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의 언어 - 나의 모어와 바깥의 모국어를 잇는 순간들
유슬기(유손생) 지음 / 티라미수 더북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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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북펀딩에 참여한 도서이다. 에세이이자 자서전과도 같은 저자의 생생한 이야기. 그런데 저자의 생의 배경이 남다르다. 모두 겪어본 자의 이야기를 가장 먼저 듣는게 그들의 세상을 이해하기엔 가장 확실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책이 출간되도록 기대하며 펀딩하기도 했다.


나는 농인의 세계를 모른다. 접한 거라곤 EBS 채널이나 리퀘스트 채널을 통해 도움을 요한다는 것만 봐왔지, 그들의 일상이 담긴 것들은 청인이 직접적으로 느끼도록 공유되지 않았다. 그나마 학창시절에 반에 한명씩 보청기를 끼던 아이를 아는 정도? 그마저도 학교를 꾸준히 나오지도 않았고, 다른 아이들과 교류가 되지 못해 매번 학업을 다 마치지 못하고 전학가는 걸 봤던게 다였다. 그러니까 좀 더 정확하게 알고 싶었다. 틀린게 아니라 다른 삶인건데 제대로 알려고 한 적이 없었으니까. 이제서라도 알아놓고 실수없이 대하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먼저 시작해 본다.


📖통화버튼_ 할아버지가 가르쳐 준 전화 예절은 내가 청인의 세계에서 제대로 된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한 일종의 관문이었다. 나는 그런 배움이 암마 아빠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세상의 많은 일이 예의바른 전화 한 통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보다 농인과 청인의 세상은 많이 달랐다. 농인의 부모 손에서 자라지만, 청인의 조부모의 교육도 필요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더 엄했는지도 모르겠다. 행여나 실수하게 될 까봐, 배움의 공백이 티가 날 까봐. 익숙한 농인의 세상보다 더 오랜시간 공유하며 살아야하는 속칭 일반인의 시점에서의 세상이 먼저였던 것. 다행이 잘 따라와 준 저자였고, 기를 쓰고 잘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보였기에 할아버지 또한 뭐 하나라도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라 가늠 해 본다. 사사로운 통화예절이라도 처음부터 똑부러지게 가르쳐 놓고 싶은 마음. 어디가서 싫은소리 듣지 않도록 집 안에서부터 채비를 해 두고픈 거였겠지. 이게 할아버지가 갖고 계셨을 마음의 짐이기도 했을거라 간주 해 본다.

📖엄마의 성장통_ 세상과 연결되기 위해 글을 썼고 살기 위해 글을 배웠다. 엄마에게는 한국어는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기술이었다.

저자의 부모는 후천적이다. 하지만 너무 어릴 때 앓았기에 말과 글을 배우기 이전에 나타난 징후임을 감안하더라도 글은 낯설기만 하다. 또 다른 언어이며 표현 하지만 그 것이 다시 자신의 귀로 돌아오지 않는 외침 일 뿐이다. 그래서 어렵다. 할아버지가 마련 해 둔 엄마의 필살기. 무엇 하나라도 잘 해서 밥 벌어 먹고 사는데에 지장이 없도록 길을 터 주고팠을 피나는 노력. 이야기 후반에 보면 저자가 엄마에게 손편지를 요청하는 부분도 나온다. 모녀는 필담보다는 수화로 이야길 나눴다. 그렇지만 그건 허공에서 사라지는 흔적이었다. 그러니 저자는 더더욱 엄마의 기록을 남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반짝이는 능력과 표현이며 그간의 노력이 남들보다 곱절의 고단함도 담겨있을 거라는걸 알기에 엄마의 손글씨는 남달랐다.


📖손으로 말하는 사람들_ 수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지만 한국어를 쓰고 소리를 듣는다. 결국 나는 두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어딘가에서 홀로 서 있는 경계인이었다.

집 안에서는 손으로 말을 했고, 집 밖에서는 입으로 뱉어내는 단어들로 문장을 만들었다. 문장의 구조 또한 다르다. 존대의 의미 또한 다르며 구구절절한 설명이 짤막한 손짓으로 대변하기도 한다. 그래서 당황스럽다. 이 표현이 적절한지, 이 손짓이 의미에 부합하는지. 남들은 둘 중 하나만 해도 되는데 저자는 둘 다 해야 기본이 되는 삶 속에 끼여있다. 다들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지만 본인에겐 결코 당연하지 않는 수고로움인데 알아주지 않아 서운한 마음도 분명 들었을 것이다. 사춘기보다 더한 심리적 방황과 정체성에 대한 불안함에도 버텨내고 그 기간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던 것은 책임감으로 보여졌다. 자신은 농인 부모와 청인 세상을 연결 해 주는 매개체이며 자신이 무지의 영역으로 들어간다면 부모는 존재하나 유리 벽에 갖힌 고립 상태라는 인식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부모와 조부모가 완벽하게 소통하지 못하는 것을 어릴 적 부터 봐왔고, 그것이 완벽하게 이뤄지지 않는 것에서 오는 상대에 대한 답답함이 때로는 자기 혐오와 위축되는 마음까지 품고 있기에 내가 살아 내려면 내 주변을 둘러싼 여러 세상이 고립 되지 않도록 다 열어제끼는 역할이 필요했기에 이 마음을 오래 유지 할 겨를도 없어보였다. K-장녀의 스트레스와 책임감의 최상위 버전이라 봐야겠다. 이 마음 어찌 달래며 살았나 싶다. 암튼, 장해.


