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 좋다는 말에 가려진 것들 - 폐 끼치는 게 두려운 사람을 위한 자기 허용 심리학
이지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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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다 괜찮다는 사람으로 살고있다. 정확히는 그렇게 살면서 분란 일어나는 일이 없는 평온하고 정적인 삶이 편해서 나를 누르고 사는 인생을 살고있다. 그것도 30년 넘게. 이게 처음엔 내가 만들어 놓은 삶의 방향성이었지만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렸고, 익숙함에 자연스레 나오는 선택지가 되었다. 그래서 착하고 성격 좋은 사람인냥 치부되기도 한다. 근데, 나 그런 사람 아니더라? 가장 최 측근에게는 일명 조신한 또라이이며, 차분한 도른자로 불리우는 성격 개조된 후천적 선한 인격의 인간이다.

1부에서는 타인을 배려하느라 참아온 부정적 감정을 이해하는 법을, 2부에서는 타인의 기대를 거두고 진정한 책심 자아를 살피는 법을, 3부에서는 과거의 상처를 잘 소화하는 법을, 4부에서는 자신을 지키며 타인과 관계 맺는 법을 다루었다.



📖완벽하지 못한 존재라는 좌절_ 잘못된 결정을 내리기도 하고 어떤 부분에선 한참 부족하고 무능해 보이기도 한다. 이 때문에 타인을 실망시킬 수도 있겠지만, 나 자신에게 중요한 것에 주의를 쏟느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을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보겠다는 용기를 가지는 것, 그 경계 바깥에 있는 것에는 힘을 빼는 것. 그것이 무결한 완벽을 강요하고 불안을 조장하는 세상 속에서 꿋꿋이 자기 삶을 살아내는 길일 테다.

자책의 확장판이다. 다 수용하고, 또 다 잘해야한다. 그러면서도 모자람이 없어야하고 충분함이 만연해야하는 것. 그래서 허투루 사는 삶의 틈이 보이지 않아야하는 꽉찬 육각형 인간이고자하는 욕심이 불러온 비극의 결말일지도 모르겠다. 흠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그게 내가 되어선 안되는 거였고, 타인의 물음과 부탁에도 모든 답변이 가능해야하는 백과사전을 자처하다보면 빨리 피곤해지고, 빨리 지치기 마련이다. 그러니 각각의 집단과 매체에서 만들어 둔 틀에 이리저리 잘 끼워맞추고 잘 끼워진 사람이려 하다보니 완벽주의적 성향도 같이 부풀어 오른다. 그러다 이렇게 뻥 하고 터지는 결과를 마주하게된다. 결과가 가치와 맞먹는 해답은 아님에도 유난히 엄격해지는 잣대. 잘못 간 길이면 돌아가면 될 것이고, 틀린 것이면 지우개로 지워서 다시 시작하면 되는데 그 복기의 과정이 남에게 비춰진다는 것에 수치심을 불러오나보다.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과정의 번복을 수용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너무 큰가보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는데, 꼭 그게 나이길 원하는 욕심. 닦달과 강박. 그거 어떻게 버리는 건데?



📖'성격 좋다'는 말에 가려진 것들_ 겉으로는 적응적으로 잘 지내는 듯 보이지만, 타인의 모습을 모방하거나 타인을 위한 삶에 가깝다.

잘 다려진 빳빳하고 단정한 종이인형처럼 사는 거다. 이 시대의 표본과도 같으며 반듯한 삶의 태도가 모두의 본보기로서 이시대의 참한 청년임을 추대하면 정작 스스로는 본모습이 무엇인지 헷갈려하며 살게된다. 거절도 못해, 의견도 못내, 반박도 못해, 제약도 많아. 그렇지만 성격 좋다잖아?

둥둥 떠다니는 입들이 그물처럼 엮여 빠져나가지 못하는 재물로 사는 삶이 되어버린다. 자, 이제 당신의 선택지만 남았다. 거짓자기와 참자기의 선택이기도 하지만 이래도 괜찮은 내가 될 것인가, 우선 내가 편하고 보는 내가 될 것인가에 놓여있다.

명확한 답은 없는 것 같은데 이 양자택일의 밸런스를 맞춰 살 것인지, 아니면 흑백논리마냥 무 자르듯 잘라서 하나만 선택할 것인지는 좀 더 고민해보고 싶어진다.



📖거절이 어려운 당신에게_ 내 마음과 행동에 대해 분명히 책임지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째 내가 못하는 감정의 선택지만 여기에 다 모여있다. 나만큼이나 저자 역시 타인의 입모양에 유난히 주목하고 거스르는 일 없이 살고자 했던 인물로 보인다. 그러한 사람이 나처럼 심리학과 멀리 지내며 그러려니 살지 못하고 여기에 해당하는 학문을 파고 들었으니 그간 살아온 삶의 단면들에 대해 얼마나 많은 복기를 하며 학문에 대입했을지를 떠올려보면 배로 힘들었으리라 느끼며 이놈의 거절이라는 감정에 대해 다시금 주목해봤다.

내 행동 하나에 타인의 의견을 인정할 것인지, 타인을 탓하지 않고 내 책임으로 여길 것인지에 대한 이후 과정으로 얻어지는 감정 때문이라도 우리는 거절하지 못하는 삶을 되려 편하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주체적이기 보다는 귓전에 맴도는 훈계의 목소리 데시벨을 낮추고픈 마음에서도 거절하지 않고 모든것을 받아들였던 과거의 나를 떠올려보면 내 마음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책임이 바닥을 쳤기에 이 빈틈을 타인의 침범 가능한 구역으로 방치했는지도 모르겠다.

