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데 가끔 뭘 몰라
정원 지음 / 미디어창비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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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그려진 아이는 주인공 정훈. 무언가 뾰루퉁한 표정과 눈썹을 보이고 있지만 또 어찌보면 똑부러지고 당찬 구석도 있어뵈고, 옳고 그름에 대해 FM이 되어 있는 듯한 빤듯해보이는 아이.(표준어가 아닌거 알지만 이 친구를 표현하기엔 반듯보다 빤듯이 어울린다) 그 시절에 나도 그러했던건 아니었나 돌아보게되는 초등4학년의 생각이 넘치는 일상 이야기다.




이 책은 사춘기에 접어들 시기에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편견과 차별, 불평등과 처음 겪게되는 상황들을 풀어가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어른들이 당연하게 만들어 둔 차별과 편견들을 초등학교 4학년 아이의 시선으로 보며 겪게되는 에피소드들이다. 표정과는 다르게 에피소드들의 제목들은 한결같이 '~는 소중해'로 적힌 걸 보면 자신은 좋지만 이걸 타인에게 표현해도 되는게 맞는지, 혹시 유별나게 나만 좋아하는건 아닌지, 내 표현이 다른이에게 불편함을 주는건 아닐지를 생각할 아이의 깊은 고민의 연결고리를 따라가게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우산은 소중해' 단편. 하교 시간 우산이 없는 어린 학년 동생에게 선뜻 우산을 건네주는 정훈. 비를 맞더라도 그 편을 택했던 건 자신이 저학년 시절 이름모를 언니에게 우산을 얻어 썼던 기억덕분이라는 것을 마지막 그림에서 느낄 수 있다. 누군가의 호의와 배려 덕에 내리는 빗물 만큼이나 슬펐을지도 모를 순간이 감사했고 기분좋았던 터라 정훈은 언젠가 그 날이 오면 똑같이 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살아왔는지 모른다. 비록 이 친구가 우산에 그린 물감이 수성이라 옷이 다 물들었고 깨끗하게 지워지지 않았더라도 우산을 빌려준 누나를 위해 예쁜 그림을 그려주고싶어했을 이름모를 동생의 정성을 알기에 그날의 정훈은 어른의 정훈이 되더라도 소중한 기억으로 평생을 살 지 않을까 싶어진다.





준서의 부재. 할머니의 사망. 정훈은 준서 할머니가 끓여주셨던 짜장라면 간식을 먹었던 기억이 있어 할머니도 그리워지고 준서의 슬픔을 어떻게 위로 할지를 고민한다. 다같이 함께 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조금 덜 슬퍼하도록 친구들끼리 모여 함께 짜장라면을 끓여 먹는 모습. 이 친구들만의 위로 방법이 아닐까 싶다. 좋았던 순간을 복기하며 할머니와 함께했던 순간 만큼은 아니지만 친구들과 함께했던 기억으로 채워보길 바라는 따뜻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슬픔을 나누고 덜어내어 함께 먹어낸 친구. 새학기에 맺어진 짝꿍의 인연이 이렇게 개인의 가족사의 슬픔을 채우는 소중한 우정으로 확장되었다.




어른으로서 생각이 많아지는 '어린이는 소중해' 어린이가 소중한 만큼 어린이가 뛰어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픈 할아버지의 1인 시위. 그리고 아이들은 먹고싶은 빵을 구입하기위해 추운 곳에서 1인 시위하는 할아버지에게 감사의 마음과 부탁의 마음을 표현하는 아이들. 편의점에서 따뜻한 유자차를 드리며 부탁을 하는데 노키즈존에서만 파는 맛있는 빵을 대신 구입해달라 말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메뉴지만 아이들이 맘편히 먹으러 가기 어려운 곳. 그 상황을 통해 요즘 세상의 노키즈월드를 떠올리게 만든다.

아이들을 뭐라 하는 것이 아닌, 아이들과 동반한 어른들의 주의를 필요로하는 노키즈 존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이를 싫어하는 세상으로 바꾼 것 같아 미안스러워진다. 동반한 유아를 케어하길 원하는 마음에서 주의가 필요한 곳임을 알리는 노키즈존이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을 원하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여질까 걱정이 되기도한다.

나도 겪어낸 시절이었다. 이젠 기억도 희미한 10대의 초입. 생각이 커진 만큼 마냥 아이처럼 보이고 싶지 않고, 또 그렇다고 중고등학생 언니들같은 외형적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니라 더 혼란스러운 시기. 내 마음을 훤히 드러낼 만큼 표현하는 것 마저 부끄러운 시기라 뾰루퉁하기도하고 심드렁한 표정이지만 이 친구들의 속내는 말캉하고 따뜻하다. 내 어린시절을 반영한 듯한 정훈의 모습을 보니 우습기도하고 새치름함에 귀여운구석이 보인다.

