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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
문상훈 지음 / 위너스북 / 2024년 1월
평점 :
내가 아는 문상훈은 유튜버이기 전에 배우였다. 그것도 뒤늦게 D.P를 시청하며 김루리를 알았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통해 김정훈이라는 배역을 가진 이 사람이 이렇게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줄은 몰랐다. 유튜브의 빠더너스 구독자도 아니며 SNS를 팔로우 하지도 않은 팬도 아닌 일반인이 가진 시선으로 이 책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않을 것_ 기분도 남 눈치 보면서 들고 생각도 다른 사람 허락받고 한다니. 취향과 호오의 기준이 내게 없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정말 좋은 건지 자꾸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게 된다. 나는 뭐 하나 하려고 해도 늘 누가 옆에서 지켜봐 주어야 한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문득 외롭다.
어릴적 일기장 검사를 하던 시절. 그때엔 솔직한 내 감정보다는 타인이 내 감정을 읽고 판단하게 될 상황을 고려하여 적곤했다. 그 어린놈이 얼마나 잔망스러우면 그럴까 싶겠지만 정작 나는 그러한 시선보다는 내 솔직함을 들키는게 더 싫었을지도 모르겠다. 왜 이깟 감정으로 서운해하거나 슬퍼했는지, 왜 이게 너는 더 중요하다 여기는건지 반문하게될 어른의 질문에 논리정연하게 대답할 자신이 없어 모든게 다 좋고 행복하고 기쁘다고 적었던 듯 하다. 그러면 한없이 맑고 밝은 티없는 또래 아이처럼 보였을테니 말이다. 그렇게 자라온 어린이는 청년의 시절을 거쳐 성인으로 자라면서도 크게 바뀌지 못했다. 본성과 천성이 그러한것도 있겠다만 남 눈치 엄청 보며 둥글둥글 두루두루 다 좋은게 좋은거라고 사는 인간으로 물컹하게 살다보니 내 호감보다 타인의 호감을, 내 서운함보다는 타인의 서운함에 더 빨리 반응하게 되었다.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외로움의 감정을 가진 저자. 혼자서는 내 진짜 마음이 무엇인지 헷갈리는 독자. 잘 살려고 하다보니, 잘 해내려 하다보니, 결국 잘 살자고 하는 짓이 나를 지워낸 일 같아 마음이 아린다.
📖편지1_ 내가 아무리 너를 미워해봤자 밀어낼 수 없는 작은 방에 같이 지내는 기분이야. 그래서 이제 받아들여 보려고. 이제는 안 미워하겠다고 말 할 수는 없지만 노력해볼게. 적어도 너를 인정할게. 이 말을 하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내 모든 결핍들에게
편지의 시작은 서투른 짝사랑에 대한 뒤늦은 고백같다. 자주 만나진 못했으나 알고 지낸 사이. 하지만 한동안 안부를 묻지 않은듯한 어색한 인사. 그렇게 안부를 물으며 지난 시간들 속 미안함과 다시 되돌아 갈 수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가득 담겨있다. 보통 이러한 글은 이렇게 짝사랑이나 오랜 절친, 얄밉게 굴었던 지난날을 반성하며 다시금 잘 지내보자는 식의 화해의 의미가 담겨있다. 그게 당신을 향한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한 편지라는 것. 무시하고 얕잡아보았던 그리고 외면하며 미워하고팠던 결핍에 대한 것이라는 게, 결국 후회로 가득한 예전에 나에게 용서를 비는 느낌이다. 무시하고 지나가도 아무도 뭐라하지 않을 과거이지만 그 시절에게도 꼭 한번 미안하다 말하고 싶어하는 쭈뼛거림. 과연 이 사람에게 매순간 오롯이 감정이 쉬는 날이 있긴 할까 싶어진다.
📖ㅊㅊ_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말이 겸손의 너스레가 아니라 실제로도 그렇게 믿어서 실패할 때의 데미지가 작았으면 좋겠다. 성공이 어색하고 실패가 익숙하면 좋겠다. 시도해온 일들보다 도전해볼 다음 기회가 훨씬 더 많았으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그런 마음으로 열심히 살다가 내가 나이가 들어 더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는 때가 왔을 때 그 이유를 싱겁게 나이나 세월에서 찾이 않았으면 좋겠다. 더 이상 설레지 않는다는 것을 인생의 패배로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고 도전할 힘도 용기도 없는 것을 굴복으로는 더더욱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싱그러운 청춘이다. 삶을 놓고 볼 때 활기찬 것이 가장 빛나는 타이밍일 것이다. 헌데 우린 과연 그 맑고 청량했던 순간을 오롯이 즐기며 보냈던가? 지나고보니 그게 청춘이었고, 되돌려보니 대충 그 즈음이 청춘이었겠구나 짐작할 뿐이다. 진득한 울적함도 있었고, 앞날에 대한 고민도 깊었으며, 어떻게 살아야하나 막막함에 코앞이 어둑했는데 그 어둠에 익숙해 멀리 볼 생각조차 안했나보다. 이제와 생각하건데 대충 그즈음이 제일 화사했고 반짝였던 눈빛을 갖고 살았던 듯 하다.
글쎄, 나는 저자와 다른 생각을 하며 ㅊㅊ을 기대해본다. 성공이 어색하고 실패가 익숙하면 좋겠다 했지만 나는 달랐으면 싶다. 인생에서 ㅊㅊ이라 부를 만큼의 예쁜 날이 또 올지는 알 수 없다만 인생 2회차 ㅊㅊ 맞이를 할 적엔 지금 회차의 망설임과 주저함, 포기와 실패를 모른 채 온전히 기회와 행운, 행복과 환희만 얻어가는 회차이면 좋겠다. 그렇다면 분명 매 순간 설레고, 내일이 기다려지며 미래의 내가 더 기대가 될 테니 다음번엔 지금과 다른 ㅊㅊ을 살아보면 어떨까를 기대하게되다.
