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소녀와 죽고 싶은 광대 - Extreme Novel
노무라 미즈키 지음, 최고은 옮김, 타케오카 미호 그림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두 살 때부터 책을 읽어달라고 부모님들을 조르다가, 결국 지쳐버리신 부모님께서 한글을 가르치셨다는 전설을 지니고 있는지라 나는 꽤 책을 좋아하고, 읽었고, 사랑하고, 많은 것을 안다- 라고 생각해 왔지만, 과연 정말로 그런지 때로 의심스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의심은, 이런 책을 읽을 때면 아프게 가슴을 찔러오곤 한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은 중학생 시절부터 시작해서 대학교 교양수업까지 몇 번을 읽으려고 했음에도 결국 읽지 못하고 포기했던 책이다. '사양'은 어찌어찌 읽었지만,
...무엇을 숨기랴 리포트를 써야 했기 때문이었다.
읽다가 포기한 '인간실격'과 읽다가 무너져버린 '사양', 이 2연타에 의해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선은 나에게 접근금지, 관찰금지, 촉수엄금의 위험물이었다. 그리고 어느 때부터인가는 그런 '난해한' 책을 읽는다는 사치와 허영조차도 멀리 던져버리고 30분이면 한 권을 처리할 수 있는, 문학소녀 식으로 말하자면 그냥 달기만 한 패스트푸드급의 가벼운 글 혹은 만화에만 매달리게 된, 과연 문학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식생활을 해 온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 문학소녀 시리즈는 참으로 사람을 부끄럽게 한다. 작중에서 인용한 '인간실격'의 한 문단처럼 내가 부끄러운 삶을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내가 어긋나 있다고 느끼게 한다. 가슴이- 아프게 한다. 책을 먹어버릴 정도로 깊이 사랑하는 '요괴'와 과거에는 '신비에 감싸인 공주님'이었던 평범한 소년(16세, 자산 수억엔, 문학부 소속)이 나누는 만담과 이야기의 클라이막스에서마다 '먹어버릴만큼 사랑하는' 마음이 폭주하는 문학강연회는 정말로 '문학소녀' 아마노 토오코, 그리고 작가 노무라 미즈키가 문학을- 책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다. 결코 '수험생을 위한 다자이 오사무 작품선' 같은 책을 옆에 펴 놓고 쓴 글이 아니다. 책을 좋아하는 어린아이가 책을 좋아하는 어른이 되어,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남들에게 소개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가득한 글이다.
달려라 메로스, 새순 돋는 벚나무와 마적, 눈 내리는 밤의 이야기, 피부와 마음, 로망 등롱, 여학생, 수치, 굿 바이, 멋쟁이 동자, 여시아문, 축견담, 화폐, 오토기조우시, 딱딱산, 황금풍경...
아마노 토오코가, 작가 노무라 미즈키가 소개한 다자이 오사무의 다른 글들이다. 도저히 구제할 길 없는 우울한 작품도 썼고, '인간실격'을 쓴 뒤에는 자살해버렸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다자이 오사무는 [수줍음 많은 다정한 사람들]을 수없이 그려냈고 슬프지만 가슴이 죄어들듯이 아름다운 글을 썼다. 이 숨가쁘게 토해내는 기나긴 문장이 이 책의 핵심인 것 아닐까. 어쩌면 우리와 - 나와 - 마찬가지로 '인간실격'과 '사양'만을 알고 있을 일본의. 한국의,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자이 오사무는 그것만이 아니야!" 라고 외치고 싶었던 것 아니었을까.
책을 읽으러 가야겠다. 우선 2003년에 국내에 출간된 '달려라 메로스'부터 시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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