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역사적인 도서관 - 우리 근현대사의 무대가 된 30개 도서관 이야기
백창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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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더한 '도서관 덕후'를 자처하는 이가 책 이야기가 아닌 도서관 이야길 내어놓았더라. '역사책을 소장한 공간'인 동시에 '역사를 바꾼 공간'이니 말못하는 이 녀석은, 내색없이 무던하게 이야기를 품고있는 이 공간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쥐고 있을까를 알은체 해주는 저자.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를 너머 사소한 역사라 하지만 결고 사소하게 넘길 수 없는 진짜 제대로 된 역사에 대한 일화들.

나에게 도서관이 주는 의미 만큼이나 세월이 갖고있는 도서관에 대한 의미. 벽돌책 만큼이나 두텁고 묵직한 시절에 대한 것들을 살펴보며 존재에 대한 이유부터 시작해 도서관을 지켜야하고 키워야만 하는 진심에 대해서도 얻어내어보기로 한다.

생각보다 만들어진 사유를 보면 의외성을 가진 목적이 수두룩했다. 학문의 목적을 방패삼아 자신의 권력을 보여주고자 했던 곳도 있었으며, 일제나 독재 정권에 의해 만들어진 곳, 사람을 모으기 위한 장소적 수단. 내가 익히 아는 도서관에 대한 정의, 단순히 책을 모아두고 학문에 대한 편차가 없도록 시민의 알 권리를 공평히 나누려는 이유는 생각보다 뒷 순위로 밀려있기도 했다. 굳이? 왜? 뭐때문에? 라는 생각보다 그 시절엔 그럴 수 밖에 없었구나를 생각하며 일단 이해하려 생각을 모았다. 지금 존재하는 도서관은 어떠한 목적과 어떠한 진심으로 설립되었고 유지되고있는지도 생각해보며 책을 품고 있는 도서관 이야기와 함께 오랫만에 근현대사 훝기도 겸해본다.


학교조차 드물었던 시절 도서관을 통해 인재를 키워내려했던 시도를 했던 우현서루. 그 시절 먹고 사는 것에 급급했을텐데 인재들에게 열린 공간을 제공하며 학문에 뜻이 있는 자들을 키우려 했던 생각 자체가 놀라울 뿐이다. 도서관이 있으면 학당이 이어오고, 학당이 있다면 학문에 뜻이 있지만 형편이 변변치 못한 이들에게 숙식을 무료 제공하기까지 했던 제도. 유명한 강사를 초빙하여 강연과 토론을 했고, 국내외 도서를 자유롭게 볼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것. 지금의 국비 장학생 못지 않은 혜택이 아닐 수가 없다.

시선을 틔우고 인재를 양성하려했던 시도는 늘 시절에 무릎을 꿇는 듯 하다. 잘 나가다 주저앉을 때엔 늘 일제시대가 들러붙더란 말이지. 강제 폐쇄된 만권당 우현서루는 지금 은행지점이 되어 그 때의 뜻을 이어 갈 순 없지만 건물 외벽에 '민족 계몽과 지성, 자주독립과 우국의 현장 우현서루 옛터'라는 글을 새겨 그 마음을 두고두고 기리는 곳이 되었다. 과거의 명성과 깊은 뜻을 기념하는 곳, 현재는 그 존재로서의 실요성이 달리하고 있지만 깊은 뜻은 변함이 없다는 걸 언급하였기에 언제 한번 대구를 가게되면 이 도로를 꼭 지나보고 싶어 지도앱에 맛집만 표기하는 내가 가봐야할 도서관 옛터로 기록을 하게되었다.



시대극을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SNS 클립으로 보다 단숨에 챙겨보게된 '오월의 청춘'이 생각나는 '도서관 앞 광장'편. 그리고 꼬꼬무에서 보았던 '6울 항쟁'에 대한 사건까지. 내가 태어나기 이전의 세상 이야기이며, 근현대사 시간에 배웠고 책으로 살펴본 것을 다시금 도서관 이야기에서 만나니 기분이 묘했다. 이 사건을 처음 접한 10대의 내가 생각한 대학 도서관은 모든 성역의 구역이라 생각했는데 정권은 그 모든 권한을 부여받은 듯 들쑤시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는걸 느꼈다.

어떻게 해서든 무얼 해서든 통치를 하기 위해 아득바득 이를 갈았던 일제. 무단통치 실패했다고 문화 통치 한답시고 도서관을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했던 과거. 통치 도구로서의 구실. 맞아, 박완서님 작품에도 나왔지. 그러고보면 근현대사든, 문학이든 알게 모르게 우리는 많이 들어왔는데 이야기의 흐름의 하나로 수단으로서의 배경으로 도서관을 그렇게 스치듯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조선총독부도서관이 국립도서관이되고, 국립중앙도서관이 되지만 결국 시대의 배경일 뿐이라 여긴건지 롯데백화점자리가 되고 롯데호텔의 터가 되며 그저 '국립중앙도서관 옛터'가 새겨진 비석으로 시대를 떠올리게 만든다. 흑역사라 지우기 급급했던건지 도서관이라는 구실보단 노른자땅에 대한 잇속이 더 컸던지는 관계자들만 알지 않을까.

