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무선) ㅣ 보름달문고 44
김려령 지음, 장경혜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책을 구입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작가와 출판사 모두 제가 좋아하는 경우입니다. 김려령 작가의 신작이며 문학동네라 바로 구입, 80년대의 '누가 그 사람을 모르시~나요" 이산가족의 아픔이 저절로 떠올려지는 그 노래제목이 어렴풋이 겹쳐지는.....다 읽고 나면 따스한 온기가 전해져 오는 책입니다.

 

어느 순간 읽으며 나는 작가에겐 슬쩍 눈을 흘기고 말았습니다. 처음에는 엉뚱하고 당돌한 제자와 백수에 가까운 오명랑 작가의 알콩달콩으로 마구 웃기더니 어느새 눈물 맺히게 하다니....
칠 년전 동화작가로 등단! 자신감과 사기가 하늘을 찔렀지만 현재는.... 스스로는 작가라고 외치나 가족들은 백수로 자타공인하는, 오명랑 작가, 가족눈치탈출작전의 일환으로 이야기 듣기 교실을 열게 됩니다. 1개월 무료 수강의 광고 덕분인지 세 명의 제자, 종원, 소원, 나경과 만나게 되지요. 자신의 가슴에 박힌 이야기,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지만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이야기 듣기 교실의 선생님이라는 직책을 이용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들려줍니다. 단지 영어학원이 가기 싫어서 이야기 듣기 교실에 온 까칠하고 시큰둥한 종원이도 동생 소원이도 작가를 꿈꾸는 야무진 아이 나경이도 어느새 이야기에 빨려듭니다. 저처럼.....


아리랑아파트 후문 앞 학교로 가는 쌍둥이들이 건널목이 없는 길을 막 건너려던 순간, 신호등 안전모를 쓴 건널목 아저씨와의 만남이 시작됩니다. 횡단보도가 없어 위태위태한 길을 아침마다 카펫건널목으로 건너게 해주는 건널목 아저씨는 아리랑아파트의 비어있던 105동 경비실로 오게 됩니다. 어느새 아저씨의 좁은 경비실은 복숭아를 건네주시던 할머니가 명절 때 내려오지 못하는 아들이야기를 하소연 할 때도 들르는 곳이고, 급할 때는 쌍둥이 아빠의 비상용화장실로도, 또 아빠의 폭력을 피해 도망친 도희의 피난처가 되기도 합니다. 어느날 도희는 아저씨와 함께 태석이, 태희 남매를 만나게 됩니다. 엄마에게 버림받고 아빠마저 병으로 세상을 떠난 세상에 오두커니 남아있는 남매는 그렇게 아저씨가 이어준 건널목으로 버텨가고 있었습니다. 진짜 건널목이 생겨 경비실에 두었던 카펫 건널목은 추운 겨울 지하방에서 보낼 아이들을 위한 온돌카펫이 되었고..... 태석이한테는 돈을 많이 벌어 올거라고, 태희한테는 쥐포를 잔뜩 사 올거라고 하며 떠났던 엄마가 2년만에 돌아왔습니다. 쥐포를 쪽쪽 빨면서 "음, 근데 엄마, 우리 왜 버렸어?" 라고 말하던 태희를 보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상처를 안고 있는 아이들이 서로를 보듬는 모습은 안스러웠구요. 무엇보다 카펫건널목을 지고 다니며 "이 길 위험합니다!" 하면서 경고하고 다니는 아저씨에 대한 고마움이 컸습니다.

