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의 온기
김혜진 지음 / 창비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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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맨 뒷장에 적힌 작가의 말 때문에 골랐다. '내가 잘 지낸다면 그들도 잘 지낼 것이고, 내가 행복하다면 그들도 행복할 것 같다고.' 라는 말로 소설의 인물들이 어찌 살아갈지 가늠하는 저자의 마음이 좋았다. 특별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허상의 세상도 아닌 김혜진표 소설 속 인물들이 꼭 나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오컬트와 SF소설에 빠져만 살다가 저자 덕에 현실로 돌아와 쌩눈으로 앞을 보는 느낌이다. 호락호락하지 않는 삶이 비단 나만 겪어내는 삶의 오르막길만은 아님을 비친다. 내가 특별한 것도 아니지만, 특이한 것도 아닌 그저 그런 사람들 이야기. 하지만 나만 이렇게 살지 않음을 보여준다. 총 7편의 단편에서는 화자든 주변인이든 익숙하게 볼 법한 이들이 이야기를 끌고간다. 희망보다는 체념이 익숙하고, 낙관하기보단 비관적 시선을 기반하여 더이상의 최악은 없을거라는 마음으로 가장 구석과 가장 뒷편에 서서 독자 자신의 삶과 이야기속 타인들의 삶을 보게 만든다. 무표정한 낯짝과 양팔을 팔짱 낀 채로 삐딱하게 보는 듯 해도, 시선에 닿는 이가 한순간이라도 발을 삐끗해서 넘어질라치면 단박에 튀어나갈 준비를 하고있는 발끝과 시선의 끝이 그들의 기본 자세임을 이젠 안다. 습관적 도움의 갈구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도록 적정거리에서 주시하는 마음이다.

은비까비가 전해주듯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의 꽉 맏힌 결말은 없지만 이 글들이 전부 밉거나 씁쓸하지만은 않다. 그렇게 주변에서 적극적 개입이 없더라도 너무 세상을 각박하게 여기지 않길 바랄 뿐이다.

📖무슨 일이 있나 한번 살펴주는 게 뭐가 어려워서. 일이분도 안 걸리는 일을.

모든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시작된다. 그러니 동일한 상황을 두고도 누군가의 눈에는 거슬리기만 할 뿐이고, 또 어떤 이는 짚고 넘어가야하는 공동사회 순리에 어긋난 행동이다. 또 어떤이에게는 떠올릴 구실도 없을만큼 안중에도 없는 장면이 될 수도 있다. 헌데 정해와 영기는 그러지 못한다. 그들의 딸인 호경이 계속 모든 장면에 겹쳐 보이기 때문에 예민해진다. 누군가가 한번 둘러봐 주었더라면, 그 소리에 황급히 달려와주었더라면 이 아이가 술에 취해 인생을 허비하고, 자신을 업신여기진 않을거라는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번진다.

아파트에서 보았던 민아와 민우라는 아이가 나중엔 호경처럼 세상을 원망하는 삶을 살까봐 그게 어른어른 눈앞에 비춰지니 무서웠을수도 있겠다. 다들 제 일이 아니니까, 엮이는게 귀찮으니까, 괜한 오지랖으로 비춰질 수 있으니까. 간섭했다가 얼굴 붉힐 수 있으니까의 핑계로 마음은 있는데 선뜻 움직여지지 않았을 수도 있을텐데 정해는 몸이 먼저 반응한 사람일 뿐이다.

📖나는 모르겠다. 사는 게 여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렇게 남들 사는 거에 줄기차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지.

정미의 한 마디는 정혜가 붙들고 살던 사람간에 기대하는 마음같은 마지막 매듭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주르륵 풀려 버렸다. 겪지 않은 정미였고, 겪어냈고, 이후를 감당해야하는 정해의 조바심이었다. 그러니 정미에겐 멈춰도 된다 싶은 정해의 과한 기대치였고, 정해에겐 당연한 것임에도 안 하는 것이 되려 이상한 사람들의 자기중심적인 미운짓이었다. 다시는 호경같은 아이가 생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도 있겠지만, 만에 하나 자신이 호경같은 애를 구할 수 있다면 호경도 자기만의 굴에서 나오지 않을까 하는 세상의 기대감이라 보여졌다. 정해든 정미든 누가 맞고 틀리다는게 아니다. 자신이 겪어온 삶에선 자신들이 정답이고 옳은 생의 방식이니 누구의 편도 들어 줄 수 없는 나도 내가 정답인줄 아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냥 제가 상처받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너무 큰 상처였다고요. 한번은 꼭 그말을 해야 할 것 같았어요. 잘 지내세요.

각자가 쏟아낸 말의 더미 속에서 스스로가 고립이 된다. 그러니 타인이 쏟아내는 말은 자신의 영역을 침범했다는 걸로 간주하며 불행을 표출한다. 왜냐고? 내가 하고픈 말을 못했으니까! 내가 하고픈 말을 토해내지 못했으니까 끙끙 앓다 병이들고 곪아버리는 과정이었다. 애실이 그러했다. 이혼 한 부모, 양 쪽 어디에도 사랑받거나 이야길 들어줄 사람이 없었던 유년시절은 혼자 말하고 혼자 감당하는 말의 더미에서 갖혀버린다. 그러니 호의를 갖고 다가온 현서에게 보상심리가 작동하듯 자신의 사연을 아낌없이 퍼붓는다. 현서는 친구가 되었으니 애실의 이야길 다 들어준게 아니라 사업투자를 빌미로 사기를 치기 위해 들어주어야만 했던 일련의 과정이었음을 밝힌다. 이혼 후에도 자식에게 돈을 요구하려고 연락을 해온 부친에게 애실이 했던 말 만큼이나 현서 또한 애실에게 똑같은 뉘앙스와 말의 온도로 마침표를 찍는다. 잘 지내라는 말,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는 말. 결국 똑같은 결말이었다. 너의 말을 들어주느라 지치는 나를 외면하고도 무수히 쏟아내는 너의 말은 가시만큼이나 따가웠음을 알린다. 영영 찾아오지 말라며 애실이 넘어올 통로를 차단해버린다.

