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오렌지와 빵칼
청예 지음 / 허블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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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과학소설로 분류가 되는구나? 감정을 조절하는 기간 한정 뇌 시술이라는 것 때문에 과학소설로 분류되려나? 나에게 오영아의 삶은 세밀하게 그려진 초현실적 리얼리티 그 자체인데 말이다. 그래서 더 깊게 오영아에게 스며들 수 있었고 오영아의 다음 선택이 궁금했다. 그래서 오영아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이 센터를 추천하게 될 것인지 기대하게 되더라.



스스로를 통제하고 동시에 해방을 누린다는 이율배반적인 상태를 완성한다는 말을 계속 곱씹었다. 통제와 해방에 대한 정의와 그걸 균형맞춰 써 먹을 수 있고 손에 쥘 수 있수 있는 능력에 대하여. 자유와 절제의 또 다른 맛이다. 그래서 복잡했고, 어떻게 풀어야 잘 알아먹었다고 할 수 있을지를 고심했다. 그리고 오영아의 삶이 마냥 허구처럼 느껴지지 않아 어딘가 모르게 찝찝하리만큼 내 삶을 들킨 것 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 저자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사람들 속에서 버텼는지도 궁금해지고, 다른 책들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 원장이 공허하게 미소 짓더니 큰 손으로 내 등을 훑었다. 어설픈 위로는 안 받느니만 못하지만 살다 보면 필요없는 일들을 서로 용인해야 할 때가 있다. 나 또한 원장과 동일한 표정으로, 텅 빈 감정을 나눠주었다. 돌아서면 금방 휘발될 이 웃음은 너무 가벼웠다.

유치원 교사인 영아. 은우라는 아이의 행동에 다른 원아들이 울고 은우느 떼쓰고. 그 상황을 잘 수습하길 원하는 원장. 아이들이니 봐 줘야하고 아이들이니 보듬어야한다는 생각으로 원장은 큰 사건으로 만들지 않길 바라며 영아의 선에서 모든게 마무리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위하는 척 하고 고생한다는 듯 상사이자 인생의 선배로서 다 지나가리라 라는 뉘앙스를 던져준다. 해결해주거나 나서지는 않는다. 이건 네 일이니 네가 알아서 깔끔하게 끝내고 나 까지 끌어들이지 말라는 듯 선하고도 단호한 미소다. 그래서 더 싫다. 솔직한 마음을 미소로 덮어버린 그 행색을 보면 나이를 먹고 직급이 올라갔을 때 나도 모르게 똑같은 사회적 선함을 이렇게 보일까봐 무서워진다.



📖"늘 내가 더 고맙지."

고맙다는 말만큼 무고한 거짓이 또 있을까.

영아가 이러한 삶을 살도록 지대한 영향을 끼친 2인 중 한명. 룸메이트이며 세상에 혼자 떨어진 듯 살던 시절 살뜰하게 챙겨준 은주. 자신의 의견에 맞춰 공감해주길 바라는 존재로서 항상 자신의 견해는 없는 YES걸이 되어주길 바라는 인물이다. 요즘 흔하게 하는 말로는 가스라이팅이라 할 수 있겠고, 더 편하게 말하자면 일종의 세뇌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세상의 일에 선봉자가 되어야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건 모두 선하고 옳은 것이며, 사회를 위해서는 엄격히 규율에 맞춰 살아야만 한다는, 결국 지 멋대로 자기주장이 옳음을 말하는 인물이다. 그러니 굳이 토를 달아 피곤한 입씨름을 하기 보다는 그냥 고맙고 네 말이 무조건 옳다는 식의 받들어 모시는 것이 익숙한 영아를 보면서 싫지만 대놓고 싫어 할 수 없는 자신의 인간관계와 현실적인 조건에 매번 져 주는 모습을 보게된다. 그리고 그만큼 자기 감정을 누르고 사는것에 만성이 된 생기 잃은 영아가 눈 앞에 그려진다.



📖삶은 이런 식으로 노력을 자주 비껴갔다. 단일 선택지가 선량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덕들이 병렬적으로 쌓이면 악행으로 치닫기 쉬웠다.

나는 백번 양보하는 배려였는데, 받아들이는 상대는 당연하게 삼키거나 때로는 지 입맛에 안 맞게 챙겨준다고 싫은소릴 해대는 걸 볼 때. 맥이 빠지고 굳이 내가 이렇게까지 해서 살아야하나를 떠올리게된다. 나에게는 수고로운 배려였고, 상대에겐 마뜩잖은 행실로 읽혀진다. 선함과 도덕적 욕망의 추구를 들이 밀어붙였을 때 되돌아 오는 것이 모욕으로 종결되는 상황. 좋아하길 기뻐하길 바랬으나 쓴소리와 함께 싫은 내색이 빤히 드러나는 모습은 '내가 이딴 취급 받자고.....'를 계속 떠올리게 만들어 내가 이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게 내 신상에 이로운게 맞는지를 계속 되묻게 된다.

