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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
남유하 지음 / 사계절 / 2025년 1월
평점 :

이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는 독자의 한 문장에 전자책이 아닌 손에 쥐어지는 종이책으로 읽고싶어졌다. 존엄한 삶과 죽음. 그리고 자신이 선택하는 생의 끝. 가족의 애틋함에 덧붙여보는 존경어린 선택.
생의 끝, 타인과 작별의 순간이 나에게는 영영 오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나만 나이먹는 거라고 여겼으나 나 만큼이나 나의 부모, 나의 가족들도 세월을 버텨내고 순간순간 다가오는 병마와 살아내고 있음에 이 이야기 또한 별개의 세상은 아니라는걸 깨닿는다. 몇 해 전 나의 가까운 가족도 비슷한 암의 경로로 세상을 달리하셨다. 그걸 온전히 봐오고 곁에서 작별을 하는데 그간 견뎌낸 고통의 순간이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가늠해보지만 헤아려 본들 본인만 못하다는걸 안다. 차라리 빨리 끝내고 싶어했던 그 마음. 그걸 바라보는 가족의 입장. 모든게 이 책에 담겨있었다.
삶의 끝에 다다른 이를 보는 것, 그리고 자신의 생이 저물고 있다는 걸 인지하는 당사자. 서로의 이야기들. 그리고 그 애틋한 마음에 대한 이야기.
평생 모르고 살고싶지만 그럴 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 대한 것까지. 울컥하는 마음이 자주 밀려오는 문장 속에서 담담함을 챙겨 완독해본다.
프롤로그에 이어지는 '여덟 장의 사진'으로 나누어보는 딸이 생각하는 어머니의 삶의 기점들. 이 글의 주인공이자 저자의 어머니인 조순복님에 대한 단락들이다. 첫 번째 사진으로 꼽는 교복입은 소녀에 대한 단상. 사진으로 가늠하는 나의 엄마가 누렸을 학창시절. 내가 아는 엄마에게서 비춰보는 파릇한 봄과도 같은 소녀의 순간을 떠올리며 가장 빛났을 그 때를 스케치해본다. 엄마와 아빠가 함께 사진관에서 찍은 모습에 아이들이 하나씩 추가가 되고, 아이들이 자란 후 당신의 회갑, 건강하게 생을 마치길 바랬으나 전이 판정을 받은 후 바람쐬러 갔던 날의 사진, 관에 누워 달빛처럼 하얗고 화사하게 안녕을 고하는 장면까지. 생의 일대를 보며 화사하게 피었고, 유난히 반짝였으며, 마지막까지 어여쁜 그녀를 떠올린다. 사진이라 했지만 독자에게 사진을 보여주지 않았기에 나는 그녀의 실루엣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명복을 빈 후에 이야기를 따라간다.

📖기적이 일어나 내일 엄마가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얼마나 큰 기적이 일어나야 엄마가 떠나지 않을 수 있을지, 이 과정을 거치는 내내 상상해봤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멀리 왔다. 카린이 말하는 기적은 판타지일 뿐이었다. 내게 기적은 엄마가 무사히 비행기를 타고 스위스까지 온 것이었으며, 엄마가 내일 무사히 마지막 소원을 이루는 것이다.
암, 완치, 재발, 전이. 익숙한 단어다. 그리고 암의 종류 또한 너무 잘 아는 녀석이며 빠르게 온 몸으로 퍼지는 야속한 놈의 속성에 벌써 4년이나 지난 그때를 어찌 잊을까. 괜찮다 싶었고 몇번의 검사 후 괜찮다는 말에 안도했던 그때. 그 땐 괜찮았는데 갑자기 지금에서야? 라는 물음과 함께 왜 알아차리지 못했던걸까를 생각하며 그때 못 발견한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만 지금이라도 기적을 바란다면 내가 그리 큰 욕심을 부리는걸까를 탓하는 마음. 헌데 그리 큰 고통을 겪으며 차라리라는 말로 대변하는 결정에 뭘 더 얹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된다. 붙들고 있는 것이 나의 욕심이고, 놓지 못하는 것이 나의 고집이며, 움켜 쥐려 하는 것이 나의 미련임에 나라도 당신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거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엄마는 나를 안쓰러워했고 나도 내가 안쓰럽다고 생각했다. 진짜 안쓰러운 사람람은 엄만데.
"엄마 보고 싶으면 거울 보고 얘기해. 알았지?"
아닌 사이도 많겠지만, 특히나 엄마와 딸은 그렇게 애증도 가득하고 애틋함도 그득하다. 결국 나는 당신을 닮아가고 있으며, 당신의 일부인 나를 놓고 먼저 가는 마음이 오죽할까. 다 큰 자식놈이라도 당신의 눈엔 마냥 어리고 모자란 딸처럼 여겨질텐데 내 아린 마음 만큼이나 찢어질 당신의 애간장이 닳아가겠지. 그 와중에 귀걸이 소독해서 쓰라 하고, 덤벙대지도 조급증 부리지도 말라는 말에 발에 채이는 자잘한 핑계거리를 삼아 당부를 덧붙여 길게 늘여보는 말꼬리들. 영혼이 있는지, 사후 세계가 진짜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껍데기를 붙들고 살게 뻔해보이는 딸이 더 마음쓰이는 모습에서 엄만 어쩔 수 없구나를 생각한다. 당장 당신의 세상이 멈춘다는데 그건 뒷전이니 말이다.