수월해야한다. 솔직해야한다. 그게 용기이며 자신을 지치는 탄탄한 힘이다. 담백하게 말해도 상대는 수용 할 것이다. 그러니 예민하게 경계하며 상대가 실망하지 않을지, 이후의 원만한 인간관계가 이뤄지지 않을지, 불편해하며 보복을 하지 않을지에 대한 이후의 수는 미리 셈하지 않았으면 한다. 살다보니 느꼈는데 이러한 수를 두며 거절에 대한 큰 짐을 지우는 사람이라면 빨리 끊어내는게 이로운 관계임을 느꼈다.



📖자신에게 건네는 친절_ 우리는 스스로를 위로하는 법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자신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을 알고 있는 것이다.

알면서 안한다. 알면서 모르는척 하지! 안다고 말한들 달라지는건 없으니까. 알고있으니까 된거지. 라는 식에서 끝내버리지 저자가 말하는 자기자비는 허용하지 않았다. 이 능력을 타고났음에도 불구하고 자비도 연민도 안 갖추고 산다. 이게 왜 미덕이 된건지는 모르겠으나 늘 가장 가까운 이에게, 진짜 가까운 자신에게는 한없이 냉담하다. 오죽하면 우스개소리로 죽고 나서 사후 세계로 가서 영화와 웹툰에서 보았던 나태지옥에 빠지더라도 한국인들은 아주 열심히 뛰면서 나태지옥을 부지런지옥으로 만들어 버릴 거라고 했다. 자비없는거지. 얄짧없는거고.

너그러워지다보면 나약해질까봐 그러면 원하는 삶과 멀어질까봐 두려운 생각으로 사는 걸 보면 자기주문도 자기연민과 자기자비도 때때로 허상같이 느껴지기도한다. 내 갈래에 있음에도 아직 진짜 마주하지 못했던 감정이라 의심하게되는 내면의 자비로움이다. 진짜 있긴 하겠지?



타인을 위한 배려든, 폐 끼치는게 두려운 마음 숨김이든 그건 좀 편히 살고자 하는 내 욕망이 성향으로 만들어 진 또 다른 나. 이게 내 분신인냥 사는 것에 큰 불편함 없이 산다면 걱정이 없겠다만 때때로 이 과정으로 인해 겪게되는 자기혐호가 제법 강하게 밀려 올 때가 있다. '거짓자기'이며, 껍데기만 번지르르한 포장지 같다는 것에서 피로를 느낀다면 이게 진짜 문제가 되더라.

다 읽고 보니 저자도 나 처럼 착하고 무던하다는 꼬리표에 얽매여, 타인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한 인물로 살아오느라 자책도, 자기검열도 끊임없이 반복했음을 고백한다. 자아를 까맣게 잊어버린 심리학자의 이야기라면 이러한 분야에 문외한 나도 쉽게 읽혀지며 많은 공감을 하며 어디서도 이야기 하지 못한 말들도 나눌 수 있을거라는 생각으로 두툼한 책을 고민없이 펼치게 만들었다. 이 모든 이야기는 모두 저자의 경험이니 확실한 사례제시와 함께 겪어봤음직한 고민의 단상들이니 편하게 시작 할 수 있음은 분명했다.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대학졸업 후 이뤄지는 직장인의 삶으로 떠올릴 수도 있겠다만 우린 더 이른 사회생활을 시작했었다. 아는 단어도 몇 없고, 의사소통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유아기 시절 어린이집 등원과정에서부터 한 집단에서 나와 다른 성향의 사람들과 시간을 공유하고 장소를 공유하며 지내게 된다. 그러고보면 우린 사회생활 참 일찍 시작했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인간관계 형성과 집단생활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으로 많이 다쳤고, 또 많이 배웠다. 이건 하지 말아야 하는구나를 깨우치고, 이 상황에는 내 목소리를 명확하게 내어 의사 전달과 원하고자하는 바를 꼭 획득하리라는 다짐을 할 때도 있다. 그런데 그게 나이 들어서도 계속 해야한다는 점을 잊고 살았다. 인간관계의 자기 허용 과정은 주기적으로 업데이트 해야만 호환이 되는 삶의 개정판이 필요하다는 것. 한동안 개정되어지지 않은 구버전으로 살았으니 반응이 느렸고 버벅였나보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상위 버전으로 인간관계 데이터 확장을 했으니 나도 때때로 목소리를 내는 사람으로 야금야금 확대해볼까 싶은 마음이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고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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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리스트 2024-09-03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최측근에게 조신한 또라이 차분한 도른자 에서 무릎을 탁 쳤습니다 이제 세상에 조.또.차.도.가 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이 말입니다! ㅋ
 
첫사랑의 침공 안전가옥 쇼-트 29
권혁일 지음 / 안전가옥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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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가옥 쇼트 시리즈 중 가장 최근이라 할 수 있는 6월에 나온 첫사랑의 침공. 이 또한 알라딘의 마법사의 선택으로 추천 받은 책이었다.


