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우정 -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모두 노인이 된다
김달님 지음 / 수오서재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의 책을 읽은 지 두 해가 지났다. 저자를 키운 두분을 떠나보낸 후 다시는 이러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줄 알았다. 보고픔에 대한 해결이라기보단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그리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속으로 삼키지 않을까 생각 했으나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이들이자 가장 이해하고 싶던 존재에 대한 사랑으로 '노년 탐구'에세이를 출간했더라. 역시나 저자다운 극복의 방식이구나 싶었지. 당신을 알고 싶다고, 나는 당신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는 말에 하나같이 들려줄 이야기가 없다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삶의 구석구석을 보여주던 이들의 속내. 그리고 모르고 지나쳤을 법한 당신들의 진심에 대한 것들까지.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랬을지도 모르겠고, 이야기를 하고팠을지도 모르는데, 어느하나 물어보거나 눈길을 주지 않았기에 스스로 단절시켰을지도 모를 아쉬움에 페이지마다 마음이 쓰여 쓰다듬게되는 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곧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사람 사는 이야기. 이번에도 나는 저자덕에 남들보다 조금 일찍 알아가는 노년 탐구와 노년 예습의 기록이다.



📖일흔이 넘어도 여전히 내가 모르는 내가 존재한다는 것. 스스로 뒤통수 치는 기분 좋은 배신이, 삶에 숨겨진 또 다른 재미라는 걸. 그녀는 유쾌하게 받아들였다.

시시때때로 변화되는 세상이라 한치 앞도 모르는 내일이라 했다. 그래서 책을 통해 현재의 노년을 학습하지만 이 예측이 나의 노년과 같은 결을 띄고 있을 거라는 확신은 할 수 없다. 가늠을 하는 것이지 확고한 확정의 미래라 믿을 수도 없다. 이러한 마음이 이 파트의 정열님에게도 해당되는 거겠지? 그녀도 당신이 할미 래퍼가 될 거라 상상이나 했을까? 비록 원하는 그룹의 새로운 멤버가 되진 못했으나 일단 도전이라는 걸 해봤으니 후회하지 않는다고, 하고 싶은 일에 용기를 내본 자신에게 오히려 더 고마운 마음이 든다는 뿌듯한 표정이 눈 앞에 그려졌다. '수니와 칠공주'의 최초 연습생의 자격도 주어졌으니까, 데뷔 준비하는 76세 래퍼 연습생이라는 신박함까지 얻은거잖아? 이래서 나이드는게 신나고, 재미난 것 같아 그녀의 세상이 부러워진다. 나는 잔잔하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똑같은 일상인데, 나보다 더 재밌게 사시는 것 같으니 샘이 나기도 했다.


📖'적응'이라는 말을 자주 떠올리고 있었다. 그들이 보여준 노년의 삶의 어느 시기보다 많은 것을 잃고, 많은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시간이었다. ... ... 그 시간 앞에서 어떤 이들은 당황했고, 어떤 이들은 분노했으며, 또 어떤 이들은 무기력함을 느꼈다.

노년의 적응은 또 다른 말로는 노년의 감내 이기도 했다.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점이다. 부정하기엔 몸이 먼저 반응했으니 따르는게 마음을 덜 다치는 방식임을 알지만 뜻때로 되지 않아 서글프다. 그래서 당황하기도하고, 자책하기도 하겠지. 그럴수록 하루 세 끼를 건강하게 챙기고, 꾸준히 몸을 움직이며, 내가 하고 싶은 일로 하루를 채워 나가는 것에 습관을 가지라 일러주셨다. 나에게 대접한다는 마음, '잘 먹겠습니다'를 넘어선 '잘 살겠습니다'의 기도. 적응+훈련=열심히 살아온 당신이 그 증표라는 것에 고마워하기. 당연함이 제일 어려운 것임을 알려주는 말들.


📖노인들도 세상 살아가는 걸 배워야 해. 스스로에게 너무 실망하며 살아가지 않도록.

폴더 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바꿔 사용해보기. 키오스크 주문해보기. 무인 매장에 카드 인식 후 들어가보기. 딸이 배송 주문해주는 화장품 말고, 올리브영에 직접 가서 테스트 해보고 마음에 드는 화장품도 구입하고 적립을 해보기. 아메리카노 말고 다른 커피 주문해서 사진찍어 자식들에게 자랑하기. 카톡 어플 깔아 손주들과 일상 대화 나누기. 지금껏 안하고 못하고 살아 왔던 것에 야금야금 하나씩 할 수 있는 목록으로 전환해보기.

내가 친정엄마에게 가르쳐주는 지금의 세상살이 방식이다. 30여년 전 당신이 나를 키웠다면, 지금은 내가 당신의 새로운 시선이 되어 하나하나 일러드리고 있다. 어렸던 내가 넘어지면 일어나길 기다려주셨던 것 처럼, 지금의 나는 진땀 빼는 낯선 기계 옆에 나란히 서서 시연도 해보고 직접 하실 때엔 성질머리와 세트로 손이 먼저 가기보단 눈짓으로 그거그거 누르라며 어설픈 안내자로 살고 있다. 잘했다고, 다음에 또 한번 해보자 하며 살살 구슬리고 어르고 달래고의 과정을 반복한다. 그래도 딸이 곁에 있어서 배울 수 있네 라며 말하시지만, 꼭 내가 아니더라도 당황하면 포기하지말고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잘 모르니 가르쳐 달라고 말해보라고 전한다. 그러면 열에 여덜은 무조건 천천히 가르쳐 주실테니 타인의 손길을 거절하지 말라고, 혹여나 안 해주면 속으로 '에잇, 너도 나이들어 봐라!'라며 얄미운 악담을 읖조리면 엄마가 덜 부끄러울거라고 같이 키득거리며 웃어넘긴다.

