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르츠 바스켓 15
타카야 나츠키 지음, 정은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성에게 안기면 동물이 되는 소마 가의 사람들. 상당히 당황스런 설정이지만 확실히 임팩트가 있다. 이건 뭐 카운셀링을 받고 어쩌고 할 문제가 아니다. 이 사람들은 그냥 괴물이다. 그리고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것은 바로 자신들. 당연히 비틀어지고 흔들리고 흐트러지고 망가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자신이 자신에게 가하는 혐오와 배척만으로도 무겁고 무거운데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일족의 눈은 혐오건 동정이건 고통을 몇 배나 덧씌운다. 심지어는 부모마저도 괴물을 낳았다며 히스테리를 일으켜버리는 판국. 결국 그들은 자신을 감쌀 수밖에 없다.

우등생의 딱딱한 껍질로,
불량배의 고슴도치같은 가시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애벌레의 고치로,
심지어는 폭군의 갑옷으로 자신을 지키는 수밖에.

그런 그들에게 태양이 나타난다.
순진하고, 솔직하고, 기꺼이 손해 보고, 억지로라도 환하게 웃는, 그런 바보스러운 태양.
한없는 믿음과 신뢰, 그러나 맹목적인 것이 아닌 의심과 거부감을 뛰어넘은ㅡ 마치 신의 것과도 같은 긍휼.
비록 아무것도 해주지 못할지라도 함께 웃는 여자. 먼저 울어주는 친구. 대신 아파하는 바보.

이쯤 되면 다른 단점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이상하다. 수상하다. 믿을 수 없다. 속임수다. 상처받기 싫다. 뜨겁다. 뜨겁다. 뜨겁다. 그러나 어느 틈에 껍질은 벗어지고, 그녀가 있는 이상 다시는 껍질로 자신을 감쌀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따스한 햇님에 의해 외투를 벗은 여행자처럼. 짐승으로 변해야만 꼭 괴물이랴. 자신의 아픔과 약점을 단단한 껍질로 감춘 사람들은 많고도 많다. 드러내고 싶지 않은 비밀 하나 없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러기에 사람들은 단단하게 자신을 감추고, 그러기에 껍질과 가시가 부딪쳐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이겠지. 이제는 답답하다. 껍질을 벗고 싶다. 이런 태양이 단 하나만 내 곁에 있더라면 이 무거운 갑옷을 훨훨 던져버릴 텐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