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가의 밤
조수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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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아버지의 상실. 그리고 성인이 된 후 이지만 엄마와 동생의 동반 자살로 위태로운 삶을 살다가 그들의 10주기에 절벽에서 몸을 던지게된다. 형우가 눈을 감고 있을 적에 마주하는 아홉살의 형우, 열하옵 살의 형우, 스물 아홉 살의 형우를 차례로 만나며 가장 행복했지만 가장 되돌리고 싶었던 그날을 찾아가 삶의 구실을 끄집어낸다. 형우는 가족의 죽음과 그 고통을 쥐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으로서 쉽지많은 살아냄 과정을 담아두고있다.



📖누구나 저마다의 압력을 견디며 살아가는 거지. 누군가는 기다리고, 누군가는 술을 마시고, 누군가는 욕조에서 이불 빨래를 하고, 누군가는 심장이 터지도록 달리면서. ... ... 우리는, 숨을 참는 거고.

생을 등진 이의 등을 맞대며 그 틈을 메꾸며 사는 사람들. 그래서 그들의 삶은 배로 힘겹다. 근근히 살아내고 있는데, 세상을 천년만년 슬퍼해야하는게 당연한것 아니냐고 하며, 또 한편으로는 평생 안고 살 것이냐고, 이젠 좀 잊으라며 채근하기도한다. 당신들의 가벼운 입으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보다 당사자의 삶은 더 고된데 그럼에도 살려고하는데 그러한 말들은 가시가 되어 쉽사리 뽑아 낼 수 도 없을 만큼 박힌다.

울컥울컥 몰아 터지는 그리움의 응어리가 명치를 눌러도 참고 참아내는 중인 생을 보면 의식하지 않고 살아야하는 숨쉬기가 저리도 버거워서 어쩌나 하는 애닳는 마음이 커진다.

📖엄마가 이름 탓을 하면서도 그걸 바꾸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바꿨는데도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엄마에겐 더 이상 탓할 게 없어질 테니까. 누구 탓도 할 수 없으니 엄마는 이름 탓이라도 해야 했는지 몰랐다.

탓이라도 해야했고, 그렇게 푸념이라도 입 밖으로 뱉어내야했다. 안 그러면 그 모든게 여기 없는 사람에게 돌아갈까봐 그 것이 너무 싫었던 엄마였다. 처가에서도 환영받지 못했고, 떳떳하게 죽음의 사유마저 밝히지 못한 사람에게까지 그 미움을 지고 가게 할 수 없었던 아내로서의 최선의 도리였다. 당신 탓 할 사람들 앞에서 더 큰소리로 자신의 이름 팔자를 논하는거지. 그러면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을테니까. 그래서 엄마는 엄마의 이름을 미워하며 자신의 삶에 미운털을 스스로 박아두었다. 아무도 남편의 죽음에 감나라 배나라 못하도록. 그 속이 오죽할까 싶은건 자식들이 엄마 나이 즈음 되어서, 결국 다 커서야 알게되지.



📖선한 사람들이 떨어진 꽃잎 하나 밟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걸어갈 때, 악한 사람들은 꽃밭을 마주 짓밟으며 무조건 직진하는데, 그걸 무슨 수로 이겨......

아빠가 생을 마감한 이유. 가족관계 때문도 금전적인 이유도 아니었다. 축복받지 못한 결혼이라서, 벌이가 마땅치 않아서, 부부사이가 좋지 않아서, 아이와 유대감이 없어서. 그 어떤것도 이 애틋한 가족들에게 이유가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형우의 아빠는 잘라내고자 한 것이었다. 자신의 우울과 삶의 무력함이 예쁜 아이와 사랑스러운 아내에게 옮겨갈까봐. 혹여라도 그 마음이 번져서 소중한 사람들마저 슬퍼할까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몰아서 채워 준 후 생의 마침표를 찍으려 했던 것 이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프다. 선한 사람들에겐 기회보다 희생을 바라는 세상이었고, 욕심보다 당연함을 앞에 두고 사는 사람인데 결국 악한 사람으로 인해 죄책감과 상실, 슬픔, 자책은 약자에게만 몰아붙이는 겪이니 어떠한 치료나 센터의 교육, 돌봄마저도 없었던 상황이 야속해질 뿐이다.

📖힘들 땐 잠깐 마음을 끄고 살아야 해요. 몸은 어차피 우리가 살게끔 설계돼 있으니까 잠깐씩 마음을 끄고 살아야 해요.

어떻게든 살아는 진다는 말. 눈물나고 그리움에 사무치더라도 배는 고프고, 잠은 올 테고, 그리고 어김없이 해는 뜰 것이고, 푸른밤은 여전히 당신에게 찾아가 이제 쉬라며 고요함을 당겨 올 것이다. 상실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공허함을 안기겠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지 라는 주변인들의 말처럼 그렇게 살아야하는 것 이었다. 그게 세상이 나에게 바라는 가장 단순하고도 가장 어려운 시간의 소비였다.

