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집에 머물다
박다비 지음 / 상상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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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조금 멀리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은 늘 설레지만 막상 집을 떠나 고된 여행 일정 속에 있다 보면 얼른 우리 집, 내 방에 눕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집이란 그런 것이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편안함과 아늑함이 있는 곳. 지친 하루를 위로받는 그곳. <오래된 집에 머물다>의 부부에게 집은 그보다 더 큰 존재가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과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시간이 켜켜이 쌓여있는 그들의 집은, 세상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는 소중한 공간일 것이다. 그들이 집을 고쳐가는 과정을 보지 못했지만 부부의 집을 찾은 많은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야기한다.

방문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열리는데, 순간 또 다른 진짜 여행이 시작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이곳에 오게 되어 정말 다행이에요.

 

 

아무런 정보 없이 책을 들었다. <오래된 집에 머물다>라는 제목과 100년 된 제주도 집에서 배우고 살아가는 이야기라는 부제만 보고 제주도의 옛집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은 머물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젊은 연인이 부부의 연을 맺으면서 제주도에 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은 100년 된 옛집은 구입하고 직접 집을 고쳐 나간다. <오래된 집에 머물다>는 '그냥' 집을 '자신들만의' 집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집을 다녀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아파트보다 주택을, 큰 집보다 작은 집을 좋아하는 나는 저자의 오래된 집이 참 부러웠다. 하지만 그들만의 집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부러움은 대단하다는 존경심으로 바뀌었다. 그들처럼 100년 된 집을 구입해 직접 뜯어내고 서툰 솜씨로 나만의 집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제주에서 저자는 남편을 만났고 '누구와 함께 인지'가 더 중요한 그들은 제주에 살기로 한다. 제주 주택세의 폭등으로 남서쪽 조용한 마을에 작고 아주 오래된 집을 구입한 후 그들은 사서 고생인 줄 알지만 직접 자신들만의 집을 만들어 간다. <오래된 집에 머물다>는 100년 된 집을 구입하고 옛 흔적을 거둬낸 후에 자신들과 잘 어울리는 집으로 탈바꿈해 가는 과정을 조곤조곤 들려준다. 한 단락은 길지 않아 읽기 편하고 공사 과정은 마치 일기처럼 사진과 그때의 느낌들이 잘 어우러져 있다.

혹자는 제주에서 농가주택을 구해 손수 고치고 있다고 하면, "오-멋있다. 재미있겠다. 낭만적이네!"라는 가벼운 반응을 보이곤 한다. 과연 이 일이 정말 멋있고, 재미있고, 낭만적이기만 할까? 물론 자기가 살아갈 공간을 손수 고치고, 꾸밀 수 있다는 것은 참 멋진 일이었다.

마냥 꽤 멋진 경험이고 낭만적이라고 말하지 않아서 좋았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페인트가 잔뜩 묻는 손을 보여줘서 좋았다. 그리고 너무 반들반들하게 예쁜 집이 아니라서 좋았다. 못질조차 해보지 못한 여자와 두 달 목수 삼촌을 따라다닌 게 전부인 남편이 막노동과 가까워지면서 만들어간 집은, 그래서 더 아름다웠고 정겨웠다.

 

 

저자가 직접 그려 넣은 꽃이 참 예쁘다. 시골 할머니 집을 손녀가 예쁘게 꾸며놓은 것 같다고 말한 사람의 느낌이 어떤 것인지 알 것만 같았다. 전문가에게 맡겨 놓고 뚝딱 새집을 지었다면 절대 할 수 없는 행위들로 집 곳곳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 집에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지 저 멀리서도 알 수 있다. 조금 더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이 된다.

<오래된 집에 머물다>의 대부분은 집을 고쳐가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 저자의 생각과 남편에 대한 사랑이 스며들어 있다. 분명 힘들었겠지만 전혀 힘들었을 것 같지 않은 그녀의 이야기는 오래된 집처럼 차분하고 깊었다. Part 1에서 집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이야기한다면 Part 2에서는 그들의 집을 머물다 간 사람들에 대해 들려준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손님들의 이야기는 인상 깊었다. 그들의 집에 들르게 된다면 나는 어떤 여행자로 기억될까?

 

 

<오래된 집에 머물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들은 비포와 애프터 사진이다. 같은 공간인 듯하지만 전혀 다른 분위기의 전후 사진을 보며 그들의 집을 천천히 둘러봤다. 비록 작은 사진이지만 집안 곳곳에서 그들의 마음과 오래된 집의 분위기를 잔뜩 느낄 수 있었다.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작은방에서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비를 막아주지는 않지만 바람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는 나무 테라스에서 향기 좋은 커피를 마셔보고 싶다. 젊은 집주인 부부가 텃밭에서 채소를 따와 간단히 먹는 점심에 끼어들어 한 입 얻어먹고 싶다. 100년이라는 시간을 가진 오래된 집에 앞으로 쌓여갈 기억들이 궁금해졌다. 나도 그 기억 속의 한 줄을 채울 수 있을까. 제주에 간다면 그들의 오래된 집에 머물러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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