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드라, 떠나보니 살겠드라 - 65살, 여자, 혼자, 세계 여행자 쨍쨍으로부터
쨍쨍 지음 / 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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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자만큼이나 확신이 없고 모든것에 생각이 너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이렇게 놓고 훌훌 날아가지 못하기에 부러움과 동경의 마음으로 책을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나라면 절대 고르지 않을 컬러의 조합과 패션 스타일이 더해지니 같은 하늘 아래에 정 반대의 방향을 바라보고 삶을 이어가는 사람의 말들같아 신기함을 가득 안고 페이지를 넘기게 했다.


키워드가 예사롭지 않다.65세. 여자. 혼자 세계여행. 파이어족으로서 빠른 은퇴. 이전의 삶은 속박 당하고 있었던게 아닐지 의심하게 만드는 세상 바른 직업군인 교사. 진짜 연관을 짓기 어려운 과거와 현재의 낱말들이니 의아해 할 수 밖에. 어떤 날은 머리를 빡빡 밀기도 하고, 또 어떤 사진속에는 가발이 아닐까 의심스럽게 하는 핫핑크의 머리카락을 보면 이 사람의 세상은 무채색이었다가 형광색으로 톤 보정이 된것 같단 생각을 하게 만든다. 20년째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 마저도 놀라울 따름.

인생을 짧다며, 입고 싶은 거 입고, 살고 싶은 대로 살자는 나비같은 그녀의 이야기. 부러우니까, 샘나니까 더욱 야무지게 읽게 되는구나.

쨍쨍이라는 필명도 새삼 화려하고 반짝이는 느낌을 준다. 교직생활을 할 때에도 자신은 튀는 선생님이라 일컫었다. 교사 10년차 무렵, 학급 문집을 학생들 뿐만 아니라 저자의 친구들에게도 보낸 적이 있는데 그 친구들 중 한명이 '교사는 무릇 햇빛어야 한다'라고 회답을 주었는데 그때부터 그녀는 최순자선생님, 쌤(경상도 사투리 선생님=쌤)이 아니라 힛빛이며 쨍쨍이라고 불러주길 바랬다.

나의 학창시절을 비춰봐도 12년동안 자신을 이름+선생님 조합으로만 불리우길 바라지 별명, 혹은 닉네임으로 불리우길 원하는 분은 없었으니 만화에서 튀어나온 사람은 아닐지 의심하게 만들었다. 아이들도, 옆반 선생님도 교장과 교감 선생님마저도 이윽고 학부모들까지 쨍쨍이라 불렀다하니 사각의 교실과 매일매일이 똑같은 학교생활에서 나름의 행복을 긁어모았다가 방학 때마다 여행으로 팡팡팡 그 욕구를 터트린게 시작 처럼 보였다.


무계획을, 그것도 인도네시아에서 두번째로 높은 산악 트레킹 마저 그렇게 단시간에 선택을 하고 이행할 수 있다니에 대해 내 머릿속은 계속 물음표로 가득했기에 린자니 산악 트레킹 후기까지 찾아보게 했다. 그리고 놀랐지. 이 여인 진짜 대단한 추진력도 있지만 깡다구도 어마어마하구나.

그리고 해외에서 만난 외국인과 사랑에 빠지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학교생활을 이어가면서도 그가 생각나 여행을 감행하는 드라마보다 더한 불타는 사랑의 질주. 소설같은 실화. 그리고 소설보다 더 찐한 현실의 상황. 마지막엔 정말 웃겼어. 쨍쨍에게 샤워실을 마련해두었다는 메세지 말이야.


진짜? 그게 되는거야? 라는 물음도 가득했던 '돈 좀 빌려주십시오'의 에피소드. 현금이 부족했고, 카드 출금도 여의치 않았던 현지 상황. 누군가에게 대놓고 돈을 빌려달라 말하고, 나중에 돈을 부쳐준다는 말로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는 시간. 그리고 갚지 않아도 된다며 여행비를 충당해주는 피부색도 언어도 다른 누군가의 사려깊은 마음. 즉각적인 선의. 이건 마치 저자가 소설을 쓰기 위해 심어둔 복선의 일부같기도 했다. 왜냐구? 나한테는 절대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거 같으니까 더욱 의심하며 보게 만들었다. 나로서는 이러한 상황이 일어나게 냅두지도 않을 것이며, 모든것이 시간의 흐름과 장소의 변화에 따라 일들이 배열되어야 마음이 편한 인간이라 이러한 마음을 가지도고 여행을 이어 가는게 가능한 그녀의 성향이 부러울 뿐이었다. 이건 나이를 먹거나 세상을 좀 더 깊이 알고나면 바뀔까? 쨍쨍의 에피소드들을 듣고 도전해보면 가능할까? 계속 그러한 물음을 가득하게 만들었다.