모르던 이야기들이 참 많다. 북한에 대한 이야기나 종교와 얽힌 내용들은 흥미유발하기 딱 좋은 소재이기도 하다. 역사와 전통보다는 그 해에 이력을 하나 추가하기 위한 대표들이나 정치적인 액션의 증거이기도 하며, 그만큼 몸집을 키운 이들이 남기고픈 이력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원님덕에 나발 분다고 나처럼 책만 좋아하는 사람에겐 횡재가 아닐 수 없겠다만 그래도 품고있는 서사도 알아감에 허투루 만들어진 것은 없고, 허투루 여겨질 것도 없음에 오랫만에 근현대사 배우듯 도서관이야기도 알아가니 순서에 맞춰 읽지 않고, 총 4개의 부분 중 하나씩 골라감에 읽는 세상이야기로 봐도 좋겠다.

📖하니포터 10기로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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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나니까 퇴근할게요
메리엠 엘 메흐다티 지음, 엄지영 옮김 / 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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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은 물론이고 출판사가 제공했던 책 소개를 보면 닮은 구석이 너무 많아 20대의 내가 많이 보여 벽돌같은 책을 후루룩 읽게 만들었다.

퇴사는 글러먹은거 같으니 퇴근이라도 무사히 할 수 있기를. 무사 퇴근이라 하면 오늘 내가 별일 없이 다행히 하루를 살았다는 이유가 될 테니 부디 그러한 시간이 되길 바라며 메리엠의 하루와 나의 하루가 무탈하기를 빌며 읽어본다.


📖양측 모두 돈도 못받는 야근을 하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업무도 기꺼이 맡아서 하는가 하면, 결코 받지도 못할 인정을 받기 위해 무한히 참고 견뎠다. 결국 그들은 때가 되기도 전에 기운이 소진되어 무기력해져버렸다.

누군가는 시켜야 하는 입장, 어떤이는 시키지 않아도 해야만 하는 여건. 나의 부모님 세대가 그러한 편이고, 계약직과 현장에 있는 분들이 이렇게 사서 일을 만들고 몸을 고단하게 만들었다. 차라리 수당이라도 나오면 몸은 고될지언정 한달 후 통장은 든든할텐데, 그럴일은 없어보이고 밉보이기 싫다는 생각에서 자처하게되는 행동들이다. 이 집단에서 남아나려면 해야하는 부지런함으로 봐야할까, 시대상의 반영으로 감안해야하는 분위기일까. 이것부터가 과거와 현재를 구분짓는 사회생활의 분위기임을 언급하는 비교과정이기도 했다.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내 가치가 의문스러웠고, 매일 오후 내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때마다 당장 그만두고 싶었다.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인데, 퇴근할 때면 이상한 죄책감이 점점 더 많이 쌓여 등에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인턴, 신입, 이직 후 새로운 환경에 버틸 때마다 느끼는 말라 비틀어진 내 존재감. 이건 마치 신학기에 낯선 교실에 적응하는 소심쟁이의 두근거리는 마음과 닮아있다. 학교가기 전날부터 배가 아픈거 같고 자고 일어나면 다시 주말이길 바라는 잿빛의 여린 아이같은 안쓰러움. 누군가는 즐거운 두근거림일테고, 누군가는 이처럼 아득하게 느껴지는 불안함의 시작점이겠지.


📖무슨 소리예요. 당신은 어떤 일이든 혼자 알아서 꼼꼼하고 야무지게 처리하잖아요. 게다가 정해진 목표는 반드시 달성하고요. 나는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제대로 일하는 사람이 필요해요. 그래서 내가 보다 효율적으로 업무를 추진할 수 있도록 당신이 옆에서 도와주면 좋겠어요.

이 한마디를 바란건지도 모르겠다. 그간의 설움과 그간의 오해와 그간의 자책들을 녹아내리게 만드는 한 마디. 미사여구 가득한 칭찬이 아니라 담백한 문장. 그간의 내 노고를 알고 있었다는 내용과 함께 잘 하고 있다는 그 한마디여도 족하거든. 내가 이 무리 속에서 필요한 존재라는 이유를 명확하게 명시해주는 말들. 나이가 들더라도,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도, 이 집단이 응원과 격려를 몹시도 아끼는 팀인걸 알아도 바라게 되는 달콤한 말들.


이따금 주인공은 부모에게 회사에 있었던 일을 토로한다. 메리엠의 부모는 무던하게 그 말들을 다 들어준다. 그럴 수 있었고, 그럴만한 처지이니 들어주는 입장은 이전세대가 하는 공감의 방식이기도하고, 들어줌으로써 한시름 덜어낼 아이를 다독이는 방식이기도 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는 내 말을 들어주길 바라게되고, 사회생활을 하고 일로서 얽혀있는 집단에게는 내가 듣고픈 말을 해주길 바라는 조금은 다른 관계의 대응.