아마 남겨진 형우는 특히나 스물아홉 살의 형우는 자신을 매번 자책하고 원망 할 지 모른다. 아버지의 죽음에는 어떻게 막아낼 방도가 없는 상태였으나 스물아홉 살의 형우는 심연에 빠져있는 동생이나 그를 외롭게 할 수 없어 같이 가기로한 엄마를 구할 수도 있었을거라는 그 만에하나 때문에 마음이 쓰리다. 걱정만 하지 말고, 신경만 쓰지 말고, 그냥 고민 없이 바로 집에 가서 들여다보고 괜한 헛짓거리 말이라도 해보며 외롭다는 생각이나 고립되어있다는 마음이 들지 않도록 해야했다는 생각들만 무성하게 자랄 것이다. 당장에 자신이 겪어낼 슬픔보다 더 큰 그리움과 자책의 짓눌림. 그게 남겨진 자의 몫이고 남았기에 얹어진 슬픔이다.

나는 어린 구와 그 여린 아이를 챙기는 일구, 마음은 쓰이지만 행동하지 못했고 주저하기만 했던 이구, 모든걸 다 알고있는 삼구까지 다 애련하다. 어른들은 모자라서 미안하다 할지 모르겠으나 부모의 사랑을 담뿍 받던 어린 구. 그 시절 다들 그리 겪어낸 사춘기와 함께 가족보다 친구가 더 소중했던 덜 영근 일구. 잘 하고 싶었고, 그렇지만 마음이 쓰이는 동생과 어머니가 눈에 밟혔던 이구. 부친의 상실과 함께 유일한 가족이라 여기던 동생과 모친을 동시에 잃고 방황과 공허함만 갖고 살던 텅빈 삼구까지. 매 시절의 어린 형우를 한 곳에 다 모아 서로를 챙기는 걸 보니 다들 많이 애썼고, 보듬어주고 싶었던 존재의 분신들임을 느꼈다. 삼구가 살아내주어야 우리는 사구를 만날 수 있으니 살아내 달라고 그렇게 같은 슬리퍼와 같은 반바지차림으로 만나게 해 주었나보다. 결국 그 만남은 우연이 아닌 당연한 순간었다.

소설은 형우 너만 그러고 사는건 아니라는 걸 알려준다. 꼬치꼬치 케 묻지도 않으며, 각자의 슬픔을 경쟁하듯 늘여놓지도 않는다. 때로는 긴 침묵과 정적이 오히려 서로를 붙들고 있음을 보여주기도했다. 진사장, 시은, 구표, 재이. 그들도 형우만큼이나 상실을 겪었고, 그 겪어낸 마음으로 살아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니 살아내자. 해 뜨면 눈뜨고, 달뜨면 잠에 드는 그런 당연한 이치 처럼 거기에만 집중에서 살아봐도 괜찮지 않겠냐는 조심스런 그 조언을 삼켜보기로 한다.

저자는 말한다. 슬픔도, 분노도, 우울도 힘이 세다는 것. 한 사람 혹은 그 이상의 생명을 꺼트릴 만큼 강력한 에너지를 품고 있으니 '우울력 발전소'를 세워 역으로 그 에너지를 당신이 숨 쉬는 데, 당신만의 빛을 발하는데 모조리 쓰길 바라고있다.

명치를 누르고 숨을 죄어내는 그런 날에서 다시 걸음마를 하던 그 때처럼, 글자를 하나씩 읽어내기 시작하던 그 때처럼 다시 배워가길 바란다. 천천히 조급함 없이 몸이 반응하는 대로 회복호흡 함으로서 살아내는 것에도 다시 배우듯 익혀내는 삶에 낯설어하거나 당황해 하지 말고 천천히 배워갔으면 한다. 배우면 되는거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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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살 결심 - 개인주의자 문유석의 두번째 선택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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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점부터 타인으로부터 불리워 질 때 사람 자체를 논하기보다 직업이 내 이름 앞에 놓일 때가 많아진다. 특수 직업군들이 더욱 그러한데 저자 또한 그러한 삶을 제법 오래 살아왔다. 그러니 판사라는 직업과 사람 문유석이 동일시 되다가 어느 시점엔 판사님이라는 호칭이 익숙해졌을 사람에게 호칭이 뺏긴 기분이 들 수도 있고, 나의 분신을 두고 온 것이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하게 만드는 변화된 삶을 책에 옮겨두었다. 평생 직장이라는 것도, 평생 직업이라는 것도 없어진지 오래이지만 그래도 강산이 몇번이고 바뀔 시간동안 같은 공간에서 때마다 철마다 같은 일을 반복하다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 준비를 하는 과정. 첫 걸음마를 시작 하던 순간처럼, 처음 학교 입학을 하던 그 낯선 설레임이 주는 두려움과 불안감. 지금까지도 나로 잘 살아왔을테지만 또 다시 나로 살아 볼 결심을 해야하는 과정. 법관이 아닌 이야기꾼으로서의 세상살이 방식이 새삼스럽겠지만 조금씩 익숙해지는 전업작가의 삶에 같이 적응해보기로 한다.

📖세상은 교과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현실은 할리우드 법정영화가 아니었다. 원칙은 힘 앞에 무력했다. 사람들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벌어질 일은 벌어지고야 만다.