카메라를 고치기 위해 배를 타는 일화하며, 비자에 대한 에피소드와 경북 영천의 점방에서 자라던 소녀가 히말라야 마낭이라는 동네를 어슬렁 거리며 어린시절 살던 집과 닮은 곳을 발견하고 적어둔 회상의 에피소드. 2009년 퇴직 후 장기 해외여행과 잠깐의 한국 떠돌이 생활. 그리고 돌아갈 집은 제주가 될거라는 확신과 함께 제주섬에 이주하기까지를 보면 쨍쨍은 한국판 피터팬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하늘을 훨훨 날며 과자를 먹고 영원히 아이로 남고싶어하듯 세상의 공기와 햇살을 먹고 끝까지 날아다닐듯한 발끝이 두둥실 떠 있는 요정같기도 했다.


마지막 단락에서는 '뭐가 무서운가요?' 이 문장 하나로 여전히 무섭지만 재미난게 더 좋아 이 즐거움을 못 놓고있는 쨍쨍의 인생 모토를 느끼게 했다. 위험한건 남미뿐이 아니라 집 나오면 위험한 곳 천지라는 말로 조심하면 된다고 간단 명료하게 말했다. 가지 말라는 곳 가지 않고, 먹지 말라는 거 먹지 말고, 해 지면 숙소에 있는 거지요. 로 말끔하게 불안을 잠재우는 그의 바른 여행 가이드. 그녀가 말한 이야기 안에서만 자유롭다면 나 홀로 여행도 무서울 것이 없고, 중학교 영어 실력이면 전 세계를 다닐 수 있다는 산뜻한 답으로 마음 풀고 즐겁게 여행하라 하니 이래서 계속 여행을 하고 세상을 날고 있구나를 느꼈다.


좀 무섭더라도, 좀 힘들더라도, 좀 외롭더라도 혼자 여행하는 것이 차라리 좋다는 사람. 혼자여도 '쨍쨍'한 맑음을 전하는 사람. 그녀와 여행지에서의 만남은 어려울지라도 그녀가 마련하는 북토크로 나도 쨍쨍한 기운을 얻고싶어진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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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변기의 역학 TURN 3
설재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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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기반으로 한 배경에 판타지적 요소를 얹어서 세상은 호락호락 하지 않음과 함께 내가 원하는 것이 가장 평범한 삶인데, 그 평범함이 가장 어렵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이야기로 보였다. 그리고 내가 익히 아는 그 소설과 많이 닮아 있어서 설재인 버전의 정보라의 '머리' 외전이라 봐야 하나 생각하며 소재만 당겨 왔기를, 중후반부는 또 다른 이야기이기를 바라며 읽었던 듯 하다.

그리고, 이 책은 정보라의 머리를 읽을 때 만큼이나 뭘 먹으며 읽지는 못한다. 책을 읽을 때에 항상 커피나 차를 곁에 두고 가장 편한 자세로 읽는 사람인데 무얼 마시거나 먹으며 볼 수 있는 소설은 아니었다. 변기가 나와서 만은 아니다. 모친의 신체 일부를 깎아 버리는 행위를 통해 얻어지는 자식의 자존감이 한몫했다. 사회가 필요로하고 쓸모있는 사람으로서의 확장이 변기속 버려지는 무언가 만큼이나 속을 꿀렁거리게 만들었다. 부모와 자식간의 내리사랑과 치사랑의 문제가 아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서 홀대받는게 익숙해지는 환경과 사랑받지 못함으로서 쌓여가는 분노와 거리감은 애틋함의 관계와는 정 반대의 시선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아침에 회사가고 저녁에 퇴근 하는 삶을 영위해 가는 것에 발판이 되거나 이 나이 대에 다들 그렇게 사는 것처럼 독립해서 내 공간을 이루며 사는 삶. 제 목구멍에 풀칠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쓸모있는 인간으로 구분 할 수 있는 구실로 부모는 하나의 수단이 되어버린다. 어떤이는 501호와 401호의 남녀가 요즘 말하는 다단계에 빠져버린 귀 얇고 세상물정 모르는 청년들이라 치부 할 수 있겠지만 그 시대를 같이 겪어 나가는 또래인 내가 보기엔 오죽했으면 이라는 말을 읊조리며 딱하고 짠하게 보게된다.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지속적인 무시와 하대를 받는 이들이 유일하게 대우받고 응원받았던 집단이 그곳이었는데 어느 누가 그 달콤한 이야기에 넘어가지 않을까. 봉수파괴는 그 건물 청년들의 자존감도 함께 하수구로 끌어내린 것으로 다양하게 의미를 부여하게된다.


📖진짜 마지막 효도다, 하고 갔다가 진저리를 치며 돌아오고. 그런데 또 몇 달이 지나면 그래도 연락은 해야 하지 않나, 하고 전화를 걸고. 그럼 엄마가 막 우리 아들, 우리 아들, 하고 울잖아요. 그러면 내가 되게 큰 잘못을 저지른 기분이 들어요.