그러기 위해서는 나도 바뀌어야 했고, 그들도 조금씩 유연하게 대해야하는 어려운 소통이었다.


📖화장실에서 다른 사람이 우는 소리를 들은 다음부터는 눈물이 터질 것 같아도 화장실에 가지 않았어요. 대신 옥상에서 석유시추선을 바라보며 울기 시작했죠. 하지만 욜란다도 옥상에서 운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 옥상 말고 창고에 숨어서 울어요.

회사의 후미진곳, 구석에 박혀 흘리는 눈물은 다양한 의미를 갖게된다. 자책, 설움, 후회, 한심, 실망, 한탄, 분노, 원망, 반성, 의심까지. 그렇게 많은 감정을 눈물로 뽑아내다보면 결국 그 시작은 나의 부족함 같아 쪼그라드는 물풍선의 꼴이 되고만다. 나는 뭐 그렇다 쳐도 욜란다도 운다는 사실을 목격하고나니 익숙함에 무던함을 무장한 직장인이라도 내 마음 토로하며 뱉어낼 일은 늘 있기 마련임을 알아가는거지.


📖어쩌면 행복이란 영원히 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스쳐지나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항상 행복할 순 없으니. 가끔 한번씩 행복할 뿐이니.

항상 행복 할 수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언제나 맑을 순 없고, 언제나 반짝일 수 없다는걸 알게되는 나이. 불현듯 찾아온 깨달음이라 했으나 2년 사이 메리엠은 무르던 마음마저도 단단해지고 두터워짐을 느낀다. 뭐랄까, 마냥 투정부리고 씩씩거리던 이전에 비해 이정도는 꿀꺽하며 침 삼키듯 넘겨 버릴 수 있겠다 싶은 사람으로 말이지. 그간 자신을 갈아내어 일했고, 그렇게 긁어모은 돈으로 이사를 하며 제 집을 얻고 거기에 누워 보는 세상으로 해탈하듯 얻어낸 육신의 평온. 결국 이렇게 행복하려고 그간 마음 쓰이고 몸 고생했다하면 엄청 씁쓸하게만 여겨질텐데, 그럼에도 이 곳이 가장 안전한 피신처와도 같으니 여기서라도 가끔의 행복을 모으려 생각을 고쳐먹는 것에 결국 사람 사는건 다 똑같구나. 메리엠이나 나나 이러려고 출근도장찍으며 청춘을 받치게됨을 느낀다.

90년대생 저자가 낸 첫번째 책. 자신의 모든게 고스란히 담겨있는 글들. 저자보다 몇년 조금 더 살아낸 내가 겪어낸 이야기들이 겹쳐보였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으니 예전과는 다를거라는 기대를 얹어 희망가득한 결말을 바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를 붙여가며 나아지지 않았을까를 원했다. 역시 내 기대는 뒷통수 얻어맞기 딱 좋았다. 간간히 보이는 여성, 이민자, 무슬림, MZ세대에 대한 시선과 툭툭 뱉어지는 말들은 일부러 꾸미지 않아도 자연스레 그 대립이 언급이되고, 상황들이 특수한 것이 아니라 세대가 다르고 각각의 갈래가 나눠진 여건으로 생기는 시선의 격차라 할 수 있었다. 저마다 자신을 기준으로 두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어디 출신인지 묻는 지역 선긋기부터 시작해서 저 편한대로 부르는 이름은 기본이요, 아무것도 모를거라는 신입의 인식으로 하대하거나 배제시키려는 은연중의 대화는 말이 아니라 날이선 칼이 되어 상대를 쑤셔대기도 했다. 나라만의 특성이라 생각했던 세태는 사람사는 어느 곳이든 다 똑같구나를 여기니 마음은 편하지만 씁쓸함은 감출 길이 없더라. 우리는 아닌척 하지만 여전히 칭찬받기 좋아하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내 몫의 일이 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는 어른이의 부류다. 어린이와 어른 그 어줍잖은 중간의 위치. 성별이나 출신지를 떠나 내가 쓸모있는 존재로서의 대우를 받기를 바라지만 모든게 내 맘 같은 것은 없다는 것에 넘치는 열망을 꾹꾹 눌러 좀 더 현실의 필터를 씌워 보기로 한다. 그리고 메리엠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이정도도 버텼는데 뭐가 무섭겠어!'

📖출판사에서 도서만을 제공받아 기록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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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드라, 떠나보니 살겠드라 - 65살, 여자, 혼자, 세계 여행자 쨍쨍으로부터
쨍쨍 지음 / 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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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자만큼이나 확신이 없고 모든것에 생각이 너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이렇게 놓고 훌훌 날아가지 못하기에 부러움과 동경의 마음으로 책을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나라면 절대 고르지 않을 컬러의 조합과 패션 스타일이 더해지니 같은 하늘 아래에 정 반대의 방향을 바라보고 삶을 이어가는 사람의 말들같아 신기함을 가득 안고 페이지를 넘기게 했다.