확실히 내 도서 구매 이력이 탄탄하게 쌓여있는 곳이라 그런가 재밌어 할 만한 요소들을 기가막히게 뽑아내었더라구. 눈에 익은 출판사와 재미 보장된 시리즈의 최근 회차 출간물이니 중도 포기하진 않겠다 싶어 골랐다. 그리고 가볍게 읽고, 잔잔하게 떠올리기 좋은 요소의 것들이 가득했다. 사랑을 시작하려 주저하는 이들, 진득한 사랑의 마침표로 애먹고 있는 이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사랑이 생의 마지막임을 직시하고 아주 길게 지속하리라 마음먹은 이들이 읽으면 좋을 중복되지 않는 사랑의 갈래가 4개의 단편으로 짜여져있다. 우린 모두 첫사랑의 침공에 무장 습격을 받아 본 사람이니 여기 네 가지의 이야기 중에 하나 정도는 공감하게 될 것이다.(단정할 수 있는건 나도 공감을 했기에 하는 말이다) 꾸깃꾸깃 욱어두고 마음속 구석탱이에 짱박아둔 A를(또는 어떤X가 될 수도 있겠다) 소환 할 수 밖에 없으리라 단정지어본다.




📖세상 모든 노랑_ 저주가 풀리는 건 영화에서나 일어나는 일이야. 이제 깨달았어. 현실으 인간은 견뎌야해. 견디고 살아가야 해. 그게 인간이야.


영이 잊으려는건 랑이 손을 잡아주어 알려준 세상의 모든 노랑에 대한 다양성이 아니었다. 랑과 함께 했던 순간마다 있던 노랑에 대한 기억일 것이다. 혼자 보고 감탄하며 알아가는 과정보다 함께 해서 느끼며 곱절로 얻어진 감정 때문인 것이니 그러지 못할 때에 다가오는 마음의 서글픔 때문에 노란색을 모르던 이전으로 살고싶어했을 것이다. 눈을 고쳐달라고 떼쓰는 이유는 랑을 잊고 살 바엔 랑을 안 보고 살았던 이전으로 가는게 오히려 마음이 덜 쓰릴거 같아 제멋대로 부려보는 생떼같은 심통이었다. 상대가 미안해하고 어쩔 수 없어하는 그 감정까지도 알면서 부려보는 억지의 마음. 그래서 이 미운짓을 부리는 이도, 그걸 어찌 할 수 없이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이까지도, 결국 다 아파야 끝이나는 엔딩이었다.




📖세상 모든 노랑_ 예룬, 인간에게 필요한 건 최고의 신이 아니야. 곁에 함께 있어 줄 존재가 필요한 거지. 최고의 신이라도 그 역할을 해 줄 수는 없어.


뭐랄까. 결국 헤어져야하는 상황이지만 착한 안녕따위 없다며 싫은 소리로 결국 '너는 내가 필요 할 때 내 옆에 없잖아!'로 부려보는 원망과 미움이 그득하지만 그럼에도 '내 옆에만 있을거라는 그 한마디만 해주면 모든게 없던일로 되는데 너는 그 말을 해주지 않을거잖아?' 라고 저 혼자 물어보고 저 혼자 답하게되는 연인들의 마지막 상황처럼 보였다.

곁에 있고 싶지만 상황이 그러하지 못한 A, 곁에 있어달라 주저 앉히고 싶지만 안된다는 걸 너무도 잘 아는 B의 모습. 그래서 이 이야기의 끝은 이별이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시 재회하는 상황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다는 오차없는 당연한 흐름으로 마무리된다. 마음 어딘가에는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있는 과거의 이어지지 못한 사랑의 잔상처럼 말이다.




📖광화문 삼거리에서 북극을 가려면_ 죽지만 않으면, 어디에서든 살아만 있다면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어. 기억을 잃어도, 서로 다른 은하에 존재한다고 해도. 내가 꼭 서현을 다시 찾아낼 거니까.


어린 시절 보육원에 맡겨 질 때 생일에 데리러 오겠다는 아버지의 지켜지지 못할 약속보다 다른 은하계와 다른 인종의 메로가 하는 말은 꼭 진짜이길 바라는 서현. 다시 만날 확률을 물었을 때 0.00000000001%쯤 이라는 말과 어쩌면 그보다 더 훨씬 적을 수도 있지만 0%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와 더불어 기대하게되는 재회의 순간. 이 지구, 이 세계 어느 곳이든 한 명쯤은 오롯이 나만을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올 만큼 돌아갈 여력이 남지 않더라도 곧장 나에게 달려 올 만큼의 애틋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안도하게 된 다면 그건 무조건 사랑이라는 걸 보여준다.



지구가 외계인에게 침공 되던 말던, 비무장지대에 총알받이로 앞세워 지던 말던 수년 전 사라진 첫사랑 '서고'누나를 만난다면 나란 놈의 목숨 따위 언제든 내어 줄 의향이 있다는 성윤. 당장 죽더라도 서고를 만날 수 있다는 그 찰나 하나만으로 만족하는 '첫사랑의 침공'


선천적으로 노란색을 못보는 영, 노란색의 신의 랑. 랑이 영의 손을 잡으면 생생하게 살아나는 다양한 노랑의 빛깔. 이건 사랑하는 이를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뉘어지는 세상을 대하는 시선의 달라진 온도차와 같은 것. 흔해빠진 것들도 함께 손을 잡고 보면 둘만의 서사가 되어지고 특별한 의미가 됨을 말해주는 이른바 사랑의 콩깍지 같은 과정을 그린다. 콩깍지는 결국 벗겨지는 것이고, 둘의 간극은 우리가 원하는 결말이 되어지지 못하게 되어 안쓰러운 과거가 되어버리는 '세상 모든 노랑'