열 손 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은 진실이 아니다. 열 손 가락 깨물면 다 아프긴 한데, 유독 더 아프고 더 아린 손가락이 있다. 일정하게 배분되는 공통의 애정은 없다는 걸 나누는 부모는 모르겠지만 받아본 자식놈들은 다 느낀다. 그래서 속으로만 미워할 뿐이다. 아프다고 악을 쓰고 더 울어대면 영영 봐주지 않을까봐 눈치를 가득 보는 손가락들은 이 악순환이 익숙할지도 모르겠다. 괜히 저 혼자 걱정하고 저 혼자 짐작하는게 습관이 된 것을 보면 아정은 장녀라는 포지션과는 별개의 손가락이다. 유독 그런 자식들이 있다.



📖과장님, 어렵게 생각하시면 안 돼요. 그냥요. 내가 지금 무엇 때문에 불행한지 생각하고 그 불행의 원인을 제거할 방도가 무얼까 고민해보면 돼요. 없던 방도를 우리가 만들어주는 거거든요. 그 자리만 긁어 줄 수 있으면요, 아무리 돌려 말해도 고객들은 척하면 착 알아들어요.

사람을 혹하게 하는 대단한 언변과 함께 이른바 우쭈쭈해주는 직장 상사와 동료가 있는 공간. 그러니 뭘 더 잘 해보려 애쓰게되는 두근거림이 가득한 모습을 보면 아정이나 상기나 자라오는 과정과 성인이 된 지금까지 인정욕구의 충족이 이뤄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더욱 이 실버스파클의 집단에 목을 메는 상황을 볼 수 있었다. 직장이 있어야 낮에 모친과 한 공간에서 티격태격 하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있겠지만 남들이 다 갖는 소속감과 사회구성원으로서의 필요성을 맛봤기에 더욱 결연해짐을 알 수 있다. 자신만이 자신같은 사람들을 구제 해 낼 수 있다고 여기는 히어로의 환상이 너무 크게 씌워졌다.



📖제가 진짜 막막할 때마다 엄마가 마지막 보루였거든요? 무조건 내 편 들어주고 돈도 어떻게든 끌어다가 메꿔주고. 그런데 이제 엄마가 말을 못 하잖아요. 그럼 내 편은 누가 들어주지. 없는 거예요. 정말 아무도. 엄마 목소리를 못 듣게 되니까 바보처럼 그제야 알겠는 거예요. 이제 나 완전히 혼자라는 걸.

미운데 계속 미워 할 수 없고, 싫은데 안 보면 마음에 걸리고, 끊어내고 싶은데 그럼에도 자신의 마지막 끄나풀 같은 존재가 모친이라서 서로를 할퀴는 조합. 상기는 엄마가 마지막 보루였다 했고, 아정은 엄마가 마지막 핑계거리였으며 자신을 이 좁고 막혀있는 화장실에서 구제 해 줄 유일한 존재로 인물설정을 다시 하게된다. 사랑하니까 걱정되고, 사랑하니까 계속 신경쓰며 싫은 소리도 하게된다는 그러한 애증의 표본처럼.

당신이 빚어낸게 난데, 나를 끝까지 책임지지 않고 뭐하냐는 식의 상기와 아정의 투정어린 변명. 이 지긋지긋한 관계는 한쪽만의 액션으로 이뤄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쟤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쌍방과실이지 모.


📖맞아본 적이 없는 애들은 꼿꼿하게 앉아 있는 자세에서부터 티가 났다. 걔들은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주로 관찰했고 자주 경탄했으며 무엇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듯 보였다. 언제나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에. 집이라는 이름의 방공호가 있기 떄문에. 집이 방공호라니. 말이 되는 소리인가. 어린 아정에게 집은 가장 위협적인 곳, 몸을 가장 아프게 하는 곳이었다.

자기가 원하는 만큼의 모성애를 얻어 내진 못했으나 남들이 차고 넘치게 얻어가던 그 모성애를 눈으로 봐오며 자랐기에 그게 필요로 하지 않은 성인이 된 지금에도 채워지지 않은 그 결핍에 욕심을 내게된다. 재물의 부유함이나 여건의 풍족함보다 아정은 심적으로 채워지지 못한 그 결핍이 봉수파괴 만큼이나 하수구로 쓸려내려간 자신의 존재의 의미와 가치로 설정을 해 둔 듯 했다.


저자는 이들과 비슷한 여건으로 이 이야기의 시작점을 얻어냈다. LH에서 공급하는 전세형 청년매입 임대주택은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청년들을 위한 하나의 제도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곳을 가고싶어도 못 하는 부류, 그 곳에 안착하게되었지만 영원하지 못한 임시의 공간이라 불안해 하는 부류, 더 나은 더 그럴듯한 조건과 비교하며 한없이 작아지는 부류간의 갈등도 길게 이어가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의 감정봉수파괴를 드러낸 것이다. 그게 정보라의 머리와 맞물린 것이고, 그 단편에 외전이라는 또 하나의 갈래로 결론을 짓게된다.