키워드가 예사롭지 않다.65세. 여자. 혼자 세계여행. 파이어족으로서 빠른 은퇴. 이전의 삶은 속박 당하고 있었던게 아닐지 의심하게 만드는 세상 바른 직업군인 교사. 진짜 연관을 짓기 어려운 과거와 현재의 낱말들이니 의아해 할 수 밖에. 어떤 날은 머리를 빡빡 밀기도 하고, 또 어떤 사진속에는 가발이 아닐까 의심스럽게 하는 핫핑크의 머리카락을 보면 이 사람의 세상은 무채색이었다가 형광색으로 톤 보정이 된것 같단 생각을 하게 만든다. 20년째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 마저도 놀라울 따름.

인생을 짧다며, 입고 싶은 거 입고, 살고 싶은 대로 살자는 나비같은 그녀의 이야기. 부러우니까, 샘나니까 더욱 야무지게 읽게 되는구나.

쨍쨍이라는 필명도 새삼 화려하고 반짝이는 느낌을 준다. 교직생활을 할 때에도 자신은 튀는 선생님이라 일컫었다. 교사 10년차 무렵, 학급 문집을 학생들 뿐만 아니라 저자의 친구들에게도 보낸 적이 있는데 그 친구들 중 한명이 '교사는 무릇 햇빛어야 한다'라고 회답을 주었는데 그때부터 그녀는 최순자선생님, 쌤(경상도 사투리 선생님=쌤)이 아니라 힛빛이며 쨍쨍이라고 불러주길 바랬다.

나의 학창시절을 비춰봐도 12년동안 자신을 이름+선생님 조합으로만 불리우길 바라지 별명, 혹은 닉네임으로 불리우길 원하는 분은 없었으니 만화에서 튀어나온 사람은 아닐지 의심하게 만들었다. 아이들도, 옆반 선생님도 교장과 교감 선생님마저도 이윽고 학부모들까지 쨍쨍이라 불렀다하니 사각의 교실과 매일매일이 똑같은 학교생활에서 나름의 행복을 긁어모았다가 방학 때마다 여행으로 팡팡팡 그 욕구를 터트린게 시작 처럼 보였다.


무계획을, 그것도 인도네시아에서 두번째로 높은 산악 트레킹 마저 그렇게 단시간에 선택을 하고 이행할 수 있다니에 대해 내 머릿속은 계속 물음표로 가득했기에 린자니 산악 트레킹 후기까지 찾아보게 했다. 그리고 놀랐지. 이 여인 진짜 대단한 추진력도 있지만 깡다구도 어마어마하구나.

그리고 해외에서 만난 외국인과 사랑에 빠지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학교생활을 이어가면서도 그가 생각나 여행을 감행하는 드라마보다 더한 불타는 사랑의 질주. 소설같은 실화. 그리고 소설보다 더 찐한 현실의 상황. 마지막엔 정말 웃겼어. 쨍쨍에게 샤워실을 마련해두었다는 메세지 말이야.


진짜? 그게 되는거야? 라는 물음도 가득했던 '돈 좀 빌려주십시오'의 에피소드. 현금이 부족했고, 카드 출금도 여의치 않았던 현지 상황. 누군가에게 대놓고 돈을 빌려달라 말하고, 나중에 돈을 부쳐준다는 말로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는 시간. 그리고 갚지 않아도 된다며 여행비를 충당해주는 피부색도 언어도 다른 누군가의 사려깊은 마음. 즉각적인 선의. 이건 마치 저자가 소설을 쓰기 위해 심어둔 복선의 일부같기도 했다. 왜냐구? 나한테는 절대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거 같으니까 더욱 의심하며 보게 만들었다. 나로서는 이러한 상황이 일어나게 냅두지도 않을 것이며, 모든것이 시간의 흐름과 장소의 변화에 따라 일들이 배열되어야 마음이 편한 인간이라 이러한 마음을 가지도고 여행을 이어 가는게 가능한 그녀의 성향이 부러울 뿐이었다. 이건 나이를 먹거나 세상을 좀 더 깊이 알고나면 바뀔까? 쨍쨍의 에피소드들을 듣고 도전해보면 가능할까? 계속 그러한 물음을 가득하게 만들었다.

카메라를 고치기 위해 배를 타는 일화하며, 비자에 대한 에피소드와 경북 영천의 점방에서 자라던 소녀가 히말라야 마낭이라는 동네를 어슬렁 거리며 어린시절 살던 집과 닮은 곳을 발견하고 적어둔 회상의 에피소드. 2009년 퇴직 후 장기 해외여행과 잠깐의 한국 떠돌이 생활. 그리고 돌아갈 집은 제주가 될거라는 확신과 함께 제주섬에 이주하기까지를 보면 쨍쨍은 한국판 피터팬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하늘을 훨훨 날며 과자를 먹고 영원히 아이로 남고싶어하듯 세상의 공기와 햇살을 먹고 끝까지 날아다닐듯한 발끝이 두둥실 떠 있는 요정같기도 했다.