📖다 기억나지도 않는, 이제 주워담을 수도 없는 말들을 생각했다. 그러면서 다시금 말을 간직하는 법을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중얼거렸다. 매일 밤, 차갑고 딱딱한 마음을 파서 하루치의 말을 묻는 일. 매일 조금씩 더 깊이 파고, 오래 파는 행위에 적응하는 일.

애실이 아버지에게 떠넘긴 문장들도, 현서가 애실을 향해 참다참다 쏟아낸 말들까지. 할 줄 만 알았지, 그 문장을 온 몸으로 받아낸 애실이었다. 그제서야 살아오며 겪어낸 관계에 대한 깔끔하지 못한 관계의 답을 정통으로 후드려맞아버렸다. 다시 이러한 관계가 한 번은 또 생겨나겠지. 그 때의 애실은 어떠한 방향으로 말하고 들어주는 방법을 찾을지 기대는 되지만 또 한편으론 그 기대감을 대폭 낮춰보려한다. 사람은 쉽사리 변하지 않더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어 하는 말이다.

📖그것이 자기 삶에는 없다고 여겼던, 스스로 감쪽같이 지워버렸던 누군가의 보살핌과 애정 같은 것을 일깨웠다는 사실을 안 건 시간이 더 흐른 후였다. 그러니까 그녀가 이곳을 떠날 때 동력으로 삼았던 원망과 미움이 옅어지고, 그 아래 자리한 것들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거였다.

선희가 바라보는 민지는 어린시절 자신과 닮아있음을 깨닿는다. '바꿀 수 없는 자신의 태생을 인정하는 데서 오는 일종의 체념에 가까운 감각'을 언급하며 선희는 고향을 떠날 때 미련 없이 내던져버린 것이 겹쳐보였다. 어른의 손이 타지 않은 듯한 아이의 차림새를 통해 이 아이도 제 몫으로 주어진 관심과 애정이 다 채워지지 못한 채 자라고 있음을 확인했다. 유년시절 그리 자라왔던 만큼 그 몰골을 확실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떻게는 살아 내려고 제 힘으로 돈벌이를 하는 아이. 어린녀석이 마음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마을 어르신들은 필요치도 않은 청란에 값을 메기며 적선의 개념보단 거래의 방식으로 아이를 돕는다. 고씨 할머니가 청란을 쟁여놓고 살듯, 달걀을 싫어하던 자신의 아버지도 요양원에 가기 전까지 사주는 고객이었듯 이 동네 어르신들이 한마음으로 민지를 키우고 있었다. 타인의 것을 탐하지 않는 아이로 키우는 방법을, 커서도 노동의 댓가는 응당 받아 마땅한 수고로움임을 알려주고있었다. 더 커서 이 시골을 벗어나더라도 당연하게 얻어지는 것은 없으며 너의 노력은 헐값도 아님을 항상 염두해두고 살길 바라고 있었다. 감나라 배나라 간섭보다 깨우치길 바라는 세상에서 선희도 그렇게 커왔고, 민지도 그리 커갈것임을 보여준다.

이건 아마 정해가 바라는 세상 일 수도 있고, 정미가 일부러 마음쓰지 않아도 되는 그런 담백한 세상일 수도 있음을 느낀다. 결국 여기든 저기든 사람사는 동네는 다 똑같은데 무엇에 마음을 더 쓰고 있느냐의 차이가 아닐까로 생각을 덮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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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비인 - 성해나 기담집
성해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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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입맛의 당신이여, 뭘 좋아할지 몰라서 일단 다 꺼내왔소. 먹고 싶은 것부터 먹어보시길. 무얼 고르든 당신은 허겁지겁 먹게 될 테니.'

독서 취향 간파당한 독자 여기있습니다! 이번엔 성해나 월드에 포옥 담겨버렸다. 시작은 '두고 온 여름' 이었고, 이후엔 '혼모노' 최근엔 '우리가 열 번을 나고 죽을 때'로 야금야금 먹어치우고 있다. 이제는 저자의 신작을 기대하며 입벌리고 있는 중에 떠먹힌 소재, 기담집이다.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 그 기묘한 세계를 꾸려두었다. 담당 편집자는 읽는 내내 마음이 까슬했고, 덮고 나서는 한동안 서늘함을 느꼈다고 전했다. 내 옆 사람이 인간인지 인간이 아닌지 헷갈리기 시작했다는 마케터의 말까지. 생각지 못한 인간과 비인간의 다면성을 까발리고 있음을 예견해 본다.


인비인이라는 제목을 두르고 나올 이야기 중 3편을 먼저 볼 수 있었다.

인비인, 윤회(당한)자들, 아미고,. 사람이 아닌 것들. 홀리고 홀려버린 자들. (친구가 될 수 없을 듯 한데)친구라 부르게 되는 존재들로 유추해본다.