후반부에 아정이 갖혀있는 욕실에서 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써가며 모친의 조각들을 이리저리 맞추는 과정은 웃프면서도 찌질의 끝을 보여준다. 혈연으로 엮인 존재의 덩어리였다가 제 손으로 깎아내어 소각되지 못한 채 하수구로 버려지는 무쓸모의 그것을 긁어모아서라도 제 삶에 끄나풀을 만들려는 간절함. 지속적으로 하대하던 모친의 잘못일까, 사랑하는 이로서 남겨두지 못하고 깎아내어서라도 야금야금 없애버리고 싶었던 아정의 잘못을까. 그저 봉수파괴로 인해 욕실에 가둬질 수 밖에 없던 상황의 잘못일까. 모든것을 그 변기 탓이라 하고 싶지만 연대 책임으로 한대 묶어 쓴소리 한판 하고 싶어지는 현실감 낭낭한 단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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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
남유하 지음 / 사계절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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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는 독자의 한 문장에 전자책이 아닌 손에 쥐어지는 종이책으로 읽고싶어졌다. 존엄한 삶과 죽음. 그리고 자신이 선택하는 생의 끝. 가족의 애틋함에 덧붙여보는 존경어린 선택.

생의 끝, 타인과 작별의 순간이 나에게는 영영 오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나만 나이먹는 거라고 여겼으나 나 만큼이나 나의 부모, 나의 가족들도 세월을 버텨내고 순간순간 다가오는 병마와 살아내고 있음에 이 이야기 또한 별개의 세상은 아니라는걸 깨닿는다. 몇 해 전 나의 가까운 가족도 비슷한 암의 경로로 세상을 달리하셨다. 그걸 온전히 봐오고 곁에서 작별을 하는데 그간 견뎌낸 고통의 순간이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가늠해보지만 헤아려 본들 본인만 못하다는걸 안다. 차라리 빨리 끝내고 싶어했던 그 마음. 그걸 바라보는 가족의 입장. 모든게 이 책에 담겨있었다.

삶의 끝에 다다른 이를 보는 것, 그리고 자신의 생이 저물고 있다는 걸 인지하는 당사자. 서로의 이야기들. 그리고 그 애틋한 마음에 대한 이야기.

평생 모르고 살고싶지만 그럴 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 대한 것까지. 울컥하는 마음이 자주 밀려오는 문장 속에서 담담함을 챙겨 완독해본다.


프롤로그에 이어지는 '여덟 장의 사진'으로 나누어보는 딸이 생각하는 어머니의 삶의 기점들. 이 글의 주인공이자 저자의 어머니인 조순복님에 대한 단락들이다. 첫 번째 사진으로 꼽는 교복입은 소녀에 대한 단상. 사진으로 가늠하는 나의 엄마가 누렸을 학창시절. 내가 아는 엄마에게서 비춰보는 파릇한 봄과도 같은 소녀의 순간을 떠올리며 가장 빛났을 그 때를 스케치해본다. 엄마와 아빠가 함께 사진관에서 찍은 모습에 아이들이 하나씩 추가가 되고, 아이들이 자란 후 당신의 회갑, 건강하게 생을 마치길 바랬으나 전이 판정을 받은 후 바람쐬러 갔던 날의 사진, 관에 누워 달빛처럼 하얗고 화사하게 안녕을 고하는 장면까지. 생의 일대를 보며 화사하게 피었고, 유난히 반짝였으며, 마지막까지 어여쁜 그녀를 떠올린다. 사진이라 했지만 독자에게 사진을 보여주지 않았기에 나는 그녀의 실루엣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명복을 빈 후에 이야기를 따라간다.



📖기적이 일어나 내일 엄마가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얼마나 큰 기적이 일어나야 엄마가 떠나지 않을 수 있을지, 이 과정을 거치는 내내 상상해봤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멀리 왔다. 카린이 말하는 기적은 판타지일 뿐이었다. 내게 기적은 엄마가 무사히 비행기를 타고 스위스까지 온 것이었으며, 엄마가 내일 무사히 마지막 소원을 이루는 것이다.

암, 완치, 재발, 전이. 익숙한 단어다. 그리고 암의 종류 또한 너무 잘 아는 녀석이며 빠르게 온 몸으로 퍼지는 야속한 놈의 속성에 벌써 4년이나 지난 그때를 어찌 잊을까. 괜찮다 싶었고 몇번의 검사 후 괜찮다는 말에 안도했던 그때. 그 땐 괜찮았는데 갑자기 지금에서야? 라는 물음과 함께 왜 알아차리지 못했던걸까를 생각하며 그때 못 발견한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만 지금이라도 기적을 바란다면 내가 그리 큰 욕심을 부리는걸까를 탓하는 마음. 헌데 그리 큰 고통을 겪으며 차라리라는 말로 대변하는 결정에 뭘 더 얹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된다. 붙들고 있는 것이 나의 욕심이고, 놓지 못하는 것이 나의 고집이며, 움켜 쥐려 하는 것이 나의 미련임에 나라도 당신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거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엄마는 나를 안쓰러워했고 나도 내가 안쓰럽다고 생각했다. 진짜 안쓰러운 사람람은 엄만데.

"엄마 보고 싶으면 거울 보고 얘기해. 알았지?"

