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서도 나오는 '말은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 는 오래된 속담은 사실 지금도 통용되고 있음을 서울로 꾸역꾸역 몰려드는 사람들로 몸살을 앓고 있는 서울의 복잡함만 봐도 알 수 있다. 서울은 아니지만 서울 인근인 수도권에 살고 있으면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남편이나 뜸하지 않게 아이들과 오고 가는 서울나들이를 하면서도 서울에 대해 알고 싶다거나 궁금해하지 않았던 무심함을 갖고 있었다.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지 싶다. 기실 그냥 사는 거지 서울에 대해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산을 갔다 온 거지 안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처럼…… 책을 받아 들고 두께와 제목으로 보아 무거운 부담으로 읽어야 하는 인문 책이 아닐까 걱정스런 맘으로 책을 펼쳤는데 의외로 술술 읽힌다. 인문학자의 격식에 갖춘 논문 형식의 딱딱한 책이 아니라 신문의 만평 같은 부담 없는 활자가 서울의 역사 속으로 자연스레 이끈다. 그 시대의 모습을 오롯이 보여주는 흑백사진들과 함께…… 장옷을 쓰고 전차를 탄 아낙네의 모습이나 물동이를 이고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들 사진, 갓 쓰고 두루마리 입은 채 선글라스를 쓰고 걸어가는 어색한 양반의 모습 등 친근한 우리 엄마의 어릴 적 모습이나 할머니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책 곳곳에 박혀있는 사진들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거기에 역사학자인 작가의 맛깔스런 이야기와 함께 하니 점점 서울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질병과 형벌에서 유래된 걸쭉한 욕설의 유래에서 조선시대 의료기관을 거슬러 올라가며 현대인에게 다가온 병원의 이미지까지 종횡무진 다방면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작가의 박학다식에 새삼 놀랐다. 우리의 얕았던 서울이야기를 조금씩 알아가게 도와준다. 이 책은...... 남대문 앞에 한가롭게 앉아있는 소의 모습이 담긴 사진은 어느새 자연스레 전차가 지나가고 있고 책에는 안 나오지만 종내는 불타서 사라져버린 남대문을 떠올려본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많은 것들이 영사기의 필름처럼 숨가쁘게 돌아가며 참 많이도 변했다 싶다. 지금의 모습에서는 전혀 떠올릴 수 없는 1900년경 서울 외곽 북한산 자락의 초가마을사진 개발에 밀려 사라져간 종로서적이나 화신백화점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 떠오르는 친근한 이름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조금씩 알아가며 들여다본 서울은 과연 깊었다. 그 깊은 속을 못 보는 우리의 안목이 얕았음을 깨닫게 된다. 깊은 역사를 안고 있는 서울이 점차 자기 색을 잃고 있지나 않는지 걱정스런 맘도 든다.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면서 조선시대부터 600년이상을 수도로 자리매김해온 서울 ‘서울’이라는 명칭에 얽힌 이런저런 이야기부터 들려준다.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꿈꾸었던 정도전의 생각이 담겨있는 경복궁의 궁 배치도와 왕의 권위를 세우려는 이방원에 의해 세워진 창덕궁의 배치도의 묘한 차이점을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시골뜨기니 촌뜨기니 하는 말이 생기고 그 상대적인 단어 서울내기가 남기는 묘한 간격 그 정서적 간격은 아직도 남아있고 나 역시 느낀 바이다. 부산에서 올라와 성남에서 살 때이다. 환경 면에서는 서울과 가깝다는 이점 말고는 부산보다 더 낙후되어 있음에도 이웃들은 내가 부산에 갈 때마다 “시골 잘 갔다 와”라고 안부 말을 남기고 나의 사투리를 재미있어했다. 서울도 아니면서 서울과 가까운 수도권에 있다는 이유로 왠지 모를 우월감을 느끼는 이웃들에게 반발심과 소외감을 느끼곤 했다. 그런 왠지 모를 마음의 간격이 조선시대 궐의 담장부터 시작해서 조선후기로 오면서 권력을 세습하려는 양반들에 의해 차츰 쌓아져 온 오래된 벽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종교를 믿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근대 건축물의 미를 보여준다는 생각에 명동성당을 보며 감탄했었는데 다른 의미로도 바라 볼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왕이 사는 궁궐보다 높은 곳에 건물이 들어 설수 없다는 조선 왕의 권위가 외국인들에 의해 무너졌을 때 쓰러져가는 대한제국의 명운을 암시하는 것도 같다. 근대화라는 격동기 속에 있던 조선말 대한제국 시대의 모습을 많이 비추어주고 기존의 시각과는 다른 관점을 보여주어 좀 더 깊이있는 안목을 가지게 된 것 같다. 머리말에서 작가가 잠깐 언급한 것처럼 서울의 이곳 저곳을 맛깔스럽게 보여주는 뷔페를 맛본 느낌이다. 하지만 작가의 겸손처럼 싸구려 뷔페가 아닌 한 상 잘 차려진 한정식의 깊은 맛과 정갈함이 떠오른다.