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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사람 - 글 쓰는 직장인 장한이 작가의 사람 그리고 관계의 매듭
장한이 지음 / 이다북스 / 2022년 12월
평점 :
품절
30대 중반, 해가 바뀌면 이 회사의 직장인 나부랭이로 산지 꽉채운 10년, 회사 고인물이자 이미 어지간한 일이 손에 익을대로 익어 머리를 안 쓰고 시간과 몸이 반응하는대로 사는 껍데기 직장인이다. 20대 초반엔 대기업 인턴으로 이리저리 눈칫밥도 그득히 먹어봤고, 동업자 오너들이 니꺼내꺼 하는 탓에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듯 직원 전체 권고사직도 당해보았고, 계약직으로도 일해봤으니 그간 참 많은 일들이 있었더라.
작가도 역시 직장인이다. 정말 끼인 세대로서 중간관리자이며 함부로 퇴사도 할 수 없는 생계형 직장인. 뭐, 나도 다를바가 없지. 그래서 더 공감되는 부분도 있었으나. 이 한줄. '결국은, 사람' 이 한마디로 모든걸 정리 했더라.
사람 때문에 버틴적도 있었고, 사람 때문에 뛰쳐나가고 싶었던 적도 더러 있다. 아마 나 만큼이나 작가도 많은 일들이 있었겠다 싶어 공감과 함께 동질감을 얻고싶어 이 책을 택했는지도 모르겠다.
대단한 특권이십니다_ 좋은 말만 하는 사람이 좋은 상사는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흠을 애써서 찾아내기보다는 좋은 점을 더 들여다보고 활용할 줄 안다면 직원들과 더불어 회사가 발전하지 않을까. 단점을 부각할수록 상처를 남기고, 장점은 강조할수록 점점 더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말귀 잘 알아먹는 사람에게 칭찬하면 얼마나 더 잘하겠냐 싶다만은 평생토록 타인에게 상처되도록 비수꽂기에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은 그게 참 안되더라. 때때로 눈은 웃고있지만 머릿속으로는 ' 저 입을 꿰메버려야 더이상 말을 안 하지.'라는 독한 생각을 하곤 한다.(하지만 절대 입밖으로 꺼내진 못한다)
어린시절 선생님에게 바라던 물개박수 칭찬이나 과한 리액션이 그득한 쓰담쓰담을 기대하는 연령은 지났다. 다만 내가 해낸 몫에 대해서는 인정해주었으면 한다는 점이 어른이며, 직장인으로서 바라는 기대치의 한마디이다.
그러니 '고생했다', '애썼다', '잘 넘어갔다', '다음번에도 지금처럼만 해라', '이제 이 업무는 OO씨 맡겨도 되겠다' 정도의 말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한 두해 회사밥 먹고 지낸 사이도 아니고 척하면 척이니 이정도의 말로써도 회사생활 잘 하고 있음을 해석 할 능력은 갖고 있으니 말이다.
숫자가 아니라 물 흐르듯_ 직장에서는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일이 많다. 모든 사람이 내 마음 같지 않다는 사실, 선의를 앞세운 진심이 상대를 불쾌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수시로 배운다.
정말 공감하는 문장. '내 마음 같지 않다는 사실'에 한참동안 생각을 해본다. 모두가 내가 생각하는 것 처럼 행동하지도 않고, 내가 생각하는 것 처럼 이해하지도 않는 다는 걸 늘 베이스로 깔아두고 대해야 함을 느낀다. 선의가 당연시 되기도하고, 되돌아 오지 않는 배려에 맘이 상할때도 분명있었다. 그렇게 서운한 꼭지들을 모아놓고 있다보면 내 속만 더부룩해지더라. 그러니 우리는 돈벌려고 모인 사람들이 가득한 회사의 소속된 일부라는 것을 까먹지 말고 나이가 주는 계급이나 연차가 알려주는 직급에서 해야 될 것 같은 의무적인 성향의 차이는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흐르도록 내버려두었으면 한다.
