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이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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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하나는 거짓말'이라는 책 제목. 누가봐도 이중 어느 하나 빠짐없이 모든게 진짜인데 너는 개중에 하나라도 거짓말이 있을거라 여기겠지. 하지만 다섯문장으로 표현되는 내 진짜의 모습은 이거야! 라고 하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무엇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라는 문제 앞에서 깊이 고심한 끝에 완성된 소설이라고 한다. 고등학교 2학년인 세 아이가 우연한 계기를 통해 서로를 의식했고, 서서히 가까워지며 혼자만 겪었던 일들이 나에게만 일어났던 일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되고 공감과 함께 내가 슬펐던 순간처럼 너마저 그리 외로이 버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의 동요와 공감의 연대가 엮여있다. 인터넷서점에서 분류하기를 한국소설 나눠두었지만 청소년 소설이라 분류해도 될 만큼 어떻게 공감하고 마음을 나누며 각자의 슬픔을 헤아려 줄 것인가에 대한 조용한 토닥임을 느낄 수 있다.

소설의 시간대는 두달 남짓한 짧은 방학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작은 눈송이로도 머리통이 깨질 수 있다는 그 계절이다. 짧은 기간이지만 세 아이의 시점이 연결되어 인물간의 서사와 제목의 진짜 이야기를 알 수 있다. 마주앉아 이야기하거나 기나긴 통화를 하며 나눴던 대화는 없다. 단지 짤막한 문자와 교실에서 잠깐 나눴던 대화들로 생각의교차점을 이어간다.




소설은 담임이 만든 자기소개 게임으로 채운을 소개하며 시작된다. 새 학기가 되어 학생들이 자신을 소개할 때 다섯 개의 문장으로 스스로를 표현하되 그중 하나는 반드시 거짓을 포함시켜 다른 학생들로 하여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알아맞히게 하는 것. 어떤 게 진실이고 어떤 게 거짓인지 추측하는 것. 그 과정 자체가 괜찮은 자기소개가 되곤 하지만 누군가를 속이기 위한 단순한 함정이라 할지라도 현실에서는 이룰 수 없는 것이기에 그 마음을 합법적(?) 거짓말로 툭 내어놓는 진심일 수 있다는 점으로 저마다의 응어리를 툭툭 던져둔다. '에이-설마!'라는 식으로 누가 들어도 명백한 거짓말 같은, 모두가 웃어넘길거라고 생각하지만 오랜시간 움켜쥐고 있던 것을 내뱉으며 내이야기를 알아주길, 바라는 모습을 통해 저마다의 외로움이 존재하고 있다는걸 알게된다.



📖얼핏 '거짓 가려내기' 같지만 실제로 이 게임에서 중요한 건 '누구나 들어도 좋을' '아무에게나 말해도 되는'진실만 말하는 거였다. 당연했다. 누구도 초면에 무거운 비밀을 털어놓지는 않으니까.

그렇게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점을 이용하여 정말 꽁꽁 싸두었던 비밀을 대수롭지 않게 던진다. 아무런 교차점 없이 그저 같은 반에 배정된 아이들. 그러니 이해관계가 얽혀있지도 않고, 죽고 못살 정도의 정이 차오르지도 않은 상태다. 무거운 비밀을 털어 놓았다 한들 그걸 다 믿을 사람도 아니라는 점을 겨냥하여 아이들은 거짓같은 진실을 내어둔다. 마치, 그게 당연하게 거짓일거라는 뉘앙스를 흘린 채. 실은 그 문장을 통해 그 때 느꼈던 감정을 공유하고 위로를 받고 싶었고, 공감을 받으며 오롯이 혼자 겪어야 했던 순간에 대한 보상을 원했던 걸로 보였다.




📖눈앞에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온힘을 다해 다른 선택지를 찾는 건 도망이 아니라 기도니까. 너는 너의 삶을 살아, 채운아. 나도 그럴게. 그게 지금 내 간절한 소망이야. 이건 희생이 아니란다, 채운아. 한 번은 네가, 또 한번은 내가 서로를 번갈아 구해준 것뿐이야.

채운에게 더이상 자책의 마음을 갖기 앉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었다. 채운은 자신의 행동으로 엄마가 교도소에 수감 되어있는 것이라는 것과 오롯이 자신이 한 일임에도 엄마라는 이유로 모든걸 뒤집어 쓰고 있다는 미안함에 주눅이 들어있어 안타까워한다. 행복한 미래를 꿈꾸지 불행한 결말을 원해서 맺어지는 사람은 없다. 채운의 부모도 그러했다. 하지만 원하지 않았던 결말이었고, 그럴 수 밖에 없던 불행의 끝이었던 것. 그러니 이 선택으로 우린 서로를 구했고, 그 대가는 엄마가 먼저 치르고 있음을 알렸다. 미안하지만, 더이상 미안해 하지 말자고. 그러니 채운이는 채운이의 삶을 살길 바라는 모습에서 든든한 비빌구석, 안심하고 기댈만한 가정을 유지하지 못함에 대한 미안함도 커 보였다. 최악의 삶이 대물림 되기 보단 태선의 손에서 끊어내고 픈 마음이 절절해 보였다.




📖'그런데 어쩌다 지금 우리는 전혀 다른 데 와 있을까?'

채운은 접속사만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 인간의 마음, 인간의 여러 선택을 떠올렸다.

