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으으... 바, 바양 왜 이러는 거야?”
한결이가 자신의 얼굴을 때리는 세찬 바람을 피하느라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는 간신히 말을 내뱉었다. 바양은 대답대신 목을 위로 쳐들어 한결이를 훌쩍 자신의 등위로 올려 보냈다. 한결이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바양의 억센 털을 꽉 붙잡았다. 하마터면 상자를 떨어뜨릴 뻔 했다.
“아이고! 바양, 너 또다시 거짓말을 한 거지? 맞지?”
한결이는 무섭기도 했지만 화가 나기도 했다.
“잔 말 말고 꽉 붙잡기나 해. 시간이 없단 말이야.”
“시간? 무슨 시간? 어디 가는 거야?”
“정말 시끄러운 꼬마야. 넌 그냥 저 바보 용들이 잘 쫓아오나 보기나 해.”
바양은 달리는 속도를 더욱 높이며 날카롭게 외쳤다. 한결이는 바양의 속셈이 무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바양의 말 대로 뒤를 돌아보니 미르와 부루가 눈에 불을 키고 바양을 뒤쫓고 있었다. 한결이는 바양이 무슨 나쁜 짓을 구미는 것이 아닌가? 더럭 겁이 났다.
“너, 무슨 나쁜 짓을 꾸미고 있는 거지? 당장 말해! 안 그러면 널 다시 상자 속에 집어넣을 거야!”
하지만 바양은 전혀 두렵지 않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마음대로 해, 너하고 두 마리 용들 모두 어둠의 밑바닥에 빠져 죽고 싶다면 말이지.”
‘정말, 바양은 이 곳에서 빠져 나갈 방법을 알고 있는 건가? 지금 이 행동도 그것 때문일까?’
이런 생각이 들자 한결이는 무조건 바양을 의심한 것이 미안해졌다.
“알았어. 이제 네가 하자는 대로 할게. 바양”
한결이의 태도가 바뀌자 바야으이 목소리도 조금 누그러졌다.
“이제야 말귀를 알아듣는군. 자, 앞을 봐봐.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저기야. ”
바양의 말에 따라 한결이가 고개를 들었다. 멀리 지평선 끝에 하얀 물기둥이 장막처럼 펼쳐져 있는 것이 보였다.
“저, 저건... 폭포잖아?”
“맞아, 저게 바로 온대륙 끝에 있다는 땅끝 폭포야. 우리가 저 폭포를 거슬러 올라 가면 온대륙으로 갈 수 있어.”
“맙소사! 저길 어떻게 올라간단 말이야? 도저히 불가능해”
한결이는 한 눈에 보아도 땅끝 폭포의 어마어마한 크기를 알 수 있었다. 한결이는 그 세찬 물줄기를 뚫고 위로 올라간다는 것은 미르나 부루아니 바양이라도 가능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 꼭 그렇지만은 아니야. 베다 왕이 몸을 뒤집는 순간을 이용하면 가능할 수도 있어.”
“베다왕이 몸을 뒤집는 순간?”
“그래, 베다왕이 몸을 뒤집을 땐 큰 힘이 필요해 그래서 이 거북이 녀석이 그 순간에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쉰단 말이야. 그 순간이 바로 기회야. 베다왕이 숨을 내쉬는 순간 우리는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면 돼. 그리고 이제 그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
“바양, 그 걸 어떻게 알아?”
“바람을 느껴봐. 폭포 쪽으로 부는 바라밍 점점 강해지고 잇잖아. 거북이가 숨을 들이 마쉬고 있는거야.”
그제야 한결이는 바양이 다짜고자 자신을 물고 달렸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바양... 그래서 상자에서 나오자 마자 달렸던 거구나.”
“맞아, 저 바보용들에게 일일이 설명해 줄 시간은 없었단 말이야. 저 녀석들이 바보긴 하지만 널 데려가면 분명 기를 쓰고 쫓아게 분명했으니까 말이야. ”
“그랬었구나. 고마워 바양!”
“고마워 하긴 일러. 이제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 꽉 잡아!”
바양이 달리는 속도를 더 높였다. 거대한 땅끝 폭포가 이제 눈 앞에 다가왔다. 한결이는 바양의 털을 더욱 굳게 잡아 쥐고는 뒤쫓아 오는 미르와 부루에게 소리쳤다.
“미르! 부루! 서둘러! 우리는 폭포를 올라가야해! 빨리! 더 빨리!”
정신없이 바양을 뒤쫓던 미르가 한결이의 목소리에 정신을 퍼득 차렸다.
“뭐? 폭포를 올라가야 한다고?”
“미르, 저 당끝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는 건 불가능해.”
“나도 알아, 하지만 한결이를 놓칠순 없어. 하는 데까지 해보자.”
미르는 속도를 더욱 내며 말했다.
“알았어. 한 번 해보자!”
부루도 속도를 더 내었다. 두 마리 용은 이내 바양의 꼬리 뒤까지 따라잡았다. 그때엿다. 아주 강한 바람이 폭포족으로 불어 닥치기 시작했다. 그바람에 바양과 두 용들의 속도가 두 배로 빨라졌다. 어느새 폭포에서 생기는 하얀 물안개가 주변을 가득 메웠고 한결이의 얼굴에도 수많은 물방울이 부딪했다.
“자, 이제 곧 베다 왕이 숨을 내쉴 거야. 그 순간을 놓치면 안돼.”
폭포 쪽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마치 태풍처럼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온 세상을 쩌렁쩌렁 울릴 것 같은 베다왕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르르릉!”
그때였다. 순간 태풍 같던 바람이 뚝 끊겼다.
“지금이야!”
바양이 훌쩍 날아서 폭포 쪽으로 뛰어들었다.
“한결아 기다려!”
“한결군!”
미르와 부루도 바양을 쫓아 폭포로 뛰어 들었다. 그와 동시에 베다왕이 들이마신 숨을 다시 내쉬기 시작했다.
“그르르릉!”
그 순간 땅끝 폭포의 물줄기가 하얀 물안개를 피우며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