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집에 머물다
박다비 지음 / 상상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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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조금 멀리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은 늘 설레지만 막상 집을 떠나 고된 여행 일정 속에 있다 보면 얼른 우리 집, 내 방에 눕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집이란 그런 것이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편안함과 아늑함이 있는 곳. 지친 하루를 위로받는 그곳. <오래된 집에 머물다>의 부부에게 집은 그보다 더 큰 존재가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과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시간이 켜켜이 쌓여있는 그들의 집은, 세상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는 소중한 공간일 것이다. 그들이 집을 고쳐가는 과정을 보지 못했지만 부부의 집을 찾은 많은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야기한다.

방문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열리는데, 순간 또 다른 진짜 여행이 시작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이곳에 오게 되어 정말 다행이에요.

 

 

아무런 정보 없이 책을 들었다. <오래된 집에 머물다>라는 제목과 100년 된 제주도 집에서 배우고 살아가는 이야기라는 부제만 보고 제주도의 옛집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은 머물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젊은 연인이 부부의 연을 맺으면서 제주도에 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은 100년 된 옛집은 구입하고 직접 집을 고쳐 나간다. <오래된 집에 머물다>는 '그냥' 집을 '자신들만의' 집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집을 다녀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아파트보다 주택을, 큰 집보다 작은 집을 좋아하는 나는 저자의 오래된 집이 참 부러웠다. 하지만 그들만의 집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부러움은 대단하다는 존경심으로 바뀌었다. 그들처럼 100년 된 집을 구입해 직접 뜯어내고 서툰 솜씨로 나만의 집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제주에서 저자는 남편을 만났고 '누구와 함께 인지'가 더 중요한 그들은 제주에 살기로 한다. 제주 주택세의 폭등으로 남서쪽 조용한 마을에 작고 아주 오래된 집을 구입한 후 그들은 사서 고생인 줄 알지만 직접 자신들만의 집을 만들어 간다. <오래된 집에 머물다>는 100년 된 집을 구입하고 옛 흔적을 거둬낸 후에 자신들과 잘 어울리는 집으로 탈바꿈해 가는 과정을 조곤조곤 들려준다. 한 단락은 길지 않아 읽기 편하고 공사 과정은 마치 일기처럼 사진과 그때의 느낌들이 잘 어우러져 있다.

혹자는 제주에서 농가주택을 구해 손수 고치고 있다고 하면, "오-멋있다. 재미있겠다. 낭만적이네!"라는 가벼운 반응을 보이곤 한다. 과연 이 일이 정말 멋있고, 재미있고, 낭만적이기만 할까? 물론 자기가 살아갈 공간을 손수 고치고, 꾸밀 수 있다는 것은 참 멋진 일이었다.

마냥 꽤 멋진 경험이고 낭만적이라고 말하지 않아서 좋았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페인트가 잔뜩 묻는 손을 보여줘서 좋았다. 그리고 너무 반들반들하게 예쁜 집이 아니라서 좋았다. 못질조차 해보지 못한 여자와 두 달 목수 삼촌을 따라다닌 게 전부인 남편이 막노동과 가까워지면서 만들어간 집은, 그래서 더 아름다웠고 정겨웠다.

 

 

저자가 직접 그려 넣은 꽃이 참 예쁘다. 시골 할머니 집을 손녀가 예쁘게 꾸며놓은 것 같다고 말한 사람의 느낌이 어떤 것인지 알 것만 같았다. 전문가에게 맡겨 놓고 뚝딱 새집을 지었다면 절대 할 수 없는 행위들로 집 곳곳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 집에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지 저 멀리서도 알 수 있다. 조금 더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이 된다.

<오래된 집에 머물다>의 대부분은 집을 고쳐가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 저자의 생각과 남편에 대한 사랑이 스며들어 있다. 분명 힘들었겠지만 전혀 힘들었을 것 같지 않은 그녀의 이야기는 오래된 집처럼 차분하고 깊었다. Part 1에서 집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이야기한다면 Part 2에서는 그들의 집을 머물다 간 사람들에 대해 들려준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손님들의 이야기는 인상 깊었다. 그들의 집에 들르게 된다면 나는 어떤 여행자로 기억될까?

