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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 노트 Death Note 1~5 세트
오바 츠구미 지음, 오바타 다케시 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04년 10월
평점 :
품절
젠장, 한 방 먹었다. 이 만화는 추리물이 아니라 대전물이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분명 바둑 만화였던 [고스트 바둑왕]이 후반에서는 결국 바둑을 매개체로 한 히카루와 아키라의 대전물 혹은 무협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 주목할 만 하다.
추리물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나중에 독자들에게서 '이건 불공평하잖아!' 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한 가이드라인 같은 것인데, 몇 가지만 들자면 '초자연적인 능력을 사용해서는 안된다', '독자가 모르는 것을 탐정이 알고 있어서는 안된다', '아무런 복선 없이 비밀통로나 장치가 등장해서는 안된다' 등등으로 이어진다. 그게 아니라도 애초에 추리물이란 독자가 탐정이 되어 범인과 두뇌싸움을 즐기기 위한 것, 따라서 '작가와' 두뇌싸움을 즐겨야 하는 [데스노트]는 절대 추리물이 아니다. 오컬트 판타지다! 아울러 악당이 주인공인 피카레스크 로망. 그렇다면 [데스노트]의 줄거리 요약은 [세계정복을 꿈꾸는 천재소년 라이토가 작전을 개시했다가 지력, 정치력, 자금력, 보안유지, 군사력 등에서 막강하게 강력한 세계의 왕 L과 정면출돌해 오컬트의 힘으로 간신히 버텨내는 이야기]가 되어야 정상이다!(단언) 그런 면에서 본다면 라이토의 매력은 깔끔한 외모에 더해 사람 죽이는 것쯤은 우습게 여기는 정신구조에서 오는 불균형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강렬한 매력을 느끼는 '미형 악역'의 극단형이랄까. 이런 식으로 작가의 편애를 받는 캐릭터라면 과격함은 행동력으로, 소심함은 신중함으로, 잔인함은 결단력으로 비치게 마련이다.
한데 여기서 생각해볼만한 점이 있다. 라이토가 이런 꽃미남이 아니라 배나오고 얼굴삭고 안경쓰고 우울하고 암울한, 즉 '추한' 왕따나 악당이고 L은 지금같은 폐인이 아니라 정의감과 자부심에 빛나는 주인공급 히어로였다면 과연 독자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뭐긴 뭐야 '세계정복을 노리는 악의 대마왕 라이토를 무찌르는 정의의 용사 L' 스토리로 가는거지. 이러한 점에서 미루어 볼 때, [데스노트]는 라이토와 L이라는 두 명의 강렬한 캐릭터를 상정한 뒤 서로의 대결을 즐기는, 캐릭터성이 짙은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라이토와 L 두 사람의 외적, 내적인 차이점과 공통점이다. [고스트 바둑왕]을 그리며 잔뜩 물이 오른 그림체로 완성된 깔끔한, 온실속의 우등생으로 보이는 라이토의 외모 밑에 감추어진 '악'의 기운(아주 가끔 보이는 '썩은 미소'로 대표된다)-빛과 어둠의 불균형에서 기인하는 불안정한 매력은 동시에 '세상을 등진 천재'를 상징하면서도 그 안에 정의감과 자부심을 한껏 담아 행동 하나하나로 내보이는 L의 어둠과 빛의 불균형과 대비되어 더더욱 강렬하게 드러난다. 어둠으로 인해 빛이 밝아지고 빛으로 인해 어둠이 깊어가듯이 이 두 사람의 내면과 외면은 자기 자신 안에서 서로 대비되는 것과 동시에 외모 면에서 서로 대비되고, 내적 측면에서 서로 대비된다. 단순히 예쁜 캐릭터, 사악한 캐릭터, 정의로운 캐릭터가 아니라 이런 함축적이면서도 복합적인 캐릭터를 설계해낸 작가의 실력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