아닌 사이도 많겠지만, 특히나 엄마와 딸은 그렇게 애증도 가득하고 애틋함도 그득하다. 결국 나는 당신을 닮아가고 있으며, 당신의 일부인 나를 놓고 먼저 가는 마음이 오죽할까. 다 큰 자식놈이라도 당신의 눈엔 마냥 어리고 모자란 딸처럼 여겨질텐데 내 아린 마음 만큼이나 찢어질 당신의 애간장이 닳아가겠지. 그 와중에 귀걸이 소독해서 쓰라 하고, 덤벙대지도 조급증 부리지도 말라는 말에 발에 채이는 자잘한 핑계거리를 삼아 당부를 덧붙여 길게 늘여보는 말꼬리들. 영혼이 있는지, 사후 세계가 진짜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껍데기를 붙들고 살게 뻔해보이는 딸이 더 마음쓰이는 모습에서 엄만 어쩔 수 없구나를 생각한다. 당장 당신의 세상이 멈춘다는데 그건 뒷전이니 말이다.

책에서 안락사, 존엄사, 조력사망, 조력자살이라는 용어가 혼재되어있다. 굳이 하나의용어로 통일하지 않았고, 글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단어를 달리해 문장을 이어갔다. 그리스어에서 시작된 안락사를 내밀어 좋은 족음의 결합을 받아들이도록 선택한 경우도 있고, 존엄사를 골라 사망이 임박한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해 존엄하게 삶을 마감할 권리를 인정하는 의미를 수렴할 수 있게 골라둔 문장도 있다.



어머니의 형제를 통해서도 각기 다른 반응을 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의 마지막 작별을 할 수 있었던 삼촌과 꼬마이모. 다른 형제는 당신의 결정과 자식이 막지못한 선택에 탐탁치 않아 했고 진짜 마지막이란 말에도 내비치지 않았던 이들을 통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다양한 모습도 저자는 존중했으며 강요하지 않았다. 오롯이 엄마 당신의 삶이었으니 당신이 끝맺는다는 결정권에 대해서는 모두가 제 3자의 입장이니 왈가왈부 할 수 없다는게 자식의 도리라 여긴 것도 있겠다. 그리고 배우자 역시도 그 의미를 알았다. 죽음의 문턱에서 선을 넘느냐 마느냐의 간당간당한 기로에서 매번 악을 쓰고 아파했고, 독한 진통제에도 잠깐뿐인 상황이 원하는 생이 아니었음을 인지했겠지. 그러니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 사람 소원을 못 들어주겠냐는 심정이라 부녀의 조력에 공감을 얹게된다.


어머니를 보낸 후에도 그녀가 원했던 생에 끝에 대한 응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은 딸. 가족의 부재에 대한 상실은 물론 있지만 그녀를 추모함에 있어서는 감정을 가두거나 외면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다들 하는 것들. 장례에 관한 것과 작별의 방식도 생전 당신이 원하던 바에 최대한 맞추려 애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른 이들도 당신처럼 스위스까지 멀리 날아가 생을 끝마치는 수고스러움이 없기를, 눈물로 작별하지 않기를, 웃으며 안녕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그러니 이러한 존엄한 마지막을 다같이 존중해주는 사회적 분위기를 이끌어내는데에 다같이 힘을 보태어주기를. 붙들고 싶은 가족의 마음도 있지만 당사자가 원하는 웃으며 안녕하는 법을 보장해주기를. 이 또한 변해가는 삶의 방식임을 알아주기를.



다음달이면 시어머니의 4주기가 된다. 저자의 어머니처럼 같은 상황이었고 전이 속도며 전이 방향도 비슷했다. 그리고 급작스러웠고, 많이 고통스러워하셨다. 가족들은 그녀를 더 붙들지 않기로 했으며 당사자 역시 무의미한 생의 연장을 원하지도 않으셨다. 그렇게 보내면서도 슬픈건 매한가지다. 그리움의 역치는 계속 존재했고, 소실되지 않는 애닳음의 에너지였다. 그걸 어찌 지울 수 있겠는가. 그저 생의 끝에 아쉬움과 미련보다는 함께 당신을 보낼 수 있었던 순간에 감사해야지. 눈은 울고있지만 더이상 아프지 않을거라며 억지로 웃으며 안녕을 고하고, 마지막까지 존재한다는 청력을 빌어 귓속말로 사랑한다 거기서도 잘 지내라는 말이 최선의 배웅이었다.


죽음에 관해서는 차례가 없다고 한다. 누가 먼저 갈 지도 모르고 어떠한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르니 여기에 대고 존엄사에 대한 이유를 들먹이려 하는게 아니다. 나의 시어머니나 저자의 어머니가 겪었던 빤히 보이는 고통의 연장에 대해. 나아질거라는 기미가 보이지 않고 고통의 폭만 깊어지는 상황. 생의 끝을 준비함에 있어 외롭게 병실에서 마무리 하기보단 스스로가 결단하며 사랑하는 이와 눈맞춤 할 수 있을 때에 하는 찐한 작별의 마침표를 바라는 이가 있다면 그 의견을 존중해주고 싶다. 당신이 원하는 끝이 이거라면 그걸 해주고픈 마음. 사랑하는 이가 마지막으로 요청하는 소원이며,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이가 들어주어야하는 마땅한 바람인 것. 이 법안이 통과되기 위해서는 많은 경우의 수도 필요 할 것이며, 다양한 사례가 기반이 되어 쉬운 승낙은 아니겠다만 이러한 마음을 가진 이도 있다는 것을 한 번 쯤은 들어주길 바라게된다.