영어 문법 작문을 동해 소리의 진심을, 채운의 속마음을 알 수 있다. 어떠한 문장을 만들어 내기에는 자신이 갖고있는 이야기를 하는게 가장 편하고 자연스러우니까. 소리의 최고의 날은 그녀(엄마)와 함께 했던 순간을 현재형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그 장면들이 과거형임을 아는 아이들이기에 생각이 많아진다. 채운의 순간은? 채운의 방식으로 표현한 이야기를 유추해 보아도 과거였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의 과거는 모두 행복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감정에 휩싸여 살고있다. 이야기속의 주인공들은 원하지 않았지만 일어난 일들 이었고 묵묵히 받아들이며 살아낸다. 접속사를 통해 문장을 만들며 공부를 하고 있지만 한 문장으로 간결화된 자신들의 삶이 미래형으로 나타내어도 과거처럼 행복하지 않을거라는 걸 알기에 생각이 많아진다.




📖있지, 사람들 가슴속에는 어느 정도 남의 불행을 바라는 마음이 있는 것 같아. 아무도 몰랐으면 하는, 그런데 모를 리 없는 저열함 같은 게.

믿을 건 가족뿐이라는 이모의 말. 가족이라. 채운은 믿을 만한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고, 상처를 입혔다. 그럼에도 믿는게 당연할까? 이모의 말대로라면 남의 불행을 바라는 마음도 당연한 감정이라는 건데, 가족이라는 관계로 엮여있긴 하지만 남보다 못한 존재라면 불행을 바라는 자신의 감정이 어느정도 정상참작이 되는 행위라 볼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걱정 말라는 말, 괜찮아 질 거라는 말 뒤에 숨어서 하게되는 채운의 진심은 우린 다 안다. 안도의 눈물도 아니라는 것 마저도. 그렇지만 저열하다고 할 수 없음도 안다. 그가 불행해야 채운이 숨 쉴 수 있으니.




📖인간과 달리 채운의 비밀을 무게 재지도, 심판하지도 않을 터였다. 채운은 '기계에게 굳이 본심을 보일 필요가 있을까?' 주저하다 '기계니까 오히려 솔직하게 얘기해도 되지 않을까?' 갈등했다.

채운의 대나무숲은 태블릿의 영어 학습 페이지였다. 하고싶은 말은 넘쳐나는데 어디다 할 곳은 없고, 부모도, 이모도, 친구도 어디 속시원하게 말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뭉치마저 없으니 목끝까지 채워진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기계에다 풀어놓는다. 비밀이야기랍시고 다른 사람에게 의도하지 않는 방향으로 전달 할 일도 없고, 잘잘못을 가릴 일도 없으며, 훈계의 피드백도 존재하지 않을테니 말이다.

계속 이렇게 되다가 불안과 자기혐오가 커지며 계속 안으로만 파고들어 갈까봐 걱정되게 만든다.




세 아이가 버텨내는 시간은 춥고, 더디게 흘러간다. 인물들이 남은 삶을 모두 잘 헤쳐나가길 바라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는 저자의 말. 정말 삶은 비정하고 예측 못할 일투성이이나 그럼에도 우리에게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했고, 어떻게든 극복 해 내도록 버틸만한 언덕, 손 잡아줄 만한 사람, 기댈만한 누군가를 한 명이라도 심어뒀음에 다행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만든다.

아이들은 이른 나이에 모두 가족의 부재를 겪었다. 이른 이별을 했다. 어떤 긴 작별의 시간을 두기보단 찰나의 소실과도 같은 과정을 순식간에 넘어왔다. 이별에 대한 학습과 극복의 효과는 생각보다 효율적이지 못하다. 곱씹고 되새기고 다시 유추해보는 과정을 겪고나면 무뎌질만도 한데 여전히 그립고 애틋함이 커진다.

지우에겐 엄마와 용식의 부재. 그걸 혈육으로 맺어진 게 아니라 한 여자를 사랑했던 남자와 그녀의 아이였던 지우가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낸다. 믿을 건 가족 뿐이라했던 채운 이모의 말에 부적절한 예시와도 같은 사이 일 수도 있겠다만 낯선곳에서 잘 지내는지 걱정을 하고, 트럭 뒤에 쌓인 약더미에 마음이 쓰이는 걸 보면 꼭 혈육으로 맺어진 것만이 최고의 존재는 아님을 느끼게 된다.

채운에겐 아버지의 죽음이 사실을 밝혀야만 하는 감정에서 벗어나게 했으며, 사랑하는 반려견의 부재를 두고 서로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되는 인물로 나온다. 혈육이었으나 죽음으로 인해 안도를 하게 되는 감정도 있었을 것이며, 말 못하는 동물이지만 다 안다는 눈빛과 그 사건이 일어 났을 때 채운의 손을 핥아주는 과정을 통해 꼭 사람이 사람을 보듬는 것은 아님도 느낀다.

소리에겐 여전히 그리운 존재인 엄마. 엄마의 부재에 조금씩 적응해가며 묘지에서도 혼자 마주앉아 이야길 하는 덤덤한 마음을 얻었다. 조금씩 채워지는 마음의 상흔을 본 호민(소리 아빠)은 그간 꺼내지 못한 미정(소리 엄마)의 투병 이야기를 알려준다. 살고싶지만 죽고싶은 마음도 컸던 고통의 끝과 그 생의 끝에 소리의 잘못은 없다며 한번 더 어떠한 이유로도 생의 끝을 막을 수 없었음을 알려준다.

정말 이중 하나는 거짓말 이면 좋겠다 싶은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사랑하는 존재의 부재. 잠깐의 이별이 아니라 영영 보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면 이 아이들보다 곱절로 산 어른인 나도 눈이 뜨거워지고 명치가 따끔해지는데 어찌 버텨냈을까를 생각하면 나보다 먼저 어른이 되었구나를 느낀다.

