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으, 으악!”

한결이는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변한 바양을 보고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을 치다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본 미르는 애가 탔다.

“젠장 넌, 왜 이제야 그런 걸 생각한 거야!”

미르는 부루에게 괜히 화를 냈다. 하지만 사실 미르는 부루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한결이를 온 대륙으로 데려오면서 한결이가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지켜주겠다고 약속한 미르였다. 그런데 지금은 한결이를 위험에 빠뜨려놓고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자신을 더 화나게 했다.

“한결아! 걱정마. 내가 구해줄게.”

미르가 이렇게 말하며 바양에게 달려들었지만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혀 있는 것처럼 미르의 커다란 몸이 검푸른 연기에 부딪혀 튕겨져 나갔다. 그럴 때마다 미르는 몸 전체가 아파왔지만 포기 하지 않았다.

미르의 그런 모습에 부루도 가만히 있을 수 많은 없었다. 부루는 몸을 둥그렇게 말았다가 다시 펴며 연기를 향해 돌진했다. 온몸에 아픔이 느껴졌지만 미르처럼 부루도 멈춤 수 없었다.

“미르, 부루 모두 그만 둬 그렇다 너희들 다치겠어.”

한결이는 두 용의 모습을 차마 바라볼 수가 없었다.

“바보 같은 용 들... 너희들이 아무리 애서봐야 결투의 연기는 사라지지 않아. 이 꼬맹이와 결투를 끝내고 너희들을 잡아먹을 때까지 힘을 아껴둬야 좋을 거야.”

바양이 미르와 부루를 바라보다 다시 한결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인간 꼬마야. 네가 날 상자에서 나오게 해주었으니 작은 은혜를 배플도록 하마. 나와 어떻게 결투를 할지는 네 맘대로 정해라. 무엇이든 좋다. 어차피 뭘 하든 내가 이길 게 분명하지만 말이야.”

바양이 말대로 한결이는 바양과 어떤 방식으로 결투를 하든 이길 가능성이 없었다. 몸집도 힘도 아마 지혜까지도 바양을 못 당해낼 게 분명했다. 하지만 미르와 부루를 위해서라도 바양과 이기고 싶었다. 불가능한 싸움이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한결이는 두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내가 정말 잘 하는 게 도대체 뭐지?’

싸움이든 운동경기든 잘하는 게 없는 한결이었다. 게다가 결투니 대결이니 하는 건 죽어도 싫었다.

‘내가 잘하는 건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자, 잠깐!’

한결이는 순간 무언가를 생각해 내고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바양을 향해 자신감있게 외쳤다.

“나 뭘 할지 결정했어. 나와 결투 방법은 이거야! 누가 오랫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기! 먼저 말을 하거나 움직이는 쪽이 지는 거야.”

한결이의 말에 바양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뭐 그런 말도 안돼는 결투방법이 있어?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기라고? 그런 건 결투가 아니야!”

바양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렷다. 하지만 한결이는 지지 않았다.

“결투방법은 내맘대로 해도 된다고 약속했잖아. 너 혹시 나한테 질까 봐 비겁하게 이러는 거 아냐?”

“뭐, 뭐라고? 좋아 그럼 네가 말한대로 결투를 하자. 난 지난 100년간 상자속에 갇혀 있었어. 아무것도 안 하는 것 쯤은 식은죽 먹기라고!”

바양은 이렇게 말하고 순식간에 사내아이의 모습으로 변했다.

“준비 됐지? 그럼 시작!”

한결이의 신호와 함께 바양과 한결이는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한결이는 눕자마자 두눈을 감았다. 자기 방에서 아무에게 간섭받지 않고 누워 있었던 때가 떠올랐다. 하루중 가장 행복햇던 시간... 한결이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바양은 한결이를 따라 누웠지만 이 이상한 결투에 사실 당황해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갑작스럽고, 결투라고 하기엔 너무나 조용하며, 엉뚱한 결투에 당황한 것은 바양뿐만이 아니었다.

“미르, 잠깐! 잠깐 멈춰봐.”