당신이 생에 끝자락에 있다면, 이걸 선택 할 것인가? 그 모든건 당신이 내키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 해도 되는 것이다. 그걸 알려주고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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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스페이스 M 위픽
김유담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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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현실을 고스란히 지면에 옮긴 듯 생생하고 구체적인 묘사로 청년과 여성, 노동자의 불안과 혼란을 비추어 '스페이스 M'을 통해 현실적인 비현실을 구현했다. 내 한 몸 누일 곳 = 일터에서 돌아와 사랑하는 가족과 웃으며 마음 편하게 밥을 지어 먹고 기분 좋게 잠들 수 있는 공간 = 집 = 하지만 행동반경이 멀 수 밖에 없는 각각의 세상 = 일터로 가는 동안 버려지는 시간과 버려지는 체력에 대한 씁쓸한 한탄을 담아두었다.

평생 뼈 빠지도록 일했지만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한 가사도우미 연순, 연순의 도움을 받아 친환경적인 삶인쳑 보여지는 톱스타 지유. 이제 하고 싶은걸 해 보고 싶다며 단칸방을 얻어 나갔지만 사라진 연순의 딸 하나, 사회초년생을 위한 공간인 스페이스 M 사업을 하는 선호. 어떤 이에게는 부러운 삶. 어떤 이에게는 돈이 되는 삶. 또 누군가는 매번 동경하게되는 허울좋은 삶의 낯짝에 대한 것들을 보이는데 계속 비교하고 각자의 세상을 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보인다.

그렇다. 열심히 벌어도 안 되는건 안되더라. 온전하게 지어진 집에 누우면 나를 안전히 감쌀 천장이 있는 곳. 떳떳하게 집이라 부를 수 있는 곳. 걱정없고 불안함 없이 지낼 수 있는 내 세계. 그건 내 윗세대에게 물려 받거나 내 입에 풀칠 할 수 있는 정도의 여력이 되어야하며, 손에 쥐어지는 돈이 있더라도 넉넉해야만 누릴 수 있는 행복이자 행운이었다. 의식주가 사람의 기본 권리라 했는데 마지막 주가 이렇게 어려 울 것이라는건 생각지도 못했다. 부모의 울타리를 벗어나 내 가정을 꾸리면서 마련한 집은 온전한 내 집이 아니다. 반 정도는 은행의 몫이라는 것. 그래서 매달 은행에게 야금야금 한뼘 가량의 집세를 주고 조금씩 얻어가는 공간의 확장. 그래서일까 하나가 학창시절 겪었던 에피소드들이 남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직장과 가까운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뼈저리게 공감하는 왕복 60KM 거리를 매일 출퇴근하다보니 저자는 이러한 생활을 해 본 사람이지 않을까를 생각하게된다. 나야 뭐 자차를 운전하는 사람이지만 콩나물 시루속에 갖힌채 어디론가 싣려가는 듯한 지옥처를 타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하나의 마음에 공감하리라 본다.

📖그래, 원래 집은 이런 곳이지. 바깥에서 들고 들어온 복잡한 생각이나 걱정 따위는 저만치 치워두고 쉴 수 있는 곳. 일터에서 돌아와 사랑하는 가족과 웃으며 마음 편하게 밥을 지어 먹고 기분 좋게 잠들 수 있는 곳...... . 그건 누구나 당연히 누리는 일상 같지만 누구에게나 이런 일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걸 연순은 잘 알았다.

엄마이자 중년의 연순은 조만간 다가올 내 미래처럼 여겨지고, 하나가 바라는 간절함과 과거의 항처는 내 학창시절과 닮아있음을 느낀다. 딴 세상 사람의 이야기처럼 여겨지는 지유는 동경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넘을 수 없는 유리벽 너머의 삶이라 탐은 나지만 넘봐선 안되는 금기의 무엇처럼 느껴졌다. SNS에서 보이는 인플루언서의 삶 그 자체니까. 시쳇말로 똥을 싸도 박수받는 삶이 딱 저런거니 부럽기만 한 것 그뿐이다. 그렇게 시달리고 지친 사람 앞에 나타나 동아줄이 된 것 마냥 구원해 줄 거 같은 존재. 그러니까 간절 한 놈 앞에서 살랑살랑 현혹하는 달디단 이야기를 하는 선호. 자선사업가가 아닌 이상, 그리고 무언가에 헌신하는 것에 생을 받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손해보는 짓은 하지 않는게 사람인지라 책에 마저 담지 않은 선호의 뒷 이야기는 아마 우리가 익히 아는 그 수순으로 가지 않을까 싶어진다. 지유와 공개 연애를 들키는 척 의도가 가득해보이는 파파라치 사진들 하며, 기가막힌 타이밍으로서 하나를 꾀는 것, 하나 뿐만 아니라 연순까지 혹 하게 하는 달콤한 이야기까지. 나만 몰랐지 다들 알음알음 연락을 받고 입주를 하거나 소개를 하며 자기들만의 세상을 꾸려 선호가 꾸린 세상이 가장 안전하다는 듯 살고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누군가의 간절함은 이걸 가진자들의 먹잇감이 될 수 밖에 없는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선호가 쌓아둔 세상이 아니더라도 저자가 말했듯 우리가 사는 세상의 아파트 단지만 봐도 안다. 같은 아파트라 하더라도 연식이 있거나 외진 곳에 있는 아파트와 새로 꾸려진 신도시 도심에 커뮤니티공간이라며 모든 생활 여가 시설이 다 있는 곳을 보면 역시 돈이 좋구나를 느끼며 우리는 언제 새 아파트로 갈까 하며 남편과 씁쓸한 이야길 했던 기억이 스치게된다.