책에서 안락사, 존엄사, 조력사망, 조력자살이라는 용어가 혼재되어있다. 굳이 하나의용어로 통일하지 않았고, 글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단어를 달리해 문장을 이어갔다. 그리스어에서 시작된 안락사를 내밀어 좋은 족음의 결합을 받아들이도록 선택한 경우도 있고, 존엄사를 골라 사망이 임박한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해 존엄하게 삶을 마감할 권리를 인정하는 의미를 수렴할 수 있게 골라둔 문장도 있다.
어머니의 형제를 통해서도 각기 다른 반응을 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의 마지막 작별을 할 수 있었던 삼촌과 꼬마이모. 다른 형제는 당신의 결정과 자식이 막지못한 선택에 탐탁치 않아 했고 진짜 마지막이란 말에도 내비치지 않았던 이들을 통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다양한 모습도 저자는 존중했으며 강요하지 않았다. 오롯이 엄마 당신의 삶이었으니 당신이 끝맺는다는 결정권에 대해서는 모두가 제 3자의 입장이니 왈가왈부 할 수 없다는게 자식의 도리라 여긴 것도 있겠다. 그리고 배우자 역시도 그 의미를 알았다. 죽음의 문턱에서 선을 넘느냐 마느냐의 간당간당한 기로에서 매번 악을 쓰고 아파했고, 독한 진통제에도 잠깐뿐인 상황이 원하는 생이 아니었음을 인지했겠지. 그러니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 사람 소원을 못 들어주겠냐는 심정이라 부녀의 조력에 공감을 얹게된다.
어머니를 보낸 후에도 그녀가 원했던 생에 끝에 대한 응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은 딸. 가족의 부재에 대한 상실은 물론 있지만 그녀를 추모함에 있어서는 감정을 가두거나 외면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다들 하는 것들. 장례에 관한 것과 작별의 방식도 생전 당신이 원하던 바에 최대한 맞추려 애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른 이들도 당신처럼 스위스까지 멀리 날아가 생을 끝마치는 수고스러움이 없기를, 눈물로 작별하지 않기를, 웃으며 안녕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그러니 이러한 존엄한 마지막을 다같이 존중해주는 사회적 분위기를 이끌어내는데에 다같이 힘을 보태어주기를. 붙들고 싶은 가족의 마음도 있지만 당사자가 원하는 웃으며 안녕하는 법을 보장해주기를. 이 또한 변해가는 삶의 방식임을 알아주기를.
다음달이면 시어머니의 4주기가 된다. 저자의 어머니처럼 같은 상황이었고 전이 속도며 전이 방향도 비슷했다. 그리고 급작스러웠고, 많이 고통스러워하셨다. 가족들은 그녀를 더 붙들지 않기로 했으며 당사자 역시 무의미한 생의 연장을 원하지도 않으셨다. 그렇게 보내면서도 슬픈건 매한가지다. 그리움의 역치는 계속 존재했고, 소실되지 않는 애닳음의 에너지였다. 그걸 어찌 지울 수 있겠는가. 그저 생의 끝에 아쉬움과 미련보다는 함께 당신을 보낼 수 있었던 순간에 감사해야지. 눈은 울고있지만 더이상 아프지 않을거라며 억지로 웃으며 안녕을 고하고, 마지막까지 존재한다는 청력을 빌어 귓속말로 사랑한다 거기서도 잘 지내라는 말이 최선의 배웅이었다.
죽음에 관해서는 차례가 없다고 한다. 누가 먼저 갈 지도 모르고 어떠한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르니 여기에 대고 존엄사에 대한 이유를 들먹이려 하는게 아니다. 나의 시어머니나 저자의 어머니가 겪었던 빤히 보이는 고통의 연장에 대해. 나아질거라는 기미가 보이지 않고 고통의 폭만 깊어지는 상황. 생의 끝을 준비함에 있어 외롭게 병실에서 마무리 하기보단 스스로가 결단하며 사랑하는 이와 눈맞춤 할 수 있을 때에 하는 찐한 작별의 마침표를 바라는 이가 있다면 그 의견을 존중해주고 싶다. 당신이 원하는 끝이 이거라면 그걸 해주고픈 마음. 사랑하는 이가 마지막으로 요청하는 소원이며,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이가 들어주어야하는 마땅한 바람인 것. 이 법안이 통과되기 위해서는 많은 경우의 수도 필요 할 것이며, 다양한 사례가 기반이 되어 쉬운 승낙은 아니겠다만 이러한 마음을 가진 이도 있다는 것을 한 번 쯤은 들어주길 바라게된다.
당신이 생에 끝자락에 있다면, 이걸 선택 할 것인가? 그 모든건 당신이 내키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 해도 되는 것이다. 그걸 알려주고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