 

 

<오래된 집에 머물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들은 비포와 애프터 사진이다. 같은 공간인 듯하지만 전혀 다른 분위기의 전후 사진을 보며 그들의 집을 천천히 둘러봤다. 비록 작은 사진이지만 집안 곳곳에서 그들의 마음과 오래된 집의 분위기를 잔뜩 느낄 수 있었다.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작은방에서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비를 막아주지는 않지만 바람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는 나무 테라스에서 향기 좋은 커피를 마셔보고 싶다. 젊은 집주인 부부가 텃밭에서 채소를 따와 간단히 먹는 점심에 끼어들어 한 입 얻어먹고 싶다. 100년이라는 시간을 가진 오래된 집에 앞으로 쌓여갈 기억들이 궁금해졌다. 나도 그 기억 속의 한 줄을 채울 수 있을까. 제주에 간다면 그들의 오래된 집에 머물러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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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와 사우나만 있으면 살 만합니다 - 하루하루 즐거운 인생을 위한 사소하지만 절대적인 두 가지 기준
사이토 다카시 지음, 김윤경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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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참 좋은 제목이다. <만두와 사우나만 있으면 살 만합니다>라는 단 한 문장이 책을 읽기도 전부터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여유롭게 사우나를 즐기는 표지 그림을 보니 나도 모르게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다. 유난히 피곤한 날이면 어김없이 동네 목욕탕을 찾는다. 따끈따끈한 탕 안에 앉아 있으면 하루의 피곤이 온수에 녹아 없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가며 내일도 파이팅 넘치게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곤 하는데 <만두와 사우나만 있으면 살 만합니다>의 저자 사이토 다카시도 그런가 보다.

<3으로 생각하라>,<혼자 있는 시간의 힘>을 통해 익숙한 작가지만 이 책은 특히 더욱 공감 가는 부분이 더 많았다. 행복으로 시작해서 행복으로 끝나는 사이토 다카시의 행복론은 단순한 듯하지만 그래서 자꾸 잊어버리게 되는 일상 속 숨어있는 행복 찾기에 대해 알려준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불행하고 고단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모로 팍팍한 세상이다. 나 역시도 문득문득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쉴 때가 많다.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 말하는 행복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언제쯤 올까라는 의문이 들곤 한다. 물론 물질적으로 본다면 지금은 수십 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족한 시대다. 먹고살기 위해 인생을 바쳤던 앞선 세대들의 눈에는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행복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배부르니 행복한 걸까? 

행복의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시대와 공간, 사람들마다 제각각인 것이 바로 행복이다. 사람들은 행복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내가 행복한 순간이 언제인지 정확하게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자꾸 남의 기준에 나를 맞추려고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가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만두와 사우나만 있으면 살 만합니다>에서 사이토 다카시는 막연한 행복이 아니라 가장 사소하고, 쉽게 붙잡을 수 있고, 가장 확실한 것들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에는 개개인에게 절대적인 행복론을 비롯해 어떻게 행복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자세하게 들려준다.

<만두와 사우나만 있으면 살 만합니다>에는 57편의 행복에 대한 짧은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야기는 서로 연결된 듯하지만 각각이 하나의 주제로, 어느 것을 먼저 읽어도 문제없다. 저자가 들려주는 행복에 대한 이야기는 마치 매주 만나는 행복에 대한 칼럼 같았다. 길지 않은 글은 부담 없이 읽기 좋을 뿐 아니라 쉽게 설명해 주는 저자의 짧은 문장들은 카톡 프로필에 적어놓고 싶을 만큼 명쾌한 것들이 많았다.

자신만의 단순한 기준을 가져라. 그리고 그 기준에 비추어 지금 행복하다가 느끼면 그것이 바로 행복이다. ~ 또 행복은 남의 이러쿵저러쿵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 이것이 행복이라고 마음으로 느낀다면 그게 바로 절대적인 행복이다.

