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요한 우연 - 제13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ㅣ 문학동네 청소년 63
김수빈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2월
평점 :
수현의 시선에서부터 시작된다. 스스로를 평범하다고 여기며 이름보단 1학년 9반 25번이라 자신을 설명한다. 뒤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색이바란 사진처럼 희미한 얼굴이지 않냐며 말하는 여고생은 스스로에게 낯가림을 한다.
수현의 절친이며 중학교때부터 단짝. 눈빛만 봐도 아는 사이. 성향이 정 반대라 더 끌리는 지아. 어쩜 그 또래들처럼 엄마보다 아빠보다 내 속을 더 잘 들여다보는 나란놈의 해답지를 쥐고있는 듯한 똑부러지는 친구.
이른바 아이돌같은 존재이며, '모두의 한정우'라고 불리우는 수현의 짝사랑이자 친절하고 상냥해서 호감이 가는 정우.모두에게 친절하니 나만을 위한 배려라고는 안 느껴지게 만들다보니 진짜 속 마음이 궁금해지는 마음의 겹이 많은 반장.
예쁜 얼굴, 전교 1등. 초승달 같은 고요. 소문도 많고 주변에선 관심이 많지만 그 모든 관심들을 무시하는 단단한 벽을 두고 살아 더욱 마음이 쓰이지만 돌아오는 차가운 반응에 모두가 꺼리게되는 1학년 9반 속 단독 행성같은 아이.
수현이 전날 꿈에서 내도록 울었던 그 날. 꿈에서 돌아보던 얼굴. 그래 그 아이. 정후의 뒷자리 우연으로 기억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우연이 겹치는 걸 알게되며 그 친구로 인해 수현이 울었던 그 이유를 알게된다.
그리고 the_eagle_has_landed. 모두의 닫힌 마음에 들어와 무사히 안착하며 아무도 모를 이야기들을 들어주는 진짜 universe까지.
한 반에 이렇게 겹치지 않는 캐릭터들이 모일 수 있을까 싶지만 그게 가능했던 시절이다. 반아이들이 많았던 나의 2000년대 학창시절도 그랬고, 그보다 더 적어진 2020년의 지금도 담임들이 어떻게 조합을 했길래 이럴 수 있을까 싶도록 다양한 아이들이 한 반이 되어 지냈던 시절의 이야기. 그렇다보니 서로를 비교하고 질투하기도하고 동경하기도 하며 내가 네가 될 수는 없지만 나는 네가 모르는 그 너머의 모습도 보고 이야기 해 줄수 있음을 느낀다. 수현도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위축되어있던 마음속 또 다른 수현을 만나게 되는 우연을 접하게 된다.
📖 마이클 콜린스의 달_ "네가 엄마 나이쯤 되면 알게 될 거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약간 심심할 정도로 평범한 인생이라는 거."
엄마의 큰 눈도, 아빠의 짙은 쌍꺼풀도 닮지않은 수현. 한반에 두어명은 있을듯한 흔한 이름도 갖고있으니 특별한 존재로서의 삶을 동경하지만 엄마는 타박하지않고 부드럽게 말해준다. 심심할정도로 평범한 삶이 얼마나 어려운지와, 나이듦에 따라 그 삶이 얼마나 간절해지는 지를 말이다.
어릴적엔 남보다 튀었으면 싶고, 옆자리의 쟤보다 멋진 재능을 갖고 있어 세상이 자신의 위주로 돌아가는 주인공인 하이틴드라마가 되길 바라게된다. 20년 후에 다시 이야길 하자는 엄마의 한마디를 듣고있으니 엄마도 수현의 나이에 똑같은 상상을 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꼭 주인공이어야만 하는 삶을 원했으나 살아보니, 겪어보니 주연만큼이나 조연도 삶이 바쁘고 쉼 없이 돌아감을 느끼셨다고 보여졌다.
📖 검은 고양이 아폴로_ 슈퍼맨이 되고 싶은 게 아니다. 그렇게까지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은 없다. 드넓은 백사장에는 예쁜 조개껍데기도 있고 바다에서 떠밀려 온 미역 줄기도 있다. 그리고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모래알이 있다. 나는 그저 조금이라도 반짝이는 모래알이 되고 싶은 것뿐이다.
글쎄, 수현은 남들보다 특별한 존재이곤 싶으나 천성이 튀는것을 두려워하는 것 처럼 보였다. 그러니 마음은 슈퍼맨이지만 스스로 억누르고 있는듯 했고, 그러니 드넓은 백사장을 채우고 있는 모래알 중에서도 좀 더 반짝이고 싶어했다. 흔한건 싫지만 그렇다고 뚜렷하고 월등한건 두려운 것. 그럼에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픈 마음이 가득한 아이.
