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두크 스크램블 3 - The Third Exhaust 배기, 완결
우부카타 토우 지음, 하성호 옮김, 테라다 카츠야 그림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josh, crash, dish, wash, brush, gosh, swich, bitch, witch,
which I am.
온통 지저분한 중얼거림이 끝없이 이어진 끝에 나타나는 것...
wish.

천국의 계단- 마르두크라는 이름을 지닌 도시. 천국을 향해 어디까지라도 올라갈 수 있다. 올라갈수록 화려해지고, 올라갈수록 행복해진다. 비록 행복이 무엇인지를 모르게 되긴 하지만 그런 건 별 문제 아니다. 비록 올라갈수록 계단이 좁아지긴 하지만 그런 건 별 문제 아니다. 떨어지면 지옥으로 직행이지만, 그런 건 별 문제 아니다.

그 천국으로 향하는 계단형 도시에서, 소녀는 창녀였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마음 속에 자신을 가두고, 인형이 되어, 몸을 파는 창녀였다.
인형이 되면 무엇도 두렵지 않다. 인형이 되면 무엇도 괴롭지 않다. 인형이 되면 무엇도 외롭지 않다. 그러나 그녀는 살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는 껍질 밖으로 나왔다.

살기 위해 껍질 밖으로 나간 소녀, 살기 위해 껍질만 남기고 내용물을 모조리 버린 남자, 살기 위해 껍질보다도 단단히 굳은 병사, 껍질 속에서 무한히 행복하게 무한히 오래도록 살아가는 소년, 껍질이 없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음에도 그 때문에 죽을 운명이 된 생쥐, 껍질도 흰자도 필요없다고 말하며 노른자만을 손에 넣는 연구자.

이 작품 [마르두크 스크램블]의 첫 페이지부터 강하게 느껴진 것은 어린 시절 나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던 [공각기동대 - Ghost in the shell]이었다. 인간을 구성하는 것이 껍질shell인가, 혹은 그 안에 들어있는 영혼ghost인가를 논하며 일본 애니메이션에 눈을 뜨게 만들어버린 저 악마같은 작품이 모습을 바꾸어 다시 나타난 것이다. 그 내용 뿐 아니라 텍스트화된 매트릭스를 연상케 하는, 어쩌면 매트릭스 액션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홍콩 느와르를 떠올리게 하는 액션, 그 무엇 하나 무의미한 과정이 없이 소녀의 성장을 느끼게 하는 사건사건의 연속, 슬롯 머신으로 시작되어 룰렛과 블랙잭으로 이어지며 주변을 둘러싼 갤러리는 물론이요 책을 읽는 독자까지 끌어들이는 승부열이- 심지어는 글을 쓰던 작가마저 쓰레기통을 끌어안고 뱃속을 게워내게 했다는 도박, 그리고 생쥐와의 연애에 대해 돌고래로부터 어드바이스를 받아야 한다는 숨 돌리는 호흡까지 모든 것이 세 권이라는 많지 않은 공간 속에 마치 달걀 내용물처럼 빈틈없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단편으로 끝나는 작품들을 읽다 보면 이 캐릭터들을 다시 보고 싶어서 후속편이 나오지 않으려나 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내용 자체가 완성되어 다음 편은 나오지 않는 게 좋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더 보고 싶다'와 '더 보아봤자 좋을 것 없다'가 마음 속에서 하르마게돈급의 대전쟁을 벌이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가장 최근이라면 All You Need Is Kill이 딱 그랬다)
그런 점에서 [마르두크 스크램블]은 완전한 종결이었다. 더없이 만족스러운 독서 끝에 다음 권 없나 하는 아쉬움조차 남기지 않는, 완벽한 결말로 마무리되어 있었다. 굳이 아쉬움이라면 이걸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로 보고 싶다는, 요즘 마구 찍어내는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나 헐리우드의 돈이 썩어나는 바보들이 영상화해주지 않을까 하는 정도였달까.
그리고, 실제로 계획이 있다가 중단되었다고 한다. 그 후기 읽고 그 자리에서 미치는 줄 알았다.

사이버펑크라는 표현에는 '사이버'와 '펑크'를 중시한다는 느낌이 있다. 인간을 무시하고 낭떠러지를 향하여 발전하는- 아니 폭주하는 과학의 광기를 그려낸다는 이미지가 있으며,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는 사이버펑크를 [정보기술의 독점에 저항하는 운동이나 이러한 문제를 다룬 문학·영화의 장르를 뜻하는 말]로 정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마르두크 스크램블]은 사이버펑크가 아니다. 스크램블드 에그처럼 넘쳐나는 과학기술의 향연 -피부를 금속섬유로 감싸 제7감을 창조한 소녀, 차원을 넘어 무엇으로도 변할 수 있는 생쥐, 중력을 지배하며 허공을 헤엄치는 상어들, '광대한' 네트를 헤엄치는 인어들, 구멍 속으로 뛰어든 토끼, 험프티 덤프티- 은 어디까지나 알껍질을 깨고 나온 소녀의 성장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 작품을 라이트노벨도 사이버펑크도 아닌, 성장소설이자 러브 로맨스라고 단언한다.

...쥐와 소녀가 사랑하는 하드고어 그로데스크라고는 말하지 말자. 계란을 깨지 않으면, 오믈렛을 만들 수 없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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