저자는 첫번째 삶이라 칭하는 법관으로서의 눈으로 보던 세상을 이야기한다. 나이스하다 생각한 행동이 수뇌부측에선 한없이 나이브하게 보였던 저자의 행동들. 이 천진하다는 말에 숨어있는 무수한 단어들. 나이브한 자를 총알받이 마냥 앞머리에 세워두고 하던 법관들의 세상에 질렸다고 봐야할까. 법이 정직 할 것이라 당연시 여겼던 사람이 이젠 되려 글이 정직할 것이라 단언하는 사람. 그간 첫번째의 삶의 낯짝에 질렸고, 단어가 가진 명확한 뜻처럼 세상이 굴러가길 바람에 있어 더욱 다급히 두번째 삶을 당겨왔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자유란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유를 제대로 누리려면 스스로를 구속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게 어려우니까 학교나 직장 같은 조직의 규율 속에서 살았던 것이다.

촘촘하게 잘려져있고, 조각조각 맞춰서 살던 사람에게 두번째 삶은 자유 그 자체였다. 프리랜서라는 말 답게 자유가 먼저 튀어나오는 직군이다. 그렇지만 스스로가 조절해야하는 자유였고, 상황에 따라 통제하고 때로는 더 많은 시간과 감정을 할애해야만 하는 직업이었다. 자율, 타율, 효율. 효용성의 밸런스를 맞춰야 함은 결국 똑같은 것임을 느낀다. 배짱이로 살다가 개미로 잰걸음으로 살 것인가. 애초부터 뛰진 않으나 그렇다고 멈추진 않는 삶으로 하루를 보낼 것인가는 모두 자신의 몫에 달린 것이다. 다음달의 내가 한량으로 살려면 오늘의 나는 곧죽어도 한량이 되지 못한다는 걸 온몸으로 실감케하는 프리랜서의 매운맛이었다.

📖지금은 읽기도 전에 이미 결말을 아는 소설 같다. 남아 있는 건 최소한의 의무뿐이다. 최소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나로 인해 손해는 보지 말아야 한다. 최소한 가족의 생계에 지장을 줘서는 안 된다.

법원을 떠났고, 생의 시계는 꺾이고 저물어가고 있었다. 때마침 세상도 코로나로 꽉 막힌 상황이었으니 안봐도 빤한 비극적인 결말의 수순이었다. 그러니 될 일도 안 되도록 세상이 이른바 억까한다고 여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 꾸역꾸역 모드로 살아내고 일을 쳐내게 된다. 당연히 세상이 노잼으로 돌아 갈 수 밖에 없다. 일단 주체인 나 조차 즐겁지 못하니 말이다. 영원이라는 것은 없는데 당연하게도 저자는 스스로의 삶이 모든 수순에 맞게 착착착 진행 될 것이라 여기는 세상이 모두 내 중심으로 돌아간다 여기고 있었나보다.

일단 영원도 없고, 불멸도 없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 또한 나이듦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맞게 방식을 고쳐먹어야했다. 같은 수능도 시간에 따라 출제 변형이 바뀌지 않던가. 나만 예외는 없음을 온몸으로 겪는 과정이었다.

📖삶은 계속된다. 첫번째 삶과 두번째 삶은 단절된 것이 아니었다. 앞으로 내가 몇 번의 새로운 삶에 도전하며 살아간다 하더라도 이전의 생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성공이었든, 실패였든.

출근과 퇴근이 있는 삶. 당연스레 다음달 월급이 입금 예정인 삶. 연차가 올라가고 직급이 높아졌지만 그럼에도 조언을 구할 동료들이 있고, 같은 고민을 갖고 일하는 이들로 인해 얻게되는 형태 없는 든든함. 끝이 정해진 정년이 있지만 그럼에도 명함과 직함이 주는 안도감. 그걸 다 놓아야 하는 것이 프리랜서의 삶이다. 어쩜 이렇게도 반대되는 삶을 골랐을까 싶지만, 그렇게 정 반대의 세상에 놓아두더라도 할 일이 있다는 것은 어찌보면 축복받은 재능이며, 부러움이 가득한 삶의 루트라 하겠다. 그래서 저자의 에세이는 극과 극의 세상을 보여준다. 어차피 발치에 다다른 정년이었으니 조금 이르게 퇴사했다는 생각으로 보더라도 동문의 선후배들과는 확실히 다른 행보이다. 그러니 삶의 전환점을 어떻게 잘 이끌어갈지, 끌려가지 않고 내가 당겨가며 주체가 '나'로 살아 낼 수 있을지을 알려준다. 공상이 있기도 하지만, 때로는 현실적인 생각과 고민을 겪어낸 글 속에서 결국 사람들은 똑같은 고민을 하고, 똑같은 후회를 하며, 똑같은 다짐을 하며 살아가고있음을 느낀다. 다만 그 행동하는 시기가 언제가 될지, 변화될 시점의 나는 어떻게 살아 낼 것인지가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진다.

