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은유 > 아이가 좋아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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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ㅣ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힘든 하루를 보냈다. 일 때문에 또는 지병때문에도 아닌 대화의 단절에서 오는 막막함으로, 그로인한 내 스스로 빠져드는 자괴감으로 인해 힘든 하루 였다.
이십대 시절에 난 카운셀러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직장안에서 동료들이나 친구들은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했다. 어릴적 아픔의 이야기에서부터 연애이야기 또는 곧 어떻게 될 것처럼 다급함을 보이며 힘들어 하는 이야기, 눈물을 흘리게끔 만드는 이야기, 좌절과 절망이 섞인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꿈에 관한 이야기 등등.... 사연 많은 이야기들을 나는 열심히 귀기울였다.
모모처럼 나 역시 똑똑하지도 현명하지도 지혜롭지도 않지만, 간혹 고개를 끄덕이면서 열심히 귀기울여주면 어느새 말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 스스로 답을 찾은 듯 빙그레 웃으며 자리를 뜨곤 했다. 뒷모습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나에게 말을 했던 사람의 편해진 마음을.....
이런 내가 결혼을 하고 두 사내녀석을 낳고 기르면서 뻑뻑해지기 시작했다.
상대방의 말을 들으려 하기 보담 내 이야기를 손짓 발짓 그리고 온갖 표정을 지으며 거기에다가 침 튀기면서 오버를 하는 모습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별것도 아닌일에 목숨을 걸고 있는 내 꼬라지를 뒤 돌아보면 창피하고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픈 심정이다.
모모에게 말을 하다 보면 수줍음이 많은 사람도 어느덧 거침이 없는 대담한 사람이 되었다. 내 인생을 실패했고 아무 의미도 없다. 나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다. 마치 망가진 냄비처럼 언제라도 다른 사람으로 대치될 수 있는 그저 그런 수백만명의 평범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에 불과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모모를 찾아와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그러면 그 사람은 말을 하는 중에 벌써 어느새 자기가 근본적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와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이 세상에서 소중한 존재다.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었다. 모모는 그렇게 귀기울여 들을 줄 알았다.
나도 모모처럼 상대방의 말에 진심으로 귀기울일 수 있을까? 그러기엔 너무 멀이 와 버렸나?
미하엘 엔데의 작품은 이번이 두번째이다. <자유의 감옥>이란 책을 읽으면서 시.공간을 넘나드는 상상력을 접해본 터라 모모와 회색 신사와의 시간을 갖고 싸우는 장면은 어색함이 없이, 고대로 감동이 전해졌다.
책을 덮고 만지작 거리고 있으니 일곱살인 첫째 녀석이 묻는다.
"엄마 책이 그렇게 좋아? 나도 그림 없고, 글자 많고, 두꺼운 책 사주세요."
가만히 아이의 얼굴을 쳐다 보다 "그래, 그럼 이 책을 갖을래? 모모란 여자아이와 거북이가 친구들을 위해서 시간을 훔치려는 회색 신사와 싸우는 거야..모모와 거북이가 이기자 친구들이 예전으로 돌아와서 행복하게 산다는 그런 내용이지...거기에다가 모모와 거북이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궁금하지? 어떻게 말을 하는지, 거북이는 말을 하진 못하지만 등에다가 글씨를 쓰는 거야..그러면서 이야기를 하는 거야...맘에 들어? "
그랬더니...함박 웃음과 개구쟁이의 특유의 웃음을 흘리면서 신기하다는 듯 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책을 소중히 아이에게 내밀었다.
녀석이 바로 책 첫장에다가 "2005. 8. 18. 효석이 책 엄마가 선물을 했어요 " 라고 써 놓는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둘째인 지웅이도 한몫을 거들며 "난~~~? " 이러는 통에
그림도 있고 내용도 좋은 그런 책을 고르다가 "우동 한 그릇 " 이란 책이 눈에 들어와 책을 내밀었더니
이녀석도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결국 잠자리에서 "우동 한 그릇 " 을 읽어 주느라 목이 아픈. 그런 하루가 되었다. 내가 아픈 것은 오전의 대화를 할 수 없었던 그 마음 아픔이 아닌 아이들 책 읽어주느라 목이 아픈 아픔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아마도 모모가 내 이야기를 열심히 귀기울였던 것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