삶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이 세 아이들이 살아가는 동안 꾸준하고 질리도록 작별의 과정이 계속 될 것이다. 눈물 흘리고 그리워 하는 순간을 계속 마주할 텐데 '나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을, 그러니까 삶의 서사'를 바꿀 순 없겠지만 세 아이가 했던 것 처럼 정서적 의지와 언어가 아닌 마음의 동요를 통해 버텨보는 단단함을 닮아가고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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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좋다는 말에 가려진 것들 - 폐 끼치는 게 두려운 사람을 위한 자기 허용 심리학
이지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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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다 괜찮다는 사람으로 살고있다. 정확히는 그렇게 살면서 분란 일어나는 일이 없는 평온하고 정적인 삶이 편해서 나를 누르고 사는 인생을 살고있다. 그것도 30년 넘게. 이게 처음엔 내가 만들어 놓은 삶의 방향성이었지만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렸고, 익숙함에 자연스레 나오는 선택지가 되었다. 그래서 착하고 성격 좋은 사람인냥 치부되기도 한다. 근데, 나 그런 사람 아니더라? 가장 최 측근에게는 일명 조신한 또라이이며, 차분한 도른자로 불리우는 성격 개조된 후천적 선한 인격의 인간이다.

1부에서는 타인을 배려하느라 참아온 부정적 감정을 이해하는 법을, 2부에서는 타인의 기대를 거두고 진정한 책심 자아를 살피는 법을, 3부에서는 과거의 상처를 잘 소화하는 법을, 4부에서는 자신을 지키며 타인과 관계 맺는 법을 다루었다.



📖완벽하지 못한 존재라는 좌절_ 잘못된 결정을 내리기도 하고 어떤 부분에선 한참 부족하고 무능해 보이기도 한다. 이 때문에 타인을 실망시킬 수도 있겠지만, 나 자신에게 중요한 것에 주의를 쏟느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을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보겠다는 용기를 가지는 것, 그 경계 바깥에 있는 것에는 힘을 빼는 것. 그것이 무결한 완벽을 강요하고 불안을 조장하는 세상 속에서 꿋꿋이 자기 삶을 살아내는 길일 테다.

자책의 확장판이다. 다 수용하고, 또 다 잘해야한다. 그러면서도 모자람이 없어야하고 충분함이 만연해야하는 것. 그래서 허투루 사는 삶의 틈이 보이지 않아야하는 꽉찬 육각형 인간이고자하는 욕심이 불러온 비극의 결말일지도 모르겠다. 흠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그게 내가 되어선 안되는 거였고, 타인의 물음과 부탁에도 모든 답변이 가능해야하는 백과사전을 자처하다보면 빨리 피곤해지고, 빨리 지치기 마련이다. 그러니 각각의 집단과 매체에서 만들어 둔 틀에 이리저리 잘 끼워맞추고 잘 끼워진 사람이려 하다보니 완벽주의적 성향도 같이 부풀어 오른다. 그러다 이렇게 뻥 하고 터지는 결과를 마주하게된다. 결과가 가치와 맞먹는 해답은 아님에도 유난히 엄격해지는 잣대. 잘못 간 길이면 돌아가면 될 것이고, 틀린 것이면 지우개로 지워서 다시 시작하면 되는데 그 복기의 과정이 남에게 비춰진다는 것에 수치심을 불러오나보다.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과정의 번복을 수용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너무 큰가보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는데, 꼭 그게 나이길 원하는 욕심. 닦달과 강박. 그거 어떻게 버리는 건데?



📖'성격 좋다'는 말에 가려진 것들_ 겉으로는 적응적으로 잘 지내는 듯 보이지만, 타인의 모습을 모방하거나 타인을 위한 삶에 가깝다.

잘 다려진 빳빳하고 단정한 종이인형처럼 사는 거다. 이 시대의 표본과도 같으며 반듯한 삶의 태도가 모두의 본보기로서 이시대의 참한 청년임을 추대하면 정작 스스로는 본모습이 무엇인지 헷갈려하며 살게된다. 거절도 못해, 의견도 못내, 반박도 못해, 제약도 많아. 그렇지만 성격 좋다잖아?

둥둥 떠다니는 입들이 그물처럼 엮여 빠져나가지 못하는 재물로 사는 삶이 되어버린다. 자, 이제 당신의 선택지만 남았다. 거짓자기와 참자기의 선택이기도 하지만 이래도 괜찮은 내가 될 것인가, 우선 내가 편하고 보는 내가 될 것인가에 놓여있다.

명확한 답은 없는 것 같은데 이 양자택일의 밸런스를 맞춰 살 것인지, 아니면 흑백논리마냥 무 자르듯 잘라서 하나만 선택할 것인지는 좀 더 고민해보고 싶어진다.



📖거절이 어려운 당신에게_ 내 마음과 행동에 대해 분명히 책임지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째 내가 못하는 감정의 선택지만 여기에 다 모여있다. 나만큼이나 저자 역시 타인의 입모양에 유난히 주목하고 거스르는 일 없이 살고자 했던 인물로 보인다. 그러한 사람이 나처럼 심리학과 멀리 지내며 그러려니 살지 못하고 여기에 해당하는 학문을 파고 들었으니 그간 살아온 삶의 단면들에 대해 얼마나 많은 복기를 하며 학문에 대입했을지를 떠올려보면 배로 힘들었으리라 느끼며 이놈의 거절이라는 감정에 대해 다시금 주목해봤다.

내 행동 하나에 타인의 의견을 인정할 것인지, 타인을 탓하지 않고 내 책임으로 여길 것인지에 대한 이후 과정으로 얻어지는 감정 때문이라도 우리는 거절하지 못하는 삶을 되려 편하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주체적이기 보다는 귓전에 맴도는 훈계의 목소리 데시벨을 낮추고픈 마음에서도 거절하지 않고 모든것을 받아들였던 과거의 나를 떠올려보면 내 마음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책임이 바닥을 쳤기에 이 빈틈을 타인의 침범 가능한 구역으로 방치했는지도 모르겠다.

