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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전기 2 - 작은 전쟁
모리오카 히로유키 지음, 박수정 옮김 / 이야기(자음과모음) / 2000년 5월
평점 :
절판
사실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과 만화, 소설로 오래도록 이어져가는 [성계의 전기] 시리즈의 초두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인기가 없었는지 출판사에 문제가 생겼는지 1부인 [성계의 전기] 소설판만 번역해서 내놓고 끊어버렸기에 그 뒤를 잇는 [성계의 문장], [성계의 단장], [성계의 전기 2]로 이어지는 전체를 출간하지 않아서 아쉽기는 하지만, [성계의 전기] 시리즈 전반에 이어지는 알콩달콩한(?) 분위기만은 충분히 맛볼 수 있다. 둘이 함께 우주장용 관에 들어가 우주로 발사되는 그 순간이야말로 필견.
일부에서는 '이완용 아들이 대일본제국 황녀님의 눈에 들어 출세하는 이야기'라고 비꼬기도 하지만 어차피 아브의 우주정복과 그에 저항하는 인류 제국과 인조생명체에 대한 자연인류의 인위적인 도태와 통상 우주와 이상 우주의 융합 등등보다는 "나의 사랑스런 전하."라는 한 마디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작품인 만큼 어디까지나 할리퀸으로 취급해야 한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그런 만큼 이 작품에서 시작되어 수십 년을(?) 이어가게 될 캐릭터들이야말로 진정 매력적이다. 수억(뻥) 신봉자들을 진감시킨 황녀 전하의 명대사, "라피르라고 부르도록!"은 가히 역사에 남을 명문장이라 하겠다. 최고위층의 소녀가 극단적인 계급적 사회 구조 하에서 느끼던 외로움과 함께 자기 자신과 동등한- 혹은 동등하려 하는 존재와의 접촉에서 얻어낸 기쁨을 단 한 문장에 압축하여 전달하며, 이 한 마디를 필두로 이어지는 닭살돋는 명대사들은 하나같이 흔들림따위 없는 올곧은 마음을 절절이 담고 있다(양다리 세다리 질척질척한 하렘물에 익숙한 감성에는 무척이나 신기하다). 사랑의 경쟁자도 장애물도 없이 함께 위험한 전장으로 뛰어들어 함께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두 사람, 그리고 때로는 그들과 전혀 무관하게, 로는 아주 가깝게 존재하는 모든 등장인물들의 감정의 흔들림이야말로 본 작품의 가장 중심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물론 다른 캐릭터들도 하나같이 매력적이다. 여왕님 계열은 별로 안 좋아하는 본인에게도 꽤나 강력하게 다가오는 스폴 제독이라던지(솔직히 이 분은 부관이 없으면 재미가 반으로 깎인다. 만담이 정말 재미있다), 서로가 자기만은 양식을 가지고 있다고 믿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보스의 쌍벽으로 이름 높은 쌍둥이 제독이라던지, 졸음과도 같은 평화를 지향하는 황제폐하라던지, 요즘 시종들이 밥을 잘 안 바쳐서 기분이 나빠져 있는 디아호라던지 등등 절대로 놓칠 수 없는 캐릭터들이다. 정말이지 주목할 가치가 있다. 슬프게도 번역판에서는 시리즈 특유의 장황한 수사법이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지금 막 캐낸 유물의 표면이 무뎌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느낌만은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아울러 [성계의 전기] 시리즈는 아주 재미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애니메니션화가 '아주' 잘 되어 있다는 것이다. 만들어진 시기가 시기인지라 그림체며 화질에는 심각한 문제가 크지만 단 하나, 클래식에 가까운 OST가 그야말로 예술. 전반에 깔리는 배경음악이 이토록 작품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지 가르쳐 준 물건이 바로 이것으로, 결국 [은하전기] 소설을 읽을 때면 CD로 [성계의 전기] OST를 틀어놓는 게 버릇이 되었을 정도다(또 웃기는 게, OST만 들어서는 별 의미가 없다. 어디까지나 '같이' 들어야 한다). [은하전기]를 읽겠다면 꼭 OST를 병행하기를 추천한다. 분위기에 알맞은 곡 찾기가 좀 어렵지만, 일단 익숙해지면 음악 없이 책을 읽지 못하는 묘한 병에 걸리게 된다.
바로 얼마 전에 일본에서 시리즈 4번째 작품인 [성계의 전기 2]가 출간되고, 동시에 애니메이션화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디지틀라이즈된 우주전투, 여전한 오케스트라급 클래식 OST, 그리고 1,240만 화소 기준의 라피르님을 뵐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