보육원에 맡겨진 소녀. 생일엔 아버지가 데리러 올거라는 믿음으로 살지만 그래서 어느 누구와도 마음을 나누지 못하고 사는 서현. 누굴 믿지도 못하고 의지하지도 못하다가 지구 멸망까지 마주하게된다. 중고 노트북으로 메세지를 나누던 일면식도 없던 외계인. 서로 나누던 대화를 통해 아무도 열지 못한 마음의 빗장을 연 유일한 존재. 그 마음이 온전히 전해져 행성까지 뚫어서 올 만큼 그렇게 절절하고 애틋한 각기다른 존재. 저 크고 넓은 우주 어딘가에 나를 좋아해 줄 존재가 있다는 확실을 주는 '광화문 삼거리에서 북극으로 가려면'


남파간첩 민정의 위장 결혼 생활. 평범하게 사는 척 보여야했기에 했던 의도하지 않은 결혼이지만 그렇게 6년간 살아가며 젖어든 남편 정훈과의 삶. 간첩이라 말해도 외계인이 아니냐며 뜬구름 잡는 이 어이없는 사람. 도망을 가라해도 말도 안 듣고 죽여야하는데 죽이지 못하는 서로의 말을 안 들어먹는 똑같은 둘. 그러니 같이 살았다 싶은 부부의 모습. 그놈의 하와이안 오징어볶음이 뭐길래 이렇게 아른거리고 또 미안해지고 그러는 동시에 두고갈 수도 없냐는거냐고 되물어 보지만 답이 없다. 오징어볶음은 핑계다. 6년간 가랑비에 옷 젖어들듯 스며든 결혼과 이 사람의 마음이 간첩이든 외계인이든 그냥 같이 살게 만들었다. 어쩌겠어. 부부는 닮는다는데, 이 반쪽 두고 어딜 가. 못가지 못가....'하와이안 오징어볶음'




이 모든 사랑의 이야기들은 어딘가 모르게 가엾다. 그리고 이 마음들이 너무 여리게 느껴져서 어떻게든 보듬어서 더이상 다치거나 상하지 않게 두손을 모아 떠받들어 주고픈 마음이 든다. 한때 주구장창 들었던 에피톤프로젝트의 '첫사랑'과 '연착'이라는 가사말이 흥얼거려지기도 하고, 심규선의 '선인장'이 귓가에 맴돌기도 했다. 아무렇게나 책장을 펼쳐 장면을 픽스해봐도 날카로운 마음은 어디도 보기 어렵다. 그리고 빌런도 없다. 그래서 더 짠하다는 마음이 커지나보다.

살면서 이런 사랑, 아니 이런 왈랑이다가 저며지다가 또다시 애틋해지는 그런 감정이 한 번 쯤은 있었을 것이다. 그게 처음이 될 수도 있고, 인생의 중간 지점이었을 수도 있고, 지금 이어가는 진행형일 수도 있겠다. 독자의 연령은 다양하니까. 그리고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도 일치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 즈음에 어딘가 모르게 겹쳐지는 부분이 있다면 우린 그렇게 사랑에 침공 당한 상태라고 순순히 받아들여야된다는걸 보여주고있다.


단편이지만 이 글 이전의 장면들도 언뜻언뜻 눈에 그려지고, 이후의 이야기도 유추가 가능한 흐름이다. 그게 흔해서가 아니라 나도 우리하게(경상도식 표현이다) 겪어봤던 마음의 흉터라 그런가보다. 빌런도 나오고 속에 울화가 치미는 못되쳐먹은 막장이 아니라서 더 짠한놈들의 사랑. 그래서 이제는 이 모든 감정을 권혁일식의 사랑의 침공이라 정의해도 되지 않을까.

사랑앓이 중인 사람이 있다면 쓰윽 밀어 넣어보자. 광광우럭우럭 하며 공감할게 뻔해보이니 책 추천할 맛이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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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월; 초선전
박서련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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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루프를 읽으며 최근작이었던 체공녀 강주룡이 궁금했고, 제법 마음에 드는 주제의 선정과 함께 글의 흐름이라 최근에 나온 폐월; 초선전도 기대감으로 아무런 지식 없이 바로 구입하며 휴가기간동안 읽으려 쟁여두었다.

성장소설이었던 '고백루프', 많은 저자들이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각자의 이야기를 내어 주었던 '요즘 사는 맛',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며 실제 여성 노동자의 일생을 그린 전기소설의 '체공녀 강주룡'까지. 나에겐 제법 괜찮은 작품의 흐름을 보여주기에 당연히 차기작도 마음에 들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구매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삼국지(연의) 속 등장인물, 얼굴이 너무 아름다워 달마저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는 초선의 이야기. 저자는 초선을 1인칭 화자로 삼아 직접 자신의 생을 말하며 남성 영웅 서사인 삼국지에서 외전 버전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아름다움을 무기로 삼은 초선, 자신이 말해주는 그녀의 삶 전체. 여포와 동탁을 분열시키는 막중한 임무를 담당하였으나 서사 바깥으로 밀려난 자신을 다시 중심으로 끌어와 어린 거지들과 밥을 빌어 먹고 살던 이름 없는 시작부터 충신의 후손이라는 거짓과 왕윤의 양녀가 되어 스스로 초선이 되는 과정까지. 어찌보면 당돌하고, 어찌보면 또 영약하기 그지없으나 결국 자신이 잘난 것을 알고 그 잘난 점을 내세워 모두를 홀린 여인.