수월해야한다. 솔직해야한다. 그게 용기이며 자신을 지치는 탄탄한 힘이다. 담백하게 말해도 상대는 수용 할 것이다. 그러니 예민하게 경계하며 상대가 실망하지 않을지, 이후의 원만한 인간관계가 이뤄지지 않을지, 불편해하며 보복을 하지 않을지에 대한 이후의 수는 미리 셈하지 않았으면 한다. 살다보니 느꼈는데 이러한 수를 두며 거절에 대한 큰 짐을 지우는 사람이라면 빨리 끊어내는게 이로운 관계임을 느꼈다.



📖자신에게 건네는 친절_ 우리는 스스로를 위로하는 법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자신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을 알고 있는 것이다.

알면서 안한다. 알면서 모르는척 하지! 안다고 말한들 달라지는건 없으니까. 알고있으니까 된거지. 라는 식에서 끝내버리지 저자가 말하는 자기자비는 허용하지 않았다. 이 능력을 타고났음에도 불구하고 자비도 연민도 안 갖추고 산다. 이게 왜 미덕이 된건지는 모르겠으나 늘 가장 가까운 이에게, 진짜 가까운 자신에게는 한없이 냉담하다. 오죽하면 우스개소리로 죽고 나서 사후 세계로 가서 영화와 웹툰에서 보았던 나태지옥에 빠지더라도 한국인들은 아주 열심히 뛰면서 나태지옥을 부지런지옥으로 만들어 버릴 거라고 했다. 자비없는거지. 얄짧없는거고.

너그러워지다보면 나약해질까봐 그러면 원하는 삶과 멀어질까봐 두려운 생각으로 사는 걸 보면 자기주문도 자기연민과 자기자비도 때때로 허상같이 느껴지기도한다. 내 갈래에 있음에도 아직 진짜 마주하지 못했던 감정이라 의심하게되는 내면의 자비로움이다. 진짜 있긴 하겠지?



타인을 위한 배려든, 폐 끼치는게 두려운 마음 숨김이든 그건 좀 편히 살고자 하는 내 욕망이 성향으로 만들어 진 또 다른 나. 이게 내 분신인냥 사는 것에 큰 불편함 없이 산다면 걱정이 없겠다만 때때로 이 과정으로 인해 겪게되는 자기혐호가 제법 강하게 밀려 올 때가 있다. '거짓자기'이며, 껍데기만 번지르르한 포장지 같다는 것에서 피로를 느낀다면 이게 진짜 문제가 되더라.

다 읽고 보니 저자도 나 처럼 착하고 무던하다는 꼬리표에 얽매여, 타인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한 인물로 살아오느라 자책도, 자기검열도 끊임없이 반복했음을 고백한다. 자아를 까맣게 잊어버린 심리학자의 이야기라면 이러한 분야에 문외한 나도 쉽게 읽혀지며 많은 공감을 하며 어디서도 이야기 하지 못한 말들도 나눌 수 있을거라는 생각으로 두툼한 책을 고민없이 펼치게 만들었다. 이 모든 이야기는 모두 저자의 경험이니 확실한 사례제시와 함께 겪어봤음직한 고민의 단상들이니 편하게 시작 할 수 있음은 분명했다.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대학졸업 후 이뤄지는 직장인의 삶으로 떠올릴 수도 있겠다만 우린 더 이른 사회생활을 시작했었다. 아는 단어도 몇 없고, 의사소통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유아기 시절 어린이집 등원과정에서부터 한 집단에서 나와 다른 성향의 사람들과 시간을 공유하고 장소를 공유하며 지내게 된다. 그러고보면 우린 사회생활 참 일찍 시작했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인간관계 형성과 집단생활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으로 많이 다쳤고, 또 많이 배웠다. 이건 하지 말아야 하는구나를 깨우치고, 이 상황에는 내 목소리를 명확하게 내어 의사 전달과 원하고자하는 바를 꼭 획득하리라는 다짐을 할 때도 있다. 그런데 그게 나이 들어서도 계속 해야한다는 점을 잊고 살았다. 인간관계의 자기 허용 과정은 주기적으로 업데이트 해야만 호환이 되는 삶의 개정판이 필요하다는 것. 한동안 개정되어지지 않은 구버전으로 살았으니 반응이 느렸고 버벅였나보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상위 버전으로 인간관계 데이터 확장을 했으니 나도 때때로 목소리를 내는 사람으로 야금야금 확대해볼까 싶은 마음이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고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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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리스트 2024-09-03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최측근에게 조신한 또라이 차분한 도른자 에서 무릎을 탁 쳤습니다 이제 세상에 조.또.차.도.가 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이 말입니다! ㅋ
 
첫사랑의 침공 안전가옥 쇼-트 29
권혁일 지음 / 안전가옥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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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가옥 쇼트 시리즈 중 가장 최근이라 할 수 있는 6월에 나온 첫사랑의 침공. 이 또한 알라딘의 마법사의 선택으로 추천 받은 책이었다.


확실히 내 도서 구매 이력이 탄탄하게 쌓여있는 곳이라 그런가 재밌어 할 만한 요소들을 기가막히게 뽑아내었더라구. 눈에 익은 출판사와 재미 보장된 시리즈의 최근 회차 출간물이니 중도 포기하진 않겠다 싶어 골랐다. 그리고 가볍게 읽고, 잔잔하게 떠올리기 좋은 요소의 것들이 가득했다. 사랑을 시작하려 주저하는 이들, 진득한 사랑의 마침표로 애먹고 있는 이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사랑이 생의 마지막임을 직시하고 아주 길게 지속하리라 마음먹은 이들이 읽으면 좋을 중복되지 않는 사랑의 갈래가 4개의 단편으로 짜여져있다. 우린 모두 첫사랑의 침공에 무장 습격을 받아 본 사람이니 여기 네 가지의 이야기 중에 하나 정도는 공감하게 될 것이다.(단정할 수 있는건 나도 공감을 했기에 하는 말이다) 꾸깃꾸깃 욱어두고 마음속 구석탱이에 짱박아둔 A를(또는 어떤X가 될 수도 있겠다) 소환 할 수 밖에 없으리라 단정지어본다.




