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중용 - 전통 한문서당 10 전통 한문서당 10
홍문관 편집부 엮음 / 홍문관(크레피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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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大學), 논어(論語), 맹자(孟子), 중용(中庸)의 사서와 시경(詩經), 서경(書經), 주역(周易)의 삼경은 이미 고전을 뛰어넘어 화석 수준으로 취급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사서와 삼경을 비롯한 이 '고전'들은 천년에 걸쳐 동양 사상의 기초를 이루어 왔으며, 단순한 교육서적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모여 만들어진 사회를 지도하고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인 목표로서 존재해 왔다. 이는 인간이 짐승과 다르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인간이 교육을 통해 태어난 순간보다 더 뛰어난 무엇인가가 될 수 있음을 신뢰하는 동양적 인간관의 증명이기도 하다.


사서삼경은 글을 익힌 학생에게 가장 먼저 가르치는,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 필요한 가장 기초적인 틀이었다. 그리고 그 틀은 시대와 사회에 알맞게 모습을 바꾸어 왔다. 예를 들어, 도올 이용옥 선생의 강의에 따르면 중국에는 삼경이라는 말이 없다고 한다. 굳이 따지자면 오경학사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삼경이 아닌 오경이었으며, 당태종 때는 경학이 확립되어 13경이라는 분류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삼경이 사서와 함께 중국의 대표적인 고전으로 알려져 있는 것은 조선시대 과거의 과목으로 지정하면서 생겨난 우리의 전통적인 분류방식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는 곧 유학을 국가의 기본사상으로 삼았던 조선이 조선에 알맞은 경전을 모아 정리한 것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즉, 조선의 유학자들은 유학을 숭상하면서도 중국과 다른 사회의 특성에 따라 그 사회에 알맞은 가르침만을 골라낸 것이다. 언뜻 생각하기에 유학자라고 하면 시대의 변화를 거부하는 수구주의자들로 생각되지만, 이렇게 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에 맞게, 시대에 맞게 자기 자신을 가꾸어 옴으로써 유학은 아직도 한국인의 사상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경전에 대해 이렇게 거리감을 느끼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明明德新民止於至善

밝은 덕을 밝히어 백성을 새롭게 하며 지극한 선에 머물지어다

格物致知誠意正心

사물을 탐구하여 앎을 넓히고 의지를 성실히 마음을 바르게 하라

修身齊家治國平天下

먼저 제 몸을 닦고 제 가정을 가지런이 함에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태평하게 하리라.


공자님 말씀- 하는 비아냥거림이 귓가에 들려올만큼 너무나 도덕적이고 올바른 가르침의 집결체라고 하겠다. 시대가 변화하고 사회가 변화한다지만 이런 원초적인 도덕율이 거부될만한 사회는 흔치 않으리라. 그런데 어째서 이러한 원초적인 도덕율을 가르치던 경전들은 잊혀져버린 것일까.


천 년이라는 시간 동안 사회가 크게 바뀌기는 했다. 재물을 축적하는 것을 소인의 일이라 간주하고 소인에게 나랏일을 맡기면 큰 잘못이라고 주장한 주자의 시대와는 달리 오늘날 정치와 생활의 가장 큰 부분은 경제가 차지하고 있다. 바로 며칠 전에 타결된 한미 FTA며, 정부에서 내놓는 갖가지 경제부양책이며, 주름잡힌 경제에 한숨짓는 서민들의 이야기가 떠나가지 않게 된 것이 벌써 십여 년이다. 이것은 소인이 나랏일에 관여하게 되면서 생긴 일일까, 아니면 소인이 나랏일에 관여할 수밖에 없게 되면서 생긴 일일까. 시합에서 이기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반칙이라고 한다. 모든 사람이 도덕율을 비웃으며 반칙을 저지르는 사회가 온다면, 도덕을 지키는 것이 비웃음사는 사회가 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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