마음에 남은 문장은 없으나 이토록 잘난 여자는 결국 어찌하든 제 삶을 살아 나가며 길이 열리는 구나를 느끼지만 이 이야기를 굳이 중 후반부터는 수위가 높은 장면이 세세하게 묘사되는게 맞을까도 의심이 들었다. 저자가 이 여인의 서사를 알려주기 위해 필요했던 파트였던 걸까를 의심하게 되면서 이 책이 아무런 연령제한이 없어도 되는건가? 요즘 책은 이래도 되나 싶기도 했다. 뭔가 집에 우물을 만들기 위해 일꾼들을 들이는 순간부터는 이야기를 이끌어 가기 보다는 그냥 황급히 내용 전개를 위해 어떻게든 끌고 가려는 황급함이 보였다. 수위높은 장면을 위해서 어떻게든 초선을 가기로 만들려고 했던 과정, 가기들끼리 한방에 지내며 일어난 일들, 동중영이 월사를 먼저 알아차리는 것 부터 하여 정말 내 취향은 아니었다는 것.


초선의 이야기를 제삼자의 시선이 아니라 자신의 시선으로 담담히 풀어냈다고는 했으나 여성의 서사 문학의 감흥을 낳을 것이라 했지만, 색이 빠지면 어떠한 자극적인 요소도 없으니 그것에만 힘을 준 느낌을 받았다. 어려운 형편의 시절이든 왕윤에게 발견되어 양녀로 받아들여지는 과정에서 더 멋있는 서사를 기대했던 내가 미련했다는 느낌이었다. 삼국지를 안 읽어서 그런가. 그래서 인물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던 탓을 해야할까. 암튼 나는 이 책이 아쉽고 아깝다 싶어진다.



... 좀 더 알아보고, 출판사 제공 책소개를 좀 더 꼼꼼히 보고 구매 했어야 함을 다시한번 느끼는 이번 해 첫 실패 도서의 기록이다.(주관적 성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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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오렌지와 빵칼
청예 지음 / 허블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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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과학소설로 분류가 되는구나? 감정을 조절하는 기간 한정 뇌 시술이라는 것 때문에 과학소설로 분류되려나? 나에게 오영아의 삶은 세밀하게 그려진 초현실적 리얼리티 그 자체인데 말이다. 그래서 더 깊게 오영아에게 스며들 수 있었고 오영아의 다음 선택이 궁금했다. 그래서 오영아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이 센터를 추천하게 될 것인지 기대하게 되더라.



스스로를 통제하고 동시에 해방을 누린다는 이율배반적인 상태를 완성한다는 말을 계속 곱씹었다. 통제와 해방에 대한 정의와 그걸 균형맞춰 써 먹을 수 있고 손에 쥘 수 있수 있는 능력에 대하여. 자유와 절제의 또 다른 맛이다. 그래서 복잡했고, 어떻게 풀어야 잘 알아먹었다고 할 수 있을지를 고심했다. 그리고 오영아의 삶이 마냥 허구처럼 느껴지지 않아 어딘가 모르게 찝찝하리만큼 내 삶을 들킨 것 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 저자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사람들 속에서 버텼는지도 궁금해지고, 다른 책들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 원장이 공허하게 미소 짓더니 큰 손으로 내 등을 훑었다. 어설픈 위로는 안 받느니만 못하지만 살다 보면 필요없는 일들을 서로 용인해야 할 때가 있다. 나 또한 원장과 동일한 표정으로, 텅 빈 감정을 나눠주었다. 돌아서면 금방 휘발될 이 웃음은 너무 가벼웠다.

유치원 교사인 영아. 은우라는 아이의 행동에 다른 원아들이 울고 은우느 떼쓰고. 그 상황을 잘 수습하길 원하는 원장. 아이들이니 봐 줘야하고 아이들이니 보듬어야한다는 생각으로 원장은 큰 사건으로 만들지 않길 바라며 영아의 선에서 모든게 마무리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위하는 척 하고 고생한다는 듯 상사이자 인생의 선배로서 다 지나가리라 라는 뉘앙스를 던져준다. 해결해주거나 나서지는 않는다. 이건 네 일이니 네가 알아서 깔끔하게 끝내고 나 까지 끌어들이지 말라는 듯 선하고도 단호한 미소다. 그래서 더 싫다. 솔직한 마음을 미소로 덮어버린 그 행색을 보면 나이를 먹고 직급이 올라갔을 때 나도 모르게 똑같은 사회적 선함을 이렇게 보일까봐 무서워진다.



📖"늘 내가 더 고맙지."

고맙다는 말만큼 무고한 거짓이 또 있을까.

영아가 이러한 삶을 살도록 지대한 영향을 끼친 2인 중 한명. 룸메이트이며 세상에 혼자 떨어진 듯 살던 시절 살뜰하게 챙겨준 은주. 자신의 의견에 맞춰 공감해주길 바라는 존재로서 항상 자신의 견해는 없는 YES걸이 되어주길 바라는 인물이다. 요즘 흔하게 하는 말로는 가스라이팅이라 할 수 있겠고, 더 편하게 말하자면 일종의 세뇌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세상의 일에 선봉자가 되어야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건 모두 선하고 옳은 것이며, 사회를 위해서는 엄격히 규율에 맞춰 살아야만 한다는, 결국 지 멋대로 자기주장이 옳음을 말하는 인물이다. 그러니 굳이 토를 달아 피곤한 입씨름을 하기 보다는 그냥 고맙고 네 말이 무조건 옳다는 식의 받들어 모시는 것이 익숙한 영아를 보면서 싫지만 대놓고 싫어 할 수 없는 자신의 인간관계와 현실적인 조건에 매번 져 주는 모습을 보게된다. 그리고 그만큼 자기 감정을 누르고 사는것에 만성이 된 생기 잃은 영아가 눈 앞에 그려진다.