📖세상 모든 노랑_ 저주가 풀리는 건 영화에서나 일어나는 일이야. 이제 깨달았어. 현실으 인간은 견뎌야해. 견디고 살아가야 해. 그게 인간이야.


영이 잊으려는건 랑이 손을 잡아주어 알려준 세상의 모든 노랑에 대한 다양성이 아니었다. 랑과 함께 했던 순간마다 있던 노랑에 대한 기억일 것이다. 혼자 보고 감탄하며 알아가는 과정보다 함께 해서 느끼며 곱절로 얻어진 감정 때문인 것이니 그러지 못할 때에 다가오는 마음의 서글픔 때문에 노란색을 모르던 이전으로 살고싶어했을 것이다. 눈을 고쳐달라고 떼쓰는 이유는 랑을 잊고 살 바엔 랑을 안 보고 살았던 이전으로 가는게 오히려 마음이 덜 쓰릴거 같아 제멋대로 부려보는 생떼같은 심통이었다. 상대가 미안해하고 어쩔 수 없어하는 그 감정까지도 알면서 부려보는 억지의 마음. 그래서 이 미운짓을 부리는 이도, 그걸 어찌 할 수 없이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이까지도, 결국 다 아파야 끝이나는 엔딩이었다.




📖세상 모든 노랑_ 예룬, 인간에게 필요한 건 최고의 신이 아니야. 곁에 함께 있어 줄 존재가 필요한 거지. 최고의 신이라도 그 역할을 해 줄 수는 없어.


뭐랄까. 결국 헤어져야하는 상황이지만 착한 안녕따위 없다며 싫은 소리로 결국 '너는 내가 필요 할 때 내 옆에 없잖아!'로 부려보는 원망과 미움이 그득하지만 그럼에도 '내 옆에만 있을거라는 그 한마디만 해주면 모든게 없던일로 되는데 너는 그 말을 해주지 않을거잖아?' 라고 저 혼자 물어보고 저 혼자 답하게되는 연인들의 마지막 상황처럼 보였다.

곁에 있고 싶지만 상황이 그러하지 못한 A, 곁에 있어달라 주저 앉히고 싶지만 안된다는 걸 너무도 잘 아는 B의 모습. 그래서 이 이야기의 끝은 이별이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시 재회하는 상황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다는 오차없는 당연한 흐름으로 마무리된다. 마음 어딘가에는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있는 과거의 이어지지 못한 사랑의 잔상처럼 말이다.




📖광화문 삼거리에서 북극을 가려면_ 죽지만 않으면, 어디에서든 살아만 있다면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어. 기억을 잃어도, 서로 다른 은하에 존재한다고 해도. 내가 꼭 서현을 다시 찾아낼 거니까.


어린 시절 보육원에 맡겨 질 때 생일에 데리러 오겠다는 아버지의 지켜지지 못할 약속보다 다른 은하계와 다른 인종의 메로가 하는 말은 꼭 진짜이길 바라는 서현. 다시 만날 확률을 물었을 때 0.00000000001%쯤 이라는 말과 어쩌면 그보다 더 훨씬 적을 수도 있지만 0%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와 더불어 기대하게되는 재회의 순간. 이 지구, 이 세계 어느 곳이든 한 명쯤은 오롯이 나만을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올 만큼 돌아갈 여력이 남지 않더라도 곧장 나에게 달려 올 만큼의 애틋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안도하게 된 다면 그건 무조건 사랑이라는 걸 보여준다.



지구가 외계인에게 침공 되던 말던, 비무장지대에 총알받이로 앞세워 지던 말던 수년 전 사라진 첫사랑 '서고'누나를 만난다면 나란 놈의 목숨 따위 언제든 내어 줄 의향이 있다는 성윤. 당장 죽더라도 서고를 만날 수 있다는 그 찰나 하나만으로 만족하는 '첫사랑의 침공'


선천적으로 노란색을 못보는 영, 노란색의 신의 랑. 랑이 영의 손을 잡으면 생생하게 살아나는 다양한 노랑의 빛깔. 이건 사랑하는 이를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뉘어지는 세상을 대하는 시선의 달라진 온도차와 같은 것. 흔해빠진 것들도 함께 손을 잡고 보면 둘만의 서사가 되어지고 특별한 의미가 됨을 말해주는 이른바 사랑의 콩깍지 같은 과정을 그린다. 콩깍지는 결국 벗겨지는 것이고, 둘의 간극은 우리가 원하는 결말이 되어지지 못하게 되어 안쓰러운 과거가 되어버리는 '세상 모든 노랑'


보육원에 맡겨진 소녀. 생일엔 아버지가 데리러 올거라는 믿음으로 살지만 그래서 어느 누구와도 마음을 나누지 못하고 사는 서현. 누굴 믿지도 못하고 의지하지도 못하다가 지구 멸망까지 마주하게된다. 중고 노트북으로 메세지를 나누던 일면식도 없던 외계인. 서로 나누던 대화를 통해 아무도 열지 못한 마음의 빗장을 연 유일한 존재. 그 마음이 온전히 전해져 행성까지 뚫어서 올 만큼 그렇게 절절하고 애틋한 각기다른 존재. 저 크고 넓은 우주 어딘가에 나를 좋아해 줄 존재가 있다는 확실을 주는 '광화문 삼거리에서 북극으로 가려면'


