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저씨가 진짜 괴물이다. 1935년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경기고 2학년(1952년)때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 서울대 화공과에 수석으로 입학해
서울대 화학과에 진학했으며 2학년때에는 노벨상을 받은 파인만의 논문에서 수학적 오류가 있음을 지적했다(...헉)
서울대학교 화공과에 재학 중 1954년 도미, 미국 마이애미대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3학년때는 대학원 박사과정까지 참여하는 수학 수업이 있었는데 너무 어려운 과목이어서 박사과정의 학생들도 줄줄히 포기하는 수업에서 이휘소 박사는 마지막까지 혼자 남아 수업을 마쳤다고 한다(사실 이쯤되면 위인전기식 과장법이 아닐까 싶지만서도). 이뿐만이 아니라 이휘소 박사는 이 당시 중국음식을 배달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를 했는데, 세계적인 수학자인 대학 교수는 "나는 이휘소 당신을 가르치기 위해 사력을 다해서 밤새워 공부했다".라고 했단다. 이휘소 박사는 어려운 수학이든 물리학이든 한번 본 것은 두번보지 않아도 되는 비상한 두뇌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1961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입자물리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시험 성적은 미국 최고의 점수인 평균 93점. 참고로 차점은 71점(...).
1961~1962년 프린스턴고급과학연구소 연구 후, 1963년 펜실베이니아대학교 교수가 되고, 1966년부터 미국 스토니브룩의 뉴욕주립대학교 교수로 있다가 1972년부터 페르미가속기연구소의 이론물리학 연구부장이 되고 시카고대학교 교수를 겸하였다.
1960년대부터 입자의 복합모형이 제창되어 수학의 리군이론이 많이 사용될 때 그 발전에 기여하였다. 1967년 이후에 와인버그와 A.살람이 입자물리학의 네 힘 중에서 특히 전자기력과 약한 상호작용을 통일하여 만든 전기약작용을 재규격화할 수 있다는 이론적 증명을 함으로써 입자물리학 발전에 획기적 공헌을 하였다.
특히 1970년대에는 네번째 쿼크인 참쿼크의 존재가 예견되었을 때 이와 관련된 이론적 연구업적은 잘 알려져 있다.
1974년에는 서울대학교에 대한 국제개발처(AID) 교육차관 타당성 조사단의 일원으로 일시 귀국하여 한국 물리학계에도 큰 자극을 주었다. 그러나 1977년 6월 16일 콜로라도주(州) 국립과학연구소의 초청강사로 가는 도중 의문의 자동차 사고로 42세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