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불복종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이레 / 1999년 8월
평점 :
절판


이 작품의 핵심은 ‘정의롭지 않은 권력에 복종해야 하는가’로 요약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2차대전 이후 독립한 나라들 중 가장 빠른 경제발전과 함께 가장 뛰어난 정치적 발전을 이룩한 국가라고 한다. 역사를 살펴보면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정부가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결코 그것을 묵과하지 않고 지적하고 저항하며 고쳐나가기 위해 온 힘을 다했고, 그 결과 우리는 지금 이런 소리를 하면서도 남산 아래로 끌려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선인들이 남겨준 이 유산을 가꾸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야말로 지성인이라 자처하는 우리들의 의무일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하는, 더 선하고 정의로운- 문제는, [과연 정의라는 것은 무엇인가]하는 점이다. 소로우가 강하게 지적한 멕시코 전쟁은 미국이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벌인 침략전쟁이었고, 확실한 악이라고 할 수 있다. 정말 그런가? 묵자는 “강대국이 약한 나라를 침공하는 것은 악이고, 약소국이 이에 저항하는 것은 정의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자기보다 약한 나라들을 마구 침략하는 약소국을 정의로운 강대국이 침략해서 더 이상 전쟁을 하지 않게 하는 것은, 악일까? 자신의 나라에 이민족을 끌어들인 ‘민족반역자’를 처벌하고 그것을 시민들에게 보여주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은, 악일까? 성경의 창세기에서는 뱀이 하와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네가 이 과실을 먹으면 신과 같이 선과 악을 알 것이고...” 여기서 얼핏 느낄 수 있는 것은, 선과 악을 구분짓는 능력이야말로 신의 권능이라는 사실이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 사회라는 조직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는 그 사회가 구성원들간의 충돌로 파괴되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규범이 필요하며, 사람들이 이 규범을 존중하고 지키도록 하기 위해서는 규범에 권위가 필요했다. 그러기에 옛 시대에는 그 규범에 신의 이름을 덧씌웠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그 규범에 국민의 이름을 덧씌운다. 그리고 그 규범에 정의라는 이름을 덧붙여 휘황찬란한 광채로 뒤덮는다. 그런데, 그 규범이 잘못된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대 사회는 수많은 사람들과 조직들 간에 복잡하게 얽힌 구성체이고, 심지어는 선과 악의 개념마저 혼동을 가져올 만큼 혼란스러운 존재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단순히 권력에 굴하지 않고 정의를 행해야 한다는 주장은 절대 단순한 것이 아니다. 하늘이 열리고 네 천사가 내려와 나팔을 부매 낡은 성이 무너지고 새 시대가 열린다면야 속 편하겠지만 아직까지 천년왕국은 소식이 없으니, 이것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어느 쪽의 의지가 옳은가? [누가 선과 악을 정하는가?] 누군가 위대한 사람이? - 그것을 독재라고 부른다. 더 많은 사람이? - 그것을 다수의 횡포라고 부른다. 나의 양심에 따라서? - 그것을 독선이라고 부른다. 소로우는 자신의 양심에 따라서 행동했다. 그러나 그 양심이 [옳은]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한 명의 전제군주가 결정한 정의가 자신의 것과 다르다면? 한 명의 전제군주가 결정한 정의가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구성원의 그것과 다르다면?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적법하게 선출된 대리인들이 결정한 정의가 자신의 것과 다르다면?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동의한 정의가 자신의 것과 다르다면? 그 전에,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정의라는 것이 존재할까?] 그렇지 않다면, [다른 모두가 동의한 정의를 인정할 수 없는 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소로우는 자신의 손해를 각오하고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했다. 소로우는 국민의 뜻을 따르지 않고 악한 일을 하는 민주주의 정부를 돕지 않겠다고 단언하며 납세를 거부했고, 그 결과 감옥에 갇혔다. 이렇게 그들은 정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손해를 감수했다. 이러한 모습은 백여년 뒤에 다시 한 번 나타나는데, 초강대국 미국이 베트남에 관여하여 연간 수만 톤의 폭탄을 퍼부을 때, 무하마드 알리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징병을 거부하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감옥으로 갔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정의를 추구함에 의해 무고한 한 명의 타인에게 손해를 끼치는 경우에도 그것을 감수해야 하는가? 그 정의를 추구함에 의해 무고한 수십 명의 타인에게 손해를 끼치는 경우에도 그것을 감수해야 하는가? 그 정의를 추구함에 의해 사회 전체에 손해를 끼치는 경우에도 그것을 감수해야 하는가? 그렇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어떤 권리로 타인에게 손해를 강요하는가? 소로우의 경우에는 확실하게 ‘그렇다’고 단언했다. “한 국민이 어떠한 대가를 치르면서도 정의를 실현하지 아니하면 안 될 경우”가 있다고 말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언제]인가? 그것이 언제인지를 [누가] 정하는가? 아울러 “불의한 법이 존재한다면” 그것을 국가가 준비한 오랜 시간이 걸리는 방법이 아닌, “투표쪽지 한 장이 아닌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는 방법으로” 지금 당장 그것을 고쳐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 법이 불의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둘째치고서라도,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지금 당장 거리로 뛰쳐나가야 할까? 그리고 마지막 질문이 있다. 여기에 불의가 있다. 불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인정한 정의도 있다. 그런데 그 정의를 양심으로 간직하고서라도, 어째서 이렇게 저항하기가 어려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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