자신의 아픔을 가슴에 묻고 묵묵히 매일매일 위험한 도로에서 안전한 카펫건널목을 펼쳤던 아저씨를 보며 전 우리 엄마를 떠올렸습니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셋방으로 내놓은 방은 방 한 칸의 허름한 집이었지만 그 곳을 찾아온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보금자리였지요. 어느날 딸과 아들을 둔 아주머니가 이사를 왔습니다. 남편이 죽었다고 말했던 아줌마에게 어느날 남편이 찾아왔구요. 알고보니 술만 취하면 때리는 남편을 피해 도망나온거였습니다. 하지만 술을 먹지 않을 때는 정말 더없이 선하고 착한 아저씨....그렇게 함게 살게된 그 아저씨는 정말 술만 먹으면 완전히 딴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 집으로 도망오던 아줌마, 어렸던 나는 무서움에 아줌마가 제발 딴 데로 도망치기를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습니다. 엄마는 우리집으로 오는 아줌마를 보호해 줄 뿐 아니라 싸우는 소리만 나도 달려나가 정말 온몸으로 막아내시는 거였습니다. 제발 다친다고 모른척 하라고 하는 내게 엄마는 자신도 모르게 가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술이 취해 발갛게 충혈된 눈으로 아내를 따라온 아저씨를 온 몸으로 막아내던, 심지어 연탄집게 등으로 위협하는 아저씨에게 "왜 이라요 아저씨 아~들을 생각하소, 먹고 살라고 이라고 열심히 사는데 아저씨가 참으소" 때로는 등짝을 때리면서 아들을 혼내듯 매섭게 혼내기도 하셨습니다. 어쩐 일인지 아저씨도 그런 엄마에게는 차마 대들지 못하곤 했는데....일하다가 허리를 크게 다친 아저씨는 몸을 움직이는게 힘들어지면서 그 후 술을 안먹게 되었고 마음이 평안해진 아주머니가 부지런히 일한 덕분에 조금 더 나은 환경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전에 살던 곳에서는 누구도 말려주는 이가 없어 항상 눈에 멍을 달고 살았다는 아줌마, 친정엄마같다며 이사 간 후에도 언제나 찾아오시곤 하셨습니다. 아빠가 엄마를 때릴 때마다 밖에 서서 울고만 있던 아이들, 맞는 엄마를 온 몸으로 막아주고 "니들이 무슨 죄고....." 다독이며  끌어안던, 좋은 학교로 진학했다는 소식에 자신의 일처럼 기뻐한 엄마를 건널목 아저씨같은 따스함으로 기억하지 않을까요.....

 

건널목이 위태위태한 사람들의 안심 그물망이라고 말했지요. 건널목이 별거 아닌 거 같아도 그 표시가 얼마나 많은 사고를 예방하는지 모른다고..... 운전자들도 보행자들도 일단 멈추려는 마음이 들게하는 건널목, 누군가에게 또 무엇으로부터 상처받더라도 좀 덜 다치게 조금 더 빨리 회복되게 하는 건널목은 누구나의 마음에 다 있을지도......단지 돌돌 말려있어서 쉽게 꺼내지 못한다고 믿고 싶습니다. 그런 마음을 도르르 펴서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오고가는 그런 건널목이 많이많이 생겼으면.....
이 책을 읽으며 내가 힘들 때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을 기억하게 하는 시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옆에 있는 사람들, 이웃들의 아픈 비명을 듣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옛날의 나처럼 귀찮은 남의 일에 얽히기 싫고 혹여 다치기 싫어서 귀를 막고 눈을 가리고 있는걸지도.....많은 사람들 사이에 건널목 씨 한 사람 더 왔을 뿐인데 아리랑아파트가 훈훈해진 것처럼 남을 배려하는 사람, 좋은 향기와 에너지를 내뿜는 사람이 하나둘 많아진다면 생각만해도 훈훈해집니다.

내가 받은 손길을 기억하고 또 한 명의 건널목 아저씨가 된 태석처럼 도미노처럼 배려와 사랑이 이어지기를 바라봅니다.
벼랑으로 내달리는 사람들의 메마른 마음, 깜박깜박이는 위태로운 빨간 마음의 신호들을 사랑과 배려로 마음이 따스해지는 초록불로 바꿔 준 건널목 아저씨의 카펫건널목이 그립다면......
내가 그런 건널목을 그려보는 건 어떨까요? 기다리지만 말고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봅시다.

 

 

때로는 힘들고 지쳐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을 테지요. 어른들도 부족한 게 많아 번쩍 안고 원하는 곳으로 옮겨 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덜 힘들게 덜 아프게 덜 무섭게 그 시기를 건널 수 있도록 건널목이 되어 줄 수는 있습니다.

친구라도 좋고 이웃이라도 좋습니다. 먼저 손을 내밀어도 괜찮고, 누군가 먼저 내민 손을 잡아도 괜찮습니다.

우리 그렇게 살았으면 합니다.-작가의 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