노년은 모든게 멈춘게 아니다. 계속 배우고 얻어내고 쌓아가는 똑같은 생의 과정인건데 다만 그 소화의 속도가 더딜 뿐이라고. 그러니 너무 위축되지 말라고 말씀을 드리지만, 어느 시점부터 나도 움츠려 들까봐 걱정이되기도 한다. 우리 쪼그라들지 말자.


📖나는 결코 여든의 마음이 되어볼 수 없다. 다만 짐작할 뿐이다.

저자도 그러하고, 나도 도그러하지만 온전히 여든의 마음을 스캔하듯 완벽하게 습득 할 순 없다. 그건 아마 일흔아홉도 못할껄? 그래도 우린 저자 덕에 짐작은 해봤으니까 막상 여든에 도래했을 때 덜 당황하고 의연하게 대처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미리 맛본 여든의 세상에 감사하게된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격언처럼, 한 노인을 지키는 데 필요한 여러 눈길 중 하나가 되기.

나는 이 말을 듣고 지금껏 이러한 생각을 하지 못했었나 아쉬워했다. 어린 것들에 대해서만 손길과 눈길을 주고 살았다. 어쩌면 그건 정말 당연한 사회 속 공동체가 가지는 자세 일 것이다. 헌데 그만큼 한 노인을 지키는 데에도 시선들이 필요했다. 목적없이 방황하는 사람이 없는지, 무언가를 하려는 행동에 더딘 움직임이 있는건 아닐지. 일단 기다려주며 시선은 따라가되 정말 도움이 필요해 보이면 사근히 다가가 의중을 묻고 손길에 보탬이 되는 것. 기다려보다가 누구의 손길 없이도 이뤄내어 제갈길을 가신다면 그제서야 시선을 거두어보는 것. 그러한 눈길을 습관화 해 보는 것. 당신의 노년과 나의 노년에 힘을 얻는 시선을 추가하고 포개어보는 방식. 절실한 세상살이임을 알고나니 이 문장이 기특해 계속 쓰다듬게 된다.



📖작가님은 아직 모를 거예요. 아무도 나를 궁금해하지 않고,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는 하루가 어떤 건지. 그분들에겐 어쩌면 작가님과 나누는 통화가 하루의 유일한 대화일지도 몰라요.

사춘기 시절엔 누가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으면 싶겠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아 아쉽고 서글퍼진다. 가족이든 친구든 세상은 그들의 이야기를 궁금해 하지 않는다 여겨 입을 다물게되고 그렇게 옹졸해진 입가 주름은 더더욱 열기 어려워진다.

이 책을 통해, 저자의 활동을 통해 '독거노인 안부 묻기' 봉사활동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지자체 제도에 대해 무지한 것도 있겠지만, 홍보가 덜 된것도 있지 않을까. 몰라서 못하는 사람도 있을테니까. 이러한 활동이 얼마나 큰 힘이 되고, 많은 이들이 필요로 한지 홍보가 더 된다면 많은 이들의 소통과 다정한 참견이 버티는 삶에서 살아내는 삶으로 바뀔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


이토록 많은 띠지를 붙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리고 이렇게나 많은 생각을 하며 앞으로 있을 날들에 대한 시나리오를 돌려 보게 될지도 몰랐다. 영영 오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도 없으며, 지금 함께하는 가족들이 훗날에도 영원 불멸하게 존재 할 거라는 희망을 갖고사는 꿈 많은 인간도 아닌데 왜 앞으로의 시간들에 포기하는 법을 모른체하며 살길 바란걸까.

책 표지에 세로로 적힌 문장을 다시한번 매만져본다.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모두 노인이 된다' 이 한마디를 통해 어느 존재의 인간이든 어떠한 형태로 변화되는 자신에게든 홀대해서는 안 될 것이며, 이른 포기를 통해 존재의 의미까지도 놓아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말해주고있어 꾸준히 재밌고, 촘촘히 신나게 살고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나는 끝까지 재미난 사람이고 싶으니까!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술꾼도시여자의 주류 생활 - 미깡의 술 만화 백과
미깡 지음 / 이야기장수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알지 못하는 주류의 세계와함께 철마다 먹는, 분위기에 맞춰 마시는, 상황에 따라 즐기는 술 이야기를 들어보며 어렵지않은 주류 만화 사전이라는 생각으로 가볍게 즐겨보기로했다.

술 매니아 답게 목차는 1차와 2차로 나누어두었다. 1차에서 한잔, 2차에서 또 한잔 하자는 그런 의미겠지? 1차에서는 서양술을, 2차에서는 동양술에 대한 이야길 하는데, 아는 이야기는 나도 알고 있어 재미나고, 모르는 이야기는 내가 접해보지 못한 세계를 알려주는 듯 해 신기한 눈빛으로 그림을 따라가게된다.

