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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이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평점 :
'이중 하나는 거짓말'이라는 책 제목. 누가봐도 이중 어느 하나 빠짐없이 모든게 진짜인데 너는 개중에 하나라도 거짓말이 있을거라 여기겠지. 하지만 다섯문장으로 표현되는 내 진짜의 모습은 이거야! 라고 하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무엇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라는 문제 앞에서 깊이 고심한 끝에 완성된 소설이라고 한다. 고등학교 2학년인 세 아이가 우연한 계기를 통해 서로를 의식했고, 서서히 가까워지며 혼자만 겪었던 일들이 나에게만 일어났던 일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되고 공감과 함께 내가 슬펐던 순간처럼 너마저 그리 외로이 버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의 동요와 공감의 연대가 엮여있다. 인터넷서점에서 분류하기를 한국소설 나눠두었지만 청소년 소설이라 분류해도 될 만큼 어떻게 공감하고 마음을 나누며 각자의 슬픔을 헤아려 줄 것인가에 대한 조용한 토닥임을 느낄 수 있다.
소설의 시간대는 두달 남짓한 짧은 방학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작은 눈송이로도 머리통이 깨질 수 있다는 그 계절이다. 짧은 기간이지만 세 아이의 시점이 연결되어 인물간의 서사와 제목의 진짜 이야기를 알 수 있다. 마주앉아 이야기하거나 기나긴 통화를 하며 나눴던 대화는 없다. 단지 짤막한 문자와 교실에서 잠깐 나눴던 대화들로 생각의교차점을 이어간다.
소설은 담임이 만든 자기소개 게임으로 채운을 소개하며 시작된다. 새 학기가 되어 학생들이 자신을 소개할 때 다섯 개의 문장으로 스스로를 표현하되 그중 하나는 반드시 거짓을 포함시켜 다른 학생들로 하여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알아맞히게 하는 것. 어떤 게 진실이고 어떤 게 거짓인지 추측하는 것. 그 과정 자체가 괜찮은 자기소개가 되곤 하지만 누군가를 속이기 위한 단순한 함정이라 할지라도 현실에서는 이룰 수 없는 것이기에 그 마음을 합법적(?) 거짓말로 툭 내어놓는 진심일 수 있다는 점으로 저마다의 응어리를 툭툭 던져둔다. '에이-설마!'라는 식으로 누가 들어도 명백한 거짓말 같은, 모두가 웃어넘길거라고 생각하지만 오랜시간 움켜쥐고 있던 것을 내뱉으며 내이야기를 알아주길, 바라는 모습을 통해 저마다의 외로움이 존재하고 있다는걸 알게된다.
📖얼핏 '거짓 가려내기' 같지만 실제로 이 게임에서 중요한 건 '누구나 들어도 좋을' '아무에게나 말해도 되는'진실만 말하는 거였다. 당연했다. 누구도 초면에 무거운 비밀을 털어놓지는 않으니까.
그렇게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점을 이용하여 정말 꽁꽁 싸두었던 비밀을 대수롭지 않게 던진다. 아무런 교차점 없이 그저 같은 반에 배정된 아이들. 그러니 이해관계가 얽혀있지도 않고, 죽고 못살 정도의 정이 차오르지도 않은 상태다. 무거운 비밀을 털어 놓았다 한들 그걸 다 믿을 사람도 아니라는 점을 겨냥하여 아이들은 거짓같은 진실을 내어둔다. 마치, 그게 당연하게 거짓일거라는 뉘앙스를 흘린 채. 실은 그 문장을 통해 그 때 느꼈던 감정을 공유하고 위로를 받고 싶었고, 공감을 받으며 오롯이 혼자 겪어야 했던 순간에 대한 보상을 원했던 걸로 보였다.