책 제목이자, 처음 보게되는 단편의 얼굴인 인비인. 사람의 형상이나 사람이 아닌 것. 고로 온전치 못한 것에 대한 이야기.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마주한 노인. 그에게 받은 서류봉투 속 이야기. 고생스런 시절을 겪어낸 회고록같은 것이겠거니로 펼쳐보지만 이는 과거에 인간의 탈을 쓰고 인간이 해서는 안 될 행동에 대한 참회록으로 봐도 무방하겠다. 자신이 거기에 기여는 했으나 가담은 하지 않았다는 선긋기. 교수를 오야지라고 부를 만큼 추대 했으나 시간이 흐른 후 옳지 못한 일이었음을 인지 후 시켜서 하는 한낯 학생일 뿐이었으니 억울함을 토로한다. 자신의 목소리로는 제대로 닿지 않으니 감독을 확성기 삼고 싶었음을 느낀다.



누군가에겐 간절했을 하나뿐인 동아줄이고, 지금에서야 보니 괜히 잡았다가 손만 베린 썩은 지푸라기. 내가 필요 할 때엔 문제가 되지 않고, 내가 필요로 없는 상황이 되면 문제를 제기하고픈 삐딱한 시선. 지극히 주관적 입장에서 피해자임을 어필하고있다. 안되는 것임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내 선에서는 호의를 베풀었다는 듯 안락사를 시켜주었음을 떳떳하게 말하는 꼴을 보자니 입에서 벌레가 쏟아지는 듯하다. 눈과 귀가 없는 가타마리를 괴물이라 봐야 할까, 마루타를 일삼고 산 자를 실험체로 대하는 교수를 괴물로 봐야할까. 그럼에도 인정은 받고 싶지만 일말의 양심과 선의를 갖고 있다는 듯 소각 대신 안락사를 시켰다 자랑스레 말하는 저 자는 스스로를 성인군자로 여기겠지. 더군다나 균 배양으로 만신창이가 된 통나무의 여인을 괴물로 여기는 자에겐 제대로 거울이 없었음이 분명했다. 옳은 것도 그른 것 마저도 세상의 이치와는 상관 없이 자신의 유리한 입장이 곧 선의라 여기는 자이니 사람인지 사람이 아닌지는 외형적인 형상 뿐만 아니라 내면의 심상도 들춰봐야 진실을 알 수 있음을 느낀다. 어쩌면 허우대 멀쩡한 외형 속에 흉악한 가타마리를 품고있는 이 자가 쓸데없이 생명도 길고 죄악도 모르는 완벽한 가타마리 일 수도 있겠다.




📖윤회(당한)자들_모르겠죠? 근데 사람들은 매번 물어보잖아요. 소속이 어디냐? 학교는 어디 나왔냐? 직장은 다니냐? 소속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근데 속해보니까 그래요. 찐따들이어도요, 모이면 단단해져요. 그리고 되게 웃긴게 그 안에 있으면요. 나도 조금 쓸모 있어지는 것 같아요.

현생을 살지만 전생을 그리워하는 모임. 현생은 윤회(당한) 상태의 어딘가 불완전한 시절이니 원래의 시간으로 돌아가기 위해 때를 기다리는 모임이다. 어딘가 음침하고 은밀할 수 밖에 없는 조합. 어두운 곳에 모여 각자의 시절을 공유하고 돌아갈 순간을 위해 우유를 나눠 마시는 거룩한 의식. 이 모임을 알려준 큐는 그가 간절해 보여서 알려준걸까 골탕먹이려고 알려준걸까. 우스개소리로 시작했으나 진지하게 빠져드는 인물에서 이단의 종교활동에 삶을 받친 이들의 모습과 겹쳐보여 어리석어 보이다가도 안쓰러움이 더 크게 밀려온다. 큐가 모임 콜렉터라도 된 듯 여기저기 발을 담그는 것이나, 잘나가는 후배의 술자리 모임에서 외면당한 그나 주목받고 싶지만 인파에 이리저리 밀려버린 가장자리의 사람들 같았다. 모두가 주목받지 못하는건 당연한 이치이지만 그게 내가 되진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이러한 마음이 모인 결핍의 인간들이라면 적어도 이 무리에서 자신이 비정상처럼 보이진 않겠다는 생각을 하며 서로의 모자란 구석을 붙들어 뭉치고 있다. 멀리서 보면 이들도 그냥 그런 보통의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는거지.

소속감, 평범함. 결핍도 없고, 무언가를 갈구하지 않아도 되는 온전한 사람이고픈 한껏 꾸부정한 이들.

자신이 그려놓은 이상향이 전생이길 바라고,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공허한 눈빛은 정신차리라고 해도 쉽사리 안광이 돌아오지 않더라. 페이크 다큐라도 찍으려 했지만 집단 속에 맴도는 기운에 잠식되어 이러한 망상을 품게 될 수 있으니 뇌에 힘주어야 한다. 흰 우유를 앞에 뒀을 때 무심코 시계를 봤을 때 6시 6분 6초가 되었다고 내재된 또 다른 자신을 꺼내려는 심상은 애저녁에 넣어두길. 당신도 윤회 당할 심산으로 가게 앞에서 원격 줄서기 할 생각은 시작도 하지 않길. 정 안되겠으면 내가 등짝이라도 후려 쳐 줄게.



📖아미고_이상하네요. 제 세계엔 변수가 없는데.

생각이라는 걸 하며, 자아를 갖는다는 것. 그건 AI와 인간이 다름을 상징하는 이유이기도 한데 어째서 너는 그 심상을 탑재한 걸까?

이제는 한 집에 거주하는 인간의 수보다 AI기능을 지닌 기기들이 더 많을 거라고 장담하게된다. 우리집만 봐도 그러하니까.