미깡은 성인 이 된 후 이어진 술과의 추억도 꺼내어주는데 술쟁이의 능력치를 최대한으로 올려줬다 싶은 호프집 알바시절은 물론이고, 직장인의 퇴근 후 회식자리에서 마주하게된 폭탄주나 잊을 수 없는 신혼여행에서의 캔맥주에 대한 이야기. 매년 가족이 둘러앉아 매실 꼭지 따는 것은 물론이고(이제는 미깡의 딸이 그 일을 해준다) 100일 후 술만 건져내어 아끼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술정에 대한 소소한 일과들을 풀어낸다.

각 주류에는 짧은 호흡으로 술와 저자와의 인연에 대한 것, 마지막엔 술에 관한 지식도 알려주는데 길지 않아서 더욱 집중하기에도 좋았고, 각 회차속 소 주제는 차례대로 읽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어 나같은 방구석 홈술러라면 그날그날 내 앞에 차려진 술상과 주류를 책 속에 담겨있는 회차와 맞추어 보며 한잔을 기울여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특히나 1차 서양술에서의 폭탄주, 잭콕캔, 와인, 샴페인에 대한 파트, 2차 동양술에서는 희석식 소주, 막걸리, 매실주에 대한 기록과 내 추억이 많이 겹치는 것 같아서 더 빨리 읽혀지고 더 아끼게되는 페이지였다.


직장인생활 10년 정도 해 본 사람이라면 아는 회식에서의 폭탄주 추억. 코로나 이전에는 회식도 자주했고, 시작하면서부터 소맥 말아서 젓가락으로 잔 속을 탕탕 치며 섞어주고 후루룩 다 마셔버리던 기억이 가득하다. 퇴근 후 회식장소로 가면서 숙취해소제 종류별로 목구멍에 털어넣고, 가방에 선임, 부장, 이사의 몫까지 챙겨가서 하나하나 챙겨드리며 이쁜짓하려 애쓰던 시절. 이제는 그러한 회식 문화가 사라졌고, 부서장도 술을 즐기지 않는 분으로 교체된 후로 이러한 폭탄주의 기억은 추억으로 남게된게 떠올라 다들 이런 직장인 시절을 겪어왔구나 싶어 공감이 되었다.

이제는 뭐 남편이랑 고기집 가서 소맥 한잔으로 즐겁게 시작하는게 둘이 즐기는 소소한 폭탄주가 명맥을 이어가고있는거지.

저자의 부부가 신혼여행지에서의 잭콕 캔 추억을 떠올려주었다면 나에게는 코젤 흑맥주가 그러하다. 처음 가본 체코. 처음 마셔본 짙은색의 맥주. 입술이 닿는곳에 얹어진 굵은 설탕 알갱이, 커피인가 카라멜인가 싶은 짙은 내음과 함께 들어오는 맥주의 향. 그래서 신혼여행 다녀온지 11년이 지났음에도 그때의 짜릿함은 잊을 수 없다. 언제 한번 또 우리는 체코에서 흑맥주와 꼴레뇨를 즐길지 상상만 하곤하는데 이러한 추억은 평생 잊지 못한 순간으로 남는 듯 하다.


지금도 여전히 소주는 잘 못 마시지만 대학 1학년 때에 20도가 넘는 알콜램프 속에 빠진 듯한 그 아찔한 순간. 이걸 왜 마시나 싶은데, 한방에 목구멍으로 털어놓던 동기들, 다같이 내일이 없는 듯 소주병을 둘러놓던 선배와 교수까지. 지금이야 소주의 도수가 반으로 훅 줄었지만 그럼에도 세상의 쓴맛을 한 병에 꽉꽉 눌러 넣은 듯한 소주 이야기도 담겨있다.


부지런한 엄마 밑에서 자란 딸래미들은 매실에 대한 기억은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땡글거리는 열매를 씻고 말리고, 이쑤시개로 툭툭 떼어내는 꼭지의 잔손질. 너무 향긋하고 맛있게 느껴져 엄마의 잔꾐에 넘어가 아작하고 씹었을 때 손발끝이 저릿하게 느껴지는 신맛의 강렬함. 또 한번 딸래미 속인 것에 뿌듯해하는 엄마의 쳐진 눈꼬리하며, 그 사이 항아리 소독하고 닦아내고 엎어둔 것 다시 원위치 시킨 후 켜켜이 담느라 바쁜 아빠. 어떠한 의식을 치르는 듯 진지하고 각이 살아있던 손놀림까지. 은행에서 얻어온 숫자 큰 달력에 대문짝만하게 적혀있는 매실주 뜨는 날. 그 날이 되면 또 한번 이뤄지는 매실주에 대한 경건한 손놀림.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했던게 남아있음에도 올해도 또 하는 우리집의 연례행사. 명절에 삼촌들 오면 챙겨주고, 감사한 사람들, 부탁해야하는 순간에 빈손이 부끄럽지 않도록 챙기게되는 고귀한 마음의 표현이기도 했던 매실주. 그래서 그런가 미깡의 술 이야기는 술에 대한 기록 뿐만 아니라 술이 가지고 있는 독자의 추억까지 끄집어 내는 능력을 갖고 있어 마음에 드는 그림 에세이로 남을 듯 하다.

술을 안 먹는 사람은 여전히 안 먹을테고, 좋아하는 사람은 이것저것 알고싶고 다양하게 즐기고싶은 술의 세상. 어떠한 이야기는 추억을 끄집어내기 딱 좋은 향긋한 술의 단락이 있고, 에일 맥주 같은 파트들은 전문적으로 찾아보지 않는다면 모르고 지나칠 귀한 지식이라 알은체 해보고싶어지는 부분이다. 한번도 접해보지 못한 영화속 한잔, 거기에 더티 버전의 마티니라니. 언제 한번 바에서 시켜보고싶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파트.

