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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살 결심 - 개인주의자 문유석의 두번째 선택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평점 :

어느 시점부터 타인으로부터 불리워 질 때 사람 자체를 논하기보다 직업이 내 이름 앞에 놓일 때가 많아진다. 특수 직업군들이 더욱 그러한데 저자 또한 그러한 삶을 제법 오래 살아왔다. 그러니 판사라는 직업과 사람 문유석이 동일시 되다가 어느 시점엔 판사님이라는 호칭이 익숙해졌을 사람에게 호칭이 뺏긴 기분이 들 수도 있고, 나의 분신을 두고 온 것이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하게 만드는 변화된 삶을 책에 옮겨두었다. 평생 직장이라는 것도, 평생 직업이라는 것도 없어진지 오래이지만 그래도 강산이 몇번이고 바뀔 시간동안 같은 공간에서 때마다 철마다 같은 일을 반복하다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 준비를 하는 과정. 첫 걸음마를 시작 하던 순간처럼, 처음 학교 입학을 하던 그 낯선 설레임이 주는 두려움과 불안감. 지금까지도 나로 잘 살아왔을테지만 또 다시 나로 살아 볼 결심을 해야하는 과정. 법관이 아닌 이야기꾼으로서의 세상살이 방식이 새삼스럽겠지만 조금씩 익숙해지는 전업작가의 삶에 같이 적응해보기로 한다.

📖세상은 교과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현실은 할리우드 법정영화가 아니었다. 원칙은 힘 앞에 무력했다. 사람들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벌어질 일은 벌어지고야 만다.
저자는 첫번째 삶이라 칭하는 법관으로서의 눈으로 보던 세상을 이야기한다. 나이스하다 생각한 행동이 수뇌부측에선 한없이 나이브하게 보였던 저자의 행동들. 이 천진하다는 말에 숨어있는 무수한 단어들. 나이브한 자를 총알받이 마냥 앞머리에 세워두고 하던 법관들의 세상에 질렸다고 봐야할까. 법이 정직 할 것이라 당연시 여겼던 사람이 이젠 되려 글이 정직할 것이라 단언하는 사람. 그간 첫번째의 삶의 낯짝에 질렸고, 단어가 가진 명확한 뜻처럼 세상이 굴러가길 바람에 있어 더욱 다급히 두번째 삶을 당겨왔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자유란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유를 제대로 누리려면 스스로를 구속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게 어려우니까 학교나 직장 같은 조직의 규율 속에서 살았던 것이다.
촘촘하게 잘려져있고, 조각조각 맞춰서 살던 사람에게 두번째 삶은 자유 그 자체였다. 프리랜서라는 말 답게 자유가 먼저 튀어나오는 직군이다. 그렇지만 스스로가 조절해야하는 자유였고, 상황에 따라 통제하고 때로는 더 많은 시간과 감정을 할애해야만 하는 직업이었다. 자율, 타율, 효율. 효용성의 밸런스를 맞춰야 함은 결국 똑같은 것임을 느낀다. 배짱이로 살다가 개미로 잰걸음으로 살 것인가. 애초부터 뛰진 않으나 그렇다고 멈추진 않는 삶으로 하루를 보낼 것인가는 모두 자신의 몫에 달린 것이다. 다음달의 내가 한량으로 살려면 오늘의 나는 곧죽어도 한량이 되지 못한다는 걸 온몸으로 실감케하는 프리랜서의 매운맛이었다.

