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의 대가 Mr. Know 세계문학 18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김수진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신화 속의 영웅들은 늘 곧게 뻗은 검을 지니고 있다. 죽음을 넘어 곧게 뻗은 검은 명예의 상징이며, 명예를 아는 사나이들의 펜싱 라운드야말로 사나이들의 대화, 검에 의한 결투야말로 명예를 지키기 위한 신사들의 결투방식이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얼굴도 보이지 않는 거리에서 상대방을 쏘아 죽이는 피스톨이 일반화되고 점차 검에 의한 결투하는 것이 천박한 농담이 되어가는 시대에, 스스로를 구식이라 말하지만 명예와 전통을 고수하며 그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나가려 하는 노인이 있었다. 시대는 19세기, 혁명가와 반란자와 왕당파가 골목골목에서 서로 목소리를 높이는 변화의 시대에, 그는 모든 것의 주변인이라는 좁은 틈에 조심스레 몸을 얹고 그저 자신의 길을 걷는다. 그가 바라는 것은 명예도 부도 명성도 아닌, 자신의 소망 - ‘성배’라 이름붙이고 조심스레 보듬어 온, ‘완벽한 공격법’의 완성일 뿐이다. 총화기의 시대에 무의미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기에 그것은 마치 가장 완벽한 예술품을 빚어가는 장인의 손길을 닮아 있다.

그리고 19세기라는 시대에 검술을 익히고 능숙하게 사용하는 묘령의 미녀. 그녀가 흘려보대는 미묘한 기류는 진정으로 관능적이며 오묘했다. 성을 자유롭게, 까놓고 말해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현재의 기조에 비해서도 몇 배나 매혹적인 은은한 향기는 노검사 하이메 아스타를로아의 서투르고 은밀한 사랑과 함께 ‘성배’에 대한 검사=장인=예술가의 사랑과 소망을 현실화하여 느끼게 하여주는 듯했다. 익숙치 않은 펜싱 용어가 마치 시구처럼 드리워지는 낯선 문장 속에서 넘쳐흐르는 소망과 사랑은 아름답기조차 했다. 그 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사건들을 섬세하게 설명해가면서도 그런 시대에서 한 발 물러서 자신의 소망을 보듬어가는 노인의 모습은, 정치 스릴러라는 작품의 장르와 부조화의 조화를 이루며 나를 노검사의 심정 속으로 빨아들였다.

“명예를 아는 남자들의 대화는 사라지고 얼굴도 보이지 않는 거리에서 쏘아대는 피스톨의 소음과 뒷골목에서 휘둘러대는 주머니칼만이 남을 시대가 올 것입니다.”

하이메 아스타를로아의 대사는 서글프고 무력했다.

‘그러나 그런 시대가 온다 하더라도, 사랑에 배신당하고 사회는 변혁하고 시대는 흘러갈지라도 나는 ‘성배’를 받들지니.‘

그러나 하이메 아스타를로아의 마음은 곧고 굳건했다. 그리고 나는 그 마음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번역자분의 말마따나, 한동안 검술을 배우고자 하는 욕망에 발버둥치지나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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