남들과 비교하면 한없이 작아지며 나름대로 잘 꾸리고 있다 여겼던 내 삶이 모자람투성이처럼 보여져 온몸의 피가 바닥으로 꺼지는 기분이 들곤 한다. 스페이스M의 세상을 바라기보다 지금 내 세상, 내가 머무는 스페이스에서 최대한의 만족을 느끼는 존재로 살고싶어진다.(장소와 여건을 못 바꾸니 차라리 나를 바꾸는게 빠를것이라 생각을 달리해보는거지. 그건 돈 안 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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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위태로운 천년의 거인들 - 개발과 손익에 갇힌 아름드리나무 이야기
김양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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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노거수들을 사라져가는 세상의 차양이라 표현했다. 대한민국 곳곳에 숨은 노거수의 기쁨과 슬픔에 대한 마음들을 담아둔 글들. 여기에는 쥐라기부터 생존해 지금은 유일한 종자 전파자이지만 인간에 의지해 살아가는 은행나무. 기온을 낮추고 대기를 정화하지만 '전깃줄에 걸린다'며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략한 플라타너스, 벼락 맞고도 가득 꽃을 피워내며 생의 의지를 꽃피우는 500살 당산나무. 굳이굳이 산 깍아가며 골프장 지어 자연을 살리겠다는 지자체와 개발업자를 보면 뻔히 보이는 속내를 허울로 덮어내며 검은 속내를 비추는 꼴에 '자신이 하는 말이 앞뒤가 맞다고 여기는걸까?'를 진심으로 의심하게 만드는 취재일지가 기록되어있다.

말 못하고, 표현하지 못한다고 제 멋대로 해석하고 제 멋대로 행하려는 것에 어떤 답을 해 주어야 할까.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자는 도덕적이며 평화로운 말들로 구슬릴 생각은 없다. 어차피 그러한 말들이 안 먹힐 닳아버린 인간이니까. 하지만 마냥 밀어낸다고 능사는 아닐텐데 한번 쯤은 귀에 인이 박히도록 알려주고픈 바람가득한 이야기다.


📖부산 회화나무_ 안타깝게도 맨 처음에 누가 심었는지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요. 그래도 '학자수'라 부르는 회화나무를 마을 사람들이 매일 모이는 곳에 심은 걸 보면 '우리 마을에 똑똑한 아이들 많이 나와라'하는 염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신앙을 믿는 것 아니지만 그래도 바라게되는 마음들이 있다. 정월 대보름에 둥글고 환한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고, 연초에 떠오르는 해를 보고 올 한해도 무탈하길 바라는 마음들. 그러한 진심어린 기대를 회화나무에게도 빌었을 사람들의 간절함을 생각하면 단순히 마을을 지키고 표식처럼 여길 나무를 넘어선 존재의 힘을 빌었으리라 보인다.

이 나무를 알은체 할 수 있는 이유가 내가 다닌 대학가 주변 동네의 이야기라 들었던 기억이 생생해 집중해서 보게 되었다. 한 때엔 소망하는 마음의 두터운 기둥같았으나 과거의 기도와 염원에 반한 현재의 상태. 정상 생육이 힘든 모습을 보면 말못하는 녀석이 얼마나 울부짖었을까를 생각하게된다. 이렇게 감정을 이입하지 않더라도 잘려지고 감겨있는 모습은 짠하기 그지없다. 인간의 이기심 만큼 잘려나간 가지들은 난도질한 톱질 횟수만큼 우리가 얼마나 자연을 홀대하고 사는지를 보여주는 결과물처럼 보였다. 재개발이슈가 당장의 이득에 더 크게 와닿는걸 모르지 않는다. 다만 이러한 방법이 능사는 아니었을텐데 라는 아쉬움이 클 뿐이다.