📖삶은 이런 식으로 노력을 자주 비껴갔다. 단일 선택지가 선량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덕들이 병렬적으로 쌓이면 악행으로 치닫기 쉬웠다.

나는 백번 양보하는 배려였는데, 받아들이는 상대는 당연하게 삼키거나 때로는 지 입맛에 안 맞게 챙겨준다고 싫은소릴 해대는 걸 볼 때. 맥이 빠지고 굳이 내가 이렇게까지 해서 살아야하나를 떠올리게된다. 나에게는 수고로운 배려였고, 상대에겐 마뜩잖은 행실로 읽혀진다. 선함과 도덕적 욕망의 추구를 들이 밀어붙였을 때 되돌아 오는 것이 모욕으로 종결되는 상황. 좋아하길 기뻐하길 바랬으나 쓴소리와 함께 싫은 내색이 빤히 드러나는 모습은 '내가 이딴 취급 받자고.....'를 계속 떠올리게 만들어 내가 이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게 내 신상에 이로운게 맞는지를 계속 되묻게 된다.

선한 사람이 되고자 고양이 밥주는 행위가 캣맘들에겐 눈에 거슬리는 행색으로 돌아 올 때, 환경 생각하는 이에게 텀블러를 사 주었더니 복수 구매하는 사람이면 그 의미가 퇴색된다며 되려 성질을 내는 상황(5년이나 지났잖아? 5년간 2개인데? 그게 맥이는 걸로 보이냐?). 공정거래나 동물복지를 하는 제품을 구입하면서 25마트의 염가판매 매장을 멀리하고 통장 잔고의 잔액을 보며 쓴웃음 짓는 자신을 볼 때. 영아의 노력은 이토록 정확하게 목적과 결과를 일치하지 못하고 항상 비틀어짐을 겪는다. 삶의 노잼 시기를 옴팡지게 다 겪는 온통 지뢰밭인 길을 저벅저벅 걸어가는 기분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쉬운 선택지를 택했다. 관계가 불편해지는 것보다 일상에 모순을 더하는 일이 쉬웠다.

... ...

사람은 다 그렇게 살고 있다. 사람다움의 본질은 때때로 얄팍하다.

이렇게 쉬운 선택지를 택하면 관계는 생각보다 유순하게 흘러간다. 그렇지만 속으로 하는 욕지거리는 늘어나고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내 눈빛은 한없이 더럽고 경멸하는 걸 마주한듯 탁해진다. 속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상대와 이야기 할 때엔 공감과 동조만 하면 되니 머리를 굴리며 내 생각을 피력할 에너지를 줄일 수 있다. 다만, 그러니까 다만 나 혼자 상념에 잠기거나 홀로 시간을 보낼 때 순간순간 과거를 떠올리면 내 속에 들어앉은 악만 품은 놈이 불쑥불쑥 목구멍을 비집고 나오려한다는게 문제라는 것이다. 뭐 다들 이렇게 사니까 내가 이런 것도 지극히 정상일거라는 생각을 하며.

그래서 영아는 곪았고, 3분 남짓의 짧은 시술이 더 강력하게 들어먹힌건지도 모르겠다. 감정 조절 기간 한정 뇌 시술. 4주의 기능을 부여받았다. 뭐,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에서도 조정협의기간을 4주라며 매번 신구아저씨가 말했던 거니까. 4주는 약 한달. 짧을 수도 길 수도 있는 모호한 시간이며 내 주변 사람들과 한번 정도는 마주하며 시간을 공유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그렇다. 이제 기간 한정 도른자로 살아도 된다는 뇌의 신호에 반응 할 시간이라는 거였다. 카타르시스? 비직비직 나오는 웃음과 광기. 스트레스가 눌려 터진 자리에는 이름없는 불행들에 반응하는 웃음이 피어올랐다.



📖스스로를 통제하고 동시에 해방을 누린다는 이율배반적인 상태를 완성했다. 그건 아무도 모르는 자유의 왕국이었다.

저자가 가장 강력하게 밀어붙였던 이야기의 핵심처럼 느껴지는 문장이다. 통제와 해방. 둘 다 알게되었다. 그 자극 하나로서. 센터에서 받은 시술에 대한 기한은 끝이 났고. 이제 영아는 통제 기능이 발달한 원래의 영아로 돌아갈 것이다. 속은 아니라 할 테지만 입밖으로는 언제든 YES를 말하는 모두에서 선하고 착하며 공감 잘 해주고 알아서 잘 하지만 불행은 다시 차곡차곡 쌓아가는 도덕성 짙은 사람으로. 쾌락은 기억하지만 그리워하고 실행에는 옮기지 못하는 절제된 인간으로서. 그리고 다시 이 시술을 추천던 수원의 옆으로.

그리고 추가 시술 없이 자유로운 낯선 폭력을 행사하며, 무딘 빵칼로 해낸다. 수원이 말하는 '너도 해냈구나'라는 그 행동을.

엔딩이 쓰다. 이 시술에 관해 추천했던 은우모와 수원이 왜 자신의 이름을 대고 센터로 가게 했던건지. 그럴 수 밖에 없는 달디단 자극들. 돌아가야하는게 사회적으로는 맞다고 하지만 개인주의적으로는 거부하고픈 유효기간 연장의 유혹까지. 모두가 같은 갈등을 겪는건 맞겠지만, 이걸 통제하는 통제력을 더 키워 아닌척 살건지, 똑같이 피실험자 한 명을 연구소로 밀어 넣을 것인지가 관건이겠지.