계속 지금처럼 살아도 될까? 아무것도 이뤄놓은 것도 없는데 지금이라도 뭘 시작해야 되지 않을까?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잘하는 게 뭐지? 등등 수많은 질문과 고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하지만 언제나 답은 찾지 못하고 마음만 급해져 동동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할 뿐이다. 이런 나와 내 주변의 수많은 방황하는 젊지 않은 영혼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만두와 사우나만 있으면 살 만합니다>에 많았다. 책을 읽는 사람은 평생 무료하지 않게 살 수 있다 와 자신만의 즐거움이 있다면 나이 듦이 두렵지 않다고 말하는 부분은 나이가 들면서 소외될 것을 걱정하기 시작하는 지인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막연한 불안감에 사로잡혀 자신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놓치지 말라는 조언은 나에게 꼭 필요한 말이었다.

 추상적인 행복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연애를 가로막은 두 가지 벽을 남성의 '가성비' 의식과 여성의 '심사' 의식이라는 이야기는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연애와 결혼, 무조건적인 나의 쉼터인 가족에 대한 이야기, 끊임없이 좋아요를 누르고 SNS를 보는 커뮤니케이션 과잉 증후군 등 현재 저자가 느끼는 사회 문제와 어렵지 않은 조언들은 거부감 없이 읽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57개의 이야기 끝에는 명쾌하게 내용을 정리해 주는 문장을 덧붙여 주는데 어떤 글은 이해를 도와주고 어떤 글은 용기를 불어 넣어주기도 했다.

만두와 사우나만 있으면 어떤 힘든 하루를 보내더라도 이겨낼 수 있다는 저자의 말처럼 나만의 행복한 순간은 언제일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조용한 주말 느긋하게 책을 읽으며 맛있는 커피 한잔 마시는 순간도 좋고, 목욕탕에서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즐기는 사우나도 좋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해질녘의 공원을 산책하는 것도 좋고 샤워를 끝내고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마시는 맥주 한 잔도 좋다. 그러고 보니 난 참 많은 사소한 순간에서 행복함을 느끼고 있었구나. 출근길이 힘겹고 일상에 가슴이 답답한 순간도 많지만 그만큼 작은 행복이 가득한 순간들도 많았기 때문에 나는 지금까지 잘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사이토 다카시가 책을 통해 들려주고 싶은 행복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았다. 그 '좋다'라는 순간의 느낌을 이제는 '참 행복하구나'라고 바꾸기 위해 나만의 행복론을 만들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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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위의 딸 (양장)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이영의 옮김 / 새움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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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보면 이야기의 배경이 궁금해지는 책이 있다. 유명한 고전소설이라고 하지만 난 <대위의 딸>을 몰랐다. 아무런 정보 없이 읽기 시작한 <대위의 딸>은 재미있었다. 고전이라고 하지만 읽기에 전혀 어렵지 않았고 두껍지 않은 분량이라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읽어 내려갔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의 배경은 읽은 시간의 몇 배를 들여 찾아봐야 하는 것들이었고 책 이상으로 놀라운 사실들이었다. 제목처럼 '단순한' 젊은 귀족 장교와 대위의 딸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었다. 러시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사건이 담겨있는 굉장한 역사소설이자 정치소설이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시로 유명한 푸시킨의 유일한 장편 소설인 <대위의 딸>은 허구가 아니라 완전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책을 읽다보면 어디까지가 진실이냐가 아니라, 어디까지가 소설이고 누가 허구의 인물인지를 궁금해 해야 할 정도로 이 책은 대단히 역사적인 소설이다.

책을 읽을때는 이야기에 열중하느라 몰랐다. 다 읽은 후에 <대위의 딸>의 배경이 되는 사건인 '푸가초프의 난'에 대해 알게 되면서 섬뜩한 기분과 푸시킨에 대한 존경심이 함께 들었다. 굉장히 사람이구나. 소설이라는, 특히 젊은 연인들의 사랑 이야기라는 조미료만 살짝 넣었을 뿐 스스로 황제라 말하며 러시아 18세기의 가장 큰 반란을 이끌었던 푸가초프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그의 대담함이 놀라웠다.