📖지금은 읽기도 전에 이미 결말을 아는 소설 같다. 남아 있는 건 최소한의 의무뿐이다. 최소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나로 인해 손해는 보지 말아야 한다. 최소한 가족의 생계에 지장을 줘서는 안 된다.
법원을 떠났고, 생의 시계는 꺾이고 저물어가고 있었다. 때마침 세상도 코로나로 꽉 막힌 상황이었으니 안봐도 빤한 비극적인 결말의 수순이었다. 그러니 될 일도 안 되도록 세상이 이른바 억까한다고 여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 꾸역꾸역 모드로 살아내고 일을 쳐내게 된다. 당연히 세상이 노잼으로 돌아 갈 수 밖에 없다. 일단 주체인 나 조차 즐겁지 못하니 말이다. 영원이라는 것은 없는데 당연하게도 저자는 스스로의 삶이 모든 수순에 맞게 착착착 진행 될 것이라 여기는 세상이 모두 내 중심으로 돌아간다 여기고 있었나보다.
일단 영원도 없고, 불멸도 없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 또한 나이듦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맞게 방식을 고쳐먹어야했다. 같은 수능도 시간에 따라 출제 변형이 바뀌지 않던가. 나만 예외는 없음을 온몸으로 겪는 과정이었다.

📖삶은 계속된다. 첫번째 삶과 두번째 삶은 단절된 것이 아니었다. 앞으로 내가 몇 번의 새로운 삶에 도전하며 살아간다 하더라도 이전의 생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성공이었든, 실패였든.
출근과 퇴근이 있는 삶. 당연스레 다음달 월급이 입금 예정인 삶. 연차가 올라가고 직급이 높아졌지만 그럼에도 조언을 구할 동료들이 있고, 같은 고민을 갖고 일하는 이들로 인해 얻게되는 형태 없는 든든함. 끝이 정해진 정년이 있지만 그럼에도 명함과 직함이 주는 안도감. 그걸 다 놓아야 하는 것이 프리랜서의 삶이다. 어쩜 이렇게도 반대되는 삶을 골랐을까 싶지만, 그렇게 정 반대의 세상에 놓아두더라도 할 일이 있다는 것은 어찌보면 축복받은 재능이며, 부러움이 가득한 삶의 루트라 하겠다. 그래서 저자의 에세이는 극과 극의 세상을 보여준다. 어차피 발치에 다다른 정년이었으니 조금 이르게 퇴사했다는 생각으로 보더라도 동문의 선후배들과는 확실히 다른 행보이다. 그러니 삶의 전환점을 어떻게 잘 이끌어갈지, 끌려가지 않고 내가 당겨가며 주체가 '나'로 살아 낼 수 있을지을 알려준다. 공상이 있기도 하지만, 때로는 현실적인 생각과 고민을 겪어낸 글 속에서 결국 사람들은 똑같은 고민을 하고, 똑같은 후회를 하며, 똑같은 다짐을 하며 살아가고있음을 느낀다. 다만 그 행동하는 시기가 언제가 될지, 변화될 시점의 나는 어떻게 살아 낼 것인지가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진다.
가장 와닿는 재정적 관리는 물론이고, 체력 관리와 대인관계 관리. 무엇보다 멘탈 관리를 어떻게 하면 될지를 실패 기록 일지들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라면 적어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길 바라고 있었다. 소속감으로 탄탄했던 판사시절, 오롯이 혼자 돌파구를 찾아하는 프리랜서 작가의 시절. 특별한 직군만의 에피소드도 있지만, 결국 우린 집단 생활과 개인 생활의 양상을 보며 어떻게 살 궁리를 할지, 어떻게 밥 벌어 먹으면서도 하고싶은 걸 하는 낭만을 챙겨 볼지를 배워가는 에세이였다.
답이 정해져있는 판결의 과정이나 답을 만들어야하는 창작자로서의 고됨은 연륜과 연차에 기인하기보단 스스로가 가진 재능과 노력의 깊이에따른다는 걸 한번 더 느끼면서 나도 저자의 나이 즈음에는 직군을 전환한 삶을 살게 될지, 이 생활을 유지하게 될지를 예견해본다. 어떻게 해서든 밥 벌어 먹고 살면서 하고싶은 걸 하며, 돈도 벌고 행복도 벌어보는 얻는거 많은 삶이 주는 단맛을 기대하며 저자는 저자대로 살 결심을, 나는 또 나대로 살 결심을 다져보며 오늘도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진득하게 버티는 삶에 얄팍하지만 감사와 응원을 쑤셔넣어본다.
📖출판사 문학동네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