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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의 온기
김혜진 지음 / 창비 / 2026년 4월
평점 :
책 맨 뒷장에 적힌 작가의 말 때문에 골랐다. '내가 잘 지낸다면 그들도 잘 지낼 것이고, 내가 행복하다면 그들도 행복할 것 같다고.' 라는 말로 소설의 인물들이 어찌 살아갈지 가늠하는 저자의 마음이 좋았다. 특별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허상의 세상도 아닌 김혜진표 소설 속 인물들이 꼭 나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오컬트와 SF소설에 빠져만 살다가 저자 덕에 현실로 돌아와 쌩눈으로 앞을 보는 느낌이다. 호락호락하지 않는 삶이 비단 나만 겪어내는 삶의 오르막길만은 아님을 비친다. 내가 특별한 것도 아니지만, 특이한 것도 아닌 그저 그런 사람들 이야기. 하지만 나만 이렇게 살지 않음을 보여준다. 총 7편의 단편에서는 화자든 주변인이든 익숙하게 볼 법한 이들이 이야기를 끌고간다. 희망보다는 체념이 익숙하고, 낙관하기보단 비관적 시선을 기반하여 더이상의 최악은 없을거라는 마음으로 가장 구석과 가장 뒷편에 서서 독자 자신의 삶과 이야기속 타인들의 삶을 보게 만든다. 무표정한 낯짝과 양팔을 팔짱 낀 채로 삐딱하게 보는 듯 해도, 시선에 닿는 이가 한순간이라도 발을 삐끗해서 넘어질라치면 단박에 튀어나갈 준비를 하고있는 발끝과 시선의 끝이 그들의 기본 자세임을 이젠 안다. 습관적 도움의 갈구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도록 적정거리에서 주시하는 마음이다.
은비까비가 전해주듯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의 꽉 맏힌 결말은 없지만 이 글들이 전부 밉거나 씁쓸하지만은 않다. 그렇게 주변에서 적극적 개입이 없더라도 너무 세상을 각박하게 여기지 않길 바랄 뿐이다.
📖무슨 일이 있나 한번 살펴주는 게 뭐가 어려워서. 일이분도 안 걸리는 일을.
모든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시작된다. 그러니 동일한 상황을 두고도 누군가의 눈에는 거슬리기만 할 뿐이고, 또 어떤 이는 짚고 넘어가야하는 공동사회 순리에 어긋난 행동이다. 또 어떤이에게는 떠올릴 구실도 없을만큼 안중에도 없는 장면이 될 수도 있다. 헌데 정해와 영기는 그러지 못한다. 그들의 딸인 호경이 계속 모든 장면에 겹쳐 보이기 때문에 예민해진다. 누군가가 한번 둘러봐 주었더라면, 그 소리에 황급히 달려와주었더라면 이 아이가 술에 취해 인생을 허비하고, 자신을 업신여기진 않을거라는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번진다.
아파트에서 보았던 민아와 민우라는 아이가 나중엔 호경처럼 세상을 원망하는 삶을 살까봐 그게 어른어른 눈앞에 비춰지니 무서웠을수도 있겠다. 다들 제 일이 아니니까, 엮이는게 귀찮으니까, 괜한 오지랖으로 비춰질 수 있으니까. 간섭했다가 얼굴 붉힐 수 있으니까의 핑계로 마음은 있는데 선뜻 움직여지지 않았을 수도 있을텐데 정해는 몸이 먼저 반응한 사람일 뿐이다.
📖나는 모르겠다. 사는 게 여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렇게 남들 사는 거에 줄기차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지.
정미의 한 마디는 정혜가 붙들고 살던 사람간에 기대하는 마음같은 마지막 매듭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주르륵 풀려 버렸다. 겪지 않은 정미였고, 겪어냈고, 이후를 감당해야하는 정해의 조바심이었다. 그러니 정미에겐 멈춰도 된다 싶은 정해의 과한 기대치였고, 정해에겐 당연한 것임에도 안 하는 것이 되려 이상한 사람들의 자기중심적인 미운짓이었다. 다시는 호경같은 아이가 생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도 있겠지만, 만에 하나 자신이 호경같은 애를 구할 수 있다면 호경도 자기만의 굴에서 나오지 않을까 하는 세상의 기대감이라 보여졌다. 정해든 정미든 누가 맞고 틀리다는게 아니다. 자신이 겪어온 삶에선 자신들이 정답이고 옳은 생의 방식이니 누구의 편도 들어 줄 수 없는 나도 내가 정답인줄 아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냥 제가 상처받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너무 큰 상처였다고요. 한번은 꼭 그말을 해야 할 것 같았어요. 잘 지내세요.