부루가 계속해서 검푸른 연기와 박치기를 하고 있던 미르를 말렸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저길 봐봐.”

부루가 가리키는 쪽으로 미르가 푸륵푸륵 입김을 내뿜으며 고개를 돌렷다. 미르의 눈에 누워 있는 한결이의 모습이 보엿다.

“뭐야, 한결이가 당한거야! 이 족제비 자식 내가 꿀꺽 삼켜버리고 말거야.”

미르가 확가나서 머리위로 냉기를 길게 뿜었다.

“진정해 미르야. 한결이는 무사해. 내가 보기엔 지금 한결이가 인간의 꾀를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아.”

“인간의 꾀?”

부루의 말에 미르는 예전에 우돌 영감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옛날 우돌 영감이 부루와 미르를 불러놓고 아주 진지하게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우돌 영감은 커다란 대나무 상자를 보여주며 이렇게 이야기 했다.

“얘들아, 너희들이 살아가면서 곡 기억해야할 일들이 있다. 바로 용을 위험에 빠뜨리는 존재들이지.”

우돌영감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물론 그때도 미르는 영감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었다.

“우선 용을 잡아 먹는 거대한 새 가루다가 있다. 하지만 이 새는 그리 만나기가 쉽지 않다. 온 대륙에서 마지막으로 가루다를 본 것이 지난 천년 전이니까 말이야. 너희가 정말 조심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상자다.”

우돌영감은 커다란 대나무 상자에 손을 올려 놓고 말햇다.

“ 만약 이 상자를 발견했다면 절대로 상자를 열어서는 안된다. 건드리려고 해서도 안돼. 이 상자 안에 용을 잡아먹는 족제비 요괴 바양이 갇혀 있기 때문이야. 만약 상자를 건드려 바양이 세상으로 나오게 되면 그때는 도망가도 소용 없다. 바양은 다시 상자 속으로 갇히기 전에는 너희들을 죽을 대까지 쫓아갈 게 분명하기 때문이지. 뭐, 다큰 용이라면 이 바양과 싸워서 이길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너희들같이 어린 용들은 몇 마리가 달려들어도 이 녀석에게 절대 이기지 못할 테니 명심하렴”

“에이 거짓말 그런데 왜 영감은 그 상자를 마음대로 만지고 있는 거야. 영감, 지금 괜히 우릴 겁주려고 하는거지?

미르는 믿지 못하겟다는 듯이 우돌을 바라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우돌은 웃지 않았다.

“내가 상자를 만져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건 이 안에 있는 바양은 나의 노예가 되엇기 때문이야. 누구든 바양을 상자에 다시 가둘수 있다면 바양을 노예처럼 부릴 수 있단다. 상자가 없어지지 않는 한 바양은 영원히 내 말을 듣게 되는 거란다.”

“말도 안돼 우리보다 힘도 약한 영감이 어떻게 족제비 녀석을 가두었단 말이야? ”

미르는 여전히 우돌영감의 말을 못 믿겠다는 표정이었다. 우돌영감은 그런 미르를 보며 식 미소를 지었다.

“힘이 세다고 전부는 아니다. 인간에겐 꾀가 있지. 바양 녀석은 정말 무시무시한 요괴지만 자만심이 강하고 결투하는 것을 너무 좋아한단다. 그런 녀석 성질을 잘 이용하면 녀석을 상자에 가두는 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야. 바로 인간의 꾀를 잘 이용하면 말이지.”

우돌영감의 마지막 말이 아직도 미르의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았다.

 

“인간의 꾀라.. 그럼 네 말은 지금 한결이가 우돌 영감처럼 인간의 꾀를 이용하고 있단 말이야.”

“그래, 내가 보기엔 그런 것 같아. 우리 한 번 한결이를 믿고 기다려 보자.”

부루의 말에 미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르는 어쩐지 부루의 말을 믿고 싶어졌다. 한결이가 인간의 꾀를 이용해서 못된 족제비 녀석을 혼내주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며 미르는 한결이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한결아, 힘 내 넌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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