남파간첩 민정의 위장 결혼 생활. 평범하게 사는 척 보여야했기에 했던 의도하지 않은 결혼이지만 그렇게 6년간 살아가며 젖어든 남편 정훈과의 삶. 간첩이라 말해도 외계인이 아니냐며 뜬구름 잡는 이 어이없는 사람. 도망을 가라해도 말도 안 듣고 죽여야하는데 죽이지 못하는 서로의 말을 안 들어먹는 똑같은 둘. 그러니 같이 살았다 싶은 부부의 모습. 그놈의 하와이안 오징어볶음이 뭐길래 이렇게 아른거리고 또 미안해지고 그러는 동시에 두고갈 수도 없냐는거냐고 되물어 보지만 답이 없다. 오징어볶음은 핑계다. 6년간 가랑비에 옷 젖어들듯 스며든 결혼과 이 사람의 마음이 간첩이든 외계인이든 그냥 같이 살게 만들었다. 어쩌겠어. 부부는 닮는다는데, 이 반쪽 두고 어딜 가. 못가지 못가....'하와이안 오징어볶음'




이 모든 사랑의 이야기들은 어딘가 모르게 가엾다. 그리고 이 마음들이 너무 여리게 느껴져서 어떻게든 보듬어서 더이상 다치거나 상하지 않게 두손을 모아 떠받들어 주고픈 마음이 든다. 한때 주구장창 들었던 에피톤프로젝트의 '첫사랑'과 '연착'이라는 가사말이 흥얼거려지기도 하고, 심규선의 '선인장'이 귓가에 맴돌기도 했다. 아무렇게나 책장을 펼쳐 장면을 픽스해봐도 날카로운 마음은 어디도 보기 어렵다. 그리고 빌런도 없다. 그래서 더 짠하다는 마음이 커지나보다.

살면서 이런 사랑, 아니 이런 왈랑이다가 저며지다가 또다시 애틋해지는 그런 감정이 한 번 쯤은 있었을 것이다. 그게 처음이 될 수도 있고, 인생의 중간 지점이었을 수도 있고, 지금 이어가는 진행형일 수도 있겠다. 독자의 연령은 다양하니까. 그리고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도 일치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 즈음에 어딘가 모르게 겹쳐지는 부분이 있다면 우린 그렇게 사랑에 침공 당한 상태라고 순순히 받아들여야된다는걸 보여주고있다.


단편이지만 이 글 이전의 장면들도 언뜻언뜻 눈에 그려지고, 이후의 이야기도 유추가 가능한 흐름이다. 그게 흔해서가 아니라 나도 우리하게(경상도식 표현이다) 겪어봤던 마음의 흉터라 그런가보다. 빌런도 나오고 속에 울화가 치미는 못되쳐먹은 막장이 아니라서 더 짠한놈들의 사랑. 그래서 이제는 이 모든 감정을 권혁일식의 사랑의 침공이라 정의해도 되지 않을까.

사랑앓이 중인 사람이 있다면 쓰윽 밀어 넣어보자. 광광우럭우럭 하며 공감할게 뻔해보이니 책 추천할 맛이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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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월; 초선전
박서련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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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루프를 읽으며 최근작이었던 체공녀 강주룡이 궁금했고, 제법 마음에 드는 주제의 선정과 함께 글의 흐름이라 최근에 나온 폐월; 초선전도 기대감으로 아무런 지식 없이 바로 구입하며 휴가기간동안 읽으려 쟁여두었다.

성장소설이었던 '고백루프', 많은 저자들이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각자의 이야기를 내어 주었던 '요즘 사는 맛',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며 실제 여성 노동자의 일생을 그린 전기소설의 '체공녀 강주룡'까지. 나에겐 제법 괜찮은 작품의 흐름을 보여주기에 당연히 차기작도 마음에 들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구매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삼국지(연의) 속 등장인물, 얼굴이 너무 아름다워 달마저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는 초선의 이야기. 저자는 초선을 1인칭 화자로 삼아 직접 자신의 생을 말하며 남성 영웅 서사인 삼국지에서 외전 버전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아름다움을 무기로 삼은 초선, 자신이 말해주는 그녀의 삶 전체. 여포와 동탁을 분열시키는 막중한 임무를 담당하였으나 서사 바깥으로 밀려난 자신을 다시 중심으로 끌어와 어린 거지들과 밥을 빌어 먹고 살던 이름 없는 시작부터 충신의 후손이라는 거짓과 왕윤의 양녀가 되어 스스로 초선이 되는 과정까지. 어찌보면 당돌하고, 어찌보면 또 영약하기 그지없으나 결국 자신이 잘난 것을 알고 그 잘난 점을 내세워 모두를 홀린 여인.



마음에 남은 문장은 없으나 이토록 잘난 여자는 결국 어찌하든 제 삶을 살아 나가며 길이 열리는 구나를 느끼지만 이 이야기를 굳이 중 후반부터는 수위가 높은 장면이 세세하게 묘사되는게 맞을까도 의심이 들었다. 저자가 이 여인의 서사를 알려주기 위해 필요했던 파트였던 걸까를 의심하게 되면서 이 책이 아무런 연령제한이 없어도 되는건가? 요즘 책은 이래도 되나 싶기도 했다. 뭔가 집에 우물을 만들기 위해 일꾼들을 들이는 순간부터는 이야기를 이끌어 가기 보다는 그냥 황급히 내용 전개를 위해 어떻게든 끌고 가려는 황급함이 보였다. 수위높은 장면을 위해서 어떻게든 초선을 가기로 만들려고 했던 과정, 가기들끼리 한방에 지내며 일어난 일들, 동중영이 월사를 먼저 알아차리는 것 부터 하여 정말 내 취향은 아니었다는 것.