반장 선거라던가 장기자랑, 수련회 무대에서 누가 추천을 해서 단상위로 올라가면 정말 잘 하지만 거기까지 스스로 올라갈 용기가 조금 부족한 아이. 수현의 머뭇거림이 공감이 되었다. 나의 학창시절과 참 많이 닮아있어 더 반짝이는 모래알이 될 수 있도록 마음은 더 환히 닦아주고싶게 만들었다.
📖 우주 미아_ "진지하게 말하는 거야. 사람이 사는 데 이유가 꼭 필요해? 사람이니까 살아가는 거지. 사람만이 아니야.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살아갈 권리가 있고, 살아가야 할 의무가 있는 거라고."
심도있게 파고드는 것도 중요한 습관이겠지만 때로는 이렇게 지아처럼 직관적으로 순간을 마주하는 것. 때로는 살짝 힘을 빼고 힘조절을 하는 것.
장거리 레이스마냥 살아온 순간보다 곱절의 삶을 기대하는 이 친구들을 위한 조언 같다. 지아 몸 속에는 세월을 다 겪은 중년이 들어 앉은거 같아 놀라울때가 많다. 인생 2회차인가 싶은 지아의 말에 나 마저도 그냥 살아야하니깐 사는거지~ 라며 오늘을 살짝 느슨하게 살아볼께 싶게 만든다.
지아 고녀석 버블티 한잔 사주고 인생에 대해 논하고 싶게 만든단 말이지.
📖 인력의 방향_ 나는 어렸을 때부터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때로는 손해를 보기도 하고, 내키지 않는 일을 할 때도 많았다. 특별한 사람은 될 수 없으니 좋은 사람이라는 말이라도 듣고 싶은 얕은꾀가 아닐까, 항상 내 마음을 의심했었다. 솔직히 말하면 하고 싶지 않았는데 차마 거절할 수가 없어서, 마음에도 없는 행동을 했던 순간들이 분명 있었다. 그렇지만 모든 순간이 그랬던 것은 결코 아니다.
나의 시절과 너무 많이 닮아있는 수현이다. 수현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했고, 수현과 같은 나이에 나는 '선한 어른'이 되고싶다며 싸이월드 프로필에 적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에서야 생각하면 이불킥하기 딱 좋은 겉멋이 든 프로필이겠지만, 그때의 나는 매우 진지하게 적었던 기억이 있다.
딱히 무언가가 되겠다는 목표도 없었다. 공부도 그냥저냥이고 욕심도 뚜렷하게 없고, 잘하거나 특출난 것도 없었다. 그렇다보니 남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모두가 나를 미워하지만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가장 컸다. 그런생각의 끝에는 좋은 사람, 선한 어른, 착한 사람으로 답이 나오더라.
칭찬을 해줘도 당연한듯 '그래, 다~~~ 내가 잘해서 이뤄진 결과야!'라며 스스로를 칭찬하기보단 아니라며 손사래치던 나를 꺼내보면 부끄러움이 더 컸는지도 모르겠다. 주목받고 싶지만 주목받을 땐 되려 숨고싶어하는 많이 예민하고 소극적임. 내면의 활달함은 가장 친한 친구나 스스로에게만 보이며 모두가 알아주면 다시 숨는 위축된 표현력.
상대가 궁금했고, 알고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도 있겠으나 무엇보다 길을 잃은 듯 한 친구에게 수현만의 반짝이는 모래알들로 길을 알려주고픈 마음이었겠지. SNS로 자신의 존재를 숨겼지만 솔직히 털어놓았고, 진심을 말했으며 그 때의 마음은 거짓이 아니라는 것도 다 말해주어 한순간의 흥미로 시작된 장난이 아니었단걸 확실히 이야기해주어 이들의 관계가 지속될 수 있음을 느꼈다.
살다보니 그 시절만큼 상대가 궁금한 적이 있을까 싶어진다. 그리고 나 또한 어떤 이에게 나만큼이나 알아가고픈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고민하는게 10대시절 겪어온 감정들이었다. 이제는 시들해졌고 기력을 잃어가는 관심과 호기심이라는 감정을 이 친구들이 자극시켜주어 감사하다.
이것저것 재는 것 없이, 얽혀있는 이해관계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보게되는 그런 시선 말고, 나를 진득하게 바라봐주고 악의 없고 선한마음으로 마음을 열길 기다려주는 따뜻한 눈길. 조급하게 보채지도 않고 한발짝 멀리 떨어져 기다려주는 마음덕에 다들 닫혀있던 조금씩 열어주고 있음도 느꼈다.
나를 궁금해 해주어 고맙고, 기다려주어 기쁘고, 외면하던 사소한 모습에 힘을 싣어주는 그 마음 덕에 고요한 우연이겠지만 그것들이 모여 큰 너울을 만든 힘이 센 우연으로 돌아와 준 거 같아 수현의 진득함에 감사한 순간이다.
◎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작성된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