<대위의 딸>은 일단 연애 소설을 지향한다. 주인공인 '표트르 안드레이치'는 귀족 집안에서 귀하게 자라 철들지 않은 도련님이다. 전방에 나가 어른이 되어 오라는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기대와 다른 장교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이야기 초반 근무지로 가는 도중에는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도련님답게 어리석은 행동도 하지만 사랑하는 여인인 '마리야 이바노브나'를 만나고 반란군과의 결투, 푸가초프와의 관계등을 경험하며 점점 어른이 되어간다. 한심스러워 보였던 그가 사랑하는 여인을 지켜내기 위해 용기를 내고 자신의 신념을 지켜가는 성장을 거듭하는 것을 보면 <대위의 딸>은 연애소설이지만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역사 속 실제 인물, 스스로를 표토르 3세 황제라 참칭하며 농민의 지지를 얻어 반란군을 이끌었던 푸가초프는 <대위의 딸> 속에서 우락부락한 반란군의 수장이 아니라 위트와 의리가 있고 때로는 귀엽게 느껴지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권력을 가진 자의 시각으로 보자면 푸가초프는 그들 지배의 오점이다. 하지만 피지배자의 입장에서는 전혀 달랐을 것이다. 푸시킨은 <대위의 딸>에서 주인공들과 엮이게 되면서 보여지는 푸가초프의 인간적인 면을 드러냄으로써 정부를 비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정부에 대항하는 반란군의 시작과 죽음, 수많은 평범한 농민과 군인들의 죽음이 가득한 <대위의 딸>은 그 안에 담겨진 무거운 내용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책이다. 역사적인 배경을 알고 시작한다면 아마 꽤 진중한 분위기의 역사소설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다. 반대로 아무런 지식없이 보더라도 고전 소설이라는 선입견으로 지루한 이야기라고 판단해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대위의 딸>은 심각하지 않을 뿐 아니라 밝고 때론 피식 웃음이 나올 정도로 위트 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책으로 오랫동안 남아있는 거겠지. 사랑을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젊은 장교의 모험과 성장 스토리는 지금 읽어도 재미있을 뿐 아니라 스피드 있는 내용 전개와 깔끔한 문장 덕분에 이해하기도 쉽다.


<대위의 딸> 안에는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연애소설인 듯 하지만 성장소설이며 역사소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날선 정치소설이다. 그리고 그 많은 이야기를 아무런 거부감없이 읽을 수 있게 만든 위대한 작가, 푸시킨의 재능이 더해진 책이다. 남들이 다 알고 있다고 해도 내게 오지 않으면 전혀 알 수 없는 참 좋은 책들이 많다. <대위의 딸>도 그런 책 중의 하나가 되었다. 숨어있는 보석을 알게 된 느낌이다.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에 소개되어 꾸준히 읽히는 책이라고 하지만 나처럼 아직 이 책을 모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좋아한다면 푸시킨의 유일한 장편 소설인 <대위의 딸>을 읽어보길 바란다. 고전이라고 불리는 소설을 읽어보고 싶지만 지루하고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해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면 이 책부터 시작하길 권한다. 어떤 이야기인지 모른 채 읽은 후 다시 <대위의 딸>을 집어들었다. 이번에는 처음과 달리 18세기 제정 러시아의 상황과 푸가초프가 반란을 일으키게 되는 배경과 결말, 민초들의 어려운 삶에 대해 알고 난 후였다.

처음과는 전혀 다른 책이었다. 특별한 걸림돌 없이 부드럽게 모험이 진행되어 살짝 밋밋하다고도 느껴졌던 처음의 연애소설이 아니라, 작가가 문장 곳곳에 숨겨놓은 현실에 대한 비판과 날선 지적들을 찾을 수 있었다. 자신과 아내를 모욕한 귀족에게 결투를 신청하고 총상을 입어 38세에 죽었다는 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안타까웠다. 만약에 그가 오래 살았다면, 변화하는 러시아의 모습을 계속 지켜봤다면 우리는 더 많은 소설들을 재미있게 읽고 감동받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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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과 사랑의 대화
김형석 지음 / 김영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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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평안북도에서 태어난 저자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통과했다. 겪어보지 않은 우리는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지독히 힘들고 가난했던 시기와 급격한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모두 살아온 저자의 삶의 깊이를 헤아릴 수 있을까. <영원과 사랑의 대화>는 일반 에세이와는 달랐다. 한국 에세이의 역사를 새로 쓴 1세대 철학자인 김형석 교수의 대표작인 이 책 안에는 깊이가 주는 고요함이 가득했다. 만약 내가 100세를 눈앞에 둔 나이가 되었다면 나는 저자처럼 삶과 사랑에 대해 나만의 견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커피 한잔 마시며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가 아니다. 누구나 한 번은 넘어가야 할 인생의 고개를 먼저 넘어서고 있는 선배가 들려주는 진중하고 묵직한 이야기로 가득한 책이었다.

