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4 (양장) - 왕을 찾아헤매는 인간
이영도 지음 / 황금가지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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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씨름을 좋아하고, 피를 무서워하며, 도깨비불을 다루고, 잠과 장난과 해학을 사랑하는 종족. 우리 민화에 나오는 도깨비 그대로의 모습이다. 아울러 이들은 인간을 킴이라 부르는데, 이건 어디로 봐도 김서방 아닌가! 「눈물을 마시는 새」는 엘프와 드래곤 일색이던 한국 환상문학계에 한국적 세계관이라는 트렌드를 제시했다. 관직의 명칭, 계급의 명칭, 붓과 벼루, 신전과 신관 대신 사원과 승려, 사극 냄새가 나는 한국적 세계관이 아니라, 판타지풍으로 변화된 저쪽 분위기가 철철 흐르는 이쪽 세계관이랄까.
그리고 이 한국적인 북부에 모든 것이 확일화된 오로지 밀림과 녹음의 땅 키보렌이 침공해온다. 다양한 문화와 서로간의 차이를 없애고 심장을 제거해 감정을 살해한 괴물들. 이런 세계통합적인 문화공세에 질식사 직전인 한국 문화를 상징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일까? 그리고 그 북부를 횡횡하는 제왕병자들은 과연 우리 주변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그러고보면 신기하고 허황된 이야기에 매료되는 도깨비들의 특성은 상당히 우리들과 닮아있다. 그리고 그 도깨비가 영문모를 헛소리를 지껄이는 두억시니들에게 홀려버린 것을 생각해보라. 아무 의미없는 외침임이 분명한 두억시니들의 말에 매혹되어버린 도깨비들의 모습은 아무 의미없는 펄프픽션에 빠져드는 우리들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소설은 무너지다시피 한 현대 한국 환상소설계의 현실에 대한 울분의 토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존망의 위기에 처한 북부를 지켜낸 것은 최강의 파괴력을 지닌 도깨비도,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는 레콘도 아닌 나가를 먹고 사는 육식동물과 동족을 버린 나가라는 점에 주목해 보자. 북부는 결국 이들의 영도 하에 살아남고, 이기고, 더더욱 넓고 안전하고 풍요로운 삶의 터전을 얻을 수 있었다. 이것을 현실에 대입시켜 보면… 과연 이럴 수 있을까? 우리는 더욱 넓고 안전하고 풍요로운 문학세계를 얻을 수 있을까?
이대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면, 우리 앞에 사모 페이와 케이건 드라카가 나타날 날이 멀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수많은, 세상을 가득 메울 정도로 북적거리는 제왕병자들 사이에 파묻혀 있을 것이다. 그 속에서 그들을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독자인 우리들의 의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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