가장 와닿는 재정적 관리는 물론이고, 체력 관리와 대인관계 관리. 무엇보다 멘탈 관리를 어떻게 하면 될지를 실패 기록 일지들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라면 적어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길 바라고 있었다. 소속감으로 탄탄했던 판사시절, 오롯이 혼자 돌파구를 찾아하는 프리랜서 작가의 시절. 특별한 직군만의 에피소드도 있지만, 결국 우린 집단 생활과 개인 생활의 양상을 보며 어떻게 살 궁리를 할지, 어떻게 밥 벌어 먹으면서도 하고싶은 걸 하는 낭만을 챙겨 볼지를 배워가는 에세이였다.

답이 정해져있는 판결의 과정이나 답을 만들어야하는 창작자로서의 고됨은 연륜과 연차에 기인하기보단 스스로가 가진 재능과 노력의 깊이에따른다는 걸 한번 더 느끼면서 나도 저자의 나이 즈음에는 직군을 전환한 삶을 살게 될지, 이 생활을 유지하게 될지를 예견해본다. 어떻게 해서든 밥 벌어 먹고 살면서 하고싶은 걸 하며, 돈도 벌고 행복도 벌어보는 얻는거 많은 삶이 주는 단맛을 기대하며 저자는 저자대로 살 결심을, 나는 또 나대로 살 결심을 다져보며 오늘도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진득하게 버티는 삶에 얄팍하지만 감사와 응원을 쑤셔넣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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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팬덤과 극단의 시대에 꼭 필요한 정치 교양
이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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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들에는 팬덤이 존재하지. 그러니 정치라고 예외는 아니다. 내가 지지하는 존재들이 다른 집단에서도 비판보다는 존경의 마음으로 불려지길 바라는 마음. 그러하다보니 비판의 소리가 나오면 가시를 세우고 의견에 반박을 하며 무조건적인 충성을 하게된다. 옳고 그름의 잣대보다는 일편단심 민들레가 되어버린냥 무조건적인 숭배의 방향으로까지 이어진다. 옳은 방향이 아님을 인지하기까지, 그리고 좀 더 냉철한 지지자가 되되록 다양한 견해와 타국들을 비교하며 이해하기 쉽도록 알려주고있다. 정치인 하나를 두고 말하지 않는다. 제도와 그 집단을 운영하는 정당, 파벌없이 좋은 의견을 수렴하고 받아들어야하는 의회의 구조와 거기에 맞게 상승되어야 할 정치의 대해 정치학자 이철희가 내어두는 정치 안내서.

총 3부작으로 구성되어있는 이야기를 보면 아무래도 최근의 정치 상태. 불과 작년 이 맘때 우려하고 근심을 쏟게했던 비상계엄과 윤정부의 사태를 무게있게 담아두었다. '1부 비상계엄과 탄핵 그리고 조기 대선으로의 여정'과 '2부 윤석열 정부와 검찰 공화국은 어떻게 몰락했는가'와 다른 결로 '3부 팬덤,극단주의에 사로잡힌 한국 정치의 오늘'을 분류해두어 현 정부가 유념해두어야 할 정치의 현재를 담아두고있다.


앞서 말해두었던 팬덤이라는 무조건적인 믿음과 지지의 집단. 이 과한 애정이 정치 현상에까지 젖어들 줄은 생각지도 못했지.

📖정치 지도자들이 비전과 소신을 갖고 팬덤을 이끌어 가는 '책임'의 리더십보다 정치적 이득을 위해 그들의 혐오를 부추기고 그 대가로 권한을 늘려 주는 '거래'의 코트십을 추구하는 것을 경계하고 막아야한다.

고 말하고있다. 열광과 적대의 감정은 그들을 결소가시키는 유용한 방식이긴 하겠으나 결국 지들끼리만 신나는 판이 되는거지 시민들이 나설 틈이 없어지니 그냥 시끄러운 소수의 광신도 집단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른바 보통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는 정권이어야하는데 매번 눈에 불을 켜는 자들만 불나방처럼 모여들어 한마디씩 거드는 정치이니 이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한번 더 실감케 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대통령에게 너무 많은 기대와 부담을 지운다. 이래저래 대통령이 해답이고, 이러쿵저러쿵 대통령이 문제다.

다들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자 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안주삼아 씹어대는 이야기 이기도한게 바로 대통령에 대한 탓을 돌리는 것이다. 사실 민주주의 질, 국민의 삶이 과도하게 대통령에게 달려있는건 익히 아는 바.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를 집행하며 민주주의를 이뤄내는 사람이 문제이며 사람으로서 시작되는 것임을 모두가 인지하고있다.

특히나 1부와 2부를 보면 당장 작년 이맘때의 윤정부 시절의 실로 놀라운 일들과 그간의 행보에 저자는 적잖히 뿔이 나 있었던걸로 보인다. 총 3부작임에도 1부와 2부를 나누었음에도 거기에 비판의 힘을 모아두고있다. 윤정부가 잘했다는 말이 아니다. 그래도 좋은 정치에 대해 논한다면 균형이라도 맞춰주지. 라는 아쉬움과 함께 차라리 현 정부에 바라는 것들을 과거 총리나 대통령에 임했던 각국의 이들의 선순환 사례를 모아두면 어땠을까. 그러면 조금 균형이 어설프나마 맞춰지지 않았을까를 생각하게 한다. 1년 1개월 동안 쓸 서른개의 칼럼을 손본터라 어쩔 수 없는 비중의 쏠림은 있었겠으나 좋은 정치에 대한 기대를 갖게하는 파트가 적었다고 여겨지기도 했다.