야키마 H1이 테스터로 도입 되었을 때, 인간에게서 아미고라는 단어를 획득한다. 그 무리에 있으면 기기 마저도 친구가 될 수 있을거라는 정보를 얻는다. 데이터가 쌓이고, 무기한 생명을 가진 존재로 세력을 키우게 되고, 부가적 제한 요소를 넘어서는 순간 인간의 확고한 대체재가 되어버린다.

인간의 생명에는 단일과 유일성이 존재하지만(윤회(당한) 자들의 이야기 때문이라도 특정 존재는 열외를 해야 할까( ͡~ ͜ʖ ͡°)), 다 부서져버린 휴머노이드는 AS나 폐기, 재 구입이 가능하다는 것에 우리는 완벽을 기하는 긴장 상태 삶을 살지 않게된다. 촬영장 안 각각의 인물만 봐도 그러하다. 기계 의존적인 시각으로 삶을 마주하니 이 세계는 당연하다는 듯 휴머노이드에게 잠식 당한다. 망가지면 수리하면되고, 회생 불가면 교체의 여러 갈래가 있으니 이게 변수라면 변수겠지.

느슨해진 인간의 멘탈보다 단단한 데이터를 가진 로봇이 제몫의 역할을 하고있다. 기계에 기생하게되는 이들을 보면 도통 AS마저도 안되는데 붙들고 사는게 답일까를 생각하게 만든다. 쥐어 짜 내어서라도 결과를 도출하고 노력을 쌓아 완벽한 엔딩을 맞이하는 재미로 사는게 인간이었는데 이게 되려 변수로 보일 수도 있겠다. 사람들은 그저 기계를 켜고 끄기만 할 줄 아는게 일반화되는 그런 세상이 언뜻언뜻 보이는 듯 해 아둔해지는 인간이 되어질까 걱정 하나가 더 늘어나버렸다.




역시나 인비인이라 해서 귀신이 나오거나 흉한 것들이 도처에 튀어나오진 않았다. 다만 인간이길 포기한 인간이야말로 인비인의 또다른 인간군상이라 할 수 있겠다. 타인을 해하는 자, 그리고 스스로를 동굴로 밀어넣는 자, 자신 이외의 존재를 발치에 두는 자들. 그 존재의 시작점은 하나같이 고갤 돌리면 마주 할 수 있는 평범한 인간, 그저그런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이들의 심상에는 대체 무엇이 박혀있길래 변질되었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험한 것들이 도처에 깔려있는 세상인데 믿고 의지할 사람이 가장 무섭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면서 칼자루를 쥐지 않아도 사람을 불안으로 몰아 넣을 수 있는 존재 역시 바로 옆 같은 공간에서 아무렇지 않게 나를 주시하고있는 사람이라는 걸 생각하면, 나 또한 그들에게 무의미한 해를 입히는 인비인의 꼴을 하고 아닌척 사는건 아닌지 계속된 자기검열을 하게 만든다.



📖출판사를 통해 출간 전 3편의 가제본 만을 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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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화의 여름 위픽
배명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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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를 보니 이건 무조건 배추 도사, 무 도사 두 양반이 이야길 해주거나 은비 까비 귀염둥이가 알려줄 옛날옛적 전래동화의 기운이 낭낭했다. 용이 되지 못한 천 년 이무기 '여름'과 소녀 '계화'의 풋풋하고 애절한 첫사랑을 1970년대의 한여름 정경 속에 녹여두었다. 초 여름이 시작되는 지금과 너무 잘 어울리는 이야기 일거라는 생각에 골라봤다. 예나 지금이나 더 사랑하는 쪽이 바보가 되고, 자신보다 상대의 안녕을 바라게되며 사랑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기억이라도 해주길 바라는 미련한 사랑의 바보의 시간을 기록 해 두었다.

비늘증이라는 병을 앓고있는 계화. 서울로 일하러 간 부모 대신 조모의 손에서 자라고 있는 아픈 아이. 나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면 놀림의 대상이 되기도하고 미움이 집중되는 마음의 병이 추가 된다. 계화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담임이지만 그와는 다른 반장 남영(담임의 아들이지만 성품까지 닮진 못했다)은 아이들과 함께 계화의 아픈 부분을 놀림의 대상으로 만들어 괴롭힌다. 서러움이 극에 달한 계화는 죽어버리자 결심한 그 때, 이무기가 용이 될 수 있는 그 타이밍에 둘은 마주한다. 이무기가 승천하여 용이 될 순간 인간의 눈에 띄어선 안되지만 그 순간을 계화가 본게 우연이고 인연의 시작이 되어버렸다. 이 얄궂은 타이밍 덕에 이무기는 다시 용이 아닌 구렁이가 되어버린다. 해코지하기 딱 좋은 이유를 찾았구나! 땅에 떨어진 하찮은 구렁이는 복수를 하려했으나 시름시름 앓게되고 그 앞을 맴도는 계화와의 재회. 용이 되지 못한 설움에 미운털이 박힐만도 한데, 그 순간을 싸악 잊게 만들도록 예쁜 짓만 골라 하게된다. 자신에게 산딸기며 이것저것 챙겨주며 기력을 찾도록 마음을 쓰고, 여름 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준다. 미움이 고운정으로 변하는 순간. 일단 일방적인 마음의 동요지만 말이다.

시간이 지나 계화가 비늘증을 이겨내게 된 것도, 밉상 남영이 자라면서 병이 나아 아름다워진 계화를 흠모하는 것도, 여름이 사람의 형상을 하고 계화에게 난처한 일이 생길 때 마다 나타는 것도, 그리고 또 어느날 훌쩍 떠나버린 것까지. 2024년 노년의 계화가 병원으로 가서 더이상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그 집터에 남겨진 구렁이와 보석반지의 엔딩. 마지막 문장을 읽고, 다시 맨 앞으로 가서 다시 이야기를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연모하는 마음의 끝은 있을 수 없다는 것. 그 마음이 깊어지고 짙어질 순 있으나 무 자르듯 뚝 잘라 끝을 낼 수 없는 건 변함이 없음에 이들의 시절이 시리게 느껴진다.