사케집에서 맨 아래에 적혀있는 제일 싼 제품 말고, 이제는 알은체하며 라벨 보고 사케 고르는 능력을 키워보는 단락까지. 잔잔바리 지식으로 술쟁이 레벨 올리기 이만큼 좋은게 있을까 싶은 에세이.



뒤풀이 외전의 '좋아하는 술을 계속 마시기 위해' 애써야하는 필수 생활습관까지. 우리 오래오래 건강하게 다양하고 맛있게 술 즐기려면 진짜 미깡의 말대로 해야 할 듯 하다. 먹는게 좋고, 마시는게 행복하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즐기기 좋아하는 나로서는 미깡이 건내주는 주류 생활 모음이 근래에 만나본 제일 재미난 그림 에세이로 남을 듯 하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떠한 사전 지식 없던 인간은 시봉이가 개라는 것과 어지간해선 도전 하지 않는 500페이지가 넘는 벽돌책이라는 것에 대한 압박과 걱정이 컸다. 일단 나는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멀찍이서 관상용처럼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서로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바라보는 것만 좋아한다. 이건 자라온 환경에 대한 영향일 수도 있을 듯 하다. 물론 온전이 이시봉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내가 개-사람에 대한 연대가 있을법한 이야기에 젖어들며 편히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하며 이해의 끈을 느슨하게 만들며 읽으려 도전했다. 일단 휴가 때 읽으려 했으나 근 한달이 걸려서야 완독하게되었고, 명랑한 이시봉을 앞세운 채 서로의 전유물로만 남기려했던 각자만의 사랑과 욕심 속에서 상황에 관계없이 반박없고 원망없는 이놈, 이시봉 요녀석만이 견주를 향한 애틋한 시선뿐임을 알게되었다.


제목부터 여기 주인공은 시봉인 듯 하지만, 남겨진 시봉을 데려다 키우는 시습을 기점으로 이야기는 이어진다. 그리고 시봉을 데리고 왔지만 여기엔 없는 아버지. 시봉의 부모, 그 부모를 보살피던 김상우와 박유정이 두터운 이야기의 핵심일테고, 시봉을 둘러싼 어딘가 하나씩은 헛점이 있는 정용, 수아, 리다, 동생 시현의 세상이 그려지고, 시봉을 데리고 왔으나 지금은 사망한 아버지 주변으로 동료였던 이시봉아저씨를 통해 차마 가족에게 꺼내지 못했던 회사에서의 이야기들을 듣게된다. 김상우와 박유정, 그리고 앙시앙 하우스의 대표인 정채민이 비숑을 한국으로 데리고 오려 했던 이유. 그리고 박유정의 아들인 김태형의 존재까지. 거기에 사이사이 끼워지는 비숑과 스페인 왕가의 이야기는 너무 촘촘하게 설명이 되어있어 진짜가 아니었을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해 나 마저도 시봉이가 진짜 왕가의 뼈대있는 개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빼곡한 글 뿐이며 어떠한 사진이나 그시절 초상화로 남겨뒀을 법한 그림이 삽입되어있지 않음에도 눈에 그려지는 풍경들. 허리는 잘록하고, 치마는 풍성하며, 목이 버텨줄까 싶은 부풀린 머리를 한 왕비 마리아 루이사와 그녀의 머리스타일을 빼다 박았을 듯한 비숑들까지. 바로 직전까지 그들의 초상화를 본 것 처럼 선명해서 역시나 저자다운 표현력에 감탄하게된다. 그래서 계속 홀린듯 보게되고, 또 한편으론 시봉이 쟤가 뭐라고를 연발하며 이들의 격한 감정들을 따라가게된다.

소위 그사세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그들이 사는 세상은 내가 아는 세상과 사뭇 다르다는 것. 자기들만의 나라가 있는 듯, 그 곳에서는 그들이 만든 룰을 따르고, 그들이 창시해낸 역사를 이어가려는 것. 그게 내가 만난 앙시앙 하우스의 꺼풀이였다. 정채민 대표가 꾸려놓은 판에 뛰어든 사람들. 그게 법이라 믿고 행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속게 되고, 빠져들게 되며 비숑들을 추대하게 만드는 과정. 하필 거기에 시봉도 한 몫 할 수 밖에 없는 뿌리였음에 시습이 정채민 대표를 외면하더라도 한 번은 앙시앙 하우스를 밟게 되어, 이 사달이 나게 되지 않았을까.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한번은 겪었어야할 시봉의 혈통이 가진 마음아픈 역사 정도?


이시봉은 사람의 이름을 띄고 있지만, 결국 개다. 그리고 그 개의 마음을 빼다 박은 시습을 통해 세상을 흘깃거리며 주변을 보게 만든다. 백수 청년. 새벽에 시봉과 아파트 뒷산 산책과 공원 혼술 걸치고 내려오는 한량같은 삶. 학교 중퇴에 무력감만 쥐고 사는 듯한 청년을 따라가다보면 그와 반대로 사는 여동생 시현의 세상도 보게되고, 헬스에 미친 정용이나 입이 험한 편의점 알바생인 수아를 통해 웹툰같은 인물들 처럼 보이지만, 우리 주변에 흔하디 흔한 인물들로 다시금 덧씌워진다. 사람과 대면하는 것 보다 개와 마주하는걸 편하게 여기는 사람. 그리고 가족보다 더 애틋한 관계 속에서 '이 작은게 뭐라고....'를 연발하며 명랑하고 짧으며 투쟁 없으나 반박도 없고, 무얼해도 견주만 바라보는 이 놈의 순수한 본능 덕에 사는 것임을 느끼게 만든다.