정훈이 좋아하고 소중해하던 것들을 옅보면서 내 어린시절도 떠올리고, 정훈과 같은 시기를 겪을 나의 조카들의 성장과정도 빗대어보며 이 친구들이 많은걸 소중하게 여길 수 있도록 공감하는 구석을 만들어보고 싶어진다. 내가 그랬는데 지금의 아이들은 오죽할까 싶어지는 성장의 과도기를 조금은 유연하게 흘러 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픈 공감의 책이다. '너희들의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해'라는 마지막 문장을 끼워넣고 싶을 만큼.

📖 미디어 창비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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꿰맨 눈의 마을 트리플 22
조예은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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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밍도 어찌 이리 기가막힐까. 꿰맨 눈의 마을이라는 신간 발매와 함께 눈내리는 마을 표지. 책을 읽기 전엔 몰랐지. 그 눈과 그 눈의 경계를. 내가 이토록 한국판타지 소설을 좋아했던 적이 있나 싶지만 SF소설에 발을 들여놓고 난 후 자연스레 판타지 소설까지 영역을 확장한게 아닐까 싶어진다. 마냥 만화같지도 않으면서 탄탄한 구성과 함께 조만간 넷플릭스나 티빙에서도 3연작 시리즈로 나올수도 있겠다 싶은 그런 기대감까지.

이야기는 3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있지만 독립적이지 않고 각각의 이야기 속에 인물들이 겹쳐서 처음부터 정주행하듯 읽기를 권해본다. 생각보다 길지 않은 내용이라 훅훅 읽어지는 속도감까지 더해지니 생업이 있는 직장인 나부랭이는 본업 끝낸 후 틈틈히 읽으며 사흘만에 읽어지더라. 각잡고 주말을 빌려 읽었다면 하루만에도 완독이 가능한 전개속도이다.


꿰맨 눈의 마을 / 히노의 파이 / 램 의 단편에 더불어 저자의 에세이와 작가이자 기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작품 해설집으로 총 5개의 이야길 갖고있다.

해설집의 이다혜 기자가 3개의 단편을 배열하기를 현재-먼 과거-가까운 과거 순으로 배열된 것이라 말하지만 실제로는 현재-과거-미래의 구성이라는 점에서 공감하는 바이다.

이야기는 2066년 6월 6일 새빨간 달이 뜬 멸망한 세계로부터 도시가 물에 잠겨 바이러스와 저주병을 피해 방주같은 타운으로 숨어든 이들의 둠스테이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알 수 없는 바이러스 속에서 사람들은 익히 아는 지금의 모습을 잃은 채 '저주병'이라고 통칭하는 현상이 발현되는데 아무데나 눈이며 입이 생겨나고 있지 않아야 할 곳에 생기는 손이나 기관들로부터 흉측한 모습에 전염을 걱정하며 마을 밖으로 쫒아낸다. 교차 감염의 여부나 생존 확률은 물론이고 추적관찰 따위 필요치 않으며 세상밖으로 밀어내기 바쁘다. 그렇게 서로를 감시하게된다.



📖꿰맨 눈의 마을_ 하지만 그거 알아? 결국 중요한 건 시간과 쪽수야. 누가 다수를 차지하느냐.

그렇더라. 시간과 쪽수를 기점으로 격리가 되느냐 일반화가 되느냐의 차이를 두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 수록 무뎌졌고, 확산세가 커져 우리가 기준을 두는 일반인과 비 감염인의 수치를 넘어선 후가 되면 그게 결코 일반화라 할 수 없는 수순으로 이어지는 걸 봐온 시점에서 보니 꿰맨 눈의 마을은 지금의 세상과 많이 닮아있어 웃프기도 한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감염자를 쫒아낼 때 쥐어주는 미트파이와 콜라는 코로나 시대를 겪어온 우리가 보기엔 격리자에게 주는 생존 식량과도 같았다. 램처럼 먹고 버텨내면 다행인거고, 그러지 못하면 어쩔 수 없다며, 우린(일반인) 최선의 배려를 해 준 셈이니 탓하지 말라는 뉘앙스도 풍겨온다.

세상은 모두 자신을 기준삼아 옳고 그름을 나누게된다. 그렇게 자신과 다름에 있어서는 인지하는 것에 끝나지 않고 결국 혐오의 시선을 깔아두게된다. 다른 사람이 그러면 몰라도 나는 아니다 라고 부정하며 청렴을 내세우는 이는 몇이나 될까. 나 또한 나와 다른 결의 사람을 마주 할 때엔 일정부분의 혐오를 갖고 본다는 걸 알고있다. 그래서 저자가 깔아준 아포칼립스판이 무섭다. 상생보단 혐오와 배제의 비중이 커지는 인간으로 진화될게 빤해보이는 나도 어줍잖은 인간이니 머리는 그러지 말자고 하는데 의식과 상관없이 행동이 타인을 밀어내고 있을까봐 이런 세상이 제발 책 속에만 있어주길 바라게된다.