달고 상큼한 오렌지 파운드를 먹기 위해서는 끝이 무디지만 그럼에도 칼이라는 이름을 가진 빵칼을 쥐고 썰어내야한다는 것. 그게 인간관계와 같은 반응이라 봐도 되겠지. 이 구역 미친자로 살고 싶지만 현실은 있는듯 없는듯 눈에 띄지 않고 거슬리지 않는 잔잔한 주변인1로 남고싶어하는 사람의 심리를 깔끔하게 담아냈다. 그래서 영아에게 많은 공감을 했고, 내 자아 일부를 옮겨 심은게 아닌가를 생각하게 했다.

개운하지 못한 결과인건 안다. 지속하기 어려운 감정인 것도 공감한다. 그럼에도 더 나아갈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영아의 다음 행보가 걱정이 되면서도 또 나 대신 속시원하게 한마디 툭 뱉어주길 바라게된다. 내가 못하는거 부디 영아라도 개운하게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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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제스틱 극장에 빛이 쏟아지면
매튜 퀵 지음, 박산호 옮김 / 미디어창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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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선정된 매튜 퀵의 장편소설. 오스카상 수상작인 실버라이팅 플레이북 원작 작가의 신작으로 2022년 아마존 최고의 문학과 소설로 선정된 책. 인류애가 상실된 사회에 꼭 필요한 구원서사라는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서간문의 형식을 띄고 있다.

편지를 쓰는 주인공은 루카스. 그리고 편지로 그의 이야기를 전해 받는 사람은 정신분석가인 칼이다. 둘은 같은 사건으로 인해 아내를 잃었다. 동질감에서 시작된 마음의 공감이 시작이었을테고,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야 하니 내가 힘을 내려하니 칼 당신도 무너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루카스는 편지를 쓰는 것 같았다. 결국은 루카스는 자기가 살아보려고 자신을 다잡는 마음의 표현처럼 느껴졌다. 똑같은 일을 겪은 사람이니 나의 암울의 끝을 드러내어도 될 만한 사람. 그리고 한껏 슬퍼하고 그리워 하더라도 이해해줄 사람이라고 여긴걸로 보였다. 더욱 사사로운 마음의 조각들까지 모조리 알려주고픈 사람. 그러니 이 글을 쓰는 행위만으로도 루카스는 위안을 받는다. 그러면서 어떻게 치유 해야 할지, 이 어이없는 사건의 전개와 남은 자들의 마음은 어찌 추스려야 할지를 스스로 묻고 답하는 모습을 보게된다.

루카스는 칼에게 18통의 편지를 통해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내어둔다. 머제스틱 극장에서 일어난 참사였다. 역시나 칼 또한 극장에서 아내를 잃었다. 루카스의 집에 한 소년이 찾아온다. 밉지만 마냥 미워할 수 없는 아이가 온다. 자신에게 상담치료를 받던(그는 고등학교 상담교사다) 학생이며 사건의 가해자인 제이롭의 동생이다. 가해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에게 배척당하는 앨리는 루카스의 집 뒷마당으로 도망치듯 들어와 텐트를 치고 살기 시작한다.(이 상황부터 나는 이해하기 어렵더라. 남의 집에서? 그것도 침입에 이어 거주를?) 천성이 선량한 그는 앨리까지 잃어선 안된다는 생각에 고등학교 졸업이 가능한 프로젝트는 물론이고 어떻게 살아갈지, 주변 사람들과 지낼 수 있는 관계 형성에 도움을 준다.

옳고 그름이 분명한 사람, 그리고 선과 악을 정확히 줄로 그어 이분화 하는 인간이라 '어우 나는 못할거 같아.'를 연신 연발하며 읽어가며 루카스의 선함의 끝은 어디일지를 예상해보며 읽어가는 재미도 있다.(독자와 책의 주인공 성향이 정 반대면 이 또한 색다른 흥미를 끌기 좋은 것)




📖당신이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었어요. 당신의 영혼이 내 영혼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었죠. 마치 숨을 쉬는 것이 우리의 폐와 코가 하는 일인 것처럼, 모든 영혼의 목적은 사랑하는 것이니까요.

사랑이라는 것을 남녀와 연인관계, 가족, 사랑하는 대상으로 구분짓는 것을 넘어 사물과 주변을, 모든 인류와 만물을 사랑하고자하는 기본적인 마음의 성향. 루카스가 어떤 인물인지를 알려주는 문장이다. 사랑이 가득한 사람. 그래서 포용할 그릇이 아주 큰 사람.

이 이야기는 앨리의 삶이 낙오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뒷받침하는 인물의 유용한 배경지식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서간문의 끝에는 달아둔 문장이 있다. '이건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할게요. 당신은 날 도와줘야 하지만, 린드라의 죽음을 제대로 애도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 후에는 다른 많은 사람들을 돕는 일도 다시 시작해야 해요.' 를 통해 자신이 갖고 있는 아주 좋은 능력을 유용하게 써줌으로서 똑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더 확실히 이해하고 빨리 일상으로 복귀 할 수 있도록 하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루카스는 가족을 잃은게 빨리 잊혀지는 게 아니다. 애도와 그리움은 그리움이고, 남겨진 이의 남은 몫의 삶도 똑같이 소중함을 알려주고픈 문장이었다. 정에 기대는 마음도 있지만 현실을 바라보는 날카로움도 같이 갖고 있는 사람이라 이 사람은 뭔가 마음을 먹으면 꼭 해내고야 말겠구나를 느끼게 만들기도 했다.




📖사람을 치유하는 일에 누군 선택하고 누군 내치고 그럴 순 없잖아요. 온전해지고 싶은 사람은 다 치유해야 해요. 그것도 온 마음을 다해 완전하고 철저하게요.