박유정이 그러하지 않았던가. 종교인이 종교만 생각하고, 아이 엄마가 자기 아이만 생각하고, 고리대금업자가 이자만 생각하는 것. 그 외에는 아무것도 쓸데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각자의 방식으로만 보려만 한다는 점. 그게 그들이 자기 마음대로 풀어내는 사랑의 방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말뚝들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홍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야기는 총 3부로 나뉜다. 1부에서는 이야기를 이끄는 '장'에게 이유없는 납치 이슈가 보이는데 이걸 기점으로 그간 어떻게 살아왔는지, 왜 자신에게 이러한 일이 닥쳐온건지를 풀어낸다. 1부는 책 제목과 동일한 말뚝에 대한 이야기. 장이 살고있는 대한민국, 그리고 장 앞에 높여진 말뚝으로 인해 세상이 주목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마지막 3부는 장에게 일어났던 일에 대한 이유를 하나씩 쓸어담으며 어떻게 정리하는지도 보여준다. 그리고 왜 하필 장에게 이러한 시련들이 몰려왔던건지를 알려주는데, 왜 그리 말뚝만 보면 이유없이 눈물이 난건지 알려주는데 후반으로가면 장이 처한 상황에 대한 짠함보다. 장을 둘러싼 세상을 사는 이들의 짠함에 뜨거운 눈물을 보태게된다.


다들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장도 그런 사람 중 한명이었다. 해주와 더 오래 함께하고싶었고, 태이가 미운 날도 있었으나 그냥 어디서든 잘 살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진희 선배에게 업무 압박으로 출근하기 싫은 요건 하나가 더 추가되지 않았음 하는 마음도 컸다. 행원이 된 후 시작이 지역으로 파견이 아니라 본사에 있고 싶었고, 왜 자신이 유부녀를 꾀는 사람으로 오해받아야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왜? 왜? 내가 왜? 라는 물음을 세상에 던지지만 수긍할만한 그럴듯한 답은 얻지 못한다.

태이의 유품을 들고온 데보라가 장의 차에서 틀던 데이식스의 해피를 들으며 장이 원하는 삶이 딱 이거라 싶은 느낌을 받는다. 더욱 서러운건 그 노래 가사마저 자신이 행복하다는 느낌표 가득한 말들은 하지 않는다. 계속 물음을 던진다. 그런 날이 있을까요? 행복할 수 있을까? 이대로 계속해서 버티고 있으면 언젠가 그런 날이 올까요? 라며 이만큼 힘들었는데 이제는 행복해도 되는거 아니겠냐고 답을 정해놓고 계속 묻는다. 그냥 쉽게 쉽게 살고 싶은데 장의 하루하루는 놀라울 정도로 어렵다. 딱 이 노래의 가사 화자가 장을 보고 쓴거라 보여지는 말뚝들 속 장의 세상이다. 그리고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세상이기도하다.

결국 소설 속 장이나 현실의 나나 뭘 더 얻으려 하는것도 아니고, 하늘에서 돈다발이 뚝 떨어지길 원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내 삶이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만 가득한 사람인데, 그게 어렵다. 아마 말뚝이 된 이들도 그러했을 것이다. 욕심을 내고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 계엄 상황까지 만들어 세상을 흔드는 자들 만큼의 힘을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걱정없이, 매일 웃는 날을 바라는데 그에 대한 답은 어느 누구도 주지 않았다.

불행은 순차적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분배가 되지 않는 항목이라는 점이 야속하다. 돈 50만원이 없어 대출을 신청하지만 그마저도 자격이 되지 않아 거절당하고, 직급에 눌려서 부당한 지시를 받기도한다. 시작점이 다르니 누군가는 쉽게 얻는 것이 다른 누군가는 목숨을 담보잡힐 만큼의 어려운 순간이라는 점에서 말뚝들을 보면 얼마나 애닳고 살았을까 싶음이 전해져 눈물이나고 마음이 쓰인다.

순탄한 적이 없던 삶, 불행은 연거푸 들이닥친다는 머피의 법칙보다 무서운 룰, 매번 두가지의 선택지를 모두 쥘 수 없는 밸런스 게임 같은 세상이다. 장의 명함을 입에 물고 말뚝이 된 자의 행적을 따라 갈 것인지, 반대의 세상을 사는 대민그룹의 차남의 꽁무니를 따를 것인지에 대한 선택지만 놓고 봐도 장의 성향을 알 수 있다. 그간 살아온 삶의 판세를 바꿀 수 있는 패가 될텐데 아니나 다를까 욕망보다는 사람답게 사는 것을 택한다. 이걸 고르면 변하지 않을 빤한 세상이 그려지지만 그럼에도 그걸 고집한다.