나는 책 뒷편에 적힌 간결한 문장이 너무 와 닿았다. '함께 까거나 함께 가거나' 이토록 단순하고도 명확한 조합이 또 있을까.

살다살다 책으로 배웠던 비상계엄 소식에 너무나도 생소하고 당황스러워서 남편에게 물었다. 이거 괜찮은거냐고.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것임에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상황. 매번 나의 역할은 관전자의 몫이라 생각하고 목소리를 높이거나 함께 촛불을 쥐거나 발 맞춰 걷질 않았다. 그저 나보다 좀 더 진취적이고 행동이 앞서는 이들이 한 겨울 찬 바닥에 앉아 촛불과 야광봉과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있을 때 몸이라도 녹히시라고 커피값을 대신 결재 해 두는 것으로 내 몫의 소임을 밀어두곤했는데 이러한 나같은 사람 역시 함께 까기도하고 함께 가기도하는 시민의 집단 중 하나이다.

결국 다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의 각자의 생계가 달린 세상이다. 이러한 바람들을 끌어올려 괜찮은 사회로 올려 앉히는 것이 정치라고 본다. 요동치는 경제를 잡아두고 민생의 불안함을 잠재 울 때 우리는 그 정치가 올바른 정치라 여긴다. 결국 너네끼리 싸움도 뵈기 싫고, 너네끼리 돈 더 많이 꿈쳐 둔 것도 뵈기 싫은 것이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니네 싸움에 왜 우리가 등터져야 하는 것이 국민을 자극하는 것이고, 아파서 병원가는 것도 정치와 제도적 문제로 인해 제약을 당연스레 받아들이고 수고로움을 감수하는게 매번 국민이어야 하냐는게 가장 큰 홧병의 모드겠지.


📖여러분에겐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지 않습니까?

라고 말했던 트럼프를 기억하는가? 뭘 더 뺏으려하나 싶은 무서운 정치놈들의 성향인거지. 이건 어느 정당이든 어느 대통령 아래에 있는 정부든 어느정도 잇속 차리기는 존재함을 알기에 무조건 적인 신뢰를 하지 않게되었다. 나는 이러한 팬덤과 극단적인 정치의 흐름에 감나라 배나라의 욕심도 없다. 줬던거 뺏들지 말고, 당연한 걸 당연하지 않다는 듯 없었던 일로 만드는 그런 세상만 아니길 바라게된다.

📖하니포터 11기로 한겨레출판으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고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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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올리브에게
루리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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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바람을 따라왔는지 우리는 다 여기서 만났어'라는 문장에서 뜻밖의 만남과 끝이 보이는 헤어짐, 또 언제가 될지 모르는 재회의 인연 3부작은 아닐까 라는 어른의 눈으로 이야기를 그려보게 만들었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을 정도의 연륜은 아니더라도 숱한 만남과 헤어짐을 경험했기에 이런 느낌은 아닐까의 짐작이었다.

이야기는 삼십 년 전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올리브나무 집'을 찾아 나선 한 소년의 여정에서 시작이 된다. 그 집을 처음 만나고 떠나게 될 때엔 소년이었고, 다시금 그 시절을 떠올리고 수소문 하여 찾게 될 때엔 중년이 되었다. 기억속의 집은 초록 이끼로 덮여있고 벽은 무너진 상태. 그리고 어린시절 자신을 맞이하던 '나나 올리브'도 없는 빈 공간. 거기서 그때의 흔적을 찾다가 발견한 낡은 편지 노트. 누군가로부터 메모가 읽혀짐으로서 이 집의 이야기는 다시 살아난다. 멈추어 있었지 문이 닫혀있지 않았던 그 집. 거기서 그는 나나 올리브가 했던 마음을 어른이 된 지금에서야 톺아보고 마음을 따라가본다.


전쟁은 희망을 눌러버린다. 대신 '헛된'이라는 단어를 앞세우며 좌절을 밀어부친다. 그럼에도 내가 숨을 쉬는게 더뎌지는 것도 아니고, 아침 해는 뜨며, 밤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희망이 떠오르면 정말은 저무니까, 눈앞이 깜깜해도 어둠이 짙어 보여도 틀림없는 사실은 다시 빛은 돌아온다는 것. 변하고 있는건 분명한 사실이니 이 또한 변화되어 머물지는 않을거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그렇게 믿어야만 한다. 버틸 재간이 있어야 버텨 내지.