매사에 걱정이 많고 앞선 생각으로 굳이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대한 우려를 하는 사람으로서 삶에서 일어날 가정을 하며 미리보기 한편씩을 수시로 만드는 사람이다. 앨리를 그저 상담 교사와 학생으로 아는 것으로 끝났을 때, 제이콥이 그러한 일을 벌이지 않았을 때를 생각해보면서 그렇다면 이러한 마음쓰임의 과정이 없었을 것이고, 모든 이들을 설득해가며 한 사건으로 인해 다수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의 복잡한 과정의 수순을 이어가지도 않았을 텐데를 떠올려본다. 온전해지고 싶은 사람이기 이전에 온전한 삶이라 상실의 슬픔에 대한 습득과 극복의 과정도 없었을 거라는 거지. 그런걸 보면 자기극복과정을 넘어 집단의 심리 변화와 편견을 바꾸는 과정이 얼마나 큰 노력이 드는지를 느끼게 된다.


📖당신에게도 당신만의 상처와 악마가 있다고 말했던 기억이 나요. 모든 치유자는 처음에 상처받은 사람이었다고요. 그들의 목표는 그 고통을 감당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그 고통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라고요. 그러다 보면 고통이 스스로 치유된다고 했죠.

칼은 답장을 하지 않았고, 루카스는 이전에 보낸 편지에 이어 내용을 전하고 싶어 자신이 쓴 편지를 미리 복사해 사본을 둘 만큼 철저했고, 그리고 꼼꼼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흥미로워 할 것이라 여기면서 자신으로 인해 살아갈 용기와 변화되는 세상에 대한 재미를 느끼길 바라는 기대감이 가득해 보였다. 그러니 자신의 상황과 고통을 의미있는 것으로 남겨보고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복하고 있음을 보여주고팠으며 잘했다고 칭찬받길 원하는 기대심리도 가득했다. 하지만 침묵을 유지하는 칼. 그로 인해 이러한 고통마저 감당하기로 하는 루카스를 통해 이 사람은 쉬이 지칠 사람은 아니겠구나를 생각해본다. 편지의 말미에 두렵다고는 했으나 아주 잠깐 그러할 뿐 또 한켠에서는 답장을 쓸까말까를 고민할 칼을 먼저 떠올리며 또 편지를 쓰려고 자세를 고쳐앉을 루카스가 눈에 그려진다.



📖내가 아는 거라곤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 내 인생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암울한 시기에 나를 가라앉지 않게 해준 유일한 힘이었다는 것뿐이예요.

그냥 들어주는 것. 어떠한 결론을 내리기보단 가만히 귀를 귀울여가며 꼼꼼하게 이야기를 받아들여주는 마음. 그게 루카스를 살게 했으며, 밝고 희망차지 않은 이야기라도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 말 할 힘이 났을지도 모른다. 세상이 외면하고 벽으로 둘러쌓인 세상이 아니라 어느 한명 즈음 내 이야길 들어줄 자세를 갖추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자기세상속에 갖혀있지 않을 구실을 만들어준 편지들이었고, 긴 시간이었다.


가족 구성원 일부를 잃은 이. 그리고 가족이 그 사건의 가해자여서 모두에게 질타를 받는 이. 모두 마음이 쓰이는 인물의 배경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죽음과 그의 만행이 용서되고 이해될까? 상대를 보면 울컥울컥 할텐데, 루카스의 직업과 천성의 심성이 사람을 한명 살리고, 마을사람들의 시선을 바로 잡는데에 한몫을 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의 성정이 더욱 궁금해지고, 그게 될까를 의심하며 편지글을 읽었던 것 같다. 루카스의 상황에 나를 대입해 보더라도 스스로의 상황에 더딘 자가치유와 더 커지는 가해자에 대한 분노가 불규칙적으로 오르락거릴텐데, 그리움의 심연이야 겉으로는 애써 괜찮은 듯 포장하더라도 절망과 분노의 울컥거림을 앨리의 성장서사에 마음을 쏟아질 수 있는 그의 치유방식은 놀랍도록 침착하고 선했다. 그래서 나는 못 할거 같다는 생각을 하며 다음 편지에는 감정을 토로하는 것도 있을거라는 추측을 했던 것 같다.(결국 없다. 루카스는 그저 천성이 그러한 인물이었다)

결국 선한 사람의 영향력 덕에 사람들이 변하고, 마을이 움직이는 걸 볼 수 있었다. 마치 저녁 노을을 바라보면 나 역시도 얼굴이 붉게 물드는 것 처럼 그렇게 스미는 방식. 그래서 사람들의 영향력이, 마음의 진심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낄 수 있으면서 이렇게 마음 먹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어려웠을지를 긴 편지글을 통해 이해하게된다.

그래서, 나는... 나같은 사람도 그게 될까? 이러한 마음을 먹으며 상대를 구원하기 전에 나부터 구원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본다. 복잡한 머릿속의 생각들을 글로 적어두는걸 좋아하긴 하지만 누구에게 맘 편히 내어본 적이 얼마나 있나를 떠올려본다. 매일 쓰는 블로그의 글 이라도, 때때로 비공개를 걸어두고 마음의 벽을 촘촘히 세우는 것에 익숙해져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래서 온전히 내 마음을 내어두는 것부터 시작한다면 간헐적 선한 사람으로, 빈도수가 늘진 않더라도 때때로 선한 사람으로 바뀔 수 있을거라는 조금 긍정적인 믿음으로 루카스를 닮아보고파진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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