어느 시점부터는 장이 왜 납치를 당했는지, 왜 그냥 돌려보낸 건지, 진실로 원하는 바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쏠리지 않는다. 이건 말뚝 1호가 왜 명함을 입에 물고 그렇게 세상에 떨어진 건지 궁금하지 않아하며 빨리 수습하거나 가림막으로 주목 받는 것을 차단하려는 걸 통해 세상은 이러한 방식으로 사건을 덮고, 시간이 흘러감에 자연스레 잊혀지길 원하고 있음도 내비쳤다. 장의 사건을 진지하지 못하게 받아들이는 형사, 말뚝을 가리고 담아가는 것에 어떠한 이유도 묻지 않고 위에서 지시하니 그대로 따르기만 하게 되는 행동. 이상하지만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반박하지 않는 시대상이 책 속에 옮겨 져 있다.

한무더기로 나타나 울게 만드는 말뚝들. 사람들이 실컷 울고 마음을 쓸 시간을 안 줬던 그간의 사건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세상 모든 일이 이유가 있어 일어나는 게 아니잖아요. 어떤 건 그냥 사고예요.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게 세상의 모든 일이고요. 왜 특별히 쟝에게만큼은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네요.

사건을 되돌려보면서 계속 나를 탓하고 나를 원망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하필'이라는 단어를 앞에 두고 원망이라도 해야 덜 억울하겠다 싶은 무수한 사회적 재난들. 잔잔하던 세상에 어느 날 느닷없이, 그렇게 훅 하고 들어오는 슬픔은 꽁꽁 숨긴다고 숨겨지는 것 아니었다. 그렇게 바닷가에도 머물러있고, 광화문 광장에도 몰려있고, 내 집에도 머무르고 있었다. 매일 마주했지만 외면했던 슬픔의 덩어리들이다. 맘 껏 애도하길 바라며 말뚝은 눈물을 끌어냈고, 속이라도 시원하게 눈물을 흘리게 판을 꾸려주었다. 내 앞에 당도한 슬픔마저 물리적인 것들로 인해 제지 당하지 못하도록 아주 옴팡지게 울어주고 마음써주고 싶어진다.



📖서로에게 내어준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노트에 눌러쓰고, 그 빚을 기억하며 평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으로 언젠가 세상을 설득할 것이다.

재력이든, 사회적인 지위든, 명성이든 할 수 있는건 다 해보는 무서운 사람들. 사건은 덮어버리는 대기업의 차남, 계엄을 선포한 나라의 대표와 반대되는 사람들. 밸런스 게임에서 누가봐도 질 수 밖에 없는 선택지인 이들을 알면서도 지지하는건 우리의 삶은 장기전이기 때문에 두 눈을 질끈 감고 동행하게된다. 그놈의 '언젠가'를 믿기 때문에 그 마음이 모이고 모여 몸집을 키웠을 때의 한방을 믿기에 지는 싸움에 미련함을 덧대는게 아닐까.

뭘 더 크게 바라지 않는다. 바라는게 크면 되갚아야하는 것도 그만큼 늘어나니까. 그러니 딱 내가 감당 할 수 있을 만큼, 내가 욕심내지 않고 쥘 수 있을 정도의 행복을 원하게된다. Tell me it's okay to be happy!


📖하니포터 11기로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밸런스 게임 김동식 소설집 10
김동식 지음 / 요다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기 나오는 인물의 이름은 익히 아는 이름들이다. 그리고 각각의 단편들마다 주제는 달라지지만 등장인물 이름이 똑같다. 그렇다고 인물이 앞에 있던 단편과 같으냐? 또 그건 아니라는 점. 익숙한 이름에서 다른 성향을 찾아 볼 수 있는 것. 등장인물로 인해 소비되는 에너지가 없어 좋고, 인간의 다면성을 보여주고픈 느낌도 들어서 이 사람이 평생 하나의 성향을 가지진 않는다는 걸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카드리뷰는 이러하다. '사고실험을 통해 드러나는 사회의 부조리. 극한의 상황에 놓인 한 인간의 딜레마. 인륜과 생계, 증오와 용서, 욕망과 정의 등. 수많은 선택지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담은 22편의 이야기'라 적혀있다. 밸런스 게임은 꼭 이렇게 무엇을 선택하면 다른 무엇은 가지지 못하게된다. 모든 선택의 책임은 본인이 지게 되고, 모든 선택의 후회 또한 본인이 감내해야하는데 이를 통해 어떻게 변해가고 어떠한 성향으로 바뀌는지도 보는 맛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밸런스 게임에 '나라면?'이라는 가정을 더할때마다 짧은 이야기지만 여운은 길고, 반성을 하게되는 순간도 찾아온다. 내가 너무 세상에 찌들어 있나 싶기도 하면서, 착하게 살고 싶었지만 결코 착한 사람은 아님을 반성한다. 현실에도 이러한 고민은 수도 없이 하게되며, 하나의 선택지를 고르는 순간 하나는 영영 가질 수 없는 것인데 그래도 삶은 살아하고, 시간은 흐른다는걸 안다.

당신은 어떠한 선택을 했고, 어떠한 득을 봤는지. 잃은건 무엇이고, 어떠한걸 후회하는지. 마냥 다 가질 수 없는 이 밸런스 게임에 내 세상을 옮겨본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좀 더 잘까? 지금 정신차리고 일어날까? 부터 고민하는 모든게 밸런스 게임같은 삶에서 오늘 나는 얼마나 많은 포기를 하게될지 세어보다 포기를 선언한다. 하나, 둘 손꼽아 체크 하다가 이 마저도 계속 할까 말까를 고민하고있으니 오늘 무의식 중에 숨 쉬는 만큼 아주 자잘하고 사사로운 밸런스 게임이 수두룩 할 것이 분명해보여 괜한 짓이라는 걸 깨우치게된다.