익숙했던 존재의 상실. 그건 든 자리 만큼의 마음의 웅덩이가 움푹 패여 눈물이 고이고, 근심이 흘러가게된다. 애도의 과정이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긴 슬픔은 먼저 간 이가 편하게 떠날 수 없으니 이걸 아이의 시선으로 느끼기 쉽도록 알려주었던 나나만의 작별과 애도의 방식이었음을 느꼈다. 나도 나나처럼 우리에게 상실은 있겠으나 소멸하지 않을 것이라고, 나보다 더 슬퍼하는 이에게 담담하고도 눈물 덜 흘릴 수 있는 작별의 과정을 설명하는 어른이 되고 싶어졌다.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슬픔을 안고 있어요. 그 사실이 나를 버티게 해요. 가끔은 슬픔이 턱밑까지 차올라서 그만 잠겨 버리고 말 것 같을 때, 내 옆에 나처럼 턱밑까지 차오른 슬픔 속에서 천천히 앞으로 헤엄쳐 가는 사람을 보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나도 아, 아직 괜찮구나, 하고 따라서 헤엄을 처요. 헤엄치는 나를 보고 또 다른 누군가 역시 헤엄을 치겠지요.

이건 못된 마음이 아니다. 같이 구렁텅이에 빠진 채로 한데 모여 죽어보자는 자폭의 심경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단 이 상황인데도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이가 있는데, '나도 할 수 있지'라는 진득한 삶의 의지를 밀어주고 있었다. 좌절 할 타이밍도, 포기할 기점도 아닌데 넌 뭐하고 있냐는 듯한 주변의 부산함. 서로의 페이스 메이커가 되어주는 과정이라 말하면 더 쉬울까? 만약 행복한 파티의 순간이라면 각자가 느꼈던 가장 행복하고 기뻤던 날들을 이야기하는 행복 배틀이 되었겠지. 이전에는 누가 더 행복했냐로 선의의 경쟁을 펼치게되었다면, 지금은 슬픔 배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살고 있잖아?'라는 더 멋드러지고 극적인 삶을 살아왔노라 말한다고 여기자. 우리 그렇게 각자의 페이스메이커를 자처하다보면 깔딱깔딱 숨 넘어가는 고비도 무던하게 넘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보였다.


📖불행한 사람들은 더 불행한 사람들의 처지를 헤아려요. 그러면 불행에서 한 발 멀어질 수 있으니까요.

모든걸 놓아버리려 했던 삶의 고비를 알기에 우리는 나와 같은 처지, 그리고 나보다 못한 상황에 놓인 이들에 더욱 공감을 하게된다. 나보다 불쌍해서가 아니라 그 고단함을 알기에 더 쉽게 생을 포기할까봐 그 처지를 헤아리고 내가 조금 더 갖고있는 무언가를 뚝 떼어 무심하게 놓아두는 마음이라 해두자. 내가 훨씬 잘 살아서도 아니고, 내가 더욱 많이 가져서도 아니다. 고만고만한 처지이지만 그들도 나나 올리브에게 도움을 받았고, 한낱 작은 짐승이라 생각한 배트맨에게 도움을 받았던 그들이기에 귀하게 얻은 만큼 자신의 귀했던 한 줌을 놓아두고가는 공생의 끈 이었다. '이게 있는데 당신도 살아야지' 라는 구실이자 삶의 미련을 주고 가는 모습이었다. 끌어주고 당겨준다는 그 말. 우리는 그 연대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

전쟁 이야기였지만 마냥 암울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불안한 상황속에서 기다려주는 이가 있었고, 내치지 않고 맞아주는 이들이 있었다. 일면식도 없었고, 전쟁이 아니었더라면 살면서 마주할 우연의 인연이 아닌 순간도 있었다. 그럼에도 맞아주었고, 또 기다려줬다. 메이에게 했던 말을 떠올려본다. 영혼이 저 반짝이는 구멍을 메우러 가고있다고. 그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나나 올리브 역시 반짝이는 어느 한 지점을 메우러 떠났고, 남겨진 공간은 또 다른 나나가 되어 기다려줄 준비를 하고있다. 기다려주던 마음과 기다리길 바라던 마음은 또 다른 누군가의 비빌구석을 마련해두었다. 모든게 망가진 것 같아도 살아낼 구석을 찾아주는 존재에 대하여 우리는 또 한번 감사의 마음을 보내며, 나 또한 누군가를 위한 기다려주는 사람이 되어보고 싶어진다.

자! 여기까지 어른이 느낀 '진짜 사람 사는 얘기'였다. 이젠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보는 살아내는 이야기의 해석이 듣고싶어진다.



📖문학동네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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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피플 존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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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있을법한, 그렇지만 이게 SNS나 숏츠에 주목받진 못할테고, 하지만 공공연하게 이뤄지는 세상살이의 갈등과 상처받는 방식이다. 싸워 이기는 싸움닭의 마음보다는 이제는 좀 에둘러 가더라도 이러한 상황을 피하고 싶고, 괜히 연류되지 않도록 한 발 물러나고 싶다. 괜히 나대지않으려하고, 공정한 잣대에서 측은함을 무기삼는 자에게 연민을 품는 행위 자체를 잘라내고싶다. 학연, 지연, 혈연 그러한 끄나풀에 스텝이 꼬이기보단 담백하고 아닌 것과 맞는 것에만 집중하고 살고싶지만 세상살이가 그렇게 호락호락한게 아니라 더욱 성질이 뻗친다.