구구절절 늘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루하지 않으며, 등 뒤에 눈이 생기거나 목 언저리에 입이 생긴다 한들 묘사되는 것이 호러의 무게를 두지 않아 읽는 것에 눈살찌푸리게 만들지 않아 편히 볼 수 있는 단편집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이 소설 판권 누가 사서 영상 제작해줄지 무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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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레퓨테이션: 명예 1~2 세트 - 전2권
세라 본 지음, 신솔잎 옮김 / 미디어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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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판과 명성을 이야기하는 단어인 레퓨레이션. 세상에 훌륭하다고 인정되는 이름이나 자랑. 또는 그런 존엄이나 품위를 뜻하는 명예를 굳이 또 한번 언급하는 걸 보면 중의적인 무언가가 있음을 언급하는 듯 하다. 레퓨레이션을 사전으로 찾아보면 또 이러한 설명을 만날 수 있다.

사람들이 어떤 사람 또는 어떤 것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공통된 의견. 사람들이 어떤 사람 또는 어떤 것을 생각하는 방식.

평판과 명성이 누군가에겐 자신을 드러내는 가장 확실한 명함이 될 수도 있고, 또 타인들이그것으로 일면식도 없는 이를 이해할 수 있는 수단이 되어지기도 한다는 것. 자신이 원하는 명성은 어느정도이며, 타인들이 바라보는 방식은 선은 어디까지라 보아야 할지를 생각해보며 이 표지의 여성이 원하는 권위는 무엇일지를 생각해본다.


제법 현실적인 소재이며 한번쯤 생각해보았던 이야기들이다. 이러한 피햬는 저명인사들에게 국한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 SNS에만 올리고 팔로워 수가 얼마 되지 않더라도 여러 계정을 넘어가며 다다른 이에게 불쾌한 이미지나 메세지를 무차별적으로 전송하며 일면식 없는 이를 향한 날이 선 공격들. 생각보다 다양하고 두려운 방식의 혐오의 압박은 기본적인 삶의 평온까지 잃게 만든다. 이제 그 극한의 단계에 선 이 표지의 여성의 이야기를 들어볼까 한다.


시작은 '시체는 계단 가장 아래에 있었다.'로 시작한다. 이야기는 사건일 일어난 날을 먼저 언급한다. 앞서 말한 그 시체인 마이크(타블로이드지 기자),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여성 하원 의원인 엠마 웹스터. 그리고 그녀의 딸인 플로라와 전남편 데이비드, 데이비드의 새 아내 캐럴라인. 엠마의 지역구 주민이자 혐오의 액션을 서슴치 않는 백스터. 2권 후반에 나오는 엠마의 교수였던 마커스 제이미슨까지.

그녀는 왜 시체를 마주했던 것인지. 그리고 왜 그런 일이 그녀의 집 안에서 일어난 것인지를 이전의 이야기부터 날짜별로 각각의 인물들이 하는 이야기를 따라가기로 한다.


📖 P49_ 그런데 당신이 더 주목받게 되는 게 플로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지역 뉴스에 등장하는 거야 그렇다 쳐도 이렇게나? 잡지 표지 모델이라니? 스스로를 너무 표적으로 노출시키고 있는거 아닌가? 아이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거 아니야?

데이비드는 엠마의 유명세도 중요하지만 그 화살이 딸 플로라에게도 이어지지 않을까를 걱정한다. 리벤지 포르노라는 사건을 수면위로 끌어올려 이들을 지키는 법안을 추진하다보니 아무래도 반대 세력이나 그로 인해 처벌을 받게된 이들이 엠마와 엠마 주변을 노릴거라는 생각에 불편함을 드러낸다. 그렇다. 관심은 무조건적인 옹호와 함께 무조건적인 비난이 같이 오게된다. 때때로 비율만 달라질 뿐 이 양면적인 시선은 늘 공존하는 것이 문제이기에 그걸 모르지 않는 데이비드는 엠마에게 에두르지 않고 말하지만 그녀에겐 대수롭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인다.



📖 P88_ 유명해지는 일을 굳이 피하려 들지 않았고 자신의 대의에 도움이 된다면 어떠한 위험도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플로라는 엄마가 페미니스트의 이상을 옹호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플로라는 괜히 약 올리려고 자기가 안티페미니스트라고 떠들고 다니는 동급생 남자아이들 외에는, 실제로 안티페미니스트를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엄마가 수위를 조금 낮추길 바랐다. 엄마는 대중의 관심을 받는 것이 좋을지 몰라도 플로라 눈에도 TV에 나온 엄마는 짜릿한 흥분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것을 원치 않는 사람도 있었다. 모두가 남들과 다르길 원하는 건 아니었다. 열네 살 플로라는 남들과 조금고 다르고 싶지 않았다.

