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 더 미드와이프
제니퍼 워스 지음, 고수미 옮김 / 북극곰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midwife, 참 생소한 단어였다. 찾아보니 산파, 조산사라는 뜻이다. 조산사, 지금은
전혀 생소한 직업이지만 의학이 미치지 못했던 그 시대에 산모 곁에 그들이 없었다면
얼마나 더 큰 희생이 있었을지...이 책을 읽으며 더욱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글을 쓰는 조산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사에 기꺼이 글쓰는 도전을 받아들인
작가 제니퍼 위스, 이렇게 글로 남겨주지 않았다면 그토록 아름다운 희생과 봉사,
생명탄생의 소중함은 안타깝게 역사속으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1950년, 당시 런던의 빈민가에서 가난한 여성들의 안전한 출산을 위해 조산원을
열었던 수녀들의 희생과 봉사, 특히 간호사로써 노나터스 하우스에서의 조산사의
경험이 생생하게 담겨있는 이 책을 통해 출산의 위험앞에 너무나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던 여성들의 굴곡진 삶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산전진료를 위한 가정방문을 하기에 더 가까이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제니,
남편의 폭력으로 제대로 출산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몰리와 두 아이에 대한 안타까움,

구루병으로 네 번의 사산을 겪어야 했으면서도 기꺼이 엄마가 되기 위한 고통을 감수한 브렌다,
예정보다 빠른 크리스마스, 거꾸로 태어나 너무나 위험했지만 극적으로 태어난 아기 '캐롤',
자신에게 몹쓸 짓을 한 의붓아버지에게서 도망쳐 런던으로 왔지만 성매매업자에게 속아
임신, 강제낙태를 피해 도망쳐 나왔던 겨우 열 다섯 소녀 메리, 제니의 도움으로 아기를
낳았지만 입양할 수 밖에 없었고 결코 그 상실의 상처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삶을 살았던 메리,
병으로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여섯아이와 남겨진 젠킨스 부인, 생계가 막막해진 그녀가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구빈원에서 아이들과 격리된 채 보내야 했던 고통에 더해 아이들의
죽음을 소식으로만 전해들어야 했던, 그 시대 가장 빈곤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관통했던
젠킨스 부인, 제니를 만날 때마다 그토록 끈질기게 아기의 안부를 물었던 이유를 나중에야
알 수 있었다. 젠킨스 부인의 고통에는 모성의 힘만으론 버텨낼 수 없는 당시 사회의
부조리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1950년 런던 빈민가 이스트엔드, 마치 우리의 6~70년대 모습과 다르지않아 시끌벅적 대가족에,
결혼한 이후 아이가 생기면 아이를 키우는 건 물론 출산, 피임마저도 오롯이 여성의 몫,
세탁기조차 없는 시대에 드리워진 여성의 고단한 삶은 참으로 무거웠다. 1950년대 중반
극빈층의 산모 사망률은 35~40퍼센트에 달했고, 영아 사망률은 60퍼센트 정도에 이를
정도였다니 피임이 없던 시절, 감염, 출혈, 비정상적인 태아 위치 등 난관에 봉착한 산모의
죽음이 어느정도였었는지 짐작조차 어렵다. 당시 출산율의 통계에 묻어 두기에는 너무나
아프고 생생한 산모와 아기들의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물론 가장 가까이에서 생명을 지켜내기
위한 조산사들의 희생이 있었음은 말할 나위 없지만...그들의 희생과 봉사를 보며 50여년을
버려진 아이들이 입양의 인연을 만날 때까지 돌봐주신 <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의
조병국 어르신이 생각났다. '버려진 아이는 슬프지만 발견된 아이는 희망적이다' 그래서
선생님은 서류 작성할 때 버려진 장소라고 기입하지 않고 발견된 장소로 기입하신다고...
다시 태어나도 아이들을 돌봐주는 의사로 태어나고 싶다고 하셨던 선생님처럼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생명탄생의 이야기, 실화라서 더 감동적인 이 이야기가
각박하고 힘든 요즘의 현실에 깊이 더 와닿았던 것 같다.

 

스물다섯 번째 아기를 지켜낸 콘치타 워렌의 모성의 힘은 기적같았다. 뇌진탕으로 조산,
누구도 희망을 말하기 어려웠던, 700그램도 되지않은 위태로운 아기, 뇌진탕의 후유증과
출산의 고통으로 의식이 거의 없는 와중에도 그 어디에도 아기를 보내지 않겠다는 엄마의
지극한 모성으로 불가능해 보였던 아기의 목숨을 지켜낸 콘치타, 과학의 도움없이 오로지
엄마의 사랑만으로 아기를 살려낸 그녀를 보며 현대의학이 인간 생명의 신비를 다 알지
못한다고 한 제니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p.41 "무엇보다 산모를 도와 예쁜 아기를 분만시켰다는 그 어디에도 비할 데 없는 충만함!
왜 이 일을 시작했을까? 후회하는 건 아닐까?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나는 이 일을
세상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오랜 수련과 경험, 깊은 신앙심으로 산모들을 대하는 수녀들과 달리 빈민촌 산모들의 불결함과
역한 냄새를 견디기 힘들어하는 속내와 출산의 고통을 호소하는 산모앞에서 잘못되지 않을까
긴장하는 자신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1년차 조산사의 긴장감과 압박감을 하나씩 극복해가며
의료인으로서의 경험외에도 자신이 만난 산모들의 힘겨운 삶에 공감하며 성숙해지는 제니,
그래서 더 인간적이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p.505 "아름다운 것은 진리요, 진리는 아름다움이다. 그뿐이다.
이것이 인간 세상에서 인간이 아는 전부요, 알아야 할 전부다."

 

평생을 봉사했던, 모니카 수녀님이 시노트에 남긴 키츠의 <그리스 항아리에 부치는 노래>에
나오는 시구처럼 아기 탄생의 순간은 가장 아름다운 순간,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감동적일 수
밖에 없음을 느끼게 하는 책이었다. 무겁고 경건하기만 할 것 같은 수녀원, 하지만 개성강한
수녀들의 캐릭터와 조산사 제니를 비롯 함께 일하는 조산사들의 다양한 모습들이 이 소설
속에서 아기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만큼 풍부한 매력을 발산한다. 원작을 읽어보니 영국드라마
매니아들이 강추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듯. 책의 감동을 드라마로 다시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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