📖청주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_ 이 거대한 나무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평화롭고 영감을 주는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자연의 장엄함을 가까이서 보고, 미래 세대를 위해 자연의 경이로움을 보존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매번 수목원을 찾고, 산을 오르며 삼림을 즐기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보니 부러 숲처럼 조성된 카페를 찾고, 빌딩촌 틈에 작고 작은 정원과 가로수길에 눈을 돌린다. 점심시간만 되면 우르르 쏟아져나와 커피 한잔을 손에 쥐고 가로수길을 걷는 이유. 백색의 모니터 세상에서 벗어나 푸르름에 눈길을 돌려 쉬어보는 것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자연스레 하게되는 행동이다. 그래서 나 역시도 도심속 힐링의 찰나인 가로수길을 좋아하고 산책로에서 부서지는 햇살과 반짝이는 잎사귀들을 애정한다. 그런데 참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나무를 베고, 또 후회를 하며 도심 대기온도를 낮춘답시고 다시 나무를 사들여 나무를 심는 과정을 반복하는 걸 보면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옛말을 떠올리게된다.



📖제주 비자림로 삼나무 숲길_ 삼나무는 제주 사람들을 먹여 살린 나무예요. 방풍용으로 심어서 밀감나무를 지켜줬잖아요. 그걸로 제주 사람들이 먹고살았죠. 이제는 필요 없다고 잘라버린다고요? 사람들이 부정적인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죠. 나무를 자르면 나무만 없어지나요? 온갖 생명체가 다 사는 게 나무잖아요.

제주를 갈 때마다 짧지만 꼭 들려보려 애썼고 어느 계절과 어느 날씨에 방문하여도 다 좋았던 기억이 있는 장소다. 해안로 못지 않게 숲길이 주는 차분함이 좋아서 짧은 여행일정에서도 가게되는 예쁜 곳. 그래서 남편과 함께 갔던 추억이 켜켜이 쌓여있던 곳이기에 이 기사를 접했을때 내 머릿속에는 '왜?'라는 물음이 계속 맴돌았다. '굳이'를 넘어선 진실로 묻고싶어지는 '왜?'라는 반박의 탄식.

지금껏 유지되어온 이유. 그리고 여태껏 이 숲을 가꾸고 지키려 했던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보이는 세월이다. 숲과 자연, 환경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은 나 조차도 이건 계속 지켜야 하는 세상처럼 보였는데 도로 확장 공사라니. 이 도로가 생김으로서 물류적이나 생산적인 이점은 확실히 다르겠다만 이전의 행정 시행에서도 이 곳을 개발하지 않고 보존하려 했으며 우회하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절차였을텐데 역시나 모든건 당장의 이익이고 눈에 보이는 실적에 해당하는 것에는 늘 같은 결말같아 씁쓸하다. 나 역시도 절차는 무시된채 결과만 인정받는 집단에 있어 그걸 모르진 않으나 일의 순서라기보단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의 가치는 확실히 다른 결과를 도출 할 것인데 지역이 가진 특성과 세월이 만들고 돈으로 메꿀 수 없는 것에 대한 가치는 늘 뒷전인거 같아 우리부부의 추억 하나도 도려내어 진 것 같아 마음이 아렸다.

저절로 자라고 훌륭하게 가꿔진 대견한 숲과 나무들인데 괜히 알은체하고 시선을 옮겨둬서 이 사단이 난듯 해 미안한 마음이 커진다.

(이 책을 읽다보면 계속 미안한 마음이 쌓인다. 내가 한 일은 아니지만 나도 한통속인 인간인지라 연대책임의 짐을 얻은 기분)



📖서울 궁산 나무 지도_ '아름다운 나무'가 아니라 '사람만 없으면 아름다운 나무'라고 이름을 바꿔야 하는건 아닌지.

조화와 균형, 상생에 대한 끊임없는 생각을 하게만드는 단락들에서 결국 마지막 이유는 사람과 욕심으로 끝이 나는 듯 하다. 한 때는 열렬히 애틋했고, 또 한 때는 눈에 불을 켠 듯 미워했던 마음이 결국 이 사달로 표현되었다. 또 어떠한 경우는 외면과 무심함도 있겠지. 시간은 흐르고 세상은 변했고, 여건이 달라졌으며 그로 인해 사람은 계속 바뀐다지만 그 변해가는 과정에서 나무들은 묵직하게 기다려줬고 버텨내고 있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다시 돌아와 쉬어갈 인간을 위해 진득함으로 바라만 봐주는 마음을 배운다. 노거수를 통해서 변해가는 세상도 알게 되지만 행정적 문제와 사회적 세태에서 드러나는 소외되는 목소리의 의견에 주목 할 수 있었다. 모든게 완벽한 행정자치가 있을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다. 과거에도 그래왔고 현재에서도 모두를 수렴한 안건과 시정 절차는 없었으니까. 다만, 나무 한 그루를 잃는 것에 대해서 가볍게 생각하고 나무가 옮겨지거나 관리되어가는 것에 있어 대수롭지 않다는 마음을 거두어주길 바라게된다. 결국 그리 한 후 후회하거나 배로 드는 비용과 수고로움 역시 인간이 해야하는 업이 될 테니 두 번 일하는 바보같은 짓을 또 하지 않았음해서 잔소리를 보태본다.


📖하니포터 10기로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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