너무 다른 성햐의 엄마와 딸. 엠마는 자신의 딸이 언론에 드러나는 걸 바라지 않았지만 지역사회에서 그게 어디 쉬울까. 쟤는 하원 의원 딸이래. 쟤네 엄마가 가디언 표지에 나온 그 사람이잖아. 쟤네 엄마랑 쟤는 왜 저렇게 달라? 라는 식의 시선. 세상에 플로라는 없고, 엠마의 딸. 하원 의원의 딸이라는 닉네임만 붙게되며 시기와 질투를 넘어선 위험한 따돌림까지 받게된다. 그러니 자신을 드러내고픈 엄마와 자신을 군중속에 숨기고픈 딸의 상반된 입장을 보면 확실히 화려하게 비춰지는 삶의 이면에는 항상 그늘이 있고, 그 피해를 받는 사람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또래로 인한 따돌림. 플로라가 행한 정당치 못한 행위. 따돌림으로 인해 하게된 우발적 보복행위라고만 하며 죄가 없을음 주장 할 순 없다. 그간 이어진 악의적인 따돌림은 질타를 받아 마땅하고, 정확히 우발적이라고 해야 할지 플로라 내면의 의도적인 마음이 존재했다고 할지는 명확하게 언급되지는 않지만 그것은 범죄였다.

이제 플로라를 지키기 위한 엠마의 행동과 그 사건의 냄새를 맡은 기자 마이크. 사이의 이야기. 그리고 마이크가 왜 엠마의 집에서 죽음을 맞이 했는가를 따라가는 것이 진짜 이야기의 시작이다.




📖 P53_ 그렇게 해주는 것이,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든 표면적으로는 엠마의 무죄를 믿는 것이, 플로라와 엠마, 데이비드는 물론 캐럴라인인 자신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외도녀라는 딱지가 벨크로처럼 그녀에게 딱 붙어 떨어지지 않았고, 그녀는 그게 싫었으니까. 그녀는 엠마만큼이나 명예에 집착하는 사람이었다.

이야기는 엠마를 중심으로 돌아가지만 각각의 인물들은 자신의 명예에 집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게 어쩌면 인간의 진실된 내면일지도 모르겠다. 배려와 양보, 타협보다는 헌신의 마음을 더 크게 두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의 명예에 흠이 나는 걸 좋게 받아들일 순 없다. 이른바 내가 쌓아온 이미지는 나를 보여주는 가장 정확한 예시이며 나를 이루는 또 다른 자아이기 때문이다.

엠마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캐럴라인. 엠마가 안쓰러운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한켠에는 어떻게든 엠마가 별 탈 없이 이 사건을 빠져나와야만 그녀와 이어진 자신의 가족들이 무탈하고, 근심을 덜 수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자신을 위해서라도 엠마는 무죄를 받아야했다. 범죄자의 전남편과 딸을 가족으로 둔 사람으로 일컫어 질 순 없다. 지금도 그녀는 플로라를 가르쳤던 가정방문 강사였던 걸 떠올리면 그 어떤 좋은 닉네임은 없다. 거기에 재를 뿌리듯 범죄자인 전부인의 자리를 대신하는 사람이라는 단어까지 추가할 필료는 없다. 생각해보면 엠마보단 자신을 위해서 무조건적인 무죄입증에 힘을 싣어야하는 가장 절실한 사람이었다.


P244_ 이번 사건에 이르기까지 제가 경험해온 공포를, 그 어떤 여성도 경험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제가 온라인상의 글로, 문자로, 사무실로 발송되는 편지로 수많은 괴롭힘을 경험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마이크 스톡스의 신문사로부터 스토킹당하지 않았더라면, 그가 사망할 일도 없었을지 모릅니다.

일면식도 없는 이의 따가운 시선을 받는 다는 것은 물론 무조건적인 질타와 마녀사냥 식의 악의적인 태도. 스토킹과 협박. 꾸준한 범죄의 노출. 그건 유명하다고 감내해야하는 삶은 아니다. 염산테러가 일어날 수도 있으니 항상 세척을 위해 주변엘 물을 두어야 하는 삶이라면, 꾸준히 자신을 스토킹하듯 뒤를 밟아가며 사진을 찍고 협박하는 일상이 이어진다면 모두가 은둔하듯 살아야 될지도 모르겠다. 가장 기본적인 삶의 평온을 받납해야 한다면 그게 진짜 사는데에 목적을 두고 싶을까?

