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의 침공 안전가옥 쇼-트 29
권혁일 지음 / 안전가옥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안전가옥 쇼트 시리즈 중 가장 최근이라 할 수 있는 6월에 나온 첫사랑의 침공. 이 또한 알라딘의 마법사의 선택으로 추천 받은 책이었다.


확실히 내 도서 구매 이력이 탄탄하게 쌓여있는 곳이라 그런가 재밌어 할 만한 요소들을 기가막히게 뽑아내었더라구. 눈에 익은 출판사와 재미 보장된 시리즈의 최근 회차 출간물이니 중도 포기하진 않겠다 싶어 골랐다. 그리고 가볍게 읽고, 잔잔하게 떠올리기 좋은 요소의 것들이 가득했다. 사랑을 시작하려 주저하는 이들, 진득한 사랑의 마침표로 애먹고 있는 이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사랑이 생의 마지막임을 직시하고 아주 길게 지속하리라 마음먹은 이들이 읽으면 좋을 중복되지 않는 사랑의 갈래가 4개의 단편으로 짜여져있다. 우린 모두 첫사랑의 침공에 무장 습격을 받아 본 사람이니 여기 네 가지의 이야기 중에 하나 정도는 공감하게 될 것이다.(단정할 수 있는건 나도 공감을 했기에 하는 말이다) 꾸깃꾸깃 욱어두고 마음속 구석탱이에 짱박아둔 A를(또는 어떤X가 될 수도 있겠다) 소환 할 수 밖에 없으리라 단정지어본다.




📖세상 모든 노랑_ 저주가 풀리는 건 영화에서나 일어나는 일이야. 이제 깨달았어. 현실으 인간은 견뎌야해. 견디고 살아가야 해. 그게 인간이야.


영이 잊으려는건 랑이 손을 잡아주어 알려준 세상의 모든 노랑에 대한 다양성이 아니었다. 랑과 함께 했던 순간마다 있던 노랑에 대한 기억일 것이다. 혼자 보고 감탄하며 알아가는 과정보다 함께 해서 느끼며 곱절로 얻어진 감정 때문인 것이니 그러지 못할 때에 다가오는 마음의 서글픔 때문에 노란색을 모르던 이전으로 살고싶어했을 것이다. 눈을 고쳐달라고 떼쓰는 이유는 랑을 잊고 살 바엔 랑을 안 보고 살았던 이전으로 가는게 오히려 마음이 덜 쓰릴거 같아 제멋대로 부려보는 생떼같은 심통이었다. 상대가 미안해하고 어쩔 수 없어하는 그 감정까지도 알면서 부려보는 억지의 마음. 그래서 이 미운짓을 부리는 이도, 그걸 어찌 할 수 없이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이까지도, 결국 다 아파야 끝이나는 엔딩이었다.




📖세상 모든 노랑_ 예룬, 인간에게 필요한 건 최고의 신이 아니야. 곁에 함께 있어 줄 존재가 필요한 거지. 최고의 신이라도 그 역할을 해 줄 수는 없어.


뭐랄까. 결국 헤어져야하는 상황이지만 착한 안녕따위 없다며 싫은 소리로 결국 '너는 내가 필요 할 때 내 옆에 없잖아!'로 부려보는 원망과 미움이 그득하지만 그럼에도 '내 옆에만 있을거라는 그 한마디만 해주면 모든게 없던일로 되는데 너는 그 말을 해주지 않을거잖아?' 라고 저 혼자 물어보고 저 혼자 답하게되는 연인들의 마지막 상황처럼 보였다.

곁에 있고 싶지만 상황이 그러하지 못한 A, 곁에 있어달라 주저 앉히고 싶지만 안된다는 걸 너무도 잘 아는 B의 모습. 그래서 이 이야기의 끝은 이별이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시 재회하는 상황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다는 오차없는 당연한 흐름으로 마무리된다. 마음 어딘가에는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있는 과거의 이어지지 못한 사랑의 잔상처럼 말이다.




📖광화문 삼거리에서 북극을 가려면_ 죽지만 않으면, 어디에서든 살아만 있다면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어. 기억을 잃어도, 서로 다른 은하에 존재한다고 해도. 내가 꼭 서현을 다시 찾아낼 거니까.


어린 시절 보육원에 맡겨 질 때 생일에 데리러 오겠다는 아버지의 지켜지지 못할 약속보다 다른 은하계와 다른 인종의 메로가 하는 말은 꼭 진짜이길 바라는 서현. 다시 만날 확률을 물었을 때 0.00000000001%쯤 이라는 말과 어쩌면 그보다 더 훨씬 적을 수도 있지만 0%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와 더불어 기대하게되는 재회의 순간. 이 지구, 이 세계 어느 곳이든 한 명쯤은 오롯이 나만을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올 만큼 돌아갈 여력이 남지 않더라도 곧장 나에게 달려 올 만큼의 애틋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안도하게 된 다면 그건 무조건 사랑이라는 걸 보여준다.



