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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나라 탐험 - 쥘 베른 컬렉션 08 ㅣ 쥘 베른 걸작선 (쥘 베른 컬렉션) 6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나에게는 묘한 징크스가 있다. 전질 중에 한 권을 무작위로 뽑아 읽었더니 그게 무척 재미있어서 그 전질을 몽땅 구매하고 보면 처음 뽑아본 한 권이 최고였다는 묘한(치명적인?) 녀석이다. 그 징크스가 발동해 버렸다. [지구에서 달까지]가 그토록 사람을 빨아들였던 데 비해, [달나라 탐험]은 전반적으로 2% 부족한 느낌이다. 2% 부족한 게 198%쯤 되니 별 문제는 없지만.
쥘 베른의 작품은 공통적으로 과학소설임과 동시에 소년소설이며 모험소설이다. 그런 면에서 [달나라 탐험]은 모험소설적인 분위기가 상당히 약하다. 주특기의 절반을 봉쇄당한 꼴이니 2% 부족한 것도 당연하지 않은가. 전편 [지구에서 달까지]가 다른 천체까지 떠나는 방법을 논파하였다면 그 후속작인 [달나라 탐험]은 비극으로 끝나버린 전편을 수습하기 위해(소년소녀 모험소설에서 주인공들을 저 꼴로 만들어버리고 끝낼 수는 없지 않은가), 미카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 스페이스 오페라 버전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과학소설을 쓰기 위해 발버둥친 것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지구 속 여행]이나 [해저 2만리]와 같이 쥘 베른은 사람이 직접 가 본 적 없는 곳을 여행할지라도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가장 가능성 있는 이론을 설명하며 판타지스러운 이야기 전개를 극도로 자제하는 경향이 있는데, [달나라 탐험]에서도 그런 경향, 혹은 지론을 지키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깊게 보인다. 정말로 포탄이 달에 명중하는 순간 역추진 대포를 발사해 착륙한 뒤 '공기와 물이 남아있는' 저지대에서 기술과 작물을 퍼트리고 프랑스와 미국의 깃발을 꽂는 스토리로 갔다가는 정말 겉잡을 수 없게 될 테니까. 그러고보니 이건 정말로 뮨히하우젠 남작([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이군.
그런 면에서 달을 한 바퀴 돌아(이것만 해도 충분히 판타지스럽지만) 지구로 돌아오는 이 짧으면서도 긴 여정은 조금씩 다가오는 달에 대한 신비와 지식을 전달하는 데 있어 쥘 베른이 양보할 수 있는 최대한의 타협 아니었을까. 그의 상상력을 120% 발휘하여 더듬어갔을 것이 분명한 포탄 속에서의 우주 여행에서도 주목할만한 부분은 많이 있다. 물론 이 부분에 한해서만은 과학적으로 볼 때 '딴지를 걸 곳이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딴지를 걸어야 할 지 망설여지는' 수준이지만, 그것은 19세기의 지식인이었던 쥘 베른의 인간적인 한계인 부분이고, 그 한계 속에서 최대한 합리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는 것이야말로 [달나라 탐험]이 충분히 갖지 못한 모험소설의 분위기를 부족하게나마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무중력 공역에서의 '두 미국인과 한 프랑스인의 승천' 이라거나 산소 과다 상태에서의 난장판 파티 등은 모험이란 것이 있을 수 없는 (단순히 포탄에 실려서 날아가는, 굳이 말하자면 중간 여정 부분이니까) 책 속에서도 단순히 무미건조한 정보의 전달이 아닌 '실제로 겪어 보이는 듯한 (공상과학소설 최대의 장점이 아니던가!)' 우주 여행과 달 관측의 분위기를 살리는 데 무리가 없다.
그리고 저 쾌적한 우주 여행을 바라보며 100년 뒤 달로 간 아폴로 우주선의 파일럿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100년 전 소설속의 주인공들이 고급 호텔 수준으로 꾸며놓은 '객차' 에 앉아 덜 익어서 피가 불그레한 스테이크와 날것보다 더 싱싱한 야채 샐러드, 최고급 꼬냑, 러시아 황제가 선물한 홍차를 즐기며 달로 날아가고 있을 때 아폴로의 승무원들은 숨쉬기도 어려울만큼 좁은 깡통에 갇혀 무미무취한 치약형 고농축 영양소 덩어리를 뱃속에 쟁여넣으며(먹는 게 아니다!) 달을 향해 처박혀지고 있었다. 아직도 쥘 베른의 상상을 구현하기엔 멀었다는 뜻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