이야기는 으레 엠마의 손을 들어준다. 하지만 2022년 12월의 레이철 이야기를 보면 순간 욱하고 울컥하는 이야기를 마주한다. 마이크가 죽기 전 엠마와 나눴던 이야기와 그리고 그 이후 이야기를 통해 알게된 사진들. 한 사람을 향한 보이지 않는 시선과 흔적, 집착은 끝이 없음을 알려주며 씁쓸하게 끝이 난다.


역시나 법정 스릴러는 시간에 따라 더욱 고조되는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맛이 있다. 엠마가 숨겨온 진실. 진실속에 지키고싶었던 진짜 목적. '명예'가 우선이었던 엠마는 결국 삶의 모든 것이 '명예'의 범주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어느 하나 놓을 수 없었고 이러한 결과가 나타나 긴 법정싸움으로 갔던것으로 보여진다.

넷플릭스를 통화 영상화가 확정된 원작이니 시간에 따라 당당함과 두려움을 오고가는 그녀의 감정표현을 잘 해줄 배우의 케스팅이 가장 중요해보인다. 또 하나의 영상화 과정에서 주목하고픈 것은 엠마를 둘러싼 얼굴없는 SNS속 글의 주인들이다. 타인의 불행이나 고통에서 느끼는 기쁨. 타인의 고통과 절망이 누군가에게 기쁨이 된다면, 불행의 과정을 보는 것만으로 희열을 느끼는 샤덴프로이데에 빠진 이들. 그 단역들의 자극적인 영상이 이야말로 울화통을 유발하는 존재가 아닐지 생각해본다. 엠마의 재판과정을 보는 언론과 시민들. 그 군중속에 숨어있었을 엠마의 안티들의 표정에 주목하는 영상을 기대해본다.

📖 이 책은 창비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고 완독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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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월급사실주의 2023
김의경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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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과 열정만으로는 먹고살기 어려운 삶이다. 배움의 자세로 아주 낮은 보폭으로 기어가듯 진입하더라도 평생을 어찌 그러하겠는가.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힘들여 수고하고 애쓴 그 노고는 취해야 하지. 그거 나만 그리 생각하는거 아니지?

11명의 작가가 쓴 노동 사실주의 모음집. 책을 소개하는 글에는 창작의 규칙을 미리 명시해 두었다.

첫째, 평범한 사람들의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 문제의식을 지닐 것.

둘째, 최근 오 년이내의 시간대를 배경으로 할 것.

셋째, 직접 발품을 팔아 취재한 내용을 사실적으로 쓸 것.

이들은 비정규직, 자영업,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가사, 구직, 학습 등 우리 시대의 노동을 소재로 삼아 엮어둔 글이다.

성별과 연령을 막론했다. 학생의 신분이지만 취업을 목표로 삼는 실습생부터 삼각김밥 제조 공장에서 일하는 노인 여성 노동자까지 다양한 분야에 시선을 분산시켰다. 잘나고 모자랄 것 없는 이는 철저하게 배제하려 애 쓴 티가 난다. 드라마가 될 것 같지 않은 소소한 사건에도 그들의 삶에 큰 파도가 일렁일만한 때를 모두 배치해 두었다. 그럭저럭 살고싶은데 그마저도 안되는게 인생이라 말하고 싶은 듯 하다. 언론은 기술의 발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일자리가 생겨나고 소멸됨을 밝혀두지만 그건 그쪽 사정이고 먹고사는 가장 기본의 삶에 뒷받침을 해 주어야하는 인력은 늘 필요로하고 늘 부족하다. 화는 삭혀야 제 맛이고, 열정은 눌러 짓이겨야 제 겪이라는 느낌을 받지만 그런 것 밟히고 채이더라도 노고에 감사하다는 문구와 통장에 찍히는 숫자의 갯수, 손에 쥐어지는 지폐의 두툼함 이라면 두눈 꼭 감게되는 삶을 들여다 본다. 보기싫고 외면했던 그 장면을 글로 읽게되지만 아마 영상을 보듯 눈에 그려지는게 썩 즐겁진 않으리라는 걸 미리 말 해 두고 싶다.




📖순간접착제_ 그러니까 우리는 순간접착제 같은 거네요? 카페가 망하지 않게 최소한만 일을 시켜서 임시로 지탱하는 거잖아요.

이걸 아르바이트생 입장에서 봐야할까? 업주 입장에서 봐야할?. 애정이 과한것인지 매장에 대한 애사심이 높은 것인지 어느순간 점주보다 알바생이 더한 애정을 가지고 매장에 관여하는 느낌이 든다. 저자와 내가 생각하는 관점이 달라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렇게 최소한의 일을 시키며 근로 시간을 줄인다면 다른데를 알아보던가 맞지 않다고 여겨졌을 때엔 바로 관둔다는 의사를 표현하고 매듭짓는 편이 나은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데, 다들 나같은 생각을 가지고 일하는건 아님을 다시 느꼈다. 이렇게 서로 좋은 말이 오고가지 않는 느낌이고 운영이 시원찮아 질 즈음이라면 차라리 빨리 발을 빼는게 돈 떼임없이 내 몫 챙길 수 있는 마지노선이라 보였는데, 알바가 그 이상의 기대와 대우를 바랐던 건 아닌지를 고민해본다.