선한 사람이 되고자 고양이 밥주는 행위가 캣맘들에겐 눈에 거슬리는 행색으로 돌아 올 때, 환경 생각하는 이에게 텀블러를 사 주었더니 복수 구매하는 사람이면 그 의미가 퇴색된다며 되려 성질을 내는 상황(5년이나 지났잖아? 5년간 2개인데? 그게 맥이는 걸로 보이냐?). 공정거래나 동물복지를 하는 제품을 구입하면서 25마트의 염가판매 매장을 멀리하고 통장 잔고의 잔액을 보며 쓴웃음 짓는 자신을 볼 때. 영아의 노력은 이토록 정확하게 목적과 결과를 일치하지 못하고 항상 비틀어짐을 겪는다. 삶의 노잼 시기를 옴팡지게 다 겪는 온통 지뢰밭인 길을 저벅저벅 걸어가는 기분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쉬운 선택지를 택했다. 관계가 불편해지는 것보다 일상에 모순을 더하는 일이 쉬웠다.

... ...

사람은 다 그렇게 살고 있다. 사람다움의 본질은 때때로 얄팍하다.

이렇게 쉬운 선택지를 택하면 관계는 생각보다 유순하게 흘러간다. 그렇지만 속으로 하는 욕지거리는 늘어나고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내 눈빛은 한없이 더럽고 경멸하는 걸 마주한듯 탁해진다. 속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상대와 이야기 할 때엔 공감과 동조만 하면 되니 머리를 굴리며 내 생각을 피력할 에너지를 줄일 수 있다. 다만, 그러니까 다만 나 혼자 상념에 잠기거나 홀로 시간을 보낼 때 순간순간 과거를 떠올리면 내 속에 들어앉은 악만 품은 놈이 불쑥불쑥 목구멍을 비집고 나오려한다는게 문제라는 것이다. 뭐 다들 이렇게 사니까 내가 이런 것도 지극히 정상일거라는 생각을 하며.

그래서 영아는 곪았고, 3분 남짓의 짧은 시술이 더 강력하게 들어먹힌건지도 모르겠다. 감정 조절 기간 한정 뇌 시술. 4주의 기능을 부여받았다. 뭐,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에서도 조정협의기간을 4주라며 매번 신구아저씨가 말했던 거니까. 4주는 약 한달. 짧을 수도 길 수도 있는 모호한 시간이며 내 주변 사람들과 한번 정도는 마주하며 시간을 공유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그렇다. 이제 기간 한정 도른자로 살아도 된다는 뇌의 신호에 반응 할 시간이라는 거였다. 카타르시스? 비직비직 나오는 웃음과 광기. 스트레스가 눌려 터진 자리에는 이름없는 불행들에 반응하는 웃음이 피어올랐다.



📖스스로를 통제하고 동시에 해방을 누린다는 이율배반적인 상태를 완성했다. 그건 아무도 모르는 자유의 왕국이었다.

저자가 가장 강력하게 밀어붙였던 이야기의 핵심처럼 느껴지는 문장이다. 통제와 해방. 둘 다 알게되었다. 그 자극 하나로서. 센터에서 받은 시술에 대한 기한은 끝이 났고. 이제 영아는 통제 기능이 발달한 원래의 영아로 돌아갈 것이다. 속은 아니라 할 테지만 입밖으로는 언제든 YES를 말하는 모두에서 선하고 착하며 공감 잘 해주고 알아서 잘 하지만 불행은 다시 차곡차곡 쌓아가는 도덕성 짙은 사람으로. 쾌락은 기억하지만 그리워하고 실행에는 옮기지 못하는 절제된 인간으로서. 그리고 다시 이 시술을 추천던 수원의 옆으로.

그리고 추가 시술 없이 자유로운 낯선 폭력을 행사하며, 무딘 빵칼로 해낸다. 수원이 말하는 '너도 해냈구나'라는 그 행동을.

엔딩이 쓰다. 이 시술에 관해 추천했던 은우모와 수원이 왜 자신의 이름을 대고 센터로 가게 했던건지. 그럴 수 밖에 없는 달디단 자극들. 돌아가야하는게 사회적으로는 맞다고 하지만 개인주의적으로는 거부하고픈 유효기간 연장의 유혹까지. 모두가 같은 갈등을 겪는건 맞겠지만, 이걸 통제하는 통제력을 더 키워 아닌척 살건지, 똑같이 피실험자 한 명을 연구소로 밀어 넣을 것인지가 관건이겠지.

달고 상큼한 오렌지 파운드를 먹기 위해서는 끝이 무디지만 그럼에도 칼이라는 이름을 가진 빵칼을 쥐고 썰어내야한다는 것. 그게 인간관계와 같은 반응이라 봐도 되겠지. 이 구역 미친자로 살고 싶지만 현실은 있는듯 없는듯 눈에 띄지 않고 거슬리지 않는 잔잔한 주변인1로 남고싶어하는 사람의 심리를 깔끔하게 담아냈다. 그래서 영아에게 많은 공감을 했고, 내 자아 일부를 옮겨 심은게 아닌가를 생각하게 했다.

개운하지 못한 결과인건 안다. 지속하기 어려운 감정인 것도 공감한다. 그럼에도 더 나아갈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영아의 다음 행보가 걱정이 되면서도 또 나 대신 속시원하게 한마디 툭 뱉어주길 바라게된다. 내가 못하는거 부디 영아라도 개운하게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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