“어휴 그럼 이 상자를 계속 까지고 다녀야 한단 말이야?”

한결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갑자기 귀찮은 상자를 맡게 된 것도 이상한 괴물들이 나오는 온 대륙에 오게 된 것도 모든 게 귀찮아졌다.

“에이, 귀찮아. 아까처럼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면 참 좋을 텐데. 어? 그런데 저 구멍 움직이네?”

한결이는 위를 쳐다보다 가온 나무의 우물 구멍이 천천히 오른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나 참, 세 시산이나 누워 있었으면서 또 누어 버린 거야. 일 하자고 일!”

미르의 핀잔에 한결이가 손가락으로 구멍을 가리키며 말했다.

“가만, 미르. 저기 위를 봐 우물 구멍이 움직이고 있단말이야. 저기 봐.”

미르와 부루는 모두 한결이가 가리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구, 구멍이! 마, 맙소사!”

부루가 놀란 표정으로 불기운을 푹푹 뿜어냈다.

“뭐야? 부루 무슨 일이 생긴거야?‘

미르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부루를 쳐다보았다.

“베 베다왕이 움직이고 있어. 우..우린 끝장이야.”

부루가 떨리는 목소리를 듣고 한결이는 침을 꼴깍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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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으, 으악!”

한결이는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변한 바양을 보고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을 치다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본 미르는 애가 탔다.

“젠장 넌, 왜 이제야 그런 걸 생각한 거야!”

미르는 부루에게 괜히 화를 냈다. 하지만 사실 미르는 부루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한결이를 온 대륙으로 데려오면서 한결이가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지켜주겠다고 약속한 미르였다. 그런데 지금은 한결이를 위험에 빠뜨려놓고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자신을 더 화나게 했다.

“한결아! 걱정마. 내가 구해줄게.”

미르가 이렇게 말하며 바양에게 달려들었지만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혀 있는 것처럼 미르의 커다란 몸이 검푸른 연기에 부딪혀 튕겨져 나갔다. 그럴 때마다 미르는 몸 전체가 아파왔지만 포기 하지 않았다.

미르의 그런 모습에 부루도 가만히 있을 수 많은 없었다. 부루는 몸을 둥그렇게 말았다가 다시 펴며 연기를 향해 돌진했다. 온몸에 아픔이 느껴졌지만 미르처럼 부루도 멈춤 수 없었다.

“미르, 부루 모두 그만 둬 그렇다 너희들 다치겠어.”

한결이는 두 용의 모습을 차마 바라볼 수가 없었다.

“바보 같은 용 들... 너희들이 아무리 애서봐야 결투의 연기는 사라지지 않아. 이 꼬맹이와 결투를 끝내고 너희들을 잡아먹을 때까지 힘을 아껴둬야 좋을 거야.”

바양이 미르와 부루를 바라보다 다시 한결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인간 꼬마야. 네가 날 상자에서 나오게 해주었으니 작은 은혜를 배플도록 하마. 나와 어떻게 결투를 할지는 네 맘대로 정해라. 무엇이든 좋다. 어차피 뭘 하든 내가 이길 게 분명하지만 말이야.”

바양이 말대로 한결이는 바양과 어떤 방식으로 결투를 하든 이길 가능성이 없었다. 몸집도 힘도 아마 지혜까지도 바양을 못 당해낼 게 분명했다. 하지만 미르와 부루를 위해서라도 바양과 이기고 싶었다. 불가능한 싸움이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한결이는 두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내가 정말 잘 하는 게 도대체 뭐지?’

싸움이든 운동경기든 잘하는 게 없는 한결이었다. 게다가 결투니 대결이니 하는 건 죽어도 싫었다.

‘내가 잘하는 건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자, 잠깐!’

한결이는 순간 무언가를 생각해 내고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바양을 향해 자신감있게 외쳤다.

“나 뭘 할지 결정했어. 나와 결투 방법은 이거야! 누가 오랫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기! 먼저 말을 하거나 움직이는 쪽이 지는 거야.”

한결이의 말에 바양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뭐 그런 말도 안돼는 결투방법이 있어?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기라고? 그런 건 결투가 아니야!”

바양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렷다. 하지만 한결이는 지지 않았다.

“결투방법은 내맘대로 해도 된다고 약속했잖아. 너 혹시 나한테 질까 봐 비겁하게 이러는 거 아냐?”

“뭐, 뭐라고? 좋아 그럼 네가 말한대로 결투를 하자. 난 지난 100년간 상자속에 갇혀 있었어. 아무것도 안 하는 것 쯤은 식은죽 먹기라고!”

바양은 이렇게 말하고 순식간에 사내아이의 모습으로 변했다.