마지막 점을 찍어주세요_ 하지만 어느 조직에도 '따듯한 마음'은 리더의 요건으로 두지 않는다. 조직에서 그다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발휘하느냐 마느냐 역시 리더의 선택일 뿐이다.
리더의 요건들. 리더십, 책임감, 통찰력, 실행력, 도전정신, 도덕성, 유연한 사고장식, 거기에 덧붙여 내가 보아온 리더들은 공감능력, 배려, 오너를 향한 적극적인 구애(?), 상향적 소통(오너와 이사진들을 향한), 하향적 공감(부서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 등등. 나열하자면 끝도 없을 것이다.
내가 덧붙여 본 항목들에는 따뜻한 마음이 일정부분 필요한데 그게 있고 없고는 차이가 큼을 느낀다. 한 사무실을 사용하면서 내가 소속된 부서의 부서장 뿐만 아니라, 타 부서의 부서장들의 행동을 참 많이 비교하게된다. 구성원들과 얼마나 소통하느냐에 따라서 극명한 온도차를 경험한다. 그렇다고 말이 많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세세한 가정사를 알고있지 않더라도 동료의 안색을 보고 한마디를 할 수도 있고, 직원이 업무적으로 통화를 하다 큰 소리가 났을 경우 어떤 일이 있어서 그런지를 궁금해하는 정도? 그것으로도 구성원들은 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고 유심히 봐주고 있음을 느낀다. 이 말을 또 잘못 해석해서 립스틱색깔이 바뀐건지, 머리카락을 잘랐다던지에 대한 외모 틀린그림찾기가 아니라는 점도 일러주고 싶다.
선택적 소울리스_ 소울리스좌는 영혼 없이 일하는 표상으로 떠올랐지만, 누구보다 충만한 열정을 담아 할 건 다 하는 직장인이다. 열정의 유효기간을 스스로 조절할 줄 알고 최적의 효율을 찾아 일하기 때문에 더더욱 빛이 난다. 직장인에게 선택적 소울리스는 환영받아 마땅한 트렌드다.
선택적 소울리스라는 말이 반가웠다. 영혼없이 다정하고 친절한 목소리만 낸다고 했던 나의 이전 상사가 떠오른다.(미화된 설명이지 실제로는 더욱 극명하게 깎아내려주더군) 업무 특성상 월말에 수십군데의 거래처와 전화를 정말 많이 한다. 반갑지 않지만 반갑다고 말하고, 고맙지 않지만 고맙다고 말해야하는 위치. 지칠대로 지쳐있지만 목소리는 하이톤이고, 데면데면하지만 억양은 다정하도록 유지하는 법을 세월이 알려주었다. 상대방과 화상통화를 하는 것도 아니고, 주어진 업무에 대해서는 문제없이 해결한다면 이것도 나쁘지 않다는게 내 소신이다. 최소한의 행동으로 최대한의 목표치를 이끌어 낸다면 이것만큼 효율 극대화도 없고, 그저 내 모습을 보는건 나와 마주하고있는 모니터 뿐이니 에너지를 최대한 아끼자. 그래야만 멀쩡한 정신으로 퇴근을 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된다.
매일 죽상을 하고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매 순간 텔레토비 햇님처럼 까르르 웃으며 살 이유도 없음을 인지시켜주고 싶다.
필살기가 있습니까_ 직장인에게 호기심은 큰 무기다. 직장생활은 하루하루가 다사다난하고 매 순간이 경쟁이다. 잠시 방심하면 뒤처지기 일쑤다. 급변하는 세상에 맞춰 끊임없이 자신에게, 선배에게, 상사에게 질문해야 성장할 수 있다. 소심하게 쭈뼛거리는 시대는 지났다. 불치하문, 즉 자신보다 아래 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시대가 도래했다. 궁금증은 참지 말고 쌍방 간 묻고 답해야 윈윈할 수 있다. 호기심은 인간의 본능이다. 굳이 숨길 필요 없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질문하면 인간은 성장한다.
