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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1 - 군사 역사편
스티븐 앰브로스 외 지음, 이종인 옮김 / 세종연구원 / 2003년 3월
평점 :
절판
역사에 만약은 없다- 는 말은 이제는 진부하다. 가정을 해 봐야 역사가 바뀌지는 않는다(바꾸려고 하는 인간들도 있기는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가장 완벽하며 또한 드라마틱한 창작물'인 현실의 역사에 간섭하고 가정하고 진행시킨다는 것은 비록 널리 퍼지지는 못했지만 매력적인 지적 유희의 하나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단순히 과거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역사학적인 발상 뿐만 아니라 사회학, 공학, 인류학, 인류가 쌓아올린 거의 모든 지식을 동원하고 수없이 많은 가정을 상정해 가장 합리적인 전개를 뽑아냄으로써 그 누가 보더라도 인정할 법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그저 이야기꾼의 재주가 아닌 인류의 지혜를 총동원한 지적 유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불행히도 최근 유행하는 대체역사물의 대부분은 역사의 이름을 덧씌운 판타지로 상상력 내지는 망상의 영역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대체역사를 즐기기는 쉽지 않은데, 시선을 조금 과거로 돌리려보니 이런 작품이 있었다!
아무래도 서양 역사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조금 낯설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지만 '단 한 가지에만 변화를 주고' '가장 합리적인 역사의 진행을 따른다'는 대체역사의 규칙을 확실히 지킨 새로운 역사들의 집합이기에, 대체역사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괜찮은 길잡이가 될 듯도 싶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은 예수' 였다. 본디오 빌라도(실존인물임)가 유대 랍비들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로마 법 그대로 집행하였더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못박을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기초로 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30세 이후 단 몇 년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그 분이 수십 년을 더 살며 인류에게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더라면 세상이 조금 더 살만해지지 않았을까? 사실 '카이사르의 것을 카이사르에게 바치고 신의 것을 신에게 바쳐라'는 말은 '세금 잘 내고 헌금도 잘 내라' 로 번역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로마의 지도자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두 손 들어 환영하였으리라는 가능성은 충분하다!("다른 민족들도 이런 스승을 가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역대 교황들이 대대로 '황제의 것도 신에게' 라고 말했던 사실 역시 특기할 만하다.
역사에 가정은 유의미하다. 재미있거든. 그치만 대체역사라면 대체역사라고 말을 해 달라. 진짜 역사인 척 하면 곤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