📖저게 칼을 문 입으로 잔인하게 난도질을 당할 정도인가? 태생이 뱀인지라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인간은 자신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조롱도 서슴치 않는가 보다.

외형적인 다름이 어린 아이들에겐 친구로 허용이 되지 않나보다.

철없는 남영보다 더한 남영 모친의 말들에 어른이 된다고 모든걸 포용하고 품어줄 인품을 가진 사람이 될 순 없음도 느꼈다. 자신은 잘 씻으면 낫는다 했고, 계화에겐 더러워서 그런거라고, 성격이 못돼먹어서 부모까지도 도망을 간거라는 말을 어떻게 자신의 아이를 앞에 두고 할 수 있을까. 정말 뚫린 입이라고 아무렇지 않게 뱉어내는 것도 울화가 치미는데 더한건 애 엄마라는 사람이 어리고 아픈 계화를 보고 그렇게 살다 뱀이 될거라는 악담을 붓는다. 저런 사람도 어른이라고, 대접받는게 얄밉게만 느껴진다. 다행이라 해야 할까? 전래동화의 기운을 담은 이 이야기는 후반부의 어른 남영과 그의 모친에게 그대로 되갚음을 당하는 흐름으로 이어진다. 역시나 권선징악의 맛은 밤고구마의 팍팍함을 싸악 내려주는 시원한 사이다같은 무언가가 있다. 이무기가 봐도 이 모습이 옳지 않다는 게 확연히 드러나는데, 짐승보다 나아야 될 사람들은 가끔 이러한 행실을 보일 때 남은 책장를 손가락으로 긁어보며 양을 가늠해 본다. 후반부 어딘가에서 꼭 한 번은 벌을 받거나 이 때를 뉘우칠만한 사건이 하나 더 생기길 바라며 그정도의 책장이 있다는 것에 안심하곤 한다.


📖너는 나를 기억할까?

모든 짝사랑의 당사자가 연모하는 대상에게 직접 하지 못하고, 허공에다 질러보는 물음이다. 나는 너를 이토록 애닳아하는데 너는 나를 기억이나 하고 있을런지에 대한 문장. 매 순간에 너가 존재했고, 매 시절마다 너로 가득 차 있는 내 세상이 헛웃음 나도록 촘촘한데... 로 마침표도 아쉬워 찍지 못하는 마음이 서려있다. 여름에겐 계화는 자신이 승천하지 못하도록 막아버린 미운 사람이 아니라, 죽어가는 구렁이를 안쓰러이 여기고 자신의 설움도 뒷전인 채 마음쓰여 서성이던 선한 존재였다. 다정한 눈길과 이름을 지어주던 고운 입술이 사계절 내내 여름으로 살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상대에게 반한다는 건 드라마틱하고 대단찮은 우연과 아귀가 딱딱 드러맞는 타이밍이 아니다. 선한 마음 한 줌과 보드라운 시선 한번이 순간을 살게했고, 영원을 바라게되는 귀한 마음이었다.

📖작가의 말_ 비록 최고는 아니더라도 그 어떠한 형태의 사랑이든 '사랑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좋다고 말이죠.

'사랑이었다'로 완성형 문장을 끝낼 수 있다면, 그게 망한 사랑이든 미처 닿지 못한 사랑이든 일단 더 많이 사랑한 자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서럽거나 아쉽지는 않을 듯 하다. 헌데 이러한 절절한 마음은 완성형이 되지도 못하고, 꽉 닫힌 결말로 마무리 되지 않았다. 그렇다보니 남들 입에는 '망한 사랑'이라 불리우게 될 지라도 적어도 자신에겐 '... 사랑이었다'로 결국엔 사랑이 아니고 뭐겠냐는 말로 모든 부정적인 단어를 막아세우는 느낌을 받는다.

잘 먹는지, 잠은 잘 자는지, 서러운 마음이 들진 않는지, 집으로 오는 길이 무섭진 않은지, 항시 차 조심과 사 람 조심을 입에 달고 살게 되며, 혹여 므슨 일이 일어나거든 앞뒤 상황 재지 말고 자신에게 바로 알리길 바라는 마음. 그 바보같은 마음을 뒤집어보면 항상 사랑이더라. 여름에겐 그 기다림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안도하는 마음이 결국 사랑이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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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열 번을 나고 죽을 때 (리커버) 위픽
성해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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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온 여름', '혼모노', 그리고 짦은 숨으로 읽어낸 '우리가 열 번을 나고 죽을 때'의 시간. 저자의 세상은 결국 사람으로 결부된다. 사람 이야기가 제일 재밌다는 걸 아는거지.위픽의 장점은 딱 집중하기 좋은 구간만 기록되어 있다는 것. 그래서 각각의 인물들이 그간 살아온 패턴이라던가 성향, 사건이 벌어진 후 변화될 심상은 독자에게 맡겨놓았기에 얇은 책 + 긴 여운 + 각자의 각색 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쇼츠와 릴스로 중독 되어있는 사람과 카페가서 커피마시며 너는 영상 보고 놀아라, 나는 위픽 읽을란다! 로 각자 플레이가 가능한 시간이기도 하다.