호기심이라는 큰 무기는 필살기가 되기도 하지만 자폭장치가 될 수도 있다고 작가의 의견에 반박하고싶다. 질문해야 성장을 할 수 있지만 상황에 따라서 질문했다가 그것도 모르고 여기에 왜 앉아있냐며 짓밟힐수도 있다. 모두가 너의 질문과 물음에 궁금해하고 알고싶어하고 더 배우고자하는 새싹같은 맘에 우쭈쭈해주며 다정하고 상세히 가르쳐 줄 것이라는 100%의 확인은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숙지하고 들어가야하는 회의 시간에 백지상태의 너의 지식을 채우고자 한다면 쫒겨나지 않은 것에 다행이라고 여기자.
그러니 누울자리 보고 발 뻗으라는 말 처럼 우리가 눈칫밥먹으며 버틴 세월의 데이터를 굴려가며 적당한 타이밍에 맞춰서 호기심을 작동시키길 바란다. 최악의 상황에만 발현시키지 않는다면 우리의 상사나 동료, 거래처사람들이든 궁금한것에 대해 조언을 구하면 대부분 잘 가르쳐 줄 것이다. 어떤 부류는 자신의 TMI까지 와르르 쏟아내며 알려주기도 할 것이며, 또 어떤 부류는 자신의 스킬을 제외한 팩트만 전달하기도 할 것인데 전자든 후자든 일단 듣고나면 내것이 되기는 분명한 자료들이다.
나의 레퍼런스 체크_ 나의 단점이 비단 이뿐일까. 내 안에 넘치는 단점에 대해 이리저리 생각한다. 상사와 후배가 전한 단점의 포장을 풀어 날것 그대로 마주해본다. 오늘은 또 얼마만큼의 단점을 여기저기 흘리고 다녔는지 수시로 들여다본다.
나를 자랑스러워 하기엔 단점이 참 많은 인간이다. 잘 하려고 애쓰긴 하지만 어쩜 그리 허점이 많은가 싶기도하다. 그럼에도 회사라는 집단에서 소속되어 업무를 수행하고 그에 대한 보상을 받는 다는것이 신기할때가 많다. 혼자서는 이뤄내기 어려 운 것들, 혼자라면 자각하지 못했을 것들은 주변 사람들을 통해 깨닫고 바로잡아보기도 한다. 늘 배워야하고, 감탄하고, 비교하는 삶이긴 하나 그렇게 만드는 이들이 없다면 오만한 인간으로 살게 분명하다. 혼자 사는 사회도 아니고, 또 그렇다고 나를 배제해야하는 곳도 아니다. 적절하고 적당한 그 정도가 필요한 무리.
쿵짝이 잘 맞는 사람도 있지만 저 멀리서 상대의 목소리만 들려도 치가 떨리는 이도 분명 있을 것이다. 다 겪어보니 이유가 있었다. 다름을 겪어보기도하고, 공감을 얻기도 했으며, 동질감에 신이 나기도한게 회사라는 무리이며 팀원이라는 조직이었다. 어찌그리 겹치는 캐릭터가 하나도 없는가 싶을 정도로 신기하면서도 나는 그들에게 또 어떤 감각으로 느껴질지가 궁금하기도 하다. 이렇게 다양한데 세대와 직급의 다름으로 오는 견해들은 또 얼마나 다양하겠냐는거지.
완독 후 또 한번 감탄하는 삶이다. 재밌지만 어렵다. 신기하지만 고민도 많다. 그렇지만 흐린눈하며 무시할 수 없는 것들이 바로 인간 대 인간이다.
때로는 다정하게 가까이 다가가 보기도하고, 때로는 먼발치에서 관전하듯 보며 적당한 거리를 가늠하며 지내보자. 이러든 저러든 나에게 다 쓸모있는 존재들이니 인간관계 스펙트럼의 또 한면을 채워보며 이 자의 가장 배워봄직한 무언가를 빠르게 스캔하는 능력을 키웠으면 좋겠다. 득이 될 것만 쏙쏙 뽑아내다보면 결국 이 사람도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충분하니 말이다.
◎ 이다북스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고 작성된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