 

 

 

<영원과 사랑의 대화>의 표지와 책 속에는 청보리를 그린 그림이 저자의 글과 잘 어우러져 있다.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너무 잘 어울리는 그림이라고 생각될 만큼 청보리밭 그림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 짐을 느낄 수 있었다. 젊은이들의 잘못됨을 소리 내어 꾸짖지 않는 저자의 목소리와 청보리는 무척 잘 어울린다. 청보리를 훑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조용하지만 단호한 100세를 앞둔 철학자의 걱정들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깊은 가르침을 안겨 주었다. 에세이는 순서에 상관없이 읽어도 좋다.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고 싶다면 행복의 조건부터, 1세대 철학자가 들려주는 인생과 죽음에 대한 조언이 궁금하다면 영원의 그리움을 먼저 읽어봐도 좋다.

 

 

바로 우리 삶이 그런 것이다. 어차피 죽음은 찾아오기 마련이나 그때까지 벌꿀을 따 먹으면서 삶을 연장해가는 인생일 따름이다. 그리고 그것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겪어야 하는 인생의 운명이다.

<영원과 사랑의 대화>는 삶과 사랑의 의미를 철학적인 시각으로만 풀어내는 이야기가 아니다. 저자가 살아온 시간과 함께 부모님, 자녀 그리고 종교 안에서 느낀 인생의 의미를 들려준다. 가볍고 톡톡 튀는 에세이에 익숙한 독자라면 <영원과 사랑의 대화>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아닐 수도 있다. 책은 쉽게 읽혀진다. 하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세월의 깊이와 저자만의 독실한 신념을 모든 독자가 완전히 공감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깊이가 바로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영원과 사랑의 대화>중에서 나는 다시 시작하는 인생이라는 글이 가장 좋았다. 30대에는 20대였으면 더 나은 인생을 살았을 거라 생각하고, 40대에는 30대만 됐어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늘 실수하고 항상 후회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젊었다면 지금과는 분명 달랐을 거라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만 꿈꾸고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저자는 이야기한다. 이미 40을 넘었거나 50이 지난 사람들도 인생을 되살려 보는 일이 가능하다고 말이다.

인간에게 이미 늦었다거나 이제는 할 수 없다는 일은 없는 법이다. 자기의 노력과 정성만 있다면 생명이 끝나는 순간까지 우리에게는 엄숙하고도 존귀한 사명이 얼마든지 있는 법이다. ~ 오늘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따위는 물을 필요가 없다. 이제부터 새로운 가치와 인생의 의의를 발견하고 신념 있게 살아가면 되지 않는가! 이웃과 남들을 보며 비교할 필요가 없다. 내가 가장 진실하다고 믿으며, 나의 일생은 이러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이제 곧 전환과 결단, 실천을 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보다 더 힘든 시대를 견디며 살아온 철학자의 이야기는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읽어야 한다. 또 다른 의미의 힘든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우리에게 안타까움과 애정을 담아 들려주는 노철학자의 이야기는 끝없이 펼쳐진 청보리밭처럼 마음을 위로해준다. 제목처럼 영원히 변하지 않을 사랑과 인생을 풀어내는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영원과 사랑의 대화>를 차분히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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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독서 - 완벽히 홀로 서는 시간
김진애 지음 / 다산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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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의 뉴스공장 게스트로 김진애 박사를 처음 알게 되었다. 거침없는 입담과 유쾌하고 속 시원한 독설로 꼭 챙겨듣는 코너였는데 김진애 박사가 여성의 입장에서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소개하는 <여자의 독서>는 그래서 다른 서평집보다 더 기대되었다. 같은 책을 읽더라도 읽고 쓰는 사람의 깊이에 따라 전혀 다르게 설명된다. 특히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엮어내는 책은 분명 무작정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여자의 독서>에는 책을 사랑하고 책을 읽고 싶은 여자들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들로 가득했다.