각자가 쏟아낸 말의 더미 속에서 스스로가 고립이 된다. 그러니 타인이 쏟아내는 말은 자신의 영역을 침범했다는 걸로 간주하며 불행을 표출한다. 왜냐고? 내가 하고픈 말을 못했으니까! 내가 하고픈 말을 토해내지 못했으니까 끙끙 앓다 병이들고 곪아버리는 과정이었다. 애실이 그러했다. 이혼 한 부모, 양 쪽 어디에도 사랑받거나 이야길 들어줄 사람이 없었던 유년시절은 혼자 말하고 혼자 감당하는 말의 더미에서 갖혀버린다. 그러니 호의를 갖고 다가온 현서에게 보상심리가 작동하듯 자신의 사연을 아낌없이 퍼붓는다. 현서는 친구가 되었으니 애실의 이야길 다 들어준게 아니라 사업투자를 빌미로 사기를 치기 위해 들어주어야만 했던 일련의 과정이었음을 밝힌다. 이혼 후에도 자식에게 돈을 요구하려고 연락을 해온 부친에게 애실이 했던 말 만큼이나 현서 또한 애실에게 똑같은 뉘앙스와 말의 온도로 마침표를 찍는다. 잘 지내라는 말,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는 말. 결국 똑같은 결말이었다. 너의 말을 들어주느라 지치는 나를 외면하고도 무수히 쏟아내는 너의 말은 가시만큼이나 따가웠음을 알린다. 영영 찾아오지 말라며 애실이 넘어올 통로를 차단해버린다.
📖다 기억나지도 않는, 이제 주워담을 수도 없는 말들을 생각했다. 그러면서 다시금 말을 간직하는 법을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중얼거렸다. 매일 밤, 차갑고 딱딱한 마음을 파서 하루치의 말을 묻는 일. 매일 조금씩 더 깊이 파고, 오래 파는 행위에 적응하는 일.
애실이 아버지에게 떠넘긴 문장들도, 현서가 애실을 향해 참다참다 쏟아낸 말들까지. 할 줄 만 알았지, 그 문장을 온 몸으로 받아낸 애실이었다. 그제서야 살아오며 겪어낸 관계에 대한 깔끔하지 못한 관계의 답을 정통으로 후드려맞아버렸다. 다시 이러한 관계가 한 번은 또 생겨나겠지. 그 때의 애실은 어떠한 방향으로 말하고 들어주는 방법을 찾을지 기대는 되지만 또 한편으론 그 기대감을 대폭 낮춰보려한다. 사람은 쉽사리 변하지 않더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어 하는 말이다.
📖그것이 자기 삶에는 없다고 여겼던, 스스로 감쪽같이 지워버렸던 누군가의 보살핌과 애정 같은 것을 일깨웠다는 사실을 안 건 시간이 더 흐른 후였다. 그러니까 그녀가 이곳을 떠날 때 동력으로 삼았던 원망과 미움이 옅어지고, 그 아래 자리한 것들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거였다.
선희가 바라보는 민지는 어린시절 자신과 닮아있음을 깨닿는다. '바꿀 수 없는 자신의 태생을 인정하는 데서 오는 일종의 체념에 가까운 감각'을 언급하며 선희는 고향을 떠날 때 미련 없이 내던져버린 것이 겹쳐보였다. 어른의 손이 타지 않은 듯한 아이의 차림새를 통해 이 아이도 제 몫으로 주어진 관심과 애정이 다 채워지지 못한 채 자라고 있음을 확인했다. 유년시절 그리 자라왔던 만큼 그 몰골을 확실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떻게는 살아 내려고 제 힘으로 돈벌이를 하는 아이. 어린녀석이 마음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마을 어르신들은 필요치도 않은 청란에 값을 메기며 적선의 개념보단 거래의 방식으로 아이를 돕는다. 고씨 할머니가 청란을 쟁여놓고 살듯, 달걀을 싫어하던 자신의 아버지도 요양원에 가기 전까지 사주는 고객이었듯 이 동네 어르신들이 한마음으로 민지를 키우고 있었다. 타인의 것을 탐하지 않는 아이로 키우는 방법을, 커서도 노동의 댓가는 응당 받아 마땅한 수고로움임을 알려주고있었다. 더 커서 이 시골을 벗어나더라도 당연하게 얻어지는 것은 없으며 너의 노력은 헐값도 아님을 항상 염두해두고 살길 바라고 있었다. 감나라 배나라 간섭보다 깨우치길 바라는 세상에서 선희도 그렇게 커왔고, 민지도 그리 커갈것임을 보여준다.
이건 아마 정해가 바라는 세상 일 수도 있고, 정미가 일부러 마음쓰지 않아도 되는 그런 담백한 세상일 수도 있음을 느낀다. 결국 여기든 저기든 사람사는 동네는 다 똑같은데 무엇에 마음을 더 쓰고 있느냐의 차이가 아닐까로 생각을 덮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