📖밤의 벤치_ 그만두겠다고 말한 뒤에야 경진은 차분히 자신이 했던 일을 돌아보았다. 잘 모르게 가 본 적이 없는 동네를 걸어다니며 학생들의 집을 방문했고 수업시간을 맞추기 위해 빠르게 걷거나 뛰었다. 교육에 대해 잘 모르면서 한글이나 수학을 가르쳤고 학습에 대한 상담도 했다. 새로운 수업을 권유했고 수업을 그만두겠다는, 돈이 아깝다는 얘기도 들었다. 선생님이지만 집까지 학습지를 배달하는 사람이었고 영업을 못해서 수업이 줄어들면 눈치가 보이고 월급이 줄었다. 보람과 모욕이 하나의 그릇 안에서 녹아내렸다.

의료,법학,교육과 같이 특정 분야가 아니고서야 전공을 살려 밥벌이를 하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큰 틀 안에서 본다면 같은 계열이라며 그 안에 세분화된 것에 따라 나누는 것인냥 말하는 대학 입학처장이 아니라면 다들 대학은 졸업장을 위한 것이고, 직장은 돈벌기 위해 적성을 맞춰가는 것이라 하지 않을까 싶어진다. 이미 전공과 관련 없는 서비스직 2년, 생산관리 2년, 사무직 11년을 다니고있는 적성은 알아서 맞춰가는 직장인 고인물로서 보람과 모욕은 결국 한 순간 찍혀지는 통장의 숫자로 보상되었고, 그 분노도 그날 밤 먹는 술 한잔에 같이 섞어 꿀떡 삼키게 되더라. 누가봐도 빤한 I의 성향인 사람이 사회생활을 위해 적극적인 E로 변하는 맞춤형 성격 개조도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되더라구. 보람있는 건 돈이 안 되고, 보람 없는건 통장에 쌓이는 걸 보면 입맛따라 맞춰가는 건 내 생에 글러 보임을 느낀다.


📖기초를 닦습니다_ 그래. 그러니까 받은 만큼만 일해.

어느새 자리잡은 내 직장인 생활의 모토. 받은 만큼 하자. 얇고 길게 가자. 흘러가는대로 살자. 하라면 하고, 까라면 까야지. 아니길 바랬으나 결국 똑같이 뿌옇고 흐린 눈빛의 사람으로 동화되는 인간을 마주하게 되었다.



📖간장에 독_ 인간의 생존 능력이란 참으로 징글징글하다. 그러니까 인류가 멸종되지 않은 거겠지,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심장이 떨리는 기분이 들었고, 간에서 뭔가 맺히는 기분이 들었고, 그것이 한 방울 스르르 미끄러지더니 그 아래 끝 간 데 없는 텅 빈 내장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저자는 이러한 상태를 기근으로 표현했다. 농번기 사회만큼의 기근은 아닌걸 안다. 그 시절에 비해 먹고 살만한 정도는 유지되나 이전의 삶 만큼은 안되기에 마음의 기근을 더한게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먹고 살 궁리를 할 때 솟아날 구멍은 있을거라 본다. 단지, 지금의 형태는 아닐게 뻔하다는 것. 지금의 안온함은 없을 것을 알기에 우린 언제 올지 모를 기근에 일정양의 불안감을 살며 딴주머니라도 차야하나 싶은 약은 속내를 품어본다.



📖섬광_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는 보통의 이야기죠. 그래도 그렇게까지 저급했다고는... ... 저는 희망을 가지라고 한 말인데, 선생님은 아니었나요?

... ... 아마도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런 마음일 거예요. 하지만 그런 말이 어쩌다 희망을 대표하는 말이 되었을까요?

누구에겐 희망을 주고픈 한마디였고, 받아들이는 또 다른 어떤 이에겐 가시처럼 삶을 더 후벼파는 한마디가 될 수 있다. 여기저기 입장을 다 고려하며 말을 해야 한다면 다들 벙어리가 되고 말겠지. 누가봐도 완벽한 성취를 이뤄낸 다음 뒤돌아보니 그건 희망이었다 느낄 수 있는 것은 현재의 처지가 더이상 암울하거나 나락끝에 서 있지 않기에 느끼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공수진이 말하듯 그 순간엔 그럴 수 있다. 당신이 생각하는 뜻이 아닐 수 있고, 내가 원하는 진심이 아닌 걸 알지만 뒷통수를 후려칠 번지수가 잘못 되었다는 것이다. 차반석이 아니라 자신의 뒷통수라도 갈겼어야하는게 맞다. 아닌거 알면서, 아닌게 뻔했음에도 다 그렇게 산다며 아이를 사지로 내몰았던 거니까.