마지막 단락에서는 '뭐가 무서운가요?' 이 문장 하나로 여전히 무섭지만 재미난게 더 좋아 이 즐거움을 못 놓고있는 쨍쨍의 인생 모토를 느끼게 했다. 위험한건 남미뿐이 아니라 집 나오면 위험한 곳 천지라는 말로 조심하면 된다고 간단 명료하게 말했다. 가지 말라는 곳 가지 않고, 먹지 말라는 거 먹지 말고, 해 지면 숙소에 있는 거지요. 로 말끔하게 불안을 잠재우는 그의 바른 여행 가이드. 그녀가 말한 이야기 안에서만 자유롭다면 나 홀로 여행도 무서울 것이 없고, 중학교 영어 실력이면 전 세계를 다닐 수 있다는 산뜻한 답으로 마음 풀고 즐겁게 여행하라 하니 이래서 계속 여행을 하고 세상을 날고 있구나를 느꼈다.


좀 무섭더라도, 좀 힘들더라도, 좀 외롭더라도 혼자 여행하는 것이 차라리 좋다는 사람. 혼자여도 '쨍쨍'한 맑음을 전하는 사람. 그녀와 여행지에서의 만남은 어려울지라도 그녀가 마련하는 북토크로 나도 쨍쨍한 기운을 얻고싶어진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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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변기의 역학 TURN 3
설재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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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기반으로 한 배경에 판타지적 요소를 얹어서 세상은 호락호락 하지 않음과 함께 내가 원하는 것이 가장 평범한 삶인데, 그 평범함이 가장 어렵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이야기로 보였다. 그리고 내가 익히 아는 그 소설과 많이 닮아 있어서 설재인 버전의 정보라의 '머리' 외전이라 봐야 하나 생각하며 소재만 당겨 왔기를, 중후반부는 또 다른 이야기이기를 바라며 읽었던 듯 하다.

그리고, 이 책은 정보라의 머리를 읽을 때 만큼이나 뭘 먹으며 읽지는 못한다. 책을 읽을 때에 항상 커피나 차를 곁에 두고 가장 편한 자세로 읽는 사람인데 무얼 마시거나 먹으며 볼 수 있는 소설은 아니었다. 변기가 나와서 만은 아니다. 모친의 신체 일부를 깎아 버리는 행위를 통해 얻어지는 자식의 자존감이 한몫했다. 사회가 필요로하고 쓸모있는 사람으로서의 확장이 변기속 버려지는 무언가 만큼이나 속을 꿀렁거리게 만들었다. 부모와 자식간의 내리사랑과 치사랑의 문제가 아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서 홀대받는게 익숙해지는 환경과 사랑받지 못함으로서 쌓여가는 분노와 거리감은 애틋함의 관계와는 정 반대의 시선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아침에 회사가고 저녁에 퇴근 하는 삶을 영위해 가는 것에 발판이 되거나 이 나이 대에 다들 그렇게 사는 것처럼 독립해서 내 공간을 이루며 사는 삶. 제 목구멍에 풀칠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쓸모있는 인간으로 구분 할 수 있는 구실로 부모는 하나의 수단이 되어버린다. 어떤이는 501호와 401호의 남녀가 요즘 말하는 다단계에 빠져버린 귀 얇고 세상물정 모르는 청년들이라 치부 할 수 있겠지만 그 시대를 같이 겪어 나가는 또래인 내가 보기엔 오죽했으면 이라는 말을 읊조리며 딱하고 짠하게 보게된다.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지속적인 무시와 하대를 받는 이들이 유일하게 대우받고 응원받았던 집단이 그곳이었는데 어느 누가 그 달콤한 이야기에 넘어가지 않을까. 봉수파괴는 그 건물 청년들의 자존감도 함께 하수구로 끌어내린 것으로 다양하게 의미를 부여하게된다.


📖진짜 마지막 효도다, 하고 갔다가 진저리를 치며 돌아오고. 그런데 또 몇 달이 지나면 그래도 연락은 해야 하지 않나, 하고 전화를 걸고. 그럼 엄마가 막 우리 아들, 우리 아들, 하고 울잖아요. 그러면 내가 되게 큰 잘못을 저지른 기분이 들어요.

열 손 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은 진실이 아니다. 열 손 가락 깨물면 다 아프긴 한데, 유독 더 아프고 더 아린 손가락이 있다. 일정하게 배분되는 공통의 애정은 없다는 걸 나누는 부모는 모르겠지만 받아본 자식놈들은 다 느낀다. 그래서 속으로만 미워할 뿐이다. 아프다고 악을 쓰고 더 울어대면 영영 봐주지 않을까봐 눈치를 가득 보는 손가락들은 이 악순환이 익숙할지도 모르겠다. 괜히 저 혼자 걱정하고 저 혼자 짐작하는게 습관이 된 것을 보면 아정은 장녀라는 포지션과는 별개의 손가락이다. 유독 그런 자식들이 있다.



📖과장님, 어렵게 생각하시면 안 돼요. 그냥요. 내가 지금 무엇 때문에 불행한지 생각하고 그 불행의 원인을 제거할 방도가 무얼까 고민해보면 돼요. 없던 방도를 우리가 만들어주는 거거든요. 그 자리만 긁어 줄 수 있으면요, 아무리 돌려 말해도 고객들은 척하면 착 알아들어요.

