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해록' 이 책을 접하기 전에는 들어본 적 조차 없는 제목이다. 왜 우리는 고전하면 떠올리는 책들이 우리 책이 아닌 중국이나 서양의 도서목록만 떠올렸을까 반성해본다. 조선선비 최부가 뜻하지 않은 풍랑으로 겪게 되는 명나라 여정이긴 하지만 세계적으로는 3대 중국여행기로 뽑힐 만큼 소중한 가치를 인정받는 책을 이제서야 접하다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서 만나는 생생한 중국견문록이 아닐 수 없다. 현재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는 김충수 작가는 어렵고 딱딱하다고 생각하는 고전이자 보고서 형식의 표해록을 일기처럼 편안하게 읽을 수 있도록 써주어 친근하게 읽을 수있게 해준다. 최부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자신을 소개하는 글로 시작하는데 올곧은 점필재 김종직의 제자로 벼슬에 오르고 사화에 연루되어 죽음을 맞기까지 짧은 글에서도 최부의 선비정신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표해록은 최부가 부친상을 당해 제주에서 배를 타고 오다 뜻하지 않은 풍랑으로 중국땅에 표류하면서 조선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여정을 붓끝에 담아낸 기록이자 일기이다. 표류하다 왜인으로 오해받아 죽임을 당할 뻔 하기도 하고 수많은 고초를 당하기도 하지만 잠깐의 임기응변으로도 상복을 벗지않을만큼 기개있는 당당한 조선 선비의 위상을 보여준다. 역사와 지리에 해박했고 학문이 깊었기에 그 해박함 덕분에 중국관리들로부터 후한 대접을 받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의 인품에 반하는 중국인들의 태도에 후손인 나도 괜스레 뿌듯해진다. 은근히 자신이 급제한 사실을 자랑하는 장보라는 사람에게 "그대는 내 곁에도 오지 못할겁니다.' 라며 코를 납작하게 하는 일화는 웃음을 머금게도 하고 명나라의 건축과 복식, 사소한 것까지도 구체적이고 꼼꼼하게 기록해 바로 눈 앞에서 보는 듯 기록한 표해록이 볼수록 귀한 자료이자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국운하의 역사에서 너무나 귀한 자료지만 황하의 범람으로 수몰된 '미산만익비'는 이제 표해록에만 남아있는 유일한 기록이라고 하니 기록의 중요성을 다시금 실감케한다. 지난 6월에 열린 국제기록문화제에서 우리의 자랑스런 기록문화유산들을 생생하게 만났었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기록문화유산만 무려 7개, 또 하나의 소중한 기록문화유산인 표해록을 발견한 느낌이다. 책 속 [표해록 더 잘 읽기]는 중국 관원의 품계나 지명해설 등 우리가 표해록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팁을 제공하고 [이야기한자락]에서는 와신상담 등의 고사성어에 얽힌 이야기부터 홍수로 넘치던 황하의 물길을 만든 우왕의 이야기, 슬픈사랑의 맹강녀와 백사이야기 까지 마치 옛이야기 책 한권을 따로 부록으로 받은 듯하다. 과거로 가는 시간여행도 멋진데 우리나라도 아닌 드넓은 중국 명나라로 초대받아 함께 구석구석을 여행한 것 같은 [표해록] 표해록과 선비 최부를 알게 된 것만도 우리아이들에게는 이미 큰 소득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