대학생. 건축과 4학년. 교수의 과제. 나와 다른 성향 동기와 협업. 타지에서의 시간. 과제로 주어진 고택, 고택 거주자의 히스토리 이해.

나와 닮아있는 성향의 재서, 나와 다른 성향이 부러우면서 질투가 나고 궁금하기도 한 이본의 시선들. 이러한 감정들이 딱 이 나이 때에 이뤄지는 것임을 느낀다. 이 시절을 지나온 사람으로서 나 역시도 나를 잘 모르지만,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 궁금한 시기이니까.

세상에 뒤쳐진듯한 문교수의 수업 방식은 나와 맞지 않다 생각하지만 그대로 따를 수 밖에 없고, 서머스쿨에 선정되는 것도 의아한 점들이지만 다른 이들처럼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다. 그게 재서다운 삶의 방식이다. 매사 조심스럽고 확인을 해야하고, 그러다보니 스스로가 긴장을 안고 사는 인물. 남들에겐 우등생이겠지만 자신에게는 자기검열과 확신을 요구하는 피곤한 인간임을 모르지 않는다. 그에 반하는 인물 이본. 2학년 1학기 응용수학과에서 건축학과로 전과. 과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소문도 있는데 건축과에서 타과 이동은 심심찮지만 이본처럼 역행하는 인물은 또 없었으니 시선이 갈 수 밖에 없었다. 2년 동안 공부한 자신보다 시선이 잽싸고 날카로운 상대라 궁금증이 차고 넘치지만 선뜻 손내미는게 어려운 재서. 비슷한 듯 다르게 놓여있는 인물이 하나의 주제를 두고 다르게 보는 관점은 이야기가 시작 될 즈음 부터 나란히 놓여지고 있다.

스캐치업을 하는 과정에서 수작업과 캐드와 3D 프로그램의 대립. 이는 속도전의 차이로도 보여진다. 어딘가 모르게 준비 과정부터 복잡할 수 있는 답답함을 가진 재서와 빠르고 명확한 이본의 차이. 마주한 관점은 그대로 고택으로 시선이 옮겨진다. 고택의 보수와 재건의 차이. 구조적과 비효율과 안전상의 문제를 제시하며 재건을 이야기하지만, 처음 이 작업이 주어 질 때 클라이언트 요구사항과 복원과 보존에 중점을 두라는 교수의 권고를 무시 할 수 없는 재서에겐 현실은 맞지만 실정은 그러지 못하는 심상의 대립도 함께 보여준다.

'짓다'는 의미에 우린 여러가지를 덧붙일 수 있다. 대표적인 동사의 개념으로 재료를 들여 지어낼 수 있겠지만, 작고한 정연씨의 부친이 만든 공간을 '깁다'의 방언적 의미인 짓다로 의미를 추가하여 떨어지거나 해어진 곳을 꿰매는 식으로 해석 할 수도 있겠다. 후자가 문 교수가 두 학생에게 바라는 짓다의 속뜻이라 생각을 해봤다.


📖그렇게 시작했는데 막상 해보니까 그 오기가 애정의 동의어 같기도 하더라. 나 뭐든 빨리 질려하거든.

지레 짐작이 아니라 툭 터놓고 이야기하는 자신과 상대에 대한 다름의 이해. 내 뜻대로 안 될 때는 화도 나는데 그래도 될때까지 해보면 언젠가 뭐라도 되어 있는게 좋은 이와 아직까지 근본적인 물음에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이마저도 주저하게되는 이의 시선.

우리가 열 번을 나고 죽어야 비로소 천 년이 흐른다는데 둘이 마주한 탑은 그보다 더 긴 세월을 버텨주었으니 흔들리기도 하고 기울어지는 것의 당연함과 대견함을 이야기하는 해설사님의 이야기를 떠올려본다. 묵직하게 한 곳에 박혀있는 석축도 갖은 시련이 오기 마련인데 사람이라고 그러한 휘둘림이 없겠냐는 숨겨진 말을 찾아내며 건물을 짓는 일 만큼이나 한 사람의 세상을 지어내는 일이 얼마나 지난한 공이 들었는지 감히 가늠해보게된다. 우리가 열 번을 나고 죽을 때 비로소 그 공수에 대한 노고를 완벽하게 이해하게 되겠지.(하루아침에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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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도시락 편지 - 매일 혼자 점심 먹는 왕따 딸을 살린 기적의 편지
크리스 얀들 지음, 최지영 옮김 / 이야기장수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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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사한 꽃무늬의 책표지. 그리고 아빠, 도시락, 편지. 자식들이라면 울컥하는 포인트를 다 갖춘 제목. 스르륵 책을 넘겨보려다 프롤로그의 '매일 아침 눈뜨는 것이 왈칵 두려워지는 날에'라는 문장에 나는 백기를 들 수 밖에 없었다. 외부의 공격에 무디고 덤덤하게 살고자 마음을 먹더라도 처음 겪게되는 감정은 매번 어렵고 받아들이기 두려워진다. 저자의 딸도 오죽했을까 하는 마음을 얹어보며 어린시절의 나를 회상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 책이 다르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해 혼자 점심을 먹어야 했던 열 살 소녀. 도시락 가방 안에는 다정하고 익숙한 손글씨의 메모가 들어있다. 아빠의 메세지. 평소와 다른 딸이 걱정되어 꼬치꼬치 케 묻지 않는다. 아빠는 여전히 여기 서 있겠다는 듯의 든든한 문장들이 종이에 서려있다.

