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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무도 ㅣ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31
신시은 지음 / 황금가지 / 2016년 5월
평점 :


신인 작가의 첫 책을 읽는 설레임, 게다가 그 작가가 지인일 때의 반가움까지 더해진 책<해무도>
아는 분 따님의 첫 책, 다소 긴 기다림 끝에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 접하자마자 책을 구입해서 작은 응원을 보태고 책을 펼쳐들었다. 첫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탄탄한 스토리와 팽팽한 구성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어 내려갔다. 무엇보다 소설 내내 해무도를 감싸고 있는 무서운 설화, 백발의 귀신, 목없는 시체..기묘한 이야기의 힘이 무겁게 내리누르는 느낌이었다.

p.10 '해무가 낀다!' 한낮의 바다는 이승의 힘이 강해 육지가 바람을 붙잡고 있지만,
해가 지고 난 후의 바다는 저승의 시간으로 변해 바다가 육지의 것을 빨아 들인다...
초희에게 들려주던 할머니의 무시무시한 옛 이야기와 바다의 안개, 해무라는 알 수없는 두려움을 불러 일으키는 섬의 풍경을 시작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스승의 부고를 듣고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이십 년 만에 섬을 찾은 연교수는 거센 파도와 한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의 폭설에 갇혀 섬에 고립되고 만다. 장례식장에서 사라진 시체의 목도 공포스러운데 연이어 발생하는 살인사건까지! 그곳에는 풀리지 않은 이십 년 전의 살인사건이 봉인된 채 가라앉아 있었고 이십 년 전 살인사건과 무관하지 않은 사람들은 범인이 누군지 모른채 공포에 사로잡힌다.
쉴틈없이 몰아치는 사건과 그 중심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끊이지 않는 의혹,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는 고립된 섬에서 도대체 범인이 누구일까?' 하는 궁금증, 해무가 주는 기묘한 두려움, 예부터 마을을 감싸고 있는 영산의 설화와 어울려 무섭게 몰입하며 읽었다.
우리를 둘러싼 산골, 그 골짜기 사이사이에 무수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는 어떤 분의 말씀처럼 예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그 수많은 설화, 구전 이야기들이 사라지고 있는 요즘, 젊은 작가가 잊혀져가는 옛 이야기들에 상상력을 보태 현대적이면서도 기묘한 추리소설로 완성한 작품, 그래서인지 더 빠져들었다. 생각해보면 어릴 적 우리곁에는 많은 기담, 설화들이 전해져왔었다.
p.60 "옛날 야그요. 왜, 할미가 밤에 해주는 그런 야그 말이오. 어디보자..."
이렇게 시작하며 밤새도록 들려주던 할머니의 이야기말이다. 어릴 적 우리동네만 해도 뒷산에 독수리나무라는 전설이 담긴 하얀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나뭇꾼이 그 나무를 베었는데 마침 그 나무 속 둥지에 있던 독수리새끼들이 모두 죽고 말았다는...그 이후로 나무는 불이 나도 타지않고 고고히 남아있었는데 무엇보다 아무리 멀리서 봐도 그 나무만 오롯이 눈에 띄어 그 영험함을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작가가 인터뷰에서 말했듯 이렇듯 우리나라 방방곡곡 무수한 설화가 많은데 일본처럼 기담, 민속 추리소설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건 무척이나 아쉽다. 한국 민담에 담겨있는 한(恨)의 정서, 무섭고도 특별한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는 신시아 작가, 아직도 들려줄 이야기가 많은 젊은 작가의 다음 작품도 무척 기대된다.
p.156 이십 년 전의 일이 없으면 지금의 일도 없었다.
p.164 "자네는 모를 걸세. 가끔은 가난이 귀신보다 무섭다네.
가난한 자는 결국 돈의 노예가 되기 마련이야. 그리고 나는 항상 그 더러운 것의 노예였지."
p.219조금 열리던 문은 더 이상 기이한 소리를 내지 않고 멈췄다. 주경은 잠시 고민하다가 주춤대며 욕실 문 쪽으로 걸어갔다. 이대로 이 방을 빠져나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이상하게 그녀의 발걸음은 욕실을 향하고 있었다. 예전부터 공포영화에서 문을 열어보는 여자들을 멍청하다고 생각했으면서도 막상 그녀가 지금 그런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은 깨닫지 못했다. (웬지 공감되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