“준비 됐지? 그럼 시작!”

한결이의 신호와 함께 바양과 한결이는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한결이는 눕자마자 두눈을 감았다. 자기 방에서 아무에게 간섭받지 않고 누워 있었던 때가 떠올랐다. 하루중 가장 행복햇던 시간... 한결이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바양은 한결이를 따라 누웠지만 이 이상한 결투에 사실 당황해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갑작스럽고, 결투라고 하기엔 너무나 조용하며, 엉뚱한 결투에 당황한 것은 바양뿐만이 아니었다.

“미르, 잠깐! 잠깐 멈춰봐.”

부루가 계속해서 검푸른 연기와 박치기를 하고 있던 미르를 말렸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저길 봐봐.”

부루가 가리키는 쪽으로 미르가 푸륵푸륵 입김을 내뿜으며 고개를 돌렷다. 미르의 눈에 누워 있는 한결이의 모습이 보엿다.

“뭐야, 한결이가 당한거야! 이 족제비 자식 내가 꿀꺽 삼켜버리고 말거야.”

미르가 확가나서 머리위로 냉기를 길게 뿜었다.

“진정해 미르야. 한결이는 무사해. 내가 보기엔 지금 한결이가 인간의 꾀를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아.”

“인간의 꾀?”

부루의 말에 미르는 예전에 우돌 영감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옛날 우돌 영감이 부루와 미르를 불러놓고 아주 진지하게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우돌 영감은 커다란 대나무 상자를 보여주며 이렇게 이야기 했다.

“얘들아, 너희들이 살아가면서 곡 기억해야할 일들이 있다. 바로 용을 위험에 빠뜨리는 존재들이지.”

우돌영감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물론 그때도 미르는 영감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었다.

“우선 용을 잡아 먹는 거대한 새 가루다가 있다. 하지만 이 새는 그리 만나기가 쉽지 않다. 온 대륙에서 마지막으로 가루다를 본 것이 지난 천년 전이니까 말이야. 너희가 정말 조심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상자다.”

우돌영감은 커다란 대나무 상자에 손을 올려 놓고 말햇다.

“ 만약 이 상자를 발견했다면 절대로 상자를 열어서는 안된다. 건드리려고 해서도 안돼. 이 상자 안에 용을 잡아먹는 족제비 요괴 바양이 갇혀 있기 때문이야. 만약 상자를 건드려 바양이 세상으로 나오게 되면 그때는 도망가도 소용 없다. 바양은 다시 상자 속으로 갇히기 전에는 너희들을 죽을 대까지 쫓아갈 게 분명하기 때문이지. 뭐, 다큰 용이라면 이 바양과 싸워서 이길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너희들같이 어린 용들은 몇 마리가 달려들어도 이 녀석에게 절대 이기지 못할 테니 명심하렴”

“에이 거짓말 그런데 왜 영감은 그 상자를 마음대로 만지고 있는 거야. 영감, 지금 괜히 우릴 겁주려고 하는거지?

미르는 믿지 못하겟다는 듯이 우돌을 바라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우돌은 웃지 않았다.

“내가 상자를 만져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건 이 안에 있는 바양은 나의 노예가 되엇기 때문이야. 누구든 바양을 상자에 다시 가둘수 있다면 바양을 노예처럼 부릴 수 있단다. 상자가 없어지지 않는 한 바양은 영원히 내 말을 듣게 되는 거란다.”

“말도 안돼 우리보다 힘도 약한 영감이 어떻게 족제비 녀석을 가두었단 말이야? ”

미르는 여전히 우돌영감의 말을 못 믿겠다는 표정이었다. 우돌영감은 그런 미르를 보며 식 미소를 지었다.

“힘이 세다고 전부는 아니다. 인간에겐 꾀가 있지. 바양 녀석은 정말 무시무시한 요괴지만 자만심이 강하고 결투하는 것을 너무 좋아한단다. 그런 녀석 성질을 잘 이용하면 녀석을 상자에 가두는 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야. 바로 인간의 꾀를 잘 이용하면 말이지.”

우돌영감의 마지막 말이 아직도 미르의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았다.

 

“인간의 꾀라.. 그럼 네 말은 지금 한결이가 우돌 영감처럼 인간의 꾀를 이용하고 있단 말이야.”

“그래, 내가 보기엔 그런 것 같아. 우리 한 번 한결이를 믿고 기다려 보자.”

부루의 말에 미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르는 어쩐지 부루의 말을 믿고 싶어졌다. 한결이가 인간의 꾀를 이용해서 못된 족제비 녀석을 혼내주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며 미르는 한결이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한결아, 힘 내 넌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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