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공장 블루스 - 매일 김치를 담그며 배우는 일과 인생의 감칠맛
김원재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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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들은 후루룩 읽는 맛도 있지만,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들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배우들은 다양한 배역으로 삶을 대신 살아본다고 하지만, 나같은 책덕후는 에세이들을 통해 또 다른 삶을 경험하게되는데 이야기꾼의 말재간이 좋으면 더 신나게 몰입할 수 있기도 하다.

저자는 대기업 카피라이터로 9년동안 일하다가 모친께서 당신의 김치공장으로 스카웃을 하여 이직을 하게된다. 좋게 말해 이직이고 정확하게 말한다면 소환(?) 같은 거겠다. 다른 이들은 안나가려 책상다리 부여잡는 곳일텐데 그 곳을 자진 퇴사하고(10년 근속 못하고 퇴사한거 나만 아쉽나?) 공장 부사장으로 오게되는 인생의 반전. 엉덩이 붙이고 종일 살던 이가, 엉덩이 붙일 겨를이 없는 삶을 산다는 것. 생전 안 해본 분야로 옮겨심기하여 뿌리를 뻗어가며 산다는 것. 그 모든 것이 새로운 새싹신입이지만 부사장이라는 무거운 직책도 가진 묘한 이직 레벨. 그렇지만 현장의 외국인 노동자보다 모르는게 더 많은 직책만 부사장이고 언니와 누나의 닉네임이 제일 편한 사장님 딸래미. 재미난 키워드가 가득하다. 덕분에 나는 퇴근 후 김치공장 부사장 친구의 신세한탄을 듣는 느낌으로 수다 한판 나눠볼까 싶다.


📖 일 많이 하는 삼성 다니던 누나_ 대기업 명함으로 대출도 쉽게 받고, 새벽 출근 때는 택시 기사님께 '어느 회사 가주세요' 한다미 한뒤 두 발 뻗고 잠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정말 제대로 하고 싶다.


회사 이름만 대면 모두가 알아주는 곳이라면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효과일 것이다. 기업의 인지도가 내가 사회에서 누리게되는 영향력이 되기도 하고 자연스레 나의 자부심이 되기도 하더라. 그런 곳을 제 발로 나온 사람. 성과에 대한 책임을 지거나 더 나은 곳으로 이직을 위해 퇴사 한 게 아니라 가업을 잇기 위해 원래 밥벌이하던 업에 대한 연관성이라고는 1도 없는 곳으로 내 뿌리를 뜯어 옮겨 심어 낯선 땅에서 다시금 뿌리 박을 곳을 찾는 다는 것. 몸과 마음이 골고루 피곤해지고 움츠려 드는 상황. 편하게 누리던 것들을 다 반납하고 자진 입장한 세계이니 더욱 이런 말 안 듣도록 열심히 하고팠는지도 모르겠다. 똑똑하고 일 잘하고 사장님 조차 그렇게 자랑하던 제일기획 다니는 원재였으니 그 엄마의 그 딸인 만큼 진짜 제대로 한판 보여주고픈 맘을 상상해본다.



📖 배추 올라잇!_ 내 마음이 딱 그렇다. 배추 상태가 안 좋은 날은, 이 김치를 받아든 사람들에게 꼭 다음이 없을 것만 같다. 배추 신용불량자다. 얼굴도 모르는 고객님들이 빚쟁이처럼 무섭다.


부사장인 작가는 배추가 자신이고 자신이 고객에게 나갈 배추처럼 마음이 간다고 하는데, 공장직원들도 알게모르게 그런 마음을 가진다. 내가 사장도 아닌데 출고직전의 제품을 보면 쟤가 나고, 내가 쟤가 된 듯한 느낌이 들며 혹여라고 공정이 잘못 되어 급하게 재작업이나 불량으로 머물면 마음이 가고 걱정이 많아진다. 저녀석으로 인해 우리 회사의 인식이 안 좋아질까 우려도 되고, 또 내가 정말 마음을 다해 만들었음에도 반응이 안 좋거나 품질검사에서 통과를 하지 못하면 같이 주눅들기도 한다. 그게 회사를 다니는 이들에게 얻어지는 소속감과 애사심의 일부가 아닐까. 내가 생산해내는 제품들은 내 배 아파 낳은 것도 아닌데 나의 일부같고, 내가 빚어놓은 산물처럼 여겨지니 말이다. 아마도 작가는 김치만 보면 그렇게 아는 척을 하고 싶을테고, 나는 배만 봐도 저건 어디서 납품되고 저 소재는 어디꺼고라며 말을 걸어보려 할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밥벌이하는 세상에 내가 많이 녹아들어 살고있다. 작가처럼 회사를 꾸려나가는 부사장이든, 나같은 직원 나부랭이든 말이다.