초선의 이야기를 제삼자의 시선이 아니라 자신의 시선으로 담담히 풀어냈다고는 했으나 여성의 서사 문학의 감흥을 낳을 것이라 했지만, 색이 빠지면 어떠한 자극적인 요소도 없으니 그것에만 힘을 준 느낌을 받았다. 어려운 형편의 시절이든 왕윤에게 발견되어 양녀로 받아들여지는 과정에서 더 멋있는 서사를 기대했던 내가 미련했다는 느낌이었다. 삼국지를 안 읽어서 그런가. 그래서 인물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던 탓을 해야할까. 암튼 나는 이 책이 아쉽고 아깝다 싶어진다.



... 좀 더 알아보고, 출판사 제공 책소개를 좀 더 꼼꼼히 보고 구매 했어야 함을 다시한번 느끼는 이번 해 첫 실패 도서의 기록이다.(주관적 성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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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오렌지와 빵칼
청예 지음 / 허블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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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과학소설로 분류가 되는구나? 감정을 조절하는 기간 한정 뇌 시술이라는 것 때문에 과학소설로 분류되려나? 나에게 오영아의 삶은 세밀하게 그려진 초현실적 리얼리티 그 자체인데 말이다. 그래서 더 깊게 오영아에게 스며들 수 있었고 오영아의 다음 선택이 궁금했다. 그래서 오영아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이 센터를 추천하게 될 것인지 기대하게 되더라.



스스로를 통제하고 동시에 해방을 누린다는 이율배반적인 상태를 완성한다는 말을 계속 곱씹었다. 통제와 해방에 대한 정의와 그걸 균형맞춰 써 먹을 수 있고 손에 쥘 수 있수 있는 능력에 대하여. 자유와 절제의 또 다른 맛이다. 그래서 복잡했고, 어떻게 풀어야 잘 알아먹었다고 할 수 있을지를 고심했다. 그리고 오영아의 삶이 마냥 허구처럼 느껴지지 않아 어딘가 모르게 찝찝하리만큼 내 삶을 들킨 것 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 저자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사람들 속에서 버텼는지도 궁금해지고, 다른 책들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 원장이 공허하게 미소 짓더니 큰 손으로 내 등을 훑었다. 어설픈 위로는 안 받느니만 못하지만 살다 보면 필요없는 일들을 서로 용인해야 할 때가 있다. 나 또한 원장과 동일한 표정으로, 텅 빈 감정을 나눠주었다. 돌아서면 금방 휘발될 이 웃음은 너무 가벼웠다.

유치원 교사인 영아. 은우라는 아이의 행동에 다른 원아들이 울고 은우느 떼쓰고. 그 상황을 잘 수습하길 원하는 원장. 아이들이니 봐 줘야하고 아이들이니 보듬어야한다는 생각으로 원장은 큰 사건으로 만들지 않길 바라며 영아의 선에서 모든게 마무리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위하는 척 하고 고생한다는 듯 상사이자 인생의 선배로서 다 지나가리라 라는 뉘앙스를 던져준다. 해결해주거나 나서지는 않는다. 이건 네 일이니 네가 알아서 깔끔하게 끝내고 나 까지 끌어들이지 말라는 듯 선하고도 단호한 미소다. 그래서 더 싫다. 솔직한 마음을 미소로 덮어버린 그 행색을 보면 나이를 먹고 직급이 올라갔을 때 나도 모르게 똑같은 사회적 선함을 이렇게 보일까봐 무서워진다.



📖"늘 내가 더 고맙지."

고맙다는 말만큼 무고한 거짓이 또 있을까.

영아가 이러한 삶을 살도록 지대한 영향을 끼친 2인 중 한명. 룸메이트이며 세상에 혼자 떨어진 듯 살던 시절 살뜰하게 챙겨준 은주. 자신의 의견에 맞춰 공감해주길 바라는 존재로서 항상 자신의 견해는 없는 YES걸이 되어주길 바라는 인물이다. 요즘 흔하게 하는 말로는 가스라이팅이라 할 수 있겠고, 더 편하게 말하자면 일종의 세뇌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세상의 일에 선봉자가 되어야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건 모두 선하고 옳은 것이며, 사회를 위해서는 엄격히 규율에 맞춰 살아야만 한다는, 결국 지 멋대로 자기주장이 옳음을 말하는 인물이다. 그러니 굳이 토를 달아 피곤한 입씨름을 하기 보다는 그냥 고맙고 네 말이 무조건 옳다는 식의 받들어 모시는 것이 익숙한 영아를 보면서 싫지만 대놓고 싫어 할 수 없는 자신의 인간관계와 현실적인 조건에 매번 져 주는 모습을 보게된다. 그리고 그만큼 자기 감정을 누르고 사는것에 만성이 된 생기 잃은 영아가 눈 앞에 그려진다.



📖삶은 이런 식으로 노력을 자주 비껴갔다. 단일 선택지가 선량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덕들이 병렬적으로 쌓이면 악행으로 치닫기 쉬웠다.

나는 백번 양보하는 배려였는데, 받아들이는 상대는 당연하게 삼키거나 때로는 지 입맛에 안 맞게 챙겨준다고 싫은소릴 해대는 걸 볼 때. 맥이 빠지고 굳이 내가 이렇게까지 해서 살아야하나를 떠올리게된다. 나에게는 수고로운 배려였고, 상대에겐 마뜩잖은 행실로 읽혀진다. 선함과 도덕적 욕망의 추구를 들이 밀어붙였을 때 되돌아 오는 것이 모욕으로 종결되는 상황. 좋아하길 기뻐하길 바랬으나 쓴소리와 함께 싫은 내색이 빤히 드러나는 모습은 '내가 이딴 취급 받자고.....'를 계속 떠올리게 만들어 내가 이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게 내 신상에 이로운게 맞는지를 계속 되묻게 된다.