📖밸런스 게임_ 단지 그게 옳기 때문에 지키는 거 아닙니까! 난 인간이니까! 돈 때문에 타인의목숨을 해쳐선 안 된다는 그 당연한 사실을 아니까! 아, 됐고! 난 100만 원을 택하겠습니다! 더 말할 필요 없습니다!

1000만 원을 선택하면 한 사람이 죽고, 100만 원을 선택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거기다가 100만 원을 선택하고 이 곳을 떠나면 모든 것을 기억하게 될 것이고, 1000만 원을 선택한다면 아무것도 기억에 남지 않는 전제가 주어진다. 더욱 찝찝한 건 1000만 원을 선택하면 생각지 못한 행운에 순수하게 기뻐하게 될 것이고, 100만 원을 선택한다면 아쉬움에 선택을 후회할 수도 있다.

일단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게 되더라도 무언가를 얻어 낼 순 있다. 일단 수중에 돈이 주어지는데 그 값어치가 달라지고, 내 기억에 남는 미련이 문제가 된다. 전자와 후자. 도의와 개인적인 실의에 대한 오로지 자신만 기억하고 자신만 후회할 것의 찝찝함의 껀덕지. 매번 이러한 전제는 꼭 내가 나쁜 사람이 되어야만 더 큰 득을 보게되는데 그 댓가가 마음에 걸린다.

기억의 잔상 유무와는 상관 없이 나는 100만 원을 택하게 될 듯 하다. 도의적인 것도 있겠지만, 설령 기억에 남지 않는다 한들 은연중 드는 생각 마저도 남을 해하거나 옳지 못한 것에 대한 찝찝함을 평생 안고 살게 될 텐데(기억 못해도 이 1000만 원에 대한 흔적을 찾으려 기를 쓰고 알아볼 내 성격상 그러하다) 나는 딱 그정도. 간장 종지만큼의 득이라도 편하게 살고 싶기에 원초적 결정을 따르지 않을까. 남들 다 천만 원의 득을 본들 내 편한대로 살고싶으니 말이다.(이래서 부자가 못 되는걸까?)



📖남편의 세 가지 비밀_ 부부 사이에 비밀이 어디 있지? 왜 그걸 숨기지? 뭐길래? 믿음이 있다면 숨길 필요도 없는 것 아닌가? 믿음이 없는 부부관계가 지속될 수 있나? 생각은 점점 불어나, 비밀을 듣지 않고는 못 배길 지경이 되었다.

알아서 좋을 것 없고, 몰라서 고심할 것도 없다면 때로는 모르는게 약이 될 수도 있다. 안다고 바뀔 것이 없고, 알아서 해결될 가닥이 없다면 나는 차라리 모르고 살길 바라는 사람이다. 그리고 비밀? 비밀이라 할 것도 없는 것들을 꼽아본다. 굳이 말 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비밀이 된다면 우리 부부도 비밀이 많은 사이가 아닐까? 딱히 말을 해줘야 하는 이유도 없고, 말 한들 근심의 싹이나 찜찜함의 꼬투리를 제공 하게 된 다면 우린 그냥 각자의 선에서 해결과 침묵을 고수하고있다. 이게 각자가 생각하는 중요도의 차이겠지만, 이 단편의 후반부로 갈 수록 침묵을 일관했던 이유에 대한 파장은 커진다. 아.... 각자가 생각하는 사사롭거나, 굳이 알리지 않아도 되는, 내 선에서 해결될.... 그런 일들이 발치에 채이는 별거 아닌것 부터 시작했다가 별의 별거가 될 수도 있음을 느낀다. 아! 이게 그거구나.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것. 이래서 항시 뒷통수 조심하라 하나보네.



📖미워하는 마음_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 짧은 순간에도 수많은 얼굴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녀는 새삼 깨달았다. 나는 그 시절, 왜 그렇게 미워하는 사람이 많았을까? 떨리는 눈으로 내려다보던 홍혜화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일곱 장의 카드 중에는 악마10 카드가 없었다.

이것도 나이와 체력과 열정의 차이일까? 미워하는 마음이 나이가 들 수록 점점 줄어듬을 느낀다. 10대와 20대 시절 누구보다 강렬하게 좋아했고, 싫어했음을 분명하게 나누었다. 별거 아닌 것에도 부정을 표혔고, 그게 타인마저도 알 만큼 티를 내며 다녔다. 이른바 관종처럼 살았다. 그런데 이게 나이가 든 탓인지, 거기에 쓸 체력까지 없는 것인지, 이도저도 아닌 그러한 마음 자체를 중요하게 꼽지 않게된다. 그래서 더욱 이 천사와 악마카드에 쓰인 비율에 신경써서 고르게된다. 타인을 위해 악마10을 고르고, 내가 얻어갈 행운을 0으로 맞교환 하는 방식은 우선순위에 두지 않았다. 누군가의 불운을 바라면서까지 내 행운의 수치를 낮추고 싶지 않다. 안보면 그만이고 모르쇠로 내 삶만 집중하면 그만이니까. 일단 마음은 그렇게 먹지만, 타인의 불행까지 신경쓸 삶의 관심도가 줄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다가 악마10 카드가 없는 걸 본 홍혜화 처럼 나에게도 그 카드가 없이 되돌아온다? 이건 또 말이 달라지지. 머리를 싸메고 나를 그만큼이나 미워할 어떤 이를 머릿속에서 추려본다. 내가 간과하고 있던게 있었지. 내가 이렇게 살아 온 만큼 나를 또 죽도록 싫어할 사람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신경 안 쓰고 싶다만 머리를 굴려가며 나를 싫어할 인간을 추려본다. 모르면 몰랐지, 아... 이걸 안 만큼 오늘 잠은 다 잤다. 젠장.