📖 김치 공장의 샤카_ 우리가 이 생업이라는 굴레를 벗어나기는 참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하루하루 어떻게든 살아가는 게 참 기특하지 않냐고. 내가 너의 아픔을 알고 있으며, 그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너의 삶을 나 역시 응원하고 지지한다고.


작가는 '방아쇠수지증후군'이라는 걸 이 공장에서 처음 얻었다. 산재라고도 할 수 있겠고, 내가 그만큼이나 많은 일을 해서 얻은 몸의 변화라고도 할 수 있겠다. 작가가 이 곳으로 이직하지 않았다면 평생 모르고 살 손의 형태였을 것이다. 직업에따라 각자가 얻게되는 고충이 있다. 나 역시 직업에 따라 다양한 고생담과 몸고생을 겪은게 떠올랐다. 웨딩홀 다닐 적엔 한창 성수기엔 한달에 두번도 겨우 쉬었다. 20대 중반에 대상포진도 걸려보고 주말 행사 끝나고 블라우스 등판이 하얀 소금자국으로 남았던 시절이 있다. 큰 액자를 계단으로 오르락거리다 발목 깁스까지 했지만 또 꾸역꾸역 입원실에 노트북 챙겨와 작업했던 기억. 왜 그리 열심히였나 생각하지만 나는 생각보다 그 일을 정말 사랑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공장의 관리직으로 들어온지 10년. 코로나이전 한창 성수기 시절엔 종일 앉아서 키보드만 치게되니 손목이 말을 안 들어 운동선수들이 한다는 치료와 뻐근한 주사도 맞아봤다. 그럼에도 다음날 눈이 떠지고 출근을하려 주섬주섬 챙기게된다. 눈뜨면 갈 곳이 있다는 것. 하루하루 어떻게든 살아가는게 기특하고, 가기 싫다고 징징거려도 아무도 가라고 등떠미는 이가 없더라도 회사로 발길이 향하는 것. 그러니 나라도, 우리라도 서로를 위해 애쓴다는 눈길한번씩 주며 으쌰으쌰하자.



📖 (인터뷰)누군가는 웃을 수도 있겠지만_ 이 업무를 누구한테 주나, 그 생각이요. 제가 하던 일들이 다 제 새끼들 같은 거예요. 남들이 들으면 웃을 수도 있겠지만 정말 그랬어요. ... ... 담당자들한테도 정말 많이 물어봤거든요. 그렇게 다 하나하나 배운 것들이예요. 어느 하나 제 손이 안 탄 게 없는데, 이걸 어떻게 다른 사람한테 넘겨주나. 이다음 사람이 잘할 수 있을까. 이 파일 하나하나가 정말 제 자식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별거 아닌 거 아는데도.


조부장의 대답에서 진짜 많은 공감을 얻었다. 입사 10년차의 내 맘이 딱 저건데 싶은 그런 동질감. 나는 업무 인수인계도 못 받았다. 입사 전에 업무를 수행하던 이는 퇴사를 했고, 상사는 내 업무를 100% 숙지하지 못한 채 나에게 모든걸 맡겼다. 동종업계도 아닌데 비슷한 업무였지 않았냐며 떠난이가 남기고간 허술하기 짝이없는 업무지시서를 보며 한동안은 질문봇이 되었던 어린내가 보였다. 심지어는 거래처 담당자에게 나는 신입이고 이전 근무자에게 받은 자료가 없어서 아는바가 없으니 도와달라며 나를 한참 낮춰 부탁하는 것이 습관으로 바뀌기도 했다. 그러니 그간 쌓인 내 데이터가 얼마나 소중하고 짠하겠냐는 것이다. 업무는 늘었고, 데이터도 쌓였고, 편하게 하기위해 포멧도 개편해둔 것들이 생각보다 제법 많다. 그러니 조부장의 말 처럼 이걸 내가 어찌 놓아주냐 싶은 마음이다. 나는 여전히 회사 나부랭이라며 낮게 말하지만 언제든 퇴사하고 싶은 맘이 굴뚝이라고 입버릇이 되어있지만 쉽사리 이걸 놓아두고 떠나진 못할 것 같아. 내 배 아파 낳은 새끼는 없지만 내 손목과 내 굽은 등허리와 뻑뻑한 내 눈을 내어놓고 빚어낸 파일들이 내 새끼같고 때론 내 분신같아서 진짜 별거 아닌데 이렇게 변해버렸다.



