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소재원 지음 / 작가와비평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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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터널을 만나고 사람들은 세월호를 떠올렸다. 하지만 이 책은 놀랍게도 세월호 훨씬 이전에 쓰여진 책이다. 그것도 소재원 작가의 첫 소설이라고 한다. 흥행할 요소가 없다는 이유로 세상밖으로 나오지 못했던 무명작가의 첫 작품, 첫 작품에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가장 진한 농도로 응축되어 있다고 들은 적이 있다. 그렇게 작가가 처음으로 쓰고 싶었던 이야기, 작가의 감정의 결이 고스란히 담긴, 다소 거칠지만 그렇기에 더 생생하게 다가온 대한민국의 민낯, 믿고 싶지 않은 잔인한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주말부부인 이정수가 딸의 생일날, 케익과 선물을 들고 즐겁게 집으로 향하던 중 갑작스런 터널 붕괴로 어둠에 고립된다. 쉽게 구조될 줄 알았던 처음의 기대와는 달리 2주, 3주,...힘겨운 날들이 계속되고, 고립된 섬처럼 구조를 기다리는 이정수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은 끊임없이 변한다. 그것도 잔인하게....그 외면과 잔인한 비난의 여론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하는 아내 김미진의 참혹한 선택, 영화에서와 다른 결말은 충격적이었지만 오히려 더 현실같아서 읽는내내 힘겨웠다.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것 같은 돌덩이와 어둠뿐인 공간, 굶주림 속에서도 이정수는 포기하지 않았었다.
p.48 "후훗, 선생님. 제가 모든 걸 포기할 수 있을 거라 보세요?"
"나가서 우리 아내와 수진이 봐야죠. 나갈 수 있다고 하셨잖습니까. 설사, 불가능하더라도 가능하다 믿어야 합니다. 절대 여기에서 죽을 수 없습니다. 나는 아빠입니다. 한 남자의 남편이기도 하지요.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야 합니다. 그때까지는 죽을 수 없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아내가 쓸쓸하게 늙어 죽는 모습을 상상하기 싫습니다. 내가 잡아줄 겁니다. 아내의 마지막 가는 길에 손을 잡아 주는 것도 나고, 딸아이의 결혼식장에 손을 잡고 들어가는 사람도 바로 나입니다."
전문가조차 구조에 회의적일 때 오히려 구조전문가에게 가족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긍정적이고 강인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유일한 등대였던 사랑하는 아내의 입에서 들어야 했던  

"만약. 만약에 살아있다고 하더라도, 그만 삶을 포기해. 더 이상의 구조는 없을 테니까."
눈 뜰 힘 조차 없을 때조차도 라디오에서 아내의 편지가 방송으로 나오는 그 짧은 찰나를 기다리며 기적같은 31일을 기꺼이 버텨냈던 그를 한순간에 무너지게 하고 만다. 아내와 밥을 먹고 TV를 보고 딸과 함께 놀이공원에 가는, 그 평범한 일상을 빼앗은 얼굴없는 살인자들....부실공사를 한 부패한 권력과 그의 죽음을 부추킨 언론과 다수의 대중은 아무일 없다는 듯 잘 사는데 왜 아무 잘못도 없는 한 가족이 이렇게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1년도 안 된 터널이 속절없이 무너져내렸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남편을 살리고픈 절박한 미진은 도로공사, 경찰서, 시공회사, 소방서까지 찾아가지만 서로 담당이 아니라 변명만 하는,
"어떻게! 어떻게 만들었기에 터널이 무너져요! 왜 구조는 하지 않아요!"
"내 남편은 죽어 가는데! 내 남편은 황당한 사고 속에서 죽어가고 있는데! 국가가 잘못한 억울함으로 배고픔과 싸우며 죽어 가는데! 당신들은 뭐야!"
미진의 절규가 낯설지 않다. 그녀의 분노는 시청률과 이어지고 언론은 주목한다.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도로공사와 사업소는 여론의 분노를 사고 하청업체 사장의 부실공사를 폭로하는 양심선언까지...하지만 그녀를 위해 목소리 높여주던 여론은 또 다른 약자가 나오자 한순간에 돌변한다.
피해자인 그녀가 시골어르신들의 목숨을 담보로 자신의 남편만 살리려하는, 그것도 죽음이 거의 확실한 남편을 볼모로 하는 아주 이기적인 여자로 몰아부치는 상황이 너무나 급작스럽고 무서웠다. 그 여론의 가장 앞에는 기자들이 있었다.
p.165 '기자들은 현재 구조 상황의 보고에 재미를 느끼지 않았다....특종을 잡아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이들..이미 이정수의 생환은 그들에게 관심받지 못했다. 이정수가 죽었다, 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그들은 이미 기사내용을 머릿속에 그려 넣고 있었다. 감동이 진하게 묻어나오는 기사들. 예를 들어 죽음과의 사투, 끝내 사망. 이정수가 남겨 놓은 흔적들, 이라는 기사를 쓰고 싶어 했다.'
잔인한 언론, 세월호 때 단원고에 간 기자는 사망한 학생의 서랍을 뒤져 사진을 찍어대지 않았던가...세월호 당시 유족들이 아닌 정부의 입이 되어 거짓방송을 하던 언론을 향해 사람들은 죽은 언론의 사회, 기자들을 기레기라고 불렀었다. 하지만 "터널을 읽음으로 대중과 나의 이야기는 겨우 시작했을 뿐이다."는 작가의 마지막 말처럼 세월호 청문회가 열리고 있음에도, 언론이 외면하고 있는 지금, 여전히 세월호와 터널의 아픔은 계속되고 있다.


영화는 이정수가 구조되고 무능한 권력에게 시원한 빅엿을 먹이는, 판타지같은 결말을 보여주었지만 책은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세월호의 비정한 현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책에서 이정수의 사망 1주년, 가장 마지막까지 잊지않겠다고 외친 구조전문가는 삼풍백화점 당시 구조요원 막내였었다. 또 이대로 세월호가 잊혀진다면 다음엔 또 다른 참사가 우리곁에 와 있을지도....

 

여전히 아픈 세월호참사, 그 충격적인 참사 앞에서 모두가 함께 생존을 바랐던 처음의 마음과 달리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시선이 나뉘고 약자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부조리한 현실이 바로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기에 터널은 바로 한국사회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 같다. 터널 안과 밖, 단절과 희망 사이에서 우리는 또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무겁게 되새겨보게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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