지구가 외계인에게 침공 되던 말던, 비무장지대에 총알받이로 앞세워 지던 말던 수년 전 사라진 첫사랑 '서고'누나를 만난다면 나란 놈의 목숨 따위 언제든 내어 줄 의향이 있다는 성윤. 당장 죽더라도 서고를 만날 수 있다는 그 찰나 하나만으로 만족하는 '첫사랑의 침공'


선천적으로 노란색을 못보는 영, 노란색의 신의 랑. 랑이 영의 손을 잡으면 생생하게 살아나는 다양한 노랑의 빛깔. 이건 사랑하는 이를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뉘어지는 세상을 대하는 시선의 달라진 온도차와 같은 것. 흔해빠진 것들도 함께 손을 잡고 보면 둘만의 서사가 되어지고 특별한 의미가 됨을 말해주는 이른바 사랑의 콩깍지 같은 과정을 그린다. 콩깍지는 결국 벗겨지는 것이고, 둘의 간극은 우리가 원하는 결말이 되어지지 못하게 되어 안쓰러운 과거가 되어버리는 '세상 모든 노랑'


보육원에 맡겨진 소녀. 생일엔 아버지가 데리러 올거라는 믿음으로 살지만 그래서 어느 누구와도 마음을 나누지 못하고 사는 서현. 누굴 믿지도 못하고 의지하지도 못하다가 지구 멸망까지 마주하게된다. 중고 노트북으로 메세지를 나누던 일면식도 없던 외계인. 서로 나누던 대화를 통해 아무도 열지 못한 마음의 빗장을 연 유일한 존재. 그 마음이 온전히 전해져 행성까지 뚫어서 올 만큼 그렇게 절절하고 애틋한 각기다른 존재. 저 크고 넓은 우주 어딘가에 나를 좋아해 줄 존재가 있다는 확실을 주는 '광화문 삼거리에서 북극으로 가려면'


남파간첩 민정의 위장 결혼 생활. 평범하게 사는 척 보여야했기에 했던 의도하지 않은 결혼이지만 그렇게 6년간 살아가며 젖어든 남편 정훈과의 삶. 간첩이라 말해도 외계인이 아니냐며 뜬구름 잡는 이 어이없는 사람. 도망을 가라해도 말도 안 듣고 죽여야하는데 죽이지 못하는 서로의 말을 안 들어먹는 똑같은 둘. 그러니 같이 살았다 싶은 부부의 모습. 그놈의 하와이안 오징어볶음이 뭐길래 이렇게 아른거리고 또 미안해지고 그러는 동시에 두고갈 수도 없냐는거냐고 되물어 보지만 답이 없다. 오징어볶음은 핑계다. 6년간 가랑비에 옷 젖어들듯 스며든 결혼과 이 사람의 마음이 간첩이든 외계인이든 그냥 같이 살게 만들었다. 어쩌겠어. 부부는 닮는다는데, 이 반쪽 두고 어딜 가. 못가지 못가....'하와이안 오징어볶음'




이 모든 사랑의 이야기들은 어딘가 모르게 가엾다. 그리고 이 마음들이 너무 여리게 느껴져서 어떻게든 보듬어서 더이상 다치거나 상하지 않게 두손을 모아 떠받들어 주고픈 마음이 든다. 한때 주구장창 들었던 에피톤프로젝트의 '첫사랑'과 '연착'이라는 가사말이 흥얼거려지기도 하고, 심규선의 '선인장'이 귓가에 맴돌기도 했다. 아무렇게나 책장을 펼쳐 장면을 픽스해봐도 날카로운 마음은 어디도 보기 어렵다. 그리고 빌런도 없다. 그래서 더 짠하다는 마음이 커지나보다.

살면서 이런 사랑, 아니 이런 왈랑이다가 저며지다가 또다시 애틋해지는 그런 감정이 한 번 쯤은 있었을 것이다. 그게 처음이 될 수도 있고, 인생의 중간 지점이었을 수도 있고, 지금 이어가는 진행형일 수도 있겠다. 독자의 연령은 다양하니까. 그리고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도 일치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 즈음에 어딘가 모르게 겹쳐지는 부분이 있다면 우린 그렇게 사랑에 침공 당한 상태라고 순순히 받아들여야된다는걸 보여주고있다.


단편이지만 이 글 이전의 장면들도 언뜻언뜻 눈에 그려지고, 이후의 이야기도 유추가 가능한 흐름이다. 그게 흔해서가 아니라 나도 우리하게(경상도식 표현이다) 겪어봤던 마음의 흉터라 그런가보다. 빌런도 나오고 속에 울화가 치미는 못되쳐먹은 막장이 아니라서 더 짠한놈들의 사랑. 그래서 이제는 이 모든 감정을 권혁일식의 사랑의 침공이라 정의해도 되지 않을까.

사랑앓이 중인 사람이 있다면 쓰윽 밀어 넣어보자. 광광우럭우럭 하며 공감할게 뻔해보이니 책 추천할 맛이 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