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과 사랑의 대화
김형석 지음 / 김영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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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평안북도에서 태어난 저자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통과했다. 겪어보지 않은 우리는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지독히 힘들고 가난했던 시기와 급격한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모두 살아온 저자의 삶의 깊이를 헤아릴 수 있을까. <영원과 사랑의 대화>는 일반 에세이와는 달랐다. 한국 에세이의 역사를 새로 쓴 1세대 철학자인 김형석 교수의 대표작인 이 책 안에는 깊이가 주는 고요함이 가득했다. 만약 내가 100세를 눈앞에 둔 나이가 되었다면 나는 저자처럼 삶과 사랑에 대해 나만의 견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커피 한잔 마시며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가 아니다. 누구나 한 번은 넘어가야 할 인생의 고개를 먼저 넘어서고 있는 선배가 들려주는 진중하고 묵직한 이야기로 가득한 책이었다.

 

 

 

<영원과 사랑의 대화>의 표지와 책 속에는 청보리를 그린 그림이 저자의 글과 잘 어우러져 있다.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너무 잘 어울리는 그림이라고 생각될 만큼 청보리밭 그림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 짐을 느낄 수 있었다. 젊은이들의 잘못됨을 소리 내어 꾸짖지 않는 저자의 목소리와 청보리는 무척 잘 어울린다. 청보리를 훑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조용하지만 단호한 100세를 앞둔 철학자의 걱정들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깊은 가르침을 안겨 주었다. 에세이는 순서에 상관없이 읽어도 좋다.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고 싶다면 행복의 조건부터, 1세대 철학자가 들려주는 인생과 죽음에 대한 조언이 궁금하다면 영원의 그리움을 먼저 읽어봐도 좋다.

 

 

바로 우리 삶이 그런 것이다. 어차피 죽음은 찾아오기 마련이나 그때까지 벌꿀을 따 먹으면서 삶을 연장해가는 인생일 따름이다. 그리고 그것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겪어야 하는 인생의 운명이다.

<영원과 사랑의 대화>는 삶과 사랑의 의미를 철학적인 시각으로만 풀어내는 이야기가 아니다. 저자가 살아온 시간과 함께 부모님, 자녀 그리고 종교 안에서 느낀 인생의 의미를 들려준다. 가볍고 톡톡 튀는 에세이에 익숙한 독자라면 <영원과 사랑의 대화>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아닐 수도 있다. 책은 쉽게 읽혀진다. 하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세월의 깊이와 저자만의 독실한 신념을 모든 독자가 완전히 공감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깊이가 바로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영원과 사랑의 대화>중에서 나는 다시 시작하는 인생이라는 글이 가장 좋았다. 30대에는 20대였으면 더 나은 인생을 살았을 거라 생각하고, 40대에는 30대만 됐어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늘 실수하고 항상 후회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젊었다면 지금과는 분명 달랐을 거라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만 꿈꾸고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저자는 이야기한다. 이미 40을 넘었거나 50이 지난 사람들도 인생을 되살려 보는 일이 가능하다고 말이다.

인간에게 이미 늦었다거나 이제는 할 수 없다는 일은 없는 법이다. 자기의 노력과 정성만 있다면 생명이 끝나는 순간까지 우리에게는 엄숙하고도 존귀한 사명이 얼마든지 있는 법이다. ~ 오늘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따위는 물을 필요가 없다. 이제부터 새로운 가치와 인생의 의의를 발견하고 신념 있게 살아가면 되지 않는가! 이웃과 남들을 보며 비교할 필요가 없다. 내가 가장 진실하다고 믿으며, 나의 일생은 이러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이제 곧 전환과 결단, 실천을 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보다 더 힘든 시대를 견디며 살아온 철학자의 이야기는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읽어야 한다. 또 다른 의미의 힘든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우리에게 안타까움과 애정을 담아 들려주는 노철학자의 이야기는 끝없이 펼쳐진 청보리밭처럼 마음을 위로해준다. 제목처럼 영원히 변하지 않을 사랑과 인생을 풀어내는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영원과 사랑의 대화>를 차분히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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