📖그 예쁜 모양의 돌들 때문에 이제는 죽는 것이 겁이 난다_ 좋았던 기억은 좋아서 동그랗고, 불행했던 기억은 자꾸 매만져서 동그래진 그 돌들. 원래 모양이 어땠는지 구분할 수 없다. 무엇을 두고 가고 무엇을 들고 갈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다 들고 가고 싶은데 내 힘으로 들 수 없을 만큼 많다. 그 기억을 하나라도 두고 가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죽기가 싫다.
마음이 둥글어 진다는 것. 뾰족하게 살다보니 어느순간 상대를 찌르는 만큼 나도 많이 찔려봤다는 것. 결국 시간이 지난 후엔 기억도 안 날 만큼 흔해빠진 찰나였을 뿐이라는 것. 다 지나고보니 내 삶을 송두리째 쥐고 흔들만한 대단한 사건이라 할 수도 없다는 것.
그러게. 그 때의 나는 그게 제일 힘든 순간이었는데, 살다보니 그것도 아니네. 이래서 알다가도 모를 생인가봐.
📖편지2_ 네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해. 너한테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네 이름 옆에 내 이름을 같이 적어내도 어색하지 않기를 기도도하고. 그것이 매일 나를 열심히 살아가게 해. 고마워.
어릴적의 나는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고싶었고, 현재의 나는 네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길 바라게된다. 비범하고 위대한 인물이 되고자했던 어릴적에 비해 지금은 말이지, 거창한 이름 석자보다 곁에 두고있으면 든든한 이름을 가진 그런 단단하고 묵직한 사람이길 바랄뿐이다. 그게 당신에게 필요한 '나'이길 바라면서 나에게도 항상 함께해줄 '나'였으면 싶은. 결국 모든 것들에게 유용하며 소중한 그런 '나'로 마침표를 찍길 바란다.
..... 바라는게 너무 많나? 이왕 바라는게 많은 거 욕심 더 부려보고 싶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동생, 누군가의 동료, 누군가의 친구. 그리고 '나'의 진짜 '나'로.
📖내가 짝사랑을 하는 동안에1_ 잠이 오지 않는 늦은 밤 침대에 누워 천장 벽지 무늬에 배어드는 너의 얼굴이 점점 또렷해질 때, 너의 행복을 소원으로 말하고 싶어서 소원을 빌 수 있는 보름달이 빨리 뜨길 바랄 때, 너와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 더 잘 살기로 다짐할 때 우리는 마주 보는 것보다 더 그 사람을 깊이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짝사랑하는 것들이 참 많다. 애정의 쌍방 과실로 이뤄진 나의 배우자 뿐만 아니라, 짝사랑하는 것들 생각해본다. 음.... 그것들을 나열해보니 말이다. 사랑의 깊이와 정도를 생각하면 나란히 두어도 차이가 날테니 배우자에 대한 마음도 일종의 짝사랑이라 봐도 무망하겠지? 과실상계를 따지지 않고 일단 내 마음이 가는 것들에 대해 논하자면 그 끝은 어떠한 경로를 통하든 같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나의 행복이 당신의 행복이었고, 당신의 기쁨을 보는 순간이 내 기쁨이었으니 사랑 바라고, 시작하며, 깊어지는 매 단계에서 새삼스레 짝사랑을 하고 있었다. 이정도 반하면 병이다 싶을 정도로 새롭고 또 뜻깊은 타이밍을 맞이한다. 그래서 배우는게 많아진다. 모르고 지나쳤을 찰나인데, 짝사랑이 불러 일으킨 예민함 덕에 나는 많이 얻어가는 짝사랑 이득형 인간이었다.
완독 후 느낀 감정은 20대의 내가 이병률작가의 끌림을 만났을 때와 비슷한 감정이라 말하고싶다. 생각이 많고 감정의 겹도 촘촘하기 이를데 없는 내 감정을 말하기에 딱 들어맞는 문장들 처럼 보여졌다. 20년 전의 청년이 '끌림'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의 책등이 닳도록 읽고 또 읽으며 손때가 가득 담긴, 책 모서리가 나풀거리는 것에 내 청춘을 대변했다면 지금의 20대는 아마 문상훈의 글로 위로받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하게된다.
남들이 보기에는 문상훈이라는 사람이 평범하고 흔한 이시대의 청년 같이 보일지라도 마음의 겹을 들춰보면 생각이 많고 고민도 많으며 자신에 대해선 한없이 엄격하고 생각보다 보여지는 시선에 매우 단호한 사람이 아닐까. 그렇지만 그렇게 심오하고 진지해서는 안 될거 같아 살풋 위트의 겹을 덮어놔 타인으로 하여금 부담없이 말을 걸 수 있도록 마주하는 곳에 낮은 둔턱을 둔 배려의 배려를 포개어 놓은 사람처럼 보였다.
다정했고, 상냥하며, 이를데 없이 선함이 뭍어난다. 그래서 나란히 있으면 나 역시도 상냥함에 물들어 선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글은 그의 진짜 일기이며 우리가 몰랐을 억겁의 밤 동안 스스로를 다그친 자책의 페이지라 얼마나 많은 설움과 꺽꺽거리는 울음이 있었을까 싶어지며 참 장하게 잘 큰 청년임을 알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