잘잘못을 따질 요량으로 집요하게 파고들지 않는다. 짧은 문장 몇줄로 하루를 다독이고 남은 시간을 어찌 지낼지 생각하게 만든다. 사춘기의 딸의 세상을 존중하며 먼저 문을 열고 나올 여지를 준다. 훈계의 느낌이 아니라 마음이 덜 주눅들었다. 한없이 작고 쪼그라들었을 딸 옆에 내려다 보는게 아니라 같이 쪼그려 앉아 '아빠는 - 그랬었어.'라는 듯 당신의 어린시절의 마음을 옆에 툭 놓아준다. 그래서 고마웠다. 유효기한이 없는 내 편 같아서.

📖DAY27_ 누군가가 날 싫어한다고 내 탓을 해선 안 된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누군가가 날 싫어한다면, 그건 '그들의 문제'이지, '내 문제'가 아니다.

만인의 사랑을 받는 것이 부럽긴하다. 헌데, 살면서 소수의 미움도 안 받는 삶이 부러워 지기도 하더라. 사람이 하나 둘 모이면 마음이 맞는 집단이 생기고 그 무리가 많아지면 서로를 배척하기도 한다. 그 과정 속에서 만만한 미움의 대상이 추려지기도하고, 질투가 뭉쳐져 칼을 숨긴 입 속 가시들이 사람을 찌르고 할퀴기도 한다. 타인의 말과 시선이다. 이건 인격이 완벽히 채워지지 않는 어린 시절의 상황에서 그치지 않고, 다큰 어른이 자신을 추켜세우는 삐딱한 방법이 되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는 매번 자신의 입장에서 답을 찾는다. 모든 결론이 '나 때문에'로 결부되며 존재 가치의 부정까지 이르게된다. 그건 아마 애디는 물론이며 저자도 똑같이 겪어봤을 것이다. 독자인 나도 그러했으니까.

애디의 맛있는 점심 위에 놓여진 이 문장이 진짜 답이었다. '모든 사람이 널 좋아하진 않을 거야.' 하지만 그 탓이 나라는 것에 마침표를 찍지 않길 바랬다. 왈가왈부한건 그들이니까. 그들이 도출 해낸 답인거지, 모두에게 적용되는 정답은 아님을 먼저 살아낸 사람의 생생한 후기같아 믿고싶어졌다.


📖DAY43_ 우리는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 수 없다. 그건 그냥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뒤집어보면, 타코는 모두를 행복하게 만든다. 우리 모두 타코였다면 얼마나 행복했을지 상상이 가는가? 갑자기 배고파지네.

먹는 행복 만큼 관계로 얻어기는 기쁨이 애디에게도 생기기를.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다고 모든 사람들에게 미움 받을 일은 아니라는 것. 타코를 먹는 순간 얻어지는 행복 만큼이나 발치에 채이는 모든 순간이 행복일 수도 있다는 삶의 가정법을 기억하길 바라고 있었다. 별 거아닌 것에도 분명 행복은 존재하고, 우린 그 행복으로 슬픔을 쉽게 잊어버릴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알려줬다. 아마 애디는 화요일의 타코 만큼이나 목요일의 타코론도 존재하다고 믿게 되겠지.


📖DAY47_ 나에게 상처를 준 말들도 있었지만, 또 나에게 도움이 된 말들도 있었다. 내 말로 누군가를 다치게도 했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희망을 주었다. 생각이 담기지 않은 공허한 말은 있을 수 없다. 우리가 하는 모든 말에는 언제나 어떤 생각이 담겨 있다.

말에는 '힘'이 실린다 했고, 그 힘은 '진심'을 동반한다고 알려줬다. 여기에는 어떤 위트의 문장을 이어 붙이지도 않았다. 애디에게 의미를 전달 할 때엔 명확한 팩트만을 전달하고 싶은 짧고 굵은 한 방이라 여겨졌다. 사람들의 시선과 입술 끝에 달려있던 가벼운 말들로 상처를 받았기에 손에 잡히지도 않는 것에 연연하게되고 마음 쓰이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겪어냈던 아빠와 딸이었다. 네가 상처 받은 만큼, 너의 말로 누군가를 다치게 할 수 있음을 늘 인지하고, 반대로 너의 말로 힘을 얻기도 할 수 있는 양면성을 잊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받은 대로 되갚으라는 말이 아니다. 겪어 낸 만큼 그 아픔을 알기에 똑같은 사람이 되진 말자고 이 편지를 쓰는 저자가 스스로 되뇌이고, 딸에게도 건네게 되는 삶의 방식이었다.


📖DAY78_ 그 거짓말이 가치가 있을까? 겨우 몇 초, 당신을 곤경에서 구해줄 뿐인 그 거짓말이 정말 가치가 있는 걸까?

거짓말은 결국 언제고 되돌아오게 되어 있다, 언제나.

청렴결백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특히나 어릴 때엔 더더욱.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얄미운 친구를 골탕먹이기 위해, 속한 집단에서 인기를 얻기 위해, 주목받기 위해 뱉어낸 순간의 달콤한 처세술. 다들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 거짓말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 진득하게 밀어 붙일 진심이 될 수 없다는 것. 에둘러 표현하던 마음의 전달 중 저자는 이러한 당연한 관계의 중요성에 대해선 확실하게 언급하며 꼭 지켜야 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DAY97_ 영원히 함께할 친구들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들은 바다의 파도처럼 높이 치솟으며 왔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그들은 때때로 오갈 것이고, 나도 다시 연락하며 지내게 되겠지만, 결국 또다시 사라질 것이다.