📖눈앞에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온힘을 다해 다른 선택지를 찾는 건 도망이 아니라 기도니까. 너는 너의 삶을 살아, 채운아. 나도 그럴게. 그게 지금 내 간절한 소망이야. 이건 희생이 아니란다, 채운아. 한 번은 네가, 또 한번은 내가 서로를 번갈아 구해준 것뿐이야.
채운에게 더이상 자책의 마음을 갖기 앉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었다. 채운은 자신의 행동으로 엄마가 교도소에 수감 되어있는 것이라는 것과 오롯이 자신이 한 일임에도 엄마라는 이유로 모든걸 뒤집어 쓰고 있다는 미안함에 주눅이 들어있어 안타까워한다. 행복한 미래를 꿈꾸지 불행한 결말을 원해서 맺어지는 사람은 없다. 채운의 부모도 그러했다. 하지만 원하지 않았던 결말이었고, 그럴 수 밖에 없던 불행의 끝이었던 것. 그러니 이 선택으로 우린 서로를 구했고, 그 대가는 엄마가 먼저 치르고 있음을 알렸다. 미안하지만, 더이상 미안해 하지 말자고. 그러니 채운이는 채운이의 삶을 살길 바라는 모습에서 든든한 비빌구석, 안심하고 기댈만한 가정을 유지하지 못함에 대한 미안함도 커 보였다. 최악의 삶이 대물림 되기 보단 태선의 손에서 끊어내고 픈 마음이 절절해 보였다.
📖'그런데 어쩌다 지금 우리는 전혀 다른 데 와 있을까?'
채운은 접속사만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 인간의 마음, 인간의 여러 선택을 떠올렸다.
영어 문법 작문을 동해 소리의 진심을, 채운의 속마음을 알 수 있다. 어떠한 문장을 만들어 내기에는 자신이 갖고있는 이야기를 하는게 가장 편하고 자연스러우니까. 소리의 최고의 날은 그녀(엄마)와 함께 했던 순간을 현재형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그 장면들이 과거형임을 아는 아이들이기에 생각이 많아진다. 채운의 순간은? 채운의 방식으로 표현한 이야기를 유추해 보아도 과거였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의 과거는 모두 행복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감정에 휩싸여 살고있다. 이야기속의 주인공들은 원하지 않았지만 일어난 일들 이었고 묵묵히 받아들이며 살아낸다. 접속사를 통해 문장을 만들며 공부를 하고 있지만 한 문장으로 간결화된 자신들의 삶이 미래형으로 나타내어도 과거처럼 행복하지 않을거라는 걸 알기에 생각이 많아진다.
📖있지, 사람들 가슴속에는 어느 정도 남의 불행을 바라는 마음이 있는 것 같아. 아무도 몰랐으면 하는, 그런데 모를 리 없는 저열함 같은 게.
믿을 건 가족뿐이라는 이모의 말. 가족이라. 채운은 믿을 만한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고, 상처를 입혔다. 그럼에도 믿는게 당연할까? 이모의 말대로라면 남의 불행을 바라는 마음도 당연한 감정이라는 건데, 가족이라는 관계로 엮여있긴 하지만 남보다 못한 존재라면 불행을 바라는 자신의 감정이 어느정도 정상참작이 되는 행위라 볼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걱정 말라는 말, 괜찮아 질 거라는 말 뒤에 숨어서 하게되는 채운의 진심은 우린 다 안다. 안도의 눈물도 아니라는 것 마저도. 그렇지만 저열하다고 할 수 없음도 안다. 그가 불행해야 채운이 숨 쉴 수 있으니.
📖인간과 달리 채운의 비밀을 무게 재지도, 심판하지도 않을 터였다. 채운은 '기계에게 굳이 본심을 보일 필요가 있을까?' 주저하다 '기계니까 오히려 솔직하게 얘기해도 되지 않을까?' 갈등했다.