📖그녀는 아들을 죽였는가, 죽이지 않았는가_ 어차피 대중들은 물고 뜯을 거리가 필요할 뿐입니다. 더 자극적인 이야기를 하나 던져주면 그걸 가지고 잘 놀지요. 소수의 사람이 핵심을 짚어줘도, 대중들의 관심은 오로지 눈앞의 개뼈다귀뿐입니다.

사건의 인과관계. 더 깊게 파고 들어가 보는 팩트. 그건 중요치 않더라. 자극적인 키워드 몇개 던져주면 대중은 알아서 소설을 쓰고, 그 글에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직접 본 것 처럼 살을 덧붙이는데 이는 본업이 의심 될 정도로 그럴듯한 소설을 말아준다. 그 '카더라' 덕에 사람들은 홀리고 홀려대는 효과로 더더욱 매체를 통해 물타기를 하게됨을 느낀다. 이 단락을 보니 며칠 전 손보미 '세이프 시티'도 떠올랐다. 결국 대중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잣대를 기준삼아 그게 맞다는 듯 이야기를 꼬아서 지 편한대로 받아들이게된다. 그러니 이걸 이용한 회장과 죽은 아이 어머니가 똑똑한 선택을 했다는 씁쓸한 결론을 지을 수 밖에 없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회장은 큰 손실을 줄였고, 아이 엄마는 그래도 여러가지 선택지 중에 가장 큰 득을 보는 결정을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진실은 영영 묻어두는게 그들간의 룰이겠지.



📖가해 총량_ 사람은 모두 각자의 '가해 총량'을 타고납니다. 평생 누군가를 해할 수 있는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거죠. 그 가해 총량을 제게 파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누군가를 해하면 결국 끝은 자신을 향해 겨눠져 있다는 사실. 알면서 때때로 외면하고 사는 삶. 타인을 해하고 받은 댓가는 미리 당겨 쓴 자신의 생의 일부라는 걸 늘 염두해 두라는 듯한 권선징악의 냄새가 풍기며 은비까비같은 전래동화의 교훈을 가진 어른을 위한 고전의 뉘앙스다.


📖모두 다 결정되어 있다_ 다른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누구나 삶에 고난과 역경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번외 공간인 이곳에서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괴로운 일이어도, 내가 선택하는 게 그나마 좀 낫지 않겠습니까?

결국, 내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일들, 그리고 살며 겪은 그 불행은 어찌 할 수 없는 일들이었고, 나의 무력보다 최선을 다했기에 그나마 고를 수 있는 선택지들 중 내가 좀 더 슬프고, 좀 더 힘들었던 걸 택했던 갈래였다. 아버지의 이른 사망 대신 자신이 화상을 입었고, 자신의 암투병을 할 지언정 딸의 극심한 사춘기의 선택지를 밀어내어 버렸다. 아내가 외도하여 내 곁의 내 사람을 떠나보낼 지언정, 내 부모의 사망을 막았던 악몽같은 나날. 최악과 최악 중 내 평안은 미뤄둔 결정의 결과물이었다. 몇번이나 환생한다 한들 다른 선택을 하진 않겠지. 모든 행동엔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들에는 오롯이 나를 최 후 순위로 둔 행복의 줄세우기이자,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는 방식이었다.

마치, 우리가 22편의 밸런스 게임을 통해 내가 할 결정을 대입하며 고심했던 그 모든 이유의 해답이기도 했다.


내가 읽고있는 순서는 뒤죽박죽이지만 이게 김동식 소설집의 마지막 10번째 책이었다. 역시나 치고 빠지는데에 능한 단편 전문 소설가였다. 그리고 단순한 인물 구조여서 집중하기 좋았고, 그가 툭 던져놓은 화두를 덥썩 물고나면 한동안 씹고 뜯어가며 그 이야깃거리를 한참동안 곱씹게된다. 몇장 안 되는 단편이었지만 단편 속 주인공이 되거나 주변인물이 되어 내가 선택할 경우의 수를 생각하며 나름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결국 그거다. 사람답게 살길 바라고, 염세적인 척 하며 살지만 남들 못지 않게 무탈하고 따수운 세상을 바라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전히 입버릇처럼 주둥아리만 착한 사람으로 살다보니 이러한 선택의 중심에 서 있다면 욕심을 내어 볼지, 손해를 볼 지언정 사람다운 결정을 할지 아직도 확신이 안 선다. 그래서 고마웠다. 이 밸런스 게임을 통해 그래도 나는 선하고 싶은 욕구가 조금이라도 더 있는 인간이구나. 짐승 아닌 인간인 것에 감사하며, 이러한 밸런스 게임을 무수히 하게 될 미래의 나에게 미리 훈계하고 싶어진다. '인간답게 살려면 인간다운 선택을 해라 이것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