내가 '아하' 했던 순간을 중심으로 썼다. 그때 왜 '아하' 했을까? 나의 무엇을 자극했던 걸까? 나는 무엇을 갈구했다가 그 책을 만난 걸까? 그때 '아하' 하고 나서 나는 어떻게 변했을까?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앞으로는 또 어떤 게 떠오를까? 이런 의문들에 대해서 더듬어보려 한다.

저자가 '아하'했던 책들은 8가지의 주제에 따라 분류된다. 자존감, 삶과 꿈, 여성, 연대감, 긍지, 용기, 여신, 양성성으로 보통 책을 분류할 때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구분하는 게 마음에 들었다. 각 주제에 따라 3권에서 8권까지의 책을 소개한다. 고전부터 최근 소설까지 시간과 공간을 구분 짓지 않고 오직 작가가 여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에 따라 나눠진다.

읽었던 책도 있고 <여자의 독서>를 통해 처음 알게 된 책도 있다. 서평집을 읽는 즐거움은 다른 사람이 이해하는 책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다는 점도 있지만 책을 통해 또 다른 책을 알게 되고 그리고 또 읽고 싶은 책을 만나게 되는 끝없이 이어지는 책의 고리가 생긴다는 것이 좋다. <여자의 독서>를 읽으면서 나의 독서노트에 또 다른 나뭇가지들이 자라났다. 자꾸만 생겨나고 뻗어나가는 곁가지들을 보며 언제 다 읽어보나 걱정도 되지만 이런 책을 통해서가 아니면 알지 못했을 좋은 책을 알게 된 기쁨이 더 크게 때문에 기꺼이 그런 부담감쯤은 즐길 수 있다.


박경리의 <토지>를 시작으로 저자는 참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낀 점뿐만 아니라 책과 함께 그녀의 인생 이야기, 책에 대한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는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박경리 <토지>를 여러 주제에 걸쳐 언급하는데 <토지>를 아직 읽어보지 않았으니 어디 가서 책을 많이 읽는다고 말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 대한 소개도 좋았지만 책 사이사이에 넣어둔 주제에 대한 저자의 전반적인 생각을 읽는 것 또한 즐거웠다. 그중에서도 '시스터 푸드'에 대한 이야기는 완전히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남자들 사이의 우정 이상의 관계를 브로맨스라고 하며 견고한 성과 같은 것처럼 표현하는 반면 여자의 우정은 가볍게 치부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여자와 남자가 다르듯 성에 따른 우정도 전혀 다르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여자들의 우정을 나타내는 말을 '시스터 푸드'라고 하는데 멋진 단어라고 생각한다. 같이 밥을 해서 먹는 사이. 그녀가 일 년에 두세 번 호스트가 되어 음식을 나눠 먹는다고 하는데 나도 지인들에게 일 년에 한 번이라도 음식을 대접하고 싶어졌다.


책에 대한 저자의 성향을 자세하게 표현해 준다. 그녀가 설명해주는 특성을 보며 나의 책 성향이 어떤지 생각해 봤다. '내 인생의 책' 코너를 만들어 자주 읽는 책들을 따로 모아놓았다는 글을 보며 아직 모아놓을 만큼의 많은 인생의 책이 없는 나는 인생의 책이었으면 좋겠다는 주제로 정리해 볼까 싶다.

<여자의 독서>는 여자가 쓴, 여자를 위한 책 중에 저자가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소개하는 서평집이다. 서평집을 읽고 마음에 들어 그 책을 다시 읽는 경우도 있지만, 저자가 들려주는 설명과 느낌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되는 책도 있다. 책에는 정답이 없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에게는 미처 읽지 못한 주옥같은 책을 소개받는 기회가 될 수도 있고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람이라면 이런 서평집의 도움을 받아 한 권씩 책 읽기에 재미를 들여봐도 좋을 것이다.

저자만큼의 감동이 없을 수도 있다. 그것도 맞다. 책은 내가 읽고 느낀 그대로가 정답인 매력적인 녀석이니까. 만약 내가 찾지 못한 또 다른 매력이 궁금하다면 <여자의 독서>와 같이 나와 다른 시각의 서평을 참고해도 좋다. 당신만의 책 나뭇가지가 마구 뻗어나가길,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 즐거운 비명을 지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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