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과학, 그 야합의 역사
어니스트 볼크먼 지음, 석기용 옮김 / 이마고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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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공학도이자 밀리터리 마니아인 몸으로서 전쟁과 과학이 관계가 깊다는 말을 들으면 저렇게 생각해버리게 된다만, 체계적으로 정리된 자료를 살펴보니 이건 거의 경악해야 할 수준이다. 2차대전으로 인해 과학이 거의 세기 단위로 발전했다는 것이야 아주우우우 잘 알고 있었다. 단적인 예로, 1939년에만 해도 각국의 주력 전투기가 복엽기였는데 전쟁 끝날 때쯤엔 제트전투기가 날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은 그런 나에게도 상당히 타격이 컸다. 이 책 대로라면 전쟁 때문에 발달하지 않는 과학분야가 거의 없고, 전쟁에 기여하지 않은 과학분야 역시 아예 없다는 것 아닌가.
나는 공학도이자 밀리터리 마니아이며, 군사기술 분야가 주 관심사인데다 장래 희망이 ADD인 인간이다. 그런 만큼 군사공학, 국방과학이 과학의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고 자부심을 느낌다면 모를까, 굳이 슬퍼할 일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1945년 히로시마에 떨어진 핵폭탄 한 방으로 10만명이 죽고 10만명이 고통받았다는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이미 영국군은 1천기의 폭격기를 동원해 드레스덴을 아예 '지워버린' 전적이 있고, 훨씬 덜 발달한 군사과학기술 - 칼 한 자루 가지고 '발목에 핏물이 찰랑거릴 때까지' 이교도들을 주님 앞으로 보낸 십자군들이나 돌맹이 일격으로 전세계 인구의 25%를 격감시킨 카인에 대해서 진지하게 토론할 용의가 있다. 그와 함께 군사과학기술 연구를 거의 외면하다시피 했던 조선이 어떤 꼴이 되었는지 역시.
그러나, 책 후반으로 가면 이야기가 조금 틀려진다. 전쟁은 이쪽 정치집단의 의지를 저쪽 정치집단에게 강요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이고, 군인의 임무가 민간인 대신 죽는 것이라고 할 때(죽이는 게 아니다!), 민간인을 죽음으로 끌어넣는 행동은 비도덕적일 뿐 아니라 정치적 수단으로서의 가치를 떨어트리는 무익한 행위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군사기술연구 역시 도덕적인 틀을 갖출 필요가 있다. 도덕성을 버린 연구는 도덕성을 버린 전쟁과 마찬가지로 위험할 뿐만 아니라 무익하고 또한 해로운 것이다. 도덕의 정신적이고 사회적인 면을 떠나, 도덕을 포기한 연구는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손해로 돌아오며, 또한 손해로 돌아와야만 한다. 전쟁의 와중과 그 뒤를 이은 냉전기를 통틀어 휭횡한 '비도덕적인 연구'가 지금에 와서 재평가되고 비판받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인류가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국방과학도다. 조국을 위해 사람을 죽일 방법을 연구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비록 살인의 방법일지라도 도덕과 이상을 짊어지고 절제되어 수행될 수 있기를. 그것이 나의 의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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