📖 윤서에게 보내는 편지_ 날마다 하는 일이 입에 올리는 순간이 그분들을 위축되게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 소속을 자랑스럽게까지 말하진 못해도, 모두에게 떳떳한 밥벌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에게 하는 일이 뭐라고 물으면 그냥 공장 사무관리직이라고 말하다가 또 어떤 날엔 '배만드는 사람입니다' 라고 말하기도 한다. 본사의 경우는 40여년 넘게 한 곳에서 뿌리박고 키워낸 토종기업이라 이동네에 오래 사신 분들에겐 회사명만 말해도 무얼하는 곳인지 어떤 곳인지를 다 알고 계시더라. 그냥 회사다닌다고 말은 하지만, 나의 부모님은 딸래미 므슨일 하냐고 하면 아주 자랑스럽게 저기 'OO다니잖아'라고 하시니 나 역시도 떳떳한 밥벌이를 하고 있는 곳이구나 싶어진다. 대기업에서 일하는 미래를 꿈꾸지만 그렇지 못하는 곳에서 일하는 중소기업이나 중견기업 직장인들이 더 많다. 그런 이들의 노고로 인해 우리는 다양한 분야의 덕을 보며 편히 살고 있음을 느낀다. 회사의 이름이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내가 말했는데도 상대방이 모를 수도 있다는 생각에 회사명보다는 무얼 만드는 곳에 다니고있다고 말하는게 더 일반적이겠다. 그러니 나는 원재부사장에게 말해주고싶다. 직원들이 그냥 공장다닌다고 말하는 것보다 '저기 파주에 김치 잘만드는 공장 거기 일하잖아!' 라고 웃으며 일할 수 있는 밥벌이가 되도록 이왕 애써주는거 좀 더 찐하게 애써달라 부탁과 종용을 섞어 어깨를 무겁게 만들어주고싶다.


말빨과 글빨이 특출난 광고카피 쓰는 사람이 들려주는 감칠맛 넘치는 김치 공장 업무일지는 재미날 수 밖에 없다. 업무 분야는 다르지만 공장밥 먹고사는 나로서는 공감되는 부분이 많고, 직원간의 유대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세상사는 거 다 비슷비슷하구나 싶은 맘과 함께 이렇게 회사를 아끼는 이들이 많으니 때때로 불어닥치는 시련에도 누군가의 밥벌이로 버텨주고 있음을 느꼈다.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일을 하는 것, 나의 엄마뻘인 여사님들이 많은 현장. 티는 나지 않지만 곳곳에서 자기 할 일을 기가막히도록 해내는 직원들. 평생이라는 말로 공장 문 닫을 떄가지 함께 할 순 없지만 그럼에도 쭈욱 함께 하고픈 이들이 많은 쿵짝맞는 조합.

신박한 분야에서 일하는 이가 전해주는 에세이라 관심을 갖고 읽게되었으나 결국 우리는 밥벌어 먹고 사는 먹고사니즘에 진심을 다하는 존재이며 분야와 위치만 다를뿐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이들이 모인 공간이라는 생각에 나만 그리 사는게 아니라는 위안도 얻는다. 그러니 원재 부사장은 이러한 마음과 직원들의 자부심이 나부랭이로 흩날리지 않도록 중심을 잘 잡아주면 좋겠다. 흰쌀밥에 원재 부사장이 만든 김치를 놓아두고 들은 동네 친구의 회사 적응 에피소드 듣느라 반찬이 없어도 배부르고 든든하게 속을 채운 느낌이다. 속이 허하고, 회사 생활에 허기가지면 요런 맘으로 감칠맛을 좀 채워보길 권해본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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