나에게 희망을 주었다고, 타인에게도 동일한 반응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이 찍어낸 삶이 아니며 기본이 되어지는 여건 또한 너무 다른 경우의 수를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 모든 걸 아우르며 교사를 하기엔 벅차다는 걸 안지만 때때로 이러한 소식이 들려오면 일면식도 없는 아이에게 미안해지는 마음이다. 학교의 성취도를 위해 청춘을 받친 것. 의지와 상관 없이 학교의 성과 지표의 숫자와 맞바꾼 삶 같아 미안한 마음만 몰려온다.


어떤 글은 짠하고 어떤 글은 그럴수도 있다 싶어지며, 또 어떤 글은 과연 단편의 주인공의 삶에 정확히 들어간게 맞을까 싶어지는 것도 있다. 바꾸지 못하는 현실이 존재하는 것도 맞고, 유리천장이라고 불리우는 계급이 있는 것 또한 겪어봤기에 동의하는 마음이다. 그럼에도 삶의 현장에서 볼 땐 진짜 진심이 궁금해진다. 진짜 이러한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긴 할까 싶은 생각? 내 가게다 싶을 만큼 열정이 넘치는 알바생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기대한다는 것과 내가 알지 못하는 군무원의 세계. 이른바 그들이 사는 세상의 글은 현실처럼 느껴지기보단 넷플릭스 D.P의 한 파트를 옮겨 놓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취업률을 위해 제물이 된듯 사업장에서 마무리된 생명을 두고 서로 미루는 현장을 이야기 할 때엔 그들에게 노고라고 할 만큼의 수당이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를 고민해보며, 번역가든 건축소 소장이든, 군무원이든 그런거 말고, 우리가 신용카드 발급 받을 때 간단하게 분류하는 사무직의 이야기가 없는게 아쉬웠다. 일반 사무직만큼 할 말이 많고 여기저기 입대는 곳도 없는데 말이다. 어떻게든 특별한 케이스를 만들고자 애쓴 중복되지 않는 직군을 찾느라 노력한 모습이 역력했다.

장강명 저자를 제외하곤 익숙한 이름들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신선했고, 또 어찌보면 어떻게 하더라도 갈등을 유발시키기 위해 아귀가 잘 맞도록 짜여진 기승전결이 완벽한 상황극처럼 느껴졌다. 적어도 15년 이상 밥벌어먹고 살며 꼬박꼬박 월급 입금되는 맛에 사는 내가 느끼기엔 그러했다.

진짜 노동의 찐 현장을 맛보기에는 살짝 아쉽긴 하다. 사무실 고인물이자 여직원들 중 최고참에 해당하며 관리직들 중 딱 중간에 위치한 연령대가 되다보니 내 몫의 이야기는 아니구나 싶어진다. 현타가 오기 시작하는 1년을 넘겼고, 3년이 안되는 직장인들이 찾아보며 세상에 쉬운일은 없구나를 알려주며 어딜가나 이구역 미친자는 존재하며, 그러한 사람이 없는 곳이다 싶어하며 안도 할 즈음엔 본인이 이구역 도른자가 되어있을수도 있음을 항상 자각하며 살기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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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조금씩 자란다 - 살아갈 힘이 되어주는 사랑의 말들
김달님 지음 / 미디어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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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마음이 자라는 방향은 저자가 일을 하며 만나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2부 사랑할수록 더 선명해지는 이야기는 애틋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보낸 후 회상과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 순간을 버티게 해준 지인들을 보며 느끼는 감정들을 담고 있다.


가장 늦게 겪어봤으면 심은 감정이 상실이다. 그것도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아주 가까운 이와의 완전한 이별. 그 감정을 채 추스릴 겨를 도 없이 또한번 겪었을 저자의 마음.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먹이고 재우고 키워낸 당신들과의 작별 인사 후 살아가는 일상을 덤덤하게 적어두었다. 선한 사람 곁엔 결이 비슷한 이가 많다 하더니 저자를 다독이고 살펴주는 이의 마음들이 한결같이 곱다. 나도 어떤 이에게 이렇게 따수운 사람이 되어 본 적이 있는가 생각해보며 살아갈 힘을 얻게하는 그러한 문장을 품고사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만든다.


📖너에게 주고 싶은 것_ 당장 깨닫지 못해도 어른이 돼서 돌아봤을 때 자신이 많은 사랑과 보살핌을 받고 자랐다는 걸 떠올리기를 바라요. 그 사실이 아이들에게 계속해서 살아갈 힘이 되어준다면 너무 좋을 것 같습니다.