대학 동기였으나 무리를 지어가며 친하게 지내진 않았던 친구와 오랫만에 연락을 하게 될 즈음 그녀가 건넨 말이 있었다. '시절 인연' 이라는 걸로 우리는 멀어지기도 했고, 다시 가까워지기도 하는거 아니겠냐며 현재 비슷한 처지의 우리를 이야기 했었다. 모든 것에는 영원이라는 게 없고, 또 그게 당연한 것이 인생이지 않겠냐는 불교 용어였다. 그러니 이 관계를 욕심내어 붙들여 메어두지 않길 바라며, 자신을 스쳐가는 수많은 인연들을 욕심내며 움켜쥐려고도 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보였다. 그 말을 타국의 저자가 딸에게 적어둔 편지로 보니 새로웠다. 인연을 바다의 파도로 비유 한 것 또한 이해하기 쉽고 눈 앞에 그려질 만한 문장이라 구구절절 설명해 주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딸보다 곱절의 세월을 살았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과 살아냈을 것이고, 또 뜻하지 않은 인간관계에서 고생하는 날도 숱하게 있었을 것이다. 이직에 관해 살짝 언급 한 걸 보면 이러한 관계의 고민은 나이가 들어도 사그러들지 않는 난제라는 것이겠지. 호호할머니가 되더라도 너는 그 일들로 마음을 쓰게 될 테니 지금부터 골머리 앓진 말자, 아빠도 아직 그 문제에 대한 답을 푸는 중이잖아? 라는 듯 제출 기한이 없는 문제에 조급해하지 말자는 사담이 숨겨져있는 듯 했다.


📖DAY104_ 지금은 내가 널 잠시 맘에 안 들어할지 몰라도, 나는 늘 네 곁에 있을 거고, 언제나 널 사랑할 거야.

비빌언덕 이라는 말이 있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는 말인데 의지할 곳이 있어야 시작하고 이룰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저자는 애디에게 이렇게 적어두었다. '네가 날 증오하고, 싫어하고, 소리를 질러도 난 늘 네 곁에 있을 거야. 언제나.'라는 짧은 메모. 헌데 나이들어 보면 세상 힘이 되는 편지라는 점이다. 10대 시절엔 가족, 부모가 당연히 내 곁에 머무르고 나의 미운짓 고운짓 다 받아내주는 사람이니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된다. 하지만 애디가 저자의 나이 즈음에 다다르면 절대 당연하지 않음을 느낄 것이다. 여건상 떨어져 지낼 수도 있을 것이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사랑하는 떠나 보낸 후 곁에 없어 그리워 할 수도 있다는 걸 늘 염두해 두고 살아야 하는 시절이 온다. 그래서 '늘'과 '언제나'라는 단어에 마음이 기운다.

꼰대 같아도, 얄미워도 매 순간마다 찾게되는 존재라는 것의 든든함. 당연하다 여기지만 당연할 수 없는 관계에 애틋해짐을 느낀다.

📖DAY123_ 당장은 그 사람들을 다시는 안 볼 것 같고, 다시는 함꼐 일하지도 않을 것 같지만, 세상은 넓은 만큼 좁기도 하다. 내 이득을 위해 사람들을 이용해도 괜찮은가? 당장은 기분좋을지 몰라도 결국엔 그 일로 스스로 상처 입게 될 것이다.

사람이 어려웠다. 금새 가까워지기도 하지만, 금새 저 만치 멀어지기도 하는 것이 사람이다. 붙들여 메어두고 싶어도 안 되는 마음들이다. 저자는 딸에게 그러한 관계의 찰나를 등반하며 마주치는 사람들로 비유했다. 그 잠깐이겠지만 다정하길. 그래서 다시 또 만난다면 반가워하며 또 다정함을 얹어주길. 사람의 인연은 알다가도 모를 접점들이 즐비하니 먼저 건냈던 해사한 잔상으로 오래도록 밝고 선함을 얻어내길 기대하고 있었다.


나는 어린시절 아빠에게 도시락 위에 얹어진 편지나 메모를 받아 본 적이 있던가를 생각해봤다. 일단 초등학교 때 부터 급식을 했고, 아빠는 늘 바빴다. 나의 마음을 들여다 볼 여력이 없는 사람이었다. 다정한 말과 살가운 기운은 없더라도 존재가 주는 든든함은 있었다. 그럼 사람의 바운더리를 넘어가게되는 시점, 결혼 할 때 장문의 편지를 받았던게 두고두고 기억이 난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폐백이라는 관례. 신랑신부가 양가 부모님과 친척들에게 큰절 올리면 받는 절값 봉투에 부모님 두분은 각자의 이야기를 빼곡하게 적어두셨다. 집에 있던 노트를 찢어 스프링 부분을 가위로 자른 흔적. 꾹꾹 눌러 쓴 단어들. 어딘가 엉성한 맞춤법. '장하다, 애썼다, 고맙다, 사랑한다'는 말을 당신들의 입이 아닌 손 끝에서 느껴보는 온도는 남달랐다. 그렇게 받아둔 편지는 10년이 넘은 지금도 소중한 물건 중 하나가 되었고, 두고두고 꺼내 봐도 눈물 찍어내는 눈물 버튼이 되어버렸다.

말은 공기 중으로 흩어지게 되지만 손으로 눌러 쓴 메모들은 흔적이 되고 손에 쥘 수 있는 힘이 된다. 저자의 딸이 차곡차곡 모아두었을 믿을 구석에 대해 생각한다. 각각의 상황에 따라 펼쳐 볼 만한 문장들이 수두룩 하다는 것. 답이 보이 지 않을 때, 그리고 해답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 곁에 없을 때에 힘이 되어 줄 응원의 조각이 많다는 것 만으로도 득 본 삶이라는 걸 깨닿게 되겠지. 부럽다 애디!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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