선한 사람이 되고자 고양이 밥주는 행위가 캣맘들에겐 눈에 거슬리는 행색으로 돌아 올 때, 환경 생각하는 이에게 텀블러를 사 주었더니 복수 구매하는 사람이면 그 의미가 퇴색된다며 되려 성질을 내는 상황(5년이나 지났잖아? 5년간 2개인데? 그게 맥이는 걸로 보이냐?). 공정거래나 동물복지를 하는 제품을 구입하면서 25마트의 염가판매 매장을 멀리하고 통장 잔고의 잔액을 보며 쓴웃음 짓는 자신을 볼 때. 영아의 노력은 이토록 정확하게 목적과 결과를 일치하지 못하고 항상 비틀어짐을 겪는다. 삶의 노잼 시기를 옴팡지게 다 겪는 온통 지뢰밭인 길을 저벅저벅 걸어가는 기분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쉬운 선택지를 택했다. 관계가 불편해지는 것보다 일상에 모순을 더하는 일이 쉬웠다.

... ...

사람은 다 그렇게 살고 있다. 사람다움의 본질은 때때로 얄팍하다.

이렇게 쉬운 선택지를 택하면 관계는 생각보다 유순하게 흘러간다. 그렇지만 속으로 하는 욕지거리는 늘어나고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내 눈빛은 한없이 더럽고 경멸하는 걸 마주한듯 탁해진다. 속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상대와 이야기 할 때엔 공감과 동조만 하면 되니 머리를 굴리며 내 생각을 피력할 에너지를 줄일 수 있다. 다만, 그러니까 다만 나 혼자 상념에 잠기거나 홀로 시간을 보낼 때 순간순간 과거를 떠올리면 내 속에 들어앉은 악만 품은 놈이 불쑥불쑥 목구멍을 비집고 나오려한다는게 문제라는 것이다. 뭐 다들 이렇게 사니까 내가 이런 것도 지극히 정상일거라는 생각을 하며.

그래서 영아는 곪았고, 3분 남짓의 짧은 시술이 더 강력하게 들어먹힌건지도 모르겠다. 감정 조절 기간 한정 뇌 시술. 4주의 기능을 부여받았다. 뭐,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에서도 조정협의기간을 4주라며 매번 신구아저씨가 말했던 거니까. 4주는 약 한달. 짧을 수도 길 수도 있는 모호한 시간이며 내 주변 사람들과 한번 정도는 마주하며 시간을 공유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그렇다. 이제 기간 한정 도른자로 살아도 된다는 뇌의 신호에 반응 할 시간이라는 거였다. 카타르시스? 비직비직 나오는 웃음과 광기. 스트레스가 눌려 터진 자리에는 이름없는 불행들에 반응하는 웃음이 피어올랐다.



📖스스로를 통제하고 동시에 해방을 누린다는 이율배반적인 상태를 완성했다. 그건 아무도 모르는 자유의 왕국이었다.

저자가 가장 강력하게 밀어붙였던 이야기의 핵심처럼 느껴지는 문장이다. 통제와 해방. 둘 다 알게되었다. 그 자극 하나로서. 센터에서 받은 시술에 대한 기한은 끝이 났고. 이제 영아는 통제 기능이 발달한 원래의 영아로 돌아갈 것이다. 속은 아니라 할 테지만 입밖으로는 언제든 YES를 말하는 모두에서 선하고 착하며 공감 잘 해주고 알아서 잘 하지만 불행은 다시 차곡차곡 쌓아가는 도덕성 짙은 사람으로. 쾌락은 기억하지만 그리워하고 실행에는 옮기지 못하는 절제된 인간으로서. 그리고 다시 이 시술을 추천던 수원의 옆으로.

그리고 추가 시술 없이 자유로운 낯선 폭력을 행사하며, 무딘 빵칼로 해낸다. 수원이 말하는 '너도 해냈구나'라는 그 행동을.

엔딩이 쓰다. 이 시술에 관해 추천했던 은우모와 수원이 왜 자신의 이름을 대고 센터로 가게 했던건지. 그럴 수 밖에 없는 달디단 자극들. 돌아가야하는게 사회적으로는 맞다고 하지만 개인주의적으로는 거부하고픈 유효기간 연장의 유혹까지. 모두가 같은 갈등을 겪는건 맞겠지만, 이걸 통제하는 통제력을 더 키워 아닌척 살건지, 똑같이 피실험자 한 명을 연구소로 밀어 넣을 것인지가 관건이겠지.

달고 상큼한 오렌지 파운드를 먹기 위해서는 끝이 무디지만 그럼에도 칼이라는 이름을 가진 빵칼을 쥐고 썰어내야한다는 것. 그게 인간관계와 같은 반응이라 봐도 되겠지. 이 구역 미친자로 살고 싶지만 현실은 있는듯 없는듯 눈에 띄지 않고 거슬리지 않는 잔잔한 주변인1로 남고싶어하는 사람의 심리를 깔끔하게 담아냈다. 그래서 영아에게 많은 공감을 했고, 내 자아 일부를 옮겨 심은게 아닌가를 생각하게 했다.

개운하지 못한 결과인건 안다. 지속하기 어려운 감정인 것도 공감한다. 그럼에도 더 나아갈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영아의 다음 행보가 걱정이 되면서도 또 나 대신 속시원하게 한마디 툭 뱉어주길 바라게된다. 내가 못하는거 부디 영아라도 개운하게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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