나는 1부의 이야기 중에는 '치에코 씨의 정성스러운 일일'과 '너에게 주고 싶은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저자의 직업 특성상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인터뷰하며 그들의 삶을 공식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이 부럽다. 마주앉아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말하는 동안 얼굴에 나타나는 표정도 읽을 수 있다는 것. 그렇게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의 다양한 결을 느낄 수 있던 순간이 부러워진다. 미처 알지 못했던 이의 선한 마음이나 애틋한 시선들을 들어보면 산다는 것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다. 이토록 무수한 마음들 덕분에 우리는 오늘 하루도 무탈하지 않았나싶어진다.

다들 처음 살아보는 삶이다. 전생이 있었는지 현생에는 알 길이 없다만 이번 생을 살면서 매 순간 겪게되는 선택과 시작들. 그 갈래에서 어찌 하면 더 괜찮은 삶을 살 수 있을지를 알려주고, 굳이 묻지 않더라도 넌지시 길을 터주는 사람들. 그러한 사람들의 무심한척 두는 다정함에 명치가 뜨듯해진다.



📖잘 살아가세요_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내가 어떤 삶들과 함께 살아가는지 구체적으로 감각하게 되는 순간이. 내가 모르는 인생이 이토록 많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찾아오던 놀라움과 부끄러움. 그와 동시에 또렷하게 생겨난 삶에 대한 애정과 의지가.

잡지 에디터로도 활동안 저자. 3년간 100명의 사람을 만나보면서 느꼈을 다양한 감정. 매일, 매주, 매달 똑같은 사람만 만나며 회사와 집만을 오가는 나에게는 저자의 삶이 연예인같이 느껴진다. 이러한 인터뷰가 아니라면 못 느껴봤을 삶. 드라마같고 영화같이 또다른 일상을 시작하는 느낌이겠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과 현재의 자신을 비교한다면 나는 내가 더 자랑스러워질까? 아니면 더 움츠려들고 부끄러워질까?

다들 이렇게나 열심히 살아가는데, 나만 나태지옥에 빠진건 아닌가 싶어하며 나도 잘 살아가도록 삶에 애정을 더 쏟아봐야 될 듯한 반성을 하게된다.



📖과일 던지는 아이_ 사는 동안 이런 일을 계속 겪게 되겠구나. 내가 가장 오래 본 얼굴들, 익숙한 이 삶들도 결국엔 떠나가겠구나.

... ...

무언가를 기억하는 일보다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게 자연스러운 나이였으니까. 하지만 너에게도 사라지지 않는 몇몇 기억이 있겠지. 그래서 그날 내게 물었던 게 아닐까.

장난스레 가는 것에는 순서가 없다고 말을 하며 투정을 부려보지만 가장 오래 본 얼굴을 가장 먼저 보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 그 상실감을 어찌 이겨내나 싶은 생각에 머리가 어질해진다. 운다고 해결 되는 것도 아니며, 그러지 않을 거라고 상황을 외면하는 것도 소용이 없는 이별이다. 그럼에도 매 구간마다 한번씩 겪어야 하는 것인데 어떻게 잘 버텨 낼 것인가를 저자의 방식으로 담담하게 일러준다.

매 순간마다 사랑하는 이와 했던 기억들이 떠오를 것이고, 잊혀지기보다 추억하기가 바쁜 상태로 과거의 함께 했던 그때와 지금의 이 순간을 비교하며 더 애틋하게 그리워 할 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 방식을 놓지 못하는 것은 계속 하다보면 언젠가는 이 쓸쓸함이 서서히 받아들여 질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리라. 그러니 저자가 말하는 필연적 쓸쓸함이 받아 들여 질 때까지 무수한 그리움으로 메꿔두기로 한다.




같은 관심사를 두고 모인 모임의 수장과 함께 티타임을 즐기는 듯한 글들이다. 저자가 살아오며 겪었던 일도 있고, 일하며 느낀 생각도 담겨있으며, 만약 그러한 상황이 닥쳤을 때 어찌 버텨내고 겪어 낼 것인가를 미리 해본 이의 생생한 후기같은 인생살이 가이드처럼 느껴진다. 팍팍한 날도 있지만 유순한 날도 있는 삶이니 오늘을 버티면 내일은 좀 나을거라고 덤덤히 일러주는 말에서 내일은 아마 오늘보다 더 괜찮을지도 모른다며 내 등짝을 유쾌하게 쳐주는 긍정가득한 이의 기운이 가득하다. 여기 담겨진 저자의 인연들을 통해 사는 방식을 배우고,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열어두다보면, 그리 살다보면 나도 조금씩 자라겠지.


📖창비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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