사람을 혹하게 하는 대단한 언변과 함께 이른바 우쭈쭈해주는 직장 상사와 동료가 있는 공간. 그러니 뭘 더 잘 해보려 애쓰게되는 두근거림이 가득한 모습을 보면 아정이나 상기나 자라오는 과정과 성인이 된 지금까지 인정욕구의 충족이 이뤄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더욱 이 실버스파클의 집단에 목을 메는 상황을 볼 수 있었다. 직장이 있어야 낮에 모친과 한 공간에서 티격태격 하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있겠지만 남들이 다 갖는 소속감과 사회구성원으로서의 필요성을 맛봤기에 더욱 결연해짐을 알 수 있다. 자신만이 자신같은 사람들을 구제 해 낼 수 있다고 여기는 히어로의 환상이 너무 크게 씌워졌다.



📖제가 진짜 막막할 때마다 엄마가 마지막 보루였거든요? 무조건 내 편 들어주고 돈도 어떻게든 끌어다가 메꿔주고. 그런데 이제 엄마가 말을 못 하잖아요. 그럼 내 편은 누가 들어주지. 없는 거예요. 정말 아무도. 엄마 목소리를 못 듣게 되니까 바보처럼 그제야 알겠는 거예요. 이제 나 완전히 혼자라는 걸.

미운데 계속 미워 할 수 없고, 싫은데 안 보면 마음에 걸리고, 끊어내고 싶은데 그럼에도 자신의 마지막 끄나풀 같은 존재가 모친이라서 서로를 할퀴는 조합. 상기는 엄마가 마지막 보루였다 했고, 아정은 엄마가 마지막 핑계거리였으며 자신을 이 좁고 막혀있는 화장실에서 구제 해 줄 유일한 존재로 인물설정을 다시 하게된다. 사랑하니까 걱정되고, 사랑하니까 계속 신경쓰며 싫은 소리도 하게된다는 그러한 애증의 표본처럼.

당신이 빚어낸게 난데, 나를 끝까지 책임지지 않고 뭐하냐는 식의 상기와 아정의 투정어린 변명. 이 지긋지긋한 관계는 한쪽만의 액션으로 이뤄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쟤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쌍방과실이지 모.


📖맞아본 적이 없는 애들은 꼿꼿하게 앉아 있는 자세에서부터 티가 났다. 걔들은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주로 관찰했고 자주 경탄했으며 무엇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듯 보였다. 언제나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에. 집이라는 이름의 방공호가 있기 떄문에. 집이 방공호라니. 말이 되는 소리인가. 어린 아정에게 집은 가장 위협적인 곳, 몸을 가장 아프게 하는 곳이었다.

자기가 원하는 만큼의 모성애를 얻어 내진 못했으나 남들이 차고 넘치게 얻어가던 그 모성애를 눈으로 봐오며 자랐기에 그게 필요로 하지 않은 성인이 된 지금에도 채워지지 않은 그 결핍에 욕심을 내게된다. 재물의 부유함이나 여건의 풍족함보다 아정은 심적으로 채워지지 못한 그 결핍이 봉수파괴 만큼이나 하수구로 쓸려내려간 자신의 존재의 의미와 가치로 설정을 해 둔 듯 했다.


저자는 이들과 비슷한 여건으로 이 이야기의 시작점을 얻어냈다. LH에서 공급하는 전세형 청년매입 임대주택은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청년들을 위한 하나의 제도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곳을 가고싶어도 못 하는 부류, 그 곳에 안착하게되었지만 영원하지 못한 임시의 공간이라 불안해 하는 부류, 더 나은 더 그럴듯한 조건과 비교하며 한없이 작아지는 부류간의 갈등도 길게 이어가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의 감정봉수파괴를 드러낸 것이다. 그게 정보라의 머리와 맞물린 것이고, 그 단편에 외전이라는 또 하나의 갈래로 결론을 짓게된다.

후반부에 아정이 갖혀있는 욕실에서 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써가며 모친의 조각들을 이리저리 맞추는 과정은 웃프면서도 찌질의 끝을 보여준다. 혈연으로 엮인 존재의 덩어리였다가 제 손으로 깎아내어 소각되지 못한 채 하수구로 버려지는 무쓸모의 그것을 긁어모아서라도 제 삶에 끄나풀을 만들려는 간절함. 지속적으로 하대하던 모친의 잘못일까, 사랑하는 이로서 남겨두지 못하고 깎아내어서라도 야금야금 없애버리고 싶었던 아정의 잘못을까. 그저 봉수파괴로 인해 욕실에 가둬질 수 밖에 없던 상황의 잘못일까. 모든것을 그 변기 탓이라 하고 싶지만 연대 책임으로 한대 묶어 쓴소리 한판 하고 싶어지는 현실감 낭낭한 단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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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
남유하 지음 / 사계절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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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는 독자의 한 문장에 전자책이 아닌 손에 쥐어지는 종이책으로 읽고싶어졌다. 존엄한 삶과 죽음. 그리고 자신이 선택하는 생의 끝. 가족의 애틋함에 덧붙여보는 존경어린 선택.