이게 순리인지 모순인지는 구분을 하지만 그 스토리가 나를 기점으로 뻗어간 거라면 그 어떤것도 확신하지 못하게된다.

저자는 말한다. '저는 오늘도 수많은 모순에 둘러싸여 살아갑니다. 혼자 있기를 간절하게 바라지만 또 완전히 혼자이고 싶지만은 않은, 선택적 고립의 욕망도 거기 속할 것입니다.' 라는 말에서 공감하게 만들었다. 나 또한 모순이 가득한 사람인데, 모순을 모순으로 대립할 것인지, 모순이라도 FM대로 마주할 것인지는 매번 당하고 깨우치면서 그때그때 달라진 사람으로 살 듯 하다.

하... 나는 오늘도 바르고 곧은 사람은 글러먹었나보다.

📖실패담 크루_ 실패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실패는 현상이 아니라 기분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서로의 실패담을 공유하긴 하나 결국 잘난거 티내고싶어하는 모임. 조합 자체가 우리가 아는 실패의 결이 아니다. 각 분야에서 잘난맛에 사는 사람들인데 이 실패에 대한 히스토리가 온전한 뜻을 담고 있긴할까 싶어진다. 성대표가 나를 더 챙기는 이유 또한 아끼는 의미의 단어적 온전함 있을까.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세히 그 의중을 알아야한다. 진실로 성대표가 아끼는 마음이 커서 그간 인턴 시절 동료를 고자질하며 타인을 누르고 일어서려하는 것이 옳지 않음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며, 이 모임의 신입 회원에게 쏟아지는 관심을 질투삼아 발판삼아 우월함을 과시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걸 깨우쳐야된다는 점인데, 아마 이야기 속 나는 끝까지 진실의 의중을 모를 듯 싶다.



📖언니_ 고말다는 말, 아니면 미안하다는 말이라도 어딘가에 한 줄 들어 있기를 나는 절실한 심정으로 바랐다.

모두가 평등하다는건 말이 되지 않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과 최소한의 인간됨은 필요했다. 있는 놈이 더하다지만, 있는 놈이 더 모르기도 하다.

이게 당연하게 여겨져서 단념을 하는게 당연한 세상살이는 아닌데 매번 약자의 편에서는 굽히고 들어가야하며 모든게 가능하다는 예스형 인간이 되어야한다. 감히 넘보지 말아야 하는 것을 넘보는 것 마냥 기본적인 권리도 무시당하고 최소한의 대우도 없다. 그 어떤것도 당연한게 아니다. 그래서 언니의 노력이 더운 아깝고 아쉽다. 여기서 이럴 사람이 아닌데, 여기서 이럴 대우를 받을 사람이 아닌데.



📖선의 감정_ 그냥 내가 오늘은 엄마가 너무 보고싶어서, 교수님이랑 이거 같이 마시면서 엄마 생각하고 싶어서, 그래서 사왔어요. 이거 드세요. 나쁜 거 아니예요. 캔커피 중에서 제일 비싼 거예요.

특수한 직업에서 얻어지는 고충은 그 강도가 세다. 그리고 그들만이 할 수 있는 것에 기대어 바라는 사람들은 간절히 짙다. 그러니 생과 사의 경계에 있는 의료진은 업무 이외의 스트레스가 높을 수 밖에 없다. 다들 왜 특수 분야에 지원을 안 하는지도 다들 알 것이다. 상급병원을 한번이라도 다녀온 사람들은 알지. 살려도 죽어도 모두 의료진을 탓하며 울부짖는 사람들. 그리고 그러한 보호자로 인해 더더욱 마음을 쓰지 않으려하는 기계적인 작용을 하게되는 의료진. 교수의 선함은 어디에 기거하고있다고 봐야할까. 단순히 환자와 보호자의 말을 잘 들어주고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심적인 위로를 하는 것? 내가 이 단편을 완독하고 느끼는 교수의 선함의 결은 챠트 사진을 통해 자신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부분과 그걸 환자에게 알리고, 타과로 전과시켜 경과를 보자하지 못한 아쉬움에 대한 의료인의로서의 자기 역할이라 봤다. 그리고 안복희 환자의 보호자였지만 지금은 환자로 온 따님을 혹여 의료 소송이나 기타 보복을 먼저 생각하고 피하기보다 내원한 환자로서 대하는 방식이었다. 뭘 더 잘 해주고, 뭘 더 마음 써달라는 것이 아니다. 그냥 당신들은 전문의 이니까 나보다는 더 잘 아는 많이 배운 사람들이니까 내가 모르는 내 가족에 대한 것들을 좀 살펴봐주고 알려달라는 것 그뿐이었다. 내 쫒기보다는 조심하라고, 아프면 또 오라고 봐주겠다고, 그렇게 대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병원비 긁어주는 사람 아니고, 아픈곳 치료하러 오는 환자로 대해준 사람에 대한 감정에 우리는 선(善)의를 품고 있구나로 느끼고 있다는 걸 한번 더 인지시켜주었다.


📖빛의 한가운데_ 아니야, 나는 그런 엄마가, 아니야.

