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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각시 서커스 37
후지타 카즈히로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마리오넷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성격상 구조적으로 복잡한 무기를 싫어하기 때문인데, 거기에 판타지 취향을 더해 자동인형들과 시로가네들이 목숨 걸고 싸우는 같은 세계관이지만 마리오넷을 쏙 빼 버린 동인물을 만든 일도 있었다. 하지만 [꼭두각시 서커스]는 그저 단순한 현대 액션물이 아니었기에 마리오넷을 제외해 버리자 후반부에 가서 작품 전체의 분위기에 걸맞은 흐름을 보이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그럴만큼 마리오넷들은 작품의 분위기와 주제를 기저에 깔고 있는 중요한 소도구였던 것이다. 마리오넷은 실로 조종되는 인형일 뿐 의지를 가진 캐릭터가 아니지만 그 마리오넷을 조종하는 시로가네들 역시 누군가의 실에 조종당하는 '인형을 다루는 인형'이라는 사실이야말로 작품 전반을 뒤덮은 강력한 아이러니이다. 이 아이러니를 벗어나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하는 질문에 답변하려는 것이 이 작품, [꼭두각시 서커스]의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되려 하는 자동인형들, 인간이기를 포기한 시로가네들, 인간이 되어가는 엘레오놀. 그리고 그들 가운데 서 있는 '인간' 마사루는 무척이나 강렬하면서도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싸움의 미끼이자 그릇으로 태어났지만 죽음과 고통을 뛰어넘어 각성한 '진짜 인간' 마사루는 "환한 웃음을 짓는 자"로서 뚜렷한 존재감을 갖는 것이다. "소년 소녀를 만나다 그리고 성장하다"라는 성장물의 왕도를 걸으면서도 '싱긋 웃을 수 있는' 불완전한 인간의 가능성과 위대함을 증명하는 존재로서 마사루는 주인공으로 부족함이 없다(그런 의미에서 조금 성장하나 싶다가 완전히 맛이 간 가토가 어떻게 재기할지도 꽤 기대되는 장면이다).
이렇게 작품 기저에 깔려 있는 기본 사상은 확실하고 단호하며 그것을 표현하는 그림체도 거칠긴 하지만 균형잡혀 있는데, 스토리 전개가 조금 부실하다. 암살자-조나하병-한밤중의 서커스-옛이야기-뒤통수때리기로 이어지는 전개에 복선이 없어서(진짜로 없다) '일단 연재 시작한 다음 허겁지겁 끼워맞춘 거 아냐?' 라는 진부한 의문을 떠올리게 만들며, '게임'이라는 한 마디로 설명하기에는 악의 대마왕도 뭔가 행동이 어설프고 억지스럽다. 거기다 마사루가 간신히 읏샤읏샤해서 하렘삘나는 흐뭇므흣한 장면을 연출할까말까하는 순간에 '질러' 버리는 짓거리도 상당히 쇼크였다(나름대로 괜찮은 연출이기는 했지만). 그러면서도 군더더기없이 사건사건을 제대로 끊어내고 접합하는 이야기 솜씨는 높이 살 만하다고 하겠다. 40권 가까이 되는 긴 작품이면서도 한번 잡으면 그 길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정신없이 읽어버릴만큼 밀도가 높은 작품인 것이다.
이제 벌어지는 최후의 싸움. 이 싸움은 지금까지의 '인간이 되고자 하는 자들의 싸움'이 아닌 '인간을 포기한 자'와 '진짜 인간' 사이의 싸움이다. 과연 어떤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줄 것인가. 마사루가 '진짜 인간'으로 각성하였으며 자동인형과 시로가네-0들은 인간따위 끝장내 버리려는 시점, 스스로는 느끼고 있지 못하면서도 점차 인간의 영혼을 드러내보이는 엘레오놀과 제대로 맛이 가 있는 가토의 역할이 중요한 시점이다. 과연 그들은 어떻게 깨어날까.
그건 그렇고 바이 진이란 놈 참 징하다. 결국은 짝사랑 타령에 세상 말아먹은 거 아냐. 사랑타령으로 세상 말아먹은 살라딘-셰라자드 커플도 있지만 이 놈들은 '염장 파워!'인 만큼 '짝사랑 폭주'인 바이 진과는 그 질을 달리한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