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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포와 스탬프 1
하야미 라센진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밀리터리 오피스 코믹>이라는 (있을 수 없는) 장르로 분류되는 [대포와 스탬프]는 '제국'이라는 나라와 동맹 맺고 '공화국'(복장으로 보나 외모로 보나 터키)과 전쟁 중인 '대공국'(복장으로 보나 주인공 이름으로 보나 소련 계열)의 보급부대(아예 '병참군'이라는 독립 군종이다) 신임소위를 주인공으로 하여, 전방에서 싸우는 군대가 요구하는 물품을 어떻게든 보급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이다. 즉 주인공이 보급병. 서류를 너무나 사랑하며 단팥 모나카를 뜨거운 물에 넣어 만든 휴대용 단팥죽을 애용하는 이 신참 소위 아가씨는 적당적당한 게 싫어서 사관학교에 들어간 깍쟁이였는데...
그러나 병참군의 고참들은 입은 것이 군복일 뿐 배 나온 아저씨나 부상 입은 상이군인이라 체력이 바닥이고 군인정신이라고는 한 조각도 없다.

사실 갓 사관학교를 졸업한 주인공 본인도 테러리스트의 습격에 맞서 멋지게 총을 뽑아들고 방아쇠를 당겨 보지만, 안전장치 푸는 것을 깜빡했고 장전조차 빼놓은 상태. 이런 주인공 마르티나 M 마야코프스카야 소위의 적은 제국군이 아니라 꼬이고 꼬여 포탄을 달라는 부대에 보드카가 보내지곤 하는(이거 복선입니다) 보급상의 난맥과 군수물자를 횡령하는 높으신 분들일지니... 그리고 어느샌가 고참들에게 물든 그녀는 "전쟁은 서류로 하는 겁니다!" 라고 단언하며 서류를 조작하고 수송열차를 습격하고 예산을 강탈하여 어떻게든 보급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다.
...분명 시작할 때만 해도 관료주의라는 진흙을 책임회피라는 액체로 빚어 사관학교에 넣고 구운 빵 같던 깐깐한 신임 소위였던 마르티나의 대사는 주로 이런 것들이었다.
"제 관할이 아닙니다."
"전쟁은 서류로 하는 겁니다."
"여기에 싸인을. 분명히 나중에 문책이 있을 테니까요."
"문책감입니다!"
그야말로 듣기만 해도 화가 날 듯한, 초반에 출연한 단역의 말마따나 "우리 나라는 이놈들 때문에 전쟁에 질 거야." 싶은 캐릭터였지만 저 태도를 뒤집으면 '서류만 앞뒤가 맞으면 무엇이든 해도 된다.'라는 무시무시한 결론이 나오는지라 얼마 뒤에는 그 고참들이 사건에 휘말려 어떻게든 처리해야 할 상황에 빠지자 "소위님 방식으로 합시다."라고 말하는 지경이니, 이걸 입체적인 캐릭터라고 불러야 하려나?
안타깝게도 [군화와 전선]에 끼워두었던 칼럼 [나사의 속삭임] 같은 부록이 없다.(눈물)
여담: 아네티카 병장도 무척 매력적이다. 소수민족 출신으로, 서류가 난무하는 병참군 소속인데 글을 모르는 문맹. 난투극의 달인에 성적으로는 개방적이라 장교 클럽 밖에서 대기하게 되자 기왕이면 따뜻한 침대에서 대기하겠다며 지나가던 남자를 잡아 방으로 올라가는 캐릭터다. 이렇게 자유롭고 강한 여성이 취향이라 전작 [군화와 전선]의 악역 디타 베르타도 그런 장면이 꽤 매력적이었는데, 다음 권에서는 아네티카가 좀 비중이 높아졌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