최근 화두로 떠올랐던 딥페이크. 그 사건에 대한 걸 피해자가 아니라 피의자의 보호자가 겪게되는 감정선을 그려두었다. 우리는 항상 이러한 예민한 사안에 대해선 피해자의 입장에서만 글을 쓰게되고, 피해자의 심경에만 마음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피의자의 부모가 가지는 당황스럽고 어이없는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 할 것인가에 대한 걸 말하고있다. 더군다나 안희는 피의자와 피해자 모두와 엮여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아들이 한 짓이고, 처음엔 아이들의 같은 반 학부모였다가 지금은 절친한 동네친구가 된 미령이 사건에 연류되어있었다. 안희의 남편은 자신의 아들을 먼저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고, 안희는 아닌건 아니라는 것에는 흔들림이 없다. 미령이 연예인이라 얼굴이 다 공개된 공인인데 그럴 수 있다고 여기는 남편 또한 잘못된 가치관을 갖고 있다는 점을 확실히 어필하고있다. 이 행위 자체가 잘한 일은 아닌데, 그렇다고 그렇게 크게 벌 할 일도 아니지 않냐는 안일한 피의자 가족의 대응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신고하기만 해보라며 엄포를 놓는 남편.

부부끼리 결정 하는 것에도 이렇게 갈리는데 세상은 누구의 편을 들어주며 어떤 이의 의견을 존중해줄지 궁금해진다. 순리가 먼저일까 가족의 의리가 먼저일까. 세상은 안희의 결정이 모자지간의 결여된 애정이라 볼까 아니면 옳은 가르침과 선택이라 말하게될까. 그래서 당신은 뭐가 맞다고 생각하는가?



📖가속 궤도_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녀 자신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간절히 지키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알았다.

소진은 매 순간 두려움으로 살아야하는 사람, 기욱은 한때의 집착이 한 시절 넘치는 사랑의 표현이라 여기겠지. 이 이야기에서 소진이 겪은 것들만 채워져있다. 기욱의 입장은 없다. 오롯이 한때는 사랑이었으나 이후에는 과한 집착과 보여주기식 애정으로 두려움의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려두었다. 공간을 피했고, 시간을 넘어섰음에도 소진은 그 감각을 소멸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실체없는 두려움과 익명이 주는 불안감이 모두 과거의 그때 그 사람일거라는 확신을 하게 만든다. 두려워하는 것은 지금의 평온한 세상이 깨질 것 같은 과거의 이력일 것이고, 간절히 지키고 싶은 것은 온전한 나로서의 삶과 일련의 사건들이 모두 내 탓인냥 말하는 상대에게 상처받지 않는 마음이라 보였다. 불안은 불안을 낳는다 했지. 그리고 피의자는 발뻗고 자더라도 피해자는 결코 발뻗고 편히 자기 어렵다는 걸 또 한번 느끼게 된다.(기욱은 시간이 흘러버린 지금, 관장을 하고 아이들을 살피는 학원 강사로서 그때의 사건을 기억하긴 할까. 자신이 어떠한 마음으로 상대를 대했고, 어떠한 방식으로 사람을 쪼아댄건지 알긴 할지 그 또한 궁금하다. 이 사건을 앞서 보았던 '우리가 떠난 해변에'의 작가와 피디를 소환해 과거 있었던 일을 알리고 지금은 어떠한지 그에게 냉소적인 마음으로 과거를 긁어내어보고싶다. 굳이, 긁어 부스럼 만든다는 식으로라도 흠집 내고 싶은 독자로서의 까칠한 마음이라 해두자.)



📖사는 사람_ 내가 거대한 거미줄의 한 귀퉁이에 얽혀버린 날벌레인지 아니면 둔한 공모자인지 영원히 가려낼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관대한 호의라고 여겼으나 굳이 수고로운 내 행동이 필요없었을 사람에 대한 생각. 마음이 쓰이고, 챙겨줘야되지 않을까 하는 괜한 오지랖이지만 그래도 잘 따라와주고있고, 발전되고 있는 듯 했으며, 보호자로부터 상처받지 않을테니 금전적 거래는 사양했던 은밀하고도 조심스러웠던 거래. 하지만 결국 괜한짓. 이러한 내 마음이 필요없이 상대는 원하는 방향과 계획된 스토리에 맞게 다음 스텝을 진행하고 있는 걸 보자하면 나는 상대가 학생이었는지, 학생인척 하는 학부모였는지도 분간을 못한 아둔한 사람처럼 여기게된다. (괜한 연민에 끌렸던) 둔한 공모자 이지만 스스로 그런 사람은 아니고 싶은 마음. 그게 택배로 온 지갑과 돈을 바라보며 괜시리 머리를 긁적이게된다.

처음 DM이 왔을 때 끊어 냈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까에 대한 의구심에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싶다. 상대는 어떻게 해서든 나의 말캉하고 예민한 연민의 구석을 건드려 원하는걸 얻어내고도 남을 사람들임을 잊지 말길 바란다. 그 거미줄은 어떻게 해도 털어낼 수 없는 얇고도 끈덕하며 기분나쁘게 섥히는 세계라는걸 깨닿게 했다. 사람으로 돈장사? 아닌 척 해도 결국 그거지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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