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땅 끝 폭포
(1)
“베다 왕이 움직인다니 무슨 소리야. 베다 왕들은 온 대륙을 떠받치고 있는 녀석들이잖아. 그런데 이 녀석들이 어떻게 움직인다는 거야.”
미르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부루를 바라보았다.
“세 마리의 베다 왕이 1000년 마다 한 번 씩 자리를 바꾼다는 거 기억 안나?”
잘 흥분하지 않는 부루도 뜨거운 입김을 내뿜으며 말했다.
“맙소사 그럼 오늘이이 바로 그 날이란 말이야?”
놀라는 미르의 얼굴을 보며 한결이는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미르, 자리를 바꾸면 어떻게 되는데 큰일이라도 나는 거야?”
한결이의 물음에 미르가 침통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세상을 떠받치는 베다왕은 총 세 마리야. 그런데 이 세 마리가 1000년에 한 번씩 자리를 바꿔. 무거운 세상을 오랫동안 떠받치기 어려우니까 잠시 몸을 푸는 거지. 그래서 가운데 있는 베다 왕부터 시작해 자리이동이 끝나면 또다시 천년동안 베다왕은 꼼짝 않고 세상을 떠받치게 되는 거지.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야. 자리를 이동할 때 베다왕은 한번 씩 몸을 뒤집는단 말이야. ”
“몸을……. 뒤집는다?”
한결이는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그래요 베다 왕이 자기 몸을 뒤집게 되면 등껍질 위에 있던 모든 것이 어둠의 밑바닥으로 추락하게 되지요.”
“그곳은 빛도, 공기도, 소리도 아무것도 없어. 그 끝도 알 수 없고, 그곳에 떨어졌다. 살아 돌아온 건 아무도 없어.”
미르의 말에 한결이는 머리 끝가지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럼, 우린 이제 어떻게 해야 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우린 꼼작 없이 어둠의 밑바닥으로 덜어지고 말 거야.”
미르가 두 다리로 자신의 머리를 감싸며 말했다. 부루도 아무 말 없이 슬픈 표정으로 한결이를 바라보았다.
“마, 말도 안 돼 그럼 우린 여기서 꼼짝없이 죽어야 한다는 거야. 그럴 순 없어. 미르, 어떻게 좀 해봐. 응? 미르!”
“한결아 미안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미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결이는 겁이 난 얼굴로 두 용을 번갈아 보았지만 모두들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잇을 분이었다. 한결이의 얼굴이 울상이 되어 갔다.
“싫어, 여기서 이렇게 죽는 건 싫어. 집에 가고 싶어 미르 집에 데려다줘. 엄마! 으앙!”
한결이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때였다. 상자 속에서 바양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어휴 시끄러워서 잘 수가 있나. 바보용에 울보 꼬마라니 정말 최악이야.”
“너 이 녀석 말 다했어?”
미르가 마치 상자를 집어 삼키려는 듯이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진정해, 미르. 저 녀석 우리를 화나게 해서 상자에서 다시 나올 속셈이 분명해.”
부루가 미르를 말리며 말했다. 한결이도 상자를 끌어안고 미르를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 바양가지 나타난다면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야, 울보 꼬마! 아무것도 안하고 그렇게 울고 만 잇을 거면 나 좀 상자에서 꺼내 줘. 난 너랑 바보 용들과 함께 멍청하게 죽는 걸 기다리고 싶진 않단 말이야.”
상자 속에서 조롱하는 듯 한 바양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미르가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상자에 냉기를 확 불어 넣었다.
“이 녀석, 내가 더 이상 까불대지 못 하게 꽁꽁 얼려 버릴 거야.”
“그만해, 미르! 그만!”
한결이가 상자를 든 채 얼른 몸을 피했다.
“바보 용들이 그래도 자존심은 있나보군.”
바양이 다시 미르에게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그만해 바양, 너도 여기서 살아나갈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게 아니잖아?”
“무슨 소리, 내가 저런 멍청한 용들하고 같은 줄 알아?”
“이 녀석이 또!”
한결이가 화를 내는 미르를 간신히 진정시킨 뒤, 바양에게 말했다.
“그럼 넌 여기서 나갈 방법을 알고 있단 말이야?”
“당연하지. 쉽진 않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야.”
바양의 말에 한결이는 금세 얼굴이 밝아졌다.
“정말, 그 방법이 뭐야?”
“그걸 말하기 전에 조건이 있어. 내가 그 방법을 알려 주는 대신 상자에서 날 나갈 수 잇도록 해줘.”
“말도 안 돼 저 녀석 거짓말로 널 속이려는 게 분명해.”
미르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펄쩍 뛰었다. 바양의 말이 믿기 어려운 것은 한결이도 마찬가지였다. 상자에서 나와서 미르나 부루에게 갑자기 덤벼들게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혹시 정말 바양이 방법을 알고 있다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빙글빙글 돌아서 한결이는 선뜻 결정을 못 내리고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보다 못한 부루가 나섰다.
“한결군, 바양을 상자 밖으로 내보내도 원하면 언제든지 다시 수 있으니까. 한번 바양의 말을 들어보죠.”
“말도 안 돼 저런 족제비 놈이 도대체 뭘 알게냐고.”
미르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렇게 앉아서 떨어질 때를 기다리는 것 보다 낮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이 들자 한결이는 침을 꿀꺽 삼키고 상자 속의 바양에게 이렇게 말했다.
“좋아, 나갈 수 잇게 해줄게 그 방법을 알려 줘.”
“아니, 먼저 날 상자 속에서 꺼내 줘.”
바양의 말에 한결이는 부루와 미르를 번갈아 쳐다보고는 상자를 높이 들고 외쳤다.
“바양! 상자 속에서 나와!”
그 순간, 상자가 꿈틀 움직이더니 순식간에 산처럼 커다란 바양이 모습을 나타냈다. 그때였다.
“크르르!”
“으악!”
바양이 갑자기 한결이의 웃옷 목덜미를 덥석 물고는 달리기 시작했다.
“한결군!”
“한결이를 내 놔! 이 족제비 자식아!”
부루와 미르가 곧바로 바양을 뒤쫓았다. 하지만 이미 바양은 저만치 달려가고 있었다.
바양의 입에 매달린 한결이는 너무 무서워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다행히 바양의
상자는 꼭 쥐고 있었다.
‘이 상자 만 있으면 이 무시무시한 족제비 괴물을 다시 잡아 넣을 수 있어!’
한결이는 마음속에서 이렇게 외쳤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달리는 바양 대문에 세찬 바람이 얼굴이 다가울 정도였고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 한결이는 그저 울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