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단편선 - MBC 느낌표 선정도서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인디북(인디아이) / 2003년 3월
평점 :
절판


내가 톨스토이를 처음 접한 것은 어릴 때-부모님이 사주신 60권짜리 [소년소녀 세계명작]인가 하는 전질을 통해서였다. 어린 시절 즐겁게 읽었던 이야기들을 다시 접하니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기도 하지만, 나름대로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흑설공주 이야기]나 [어른을 위한 그림동화] 같은 동화 때리기 혹은 깊이 파고들어보기와 같은 변형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이것들도 리뷰 한번 써야겠군). 톨스토이의 작품에 등장하는 성실하고 근면한 러시아의 농민들은 달리 해석할 여지 따위는 갖지도 않은 솔직하고 순수한 사람들이었다. 머리를 굴리고 돈을 모으는 것보다 그저 자신의 팔, 자신의 등으로 묵묵히 땅을 갈고 풀을 베는 농민들의 모습은 바보스럽지만, 톨스토이의 그 바보들에 대한 애정이 너무나 구수하게 배어 있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내용 하나하나가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공산주의를 찬양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로빈슨 크루소가 평화로운 섬에 상륙해 자연을 파괴하고 원주민을 노예로 삼아 착취하는 제국주의 찬양 소설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랄까(진짜?). 하지만 나는 이 작품들을 두고, 그런 거창하고 억지스러운 정치 논쟁보다 우리네 옛이야기와 같은 권선징악과 해피엔딩의 순수하고 소박한 민담이라고 생각한다. 부유한 자들, 권력을 쥔 자들에 대한 묘사는 증오라기보다는 해학적이며, 저항보다는 순응에 가깝다. 폭력과 투쟁으로 지배자들을 추방하는 것이 아닌 신의 도움과 자연의 섭리로 평화로운 삶을 이어나가는 그들의 모습 어디가 사회주의라는 것인가? 맞서 싸우기보다 그저 나누어 주고 열심히 일하며 신에게 기도하는 이 사람들은 현대에는 존재하지 않는 낙원, 유토피아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유토피아는 불평등한 계급구조가 있고, 굶주림이 있고, 가난이 있고, 병과 고통과 죽음이 있는 세계다. 그러나 순수하고 순수하고 순수한 사람들이 살고 있기에 이 세계는 행복하다.
어디선가 들은 말이지만, 러시아는 인종적으로 유럽보다는 아시아에 가깝다고 한다. 인종적으로도 그렇고 문화적으로도 강력한 공동체의식 같은 부분은 상당히 아시아스럽다나. 톨스토이의 작품에서 보이는 농민들의 모습은, 마치 수십 년 전 - 우리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 할아버지들의 모습과도 많이 닮아 있었다. 지금보다 덜 발전했고 덜 부유하고 덜 화려하지만, 더 행복했던 그 시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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