채운의 대나무숲은 태블릿의 영어 학습 페이지였다. 하고싶은 말은 넘쳐나는데 어디다 할 곳은 없고, 부모도, 이모도, 친구도 어디 속시원하게 말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뭉치마저 없으니 목끝까지 채워진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기계에다 풀어놓는다. 비밀이야기랍시고 다른 사람에게 의도하지 않는 방향으로 전달 할 일도 없고, 잘잘못을 가릴 일도 없으며, 훈계의 피드백도 존재하지 않을테니 말이다.
계속 이렇게 되다가 불안과 자기혐오가 커지며 계속 안으로만 파고들어 갈까봐 걱정되게 만든다.
세 아이가 버텨내는 시간은 춥고, 더디게 흘러간다. 인물들이 남은 삶을 모두 잘 헤쳐나가길 바라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는 저자의 말. 정말 삶은 비정하고 예측 못할 일투성이이나 그럼에도 우리에게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했고, 어떻게든 극복 해 내도록 버틸만한 언덕, 손 잡아줄 만한 사람, 기댈만한 누군가를 한 명이라도 심어뒀음에 다행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만든다.
아이들은 이른 나이에 모두 가족의 부재를 겪었다. 이른 이별을 했다. 어떤 긴 작별의 시간을 두기보단 찰나의 소실과도 같은 과정을 순식간에 넘어왔다. 이별에 대한 학습과 극복의 효과는 생각보다 효율적이지 못하다. 곱씹고 되새기고 다시 유추해보는 과정을 겪고나면 무뎌질만도 한데 여전히 그립고 애틋함이 커진다.
지우에겐 엄마와 용식의 부재. 그걸 혈육으로 맺어진 게 아니라 한 여자를 사랑했던 남자와 그녀의 아이였던 지우가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낸다. 믿을 건 가족 뿐이라했던 채운 이모의 말에 부적절한 예시와도 같은 사이 일 수도 있겠다만 낯선곳에서 잘 지내는지 걱정을 하고, 트럭 뒤에 쌓인 약더미에 마음이 쓰이는 걸 보면 꼭 혈육으로 맺어진 것만이 최고의 존재는 아님을 느끼게 된다.
채운에겐 아버지의 죽음이 사실을 밝혀야만 하는 감정에서 벗어나게 했으며, 사랑하는 반려견의 부재를 두고 서로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되는 인물로 나온다. 혈육이었으나 죽음으로 인해 안도를 하게 되는 감정도 있었을 것이며, 말 못하는 동물이지만 다 안다는 눈빛과 그 사건이 일어 났을 때 채운의 손을 핥아주는 과정을 통해 꼭 사람이 사람을 보듬는 것은 아님도 느낀다.
소리에겐 여전히 그리운 존재인 엄마. 엄마의 부재에 조금씩 적응해가며 묘지에서도 혼자 마주앉아 이야길 하는 덤덤한 마음을 얻었다. 조금씩 채워지는 마음의 상흔을 본 호민(소리 아빠)은 그간 꺼내지 못한 미정(소리 엄마)의 투병 이야기를 알려준다. 살고싶지만 죽고싶은 마음도 컸던 고통의 끝과 그 생의 끝에 소리의 잘못은 없다며 한번 더 어떠한 이유로도 생의 끝을 막을 수 없었음을 알려준다.
정말 이중 하나는 거짓말 이면 좋겠다 싶은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사랑하는 존재의 부재. 잠깐의 이별이 아니라 영영 보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면 이 아이들보다 곱절로 산 어른인 나도 눈이 뜨거워지고 명치가 따끔해지는데 어찌 버텨냈을까를 생각하면 나보다 먼저 어른이 되었구나를 느낀다.
삶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이 세 아이들이 살아가는 동안 꾸준하고 질리도록 작별의 과정이 계속 될 것이다. 눈물 흘리고 그리워 하는 순간을 계속 마주할 텐데 '나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을, 그러니까 삶의 서사'를 바꿀 순 없겠지만 세 아이가 했던 것 처럼 정서적 의지와 언어가 아닌 마음의 동요를 통해 버텨보는 단단함을 닮아가고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