생의 끝, 타인과 작별의 순간이 나에게는 영영 오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나만 나이먹는 거라고 여겼으나 나 만큼이나 나의 부모, 나의 가족들도 세월을 버텨내고 순간순간 다가오는 병마와 살아내고 있음에 이 이야기 또한 별개의 세상은 아니라는걸 깨닿는다. 몇 해 전 나의 가까운 가족도 비슷한 암의 경로로 세상을 달리하셨다. 그걸 온전히 봐오고 곁에서 작별을 하는데 그간 견뎌낸 고통의 순간이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가늠해보지만 헤아려 본들 본인만 못하다는걸 안다. 차라리 빨리 끝내고 싶어했던 그 마음. 그걸 바라보는 가족의 입장. 모든게 이 책에 담겨있었다.

삶의 끝에 다다른 이를 보는 것, 그리고 자신의 생이 저물고 있다는 걸 인지하는 당사자. 서로의 이야기들. 그리고 그 애틋한 마음에 대한 이야기.

평생 모르고 살고싶지만 그럴 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 대한 것까지. 울컥하는 마음이 자주 밀려오는 문장 속에서 담담함을 챙겨 완독해본다.


프롤로그에 이어지는 '여덟 장의 사진'으로 나누어보는 딸이 생각하는 어머니의 삶의 기점들. 이 글의 주인공이자 저자의 어머니인 조순복님에 대한 단락들이다. 첫 번째 사진으로 꼽는 교복입은 소녀에 대한 단상. 사진으로 가늠하는 나의 엄마가 누렸을 학창시절. 내가 아는 엄마에게서 비춰보는 파릇한 봄과도 같은 소녀의 순간을 떠올리며 가장 빛났을 그 때를 스케치해본다. 엄마와 아빠가 함께 사진관에서 찍은 모습에 아이들이 하나씩 추가가 되고, 아이들이 자란 후 당신의 회갑, 건강하게 생을 마치길 바랬으나 전이 판정을 받은 후 바람쐬러 갔던 날의 사진, 관에 누워 달빛처럼 하얗고 화사하게 안녕을 고하는 장면까지. 생의 일대를 보며 화사하게 피었고, 유난히 반짝였으며, 마지막까지 어여쁜 그녀를 떠올린다. 사진이라 했지만 독자에게 사진을 보여주지 않았기에 나는 그녀의 실루엣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명복을 빈 후에 이야기를 따라간다.



📖기적이 일어나 내일 엄마가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얼마나 큰 기적이 일어나야 엄마가 떠나지 않을 수 있을지, 이 과정을 거치는 내내 상상해봤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멀리 왔다. 카린이 말하는 기적은 판타지일 뿐이었다. 내게 기적은 엄마가 무사히 비행기를 타고 스위스까지 온 것이었으며, 엄마가 내일 무사히 마지막 소원을 이루는 것이다.

암, 완치, 재발, 전이. 익숙한 단어다. 그리고 암의 종류 또한 너무 잘 아는 녀석이며 빠르게 온 몸으로 퍼지는 야속한 놈의 속성에 벌써 4년이나 지난 그때를 어찌 잊을까. 괜찮다 싶었고 몇번의 검사 후 괜찮다는 말에 안도했던 그때. 그 땐 괜찮았는데 갑자기 지금에서야? 라는 물음과 함께 왜 알아차리지 못했던걸까를 생각하며 그때 못 발견한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만 지금이라도 기적을 바란다면 내가 그리 큰 욕심을 부리는걸까를 탓하는 마음. 헌데 그리 큰 고통을 겪으며 차라리라는 말로 대변하는 결정에 뭘 더 얹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된다. 붙들고 있는 것이 나의 욕심이고, 놓지 못하는 것이 나의 고집이며, 움켜 쥐려 하는 것이 나의 미련임에 나라도 당신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거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엄마는 나를 안쓰러워했고 나도 내가 안쓰럽다고 생각했다. 진짜 안쓰러운 사람람은 엄만데.

"엄마 보고 싶으면 거울 보고 얘기해. 알았지?"

아닌 사이도 많겠지만, 특히나 엄마와 딸은 그렇게 애증도 가득하고 애틋함도 그득하다. 결국 나는 당신을 닮아가고 있으며, 당신의 일부인 나를 놓고 먼저 가는 마음이 오죽할까. 다 큰 자식놈이라도 당신의 눈엔 마냥 어리고 모자란 딸처럼 여겨질텐데 내 아린 마음 만큼이나 찢어질 당신의 애간장이 닳아가겠지. 그 와중에 귀걸이 소독해서 쓰라 하고, 덤벙대지도 조급증 부리지도 말라는 말에 발에 채이는 자잘한 핑계거리를 삼아 당부를 덧붙여 길게 늘여보는 말꼬리들. 영혼이 있는지, 사후 세계가 진짜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껍데기를 붙들고 살게 뻔해보이는 딸이 더 마음쓰이는 모습에서 엄만 어쩔 수 없구나를 생각한다. 당장 당신의 세상이 멈춘다는데 그건 뒷전이니 말이다.