📖결혼식_ 신랑 측 손님들은 짝짝짝 박수를 쳤고 신부측 손님들은 반짝반짝 수어 박수를 쳤다. 두 박수가 식장을 가득 채웠다. 동규가 귓속말로 말했다. "별빛들이 박수를 치네."

배려와 이해 사이에서 가장 큰 환대를 받았을 거라 보여지는 박수세례. 어느 한 명 서운함 없도록 모두가 이 축하하는 자리에서 들고 즐길 수 있도록 애쓴 신부의 마음이 그대로 눈 앞에 그려지는 듯 했다. 나도 결혼식을 치뤄보지 않았던가. 그리고 결혼식을 준비하는 것을 직업으로 가져 본 이력이 있는 사람으로서 이 불안한 마음과 잘 해내고픈 욕심,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원없이 축하받고픈 기대감. 그에 앞서 농인 가족들과 지인들이 쭈뼛거리는 것 없이 함께 식의 진행을 이해하고 축하 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신부가 참으로 애 많이 썼구나를 생각하게했다. 이정도의 별빛들의 박수는 받을 만 했다. 글로만 봐도 울컥하는데, 저자가 이 날 결혼식 영상을 공개한다면 나는 아마 꺼이꺼이 울지도 몰라.

📖무례_ 가장 큰 바람은 아이가 그저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었지만, 세상이 말하는 건강은 장애가 없는 '정상'적인 아이였다.

무탈 한 것, 어느 누구와 비교하더라도 도드라지게 티나는 것 없이 무리에서 잘 적응 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 그게 그저 '건강'이 아니라 그저 '정상'이라는 숨은 뜻이 있음을 저자의 문장 해석으로 한번 더 실감하게 했다. 원해서 얻은 아픔도 없고, 누구의 원망으로 얻게되는 상태도 아닌데 가장 소박한 척 하는 가장 어려운 바람을 갖게 되곤 한다.


📖들을 수 있다는 건_ 들을 수 있다는 건 소리의 유무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일이다.

무음의 세계를 가늠 해 본다. 40년 가까이 소리가 일상인 삶으로 살다가 음소거가 된 상태의 삶.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부르는 애칭도 들을 수 없으며, 드라이브하며 듣는 차안 노래소리, 제일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 이모한테 달려오며 이름 불러주는 조카들의 까랑까랑한 외침까지. 어디 그 뿐일까 내가 당신을 부르는 과정, 나의 심경을 표현하는 문장이 사라 질 것이며, 다급한 일이 생겨 목 놓아 외치더라도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 것. 아이가 걸음마를 배우고 말을 익히듯 그렇게 다시금 시작되는 언어의 배움과 다른 표현법. 내가 여기 있다고, 나를 좀 알아봐 달라는 그러한 존재의 확인이며 인식방법이었다. 너무 당연하고 흔해서 익숙함에 등한시 했던 소통의 과정. 비록 음성으로 퍼지는 외침이 아니라 손 끝으로 번져나가는 울림도 있다는 것에 잊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 커진다.

저자는 경계인이라고 했다. 아이와 어른, 지인과 타인, 외부인과 내부자를 오가는, 잠깐이 아니라 한평생을 두 세계의 경계에서 살아가고있는 농인 사회의 청인 자식으로 사는 것. 수어와 한국어를 넘나들며 통역과 대변을 쉼없이 해온 사람. 모든게 가능한 만능인으로서의 자랑스러움보다 어느 곳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경계인이라며 스스로를 위축시켰다. 그건 겸손의 미덕으로 표현하는 낮춤이 아니라 그간 받아온 시선과 배려받지 못한 말들로 인해 설 자리를 확보 받지 못한 손님이 된 그간의 시간을 담아두었다.

집에서는 수어가 모어이고, 바깥에서는 한국어가 모국어인 일상. 각기 다른 언어는 각기 다른 생활 습관을 만들어냈고, 그 언어들 사이에서 자신이 표현하는 언어는 어디에도 닿지 않는 듯 아쉬워했지만 저자의 손 끝에서 피어난 단어들은 다른 이들을 살게 했다. 우리가 숨 쉬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듯 너무나 당연하게 살아내는 숨길 같은 것이라 너무 늦게 고마움을 표현했나보다. 멀찍이 바라보는 독자의 입장에서만 보아도 고마운데 저자를 통해 세상을 알게된 사람들은 얼마나 감사해 할까. 존재하는 것을 알아주고 외면받지 않도록 귀담아 듣고, 두손에 받아둔 문장 속에서 이러한 세상의 이야기들도 있다는 걸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라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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