책에서 안락사, 존엄사, 조력사망, 조력자살이라는 용어가 혼재되어있다. 굳이 하나의용어로 통일하지 않았고, 글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단어를 달리해 문장을 이어갔다. 그리스어에서 시작된 안락사를 내밀어 좋은 족음의 결합을 받아들이도록 선택한 경우도 있고, 존엄사를 골라 사망이 임박한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해 존엄하게 삶을 마감할 권리를 인정하는 의미를 수렴할 수 있게 골라둔 문장도 있다.



어머니의 형제를 통해서도 각기 다른 반응을 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의 마지막 작별을 할 수 있었던 삼촌과 꼬마이모. 다른 형제는 당신의 결정과 자식이 막지못한 선택에 탐탁치 않아 했고 진짜 마지막이란 말에도 내비치지 않았던 이들을 통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다양한 모습도 저자는 존중했으며 강요하지 않았다. 오롯이 엄마 당신의 삶이었으니 당신이 끝맺는다는 결정권에 대해서는 모두가 제 3자의 입장이니 왈가왈부 할 수 없다는게 자식의 도리라 여긴 것도 있겠다. 그리고 배우자 역시도 그 의미를 알았다. 죽음의 문턱에서 선을 넘느냐 마느냐의 간당간당한 기로에서 매번 악을 쓰고 아파했고, 독한 진통제에도 잠깐뿐인 상황이 원하는 생이 아니었음을 인지했겠지. 그러니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 사람 소원을 못 들어주겠냐는 심정이라 부녀의 조력에 공감을 얹게된다.


어머니를 보낸 후에도 그녀가 원했던 생에 끝에 대한 응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은 딸. 가족의 부재에 대한 상실은 물론 있지만 그녀를 추모함에 있어서는 감정을 가두거나 외면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다들 하는 것들. 장례에 관한 것과 작별의 방식도 생전 당신이 원하던 바에 최대한 맞추려 애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른 이들도 당신처럼 스위스까지 멀리 날아가 생을 끝마치는 수고스러움이 없기를, 눈물로 작별하지 않기를, 웃으며 안녕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그러니 이러한 존엄한 마지막을 다같이 존중해주는 사회적 분위기를 이끌어내는데에 다같이 힘을 보태어주기를. 붙들고 싶은 가족의 마음도 있지만 당사자가 원하는 웃으며 안녕하는 법을 보장해주기를. 이 또한 변해가는 삶의 방식임을 알아주기를.



다음달이면 시어머니의 4주기가 된다. 저자의 어머니처럼 같은 상황이었고 전이 속도며 전이 방향도 비슷했다. 그리고 급작스러웠고, 많이 고통스러워하셨다. 가족들은 그녀를 더 붙들지 않기로 했으며 당사자 역시 무의미한 생의 연장을 원하지도 않으셨다. 그렇게 보내면서도 슬픈건 매한가지다. 그리움의 역치는 계속 존재했고, 소실되지 않는 애닳음의 에너지였다. 그걸 어찌 지울 수 있겠는가. 그저 생의 끝에 아쉬움과 미련보다는 함께 당신을 보낼 수 있었던 순간에 감사해야지. 눈은 울고있지만 더이상 아프지 않을거라며 억지로 웃으며 안녕을 고하고, 마지막까지 존재한다는 청력을 빌어 귓속말로 사랑한다 거기서도 잘 지내라는 말이 최선의 배웅이었다.


죽음에 관해서는 차례가 없다고 한다. 누가 먼저 갈 지도 모르고 어떠한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르니 여기에 대고 존엄사에 대한 이유를 들먹이려 하는게 아니다. 나의 시어머니나 저자의 어머니가 겪었던 빤히 보이는 고통의 연장에 대해. 나아질거라는 기미가 보이지 않고 고통의 폭만 깊어지는 상황. 생의 끝을 준비함에 있어 외롭게 병실에서 마무리 하기보단 스스로가 결단하며 사랑하는 이와 눈맞춤 할 수 있을 때에 하는 찐한 작별의 마침표를 바라는 이가 있다면 그 의견을 존중해주고 싶다. 당신이 원하는 끝이 이거라면 그걸 해주고픈 마음. 사랑하는 이가 마지막으로 요청하는 소원이며,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이가 들어주어야하는 마땅한 바람인 것. 이 법안이 통과되기 위해서는 많은 경우의 수도 필요 할 것이며, 다양한 사례가 기반이 되어 쉬운 승낙은 아니겠다만 이러한 마음을 가진 이도 있다는 것을 한 번 쯤은 들어주길 바라게된다.


당신이 생에 끝자락에 있다면, 이걸 선택 할 것인가? 그 모든건 당신이 내키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 해도 되는 것이다. 그걸 알려주고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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